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1화
"우에에에엑!"
"우욱!"
시몬은 아까 식당에서 벌어진 구토 사태가 어떻게 된 건지 비로소 이해했다.
지금 그게 고스란히 A반 학생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아마 식당에서 토했던 사람들은 별야의 오전수업을 들은 학생들이었으리라.
"엄살 부리지 말고 처먹어! 인간은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쉽게 안 뒈져 이것들아!"
별야가 열을 올리며 강의실을 활보하고 있었다.
경과는 이렇다.
별야가 실습을 선언했고, 조교들은 학생들의 앞에 케이스를 하나씩 놓았다. 그 안에는 알록달록하고 찰흙처럼 생긴 블록들이 놓여 있었다.
이걸로 뭐 찰흙 놀이라도 하는 걸까. 이게 독의 원료인가. 처음 본다. 신기하다. 학생들이 호기심 가득한 반응을 보이며 마법 솥에 불을 켜려고 하는데, 별야가 선언했다.
"자! 처먹어!"
사실 먹는 거였다.
케이스 안에는 두 가지 대비되는 재료가 있다. 하나는 진짜 독이었고, 다른 하나는 면역계를 자극해서 몸에 항체를 만드는 약품이다.
조교들의 신신당부와 함께(혹시나 독을 먼저 먹으면 정말로 죽는다.) 약품을 먹은 다음, 진짜 독을 입에 넣어야 했다.
다들 벙쪄서 망설였지만 키젠 교수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결국 학생들은 약품부터 조심스럽게 삼켰다.
이 약품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독성이 강한 듯, 벌써부터 온몸에 반점이 생기거나 열이 오르고 구토증세가 일어났다.
그렇게 5분 뒤 약효가 충분히 퍼졌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독을 목구멍으로 삼켜야 했다.
"교, 교수님! 진짜 이거 수업이에요?"
"안 죽는 거 맞아요?"
비위가 안 좋은 한 학생들이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질문했다. 별야가 삼각형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럼 X발 교수가 학생을 독살하겠냐? 앞서 먹었던 애들 중에서도 죽은 새끼는 없으니까 작작 깝죽거리고 처먹어."
별야의 서슬 퍼런 눈빛에 압도당한 학생들은 마지못해 독을 삼켰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독이 목구멍에 들어가는 순간, 목구멍에서부터 몸의 소화기관이 식겁하며 독을 다시 식도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몸의 장기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외치는 것 같았다. '이건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야'.
"뱉거나 의도적으로 토하는 새끼는 바로 대가리 밟는다."
망설이는 학생들이 보이자 별야가 직접 강단에 내려와 강의실을 돌아다녔다.
시몬은 눈을 질끈 감고, 입에 조금 머금고 있던 독을 꿀꺽 삼켰다.
"......!"
장기에서 경련이 일어난다. 독과 약품의 성분이 서로 싸우며 몸에 마구마구 두드러기가 나거나 이상한 무늬가 생겼다.
"이, 이게 뭐야!!"
"수, 숨이......! 컥! 커흑!"
다들 난리도 아니었다.
메이린은 그대로 자리에 엎드려 버렸고, 카미바레즈는 차마 삼키지 못하고 덜덜 떠는 모습이었다. 딕은 헛웃음을 흘리며 친형제들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건 너희들의 몸에 항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별야가 말했다.
"내 수업시간에 제공되는 독들만 마스터해도, 어지간한 독들은 대처할 수 있어. 이건 진짜 기초 중의 기초야."
그녀가 설명하며 한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내가 제일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 게, 명색이 네크로맨서란 새끼들이 독을 무서워하는 거야. 포션병에 담아놓고도 무서워서 손가락 덜덜. 적을 잡으려고 화학전을 펼치면서 본인은 방진복 입고 금속마스크 쓰고 항생제 먹고 지랄 발광 육갑을 떠는 꼴을 보면 증~말 한심해. 그런 새끼들은 제발 독을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녀가 엄포를 놓듯 목소리를 높였다.
"독을 쓸 거면, 적어도 독에 익숙해져라."
학생들이 자리에서 엎어지고 구토를 하는 가운데에도 별야는 독 먹는 수업을 강행했다.
수업은 중반부에 이르렀다.
독을 한 세트만 먹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정화제로 몸에 남은 독의 잔여물을 깔끔하게 없애고는 다음 독을 먹어야 했다.
총 3세트. 다 먹은 학생들은 그때부터 잠시의 휴식 후 조교가 진행하는 교과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못 먹으면 수업 내내 먹을 때까지 붙들고 있어야 했다.
"......교수님,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불만이 터져 나왔다.
모두를 대표해서, A반의 맹독학 최고성적자인 클라우디아 멘지스가 직접 항의했다.
"독을 먹어서 독에 익숙해지는 수업의 존재 자체가 의문입니다. 우리는 키젠의 위대한 맹독계 흑마법을 배우러 왔지. 이런 야만적인 훈련을 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고위 귀족의 영애답게, 그녀는 '야만적인 훈련'이라는 제법 수위 높은 워딩까지 사용했다.
몇몇 학생들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조교들이 기겁하며 별야의 눈치를 보았지만 별야는 계속 지껄여 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했다.
"그, 그리고 수업의 목적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클라우디아 본인도 긴장한 듯했지만 항의를 이어갔다.
"우리의 주적은 프리스트입니다. 맹독학으로 프리스트를 이길 방법을 알려주셔야지, 독에 우리 몸을 적응시키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야."
별야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쭉 들이밀었다.
"클라우디아라고 했나? 조교들이 A반 최고라고 칭찬하던 그 꼬맹이구만. 그럼 질문하나 할게. 넌 니가 키젠의 맹독학 교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냐?"
"아, 아닙니다."
권위로 찍어누르려는 건가.
클라우디아는 조금 실망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 나 말고 인마. 전 맹독학 교수였던 랭 슈트라우스 교수. 니가 X나 잘나서 어른이 되면 그만한 사람이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말년에는 이상한 사건들에 휘말리긴 했지만, 랭 슈트라우스 교수는 30대 전성기 시절 맹독학의 수많은 틀을 확립하며 학계의 발전을 20년 이상 앞당겼다고 평가받는 레전드 중의 레전드였다.
그 물음에 클라우디아가 번쩍 고개를 들며 온 힘을 다해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전 그분의 발끝도......."
"맹독술사들이 그렇게 빨아 재끼는 그 위대한 양반도."
별야가 혓바닥을 달싹였다.
"프리스트의 독에 당해서 죽었지. 벌써 잊었냐?"
순간, 교실 전체에 싸한 분위기가 흘렀다.
모두가 언급 자체를 극도로 피하던 엄청나게 민감한 사안. 귀를 기울이고 있던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못 들은 척했고, 조교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죽음의 마녀가 다른 똑똑한 애들 냅두고 날 이 자리에 앉힌 것도 어떻게 보면 이해가 돼. ......회의감 빡세게 들었겠지. 더 할 말 있냐?"
클라우디아가 처참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없습니다."
"그럼 처먹어. 질질 짜는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진짜로 쫓아낸다."
그녀가 냉정하게 등을 돌리며 수업을 재개시켰다. 모두가 이제는 찍소리도 못하고 독을 삼키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수업은 중후반까지 흘러서야 세 개의 독을 모두 삼킨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진짜. 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 흔드는 것까지 봄."
7조에서 가장 빠르게 끝낸 건 딕이었다. 기어이 세 개의 독을 다 먹은 그가 비틀거리며 이론 수업이 있는 옆 강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재능의 아이콘이자, 선행학습 없이도 누구보다 뛰어난 성과를 냈던 시몬은.
'.......'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시몬에게도 독을 먹고 잘 견디는 재능 같은 건 없었다. 물론 그런 재능이 있을 리도 없고, 체질의 문제였다.
"어이, 괜찮냐?"
별야가 친히 시몬의 옆으로 다가와서 삐쭉한 이빨을 보였다. 시몬은 누레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괘, 괜찮습니다."
"마지막 독 남았네. 빨랑 처먹고 니들이 좋아하는 교과서 수업 들으러 가."
"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시몬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독이랑 항생 약품들.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시중에는 없는 물건 같은데."
별야의 기행을 지켜본 시몬이기에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있었다.
별야에게도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깔깔 웃어댔다.
"그걸 설명하기엔."
별야가 혓바닥을 달싹이며 어깨의 끈을 풀고 팔의 맨살을 살짝 드러냈다. 검지를 피부 위에 올리고는 다시 한번 히죽 웃었다.
"니들한테 딱 3년은 이른데. 말해줄까?"
"......죄송합니다. 제발 말하지 말아 주세요."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세 번째 독을 삼켰다. 별야가 낄낄 웃으며 시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는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윽.'
독의 효과가 나타난다. 점점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괘, 괜찮으세요 시몬?"
두 자리 떨어진 곳에 있던 카미바레즈가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도 두 번째 독을 막 클리어한 참이었다.
시몬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대답했다.
"카미 힘내애......."
몇 분간 몽롱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머릿속에 온갖 망상이 다 떠올랐다.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엄마의 수제 토마토 오믈렛 맛있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원숭이에게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면 무슨 말을 가르쳐야 할까.
아, 미친. 독에서 때 맛 난다.
문어의 다리 중 하나는 생식기라고 한다. 그럼 내 오버로드는 뭐지.
내 때는 무슨 맛일까.
"......."
서서히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뭔가 묘한 느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의식은 돌아왔는데 육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 머리가 맑아지고 고양감이 샘솟는다.
공부가 잘될 것 같은 기분.
시몬은 잠시간 온갖 상상의 나래 속을 헤엄치고 다녔다.
"시몬! 시몬!"
카미바레즈가 몸을 흔들었다. 시몬은 잠이 덜 깬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 다행이다! 괜찮으세요?"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나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
"1분, 정도요?"
세 번째 독까지 삼키니까 어쩐지 기분이 개운했다. 몸도 더 가벼워진 기분? 시몬은 가뿐히 어깨를 풀었다.
그때 조교의 외침이 들었다.
"세 번째 독까지 소화한 학생들은 빠르게 옆 강의실로 이동해 주세요!"
"아, 넵."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안쓰러운 얼굴로 카미바레즈를 보았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
"네, 금방 갈게요!"
그녀가 애써 씩씩하게 말했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옆 강의실로 넘어왔다.
"자, 다음 페이지를 봐주세요."
그곳에서는 조교 한 명이 열심히 교과서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흔히 함께 먹으면 독이 되는 궁합이라고들 하죠? 단일 성분만으로는 인체에 위협이 되지 않지만, 두 성분이 만나면 인체에 큰 위협을 끼치는 독도 있습니다. 맹독학에서는 이런 효과를...... 아, 학생 수고했어요. 얼른 아무 자리에 앉으세요."
"넵, 실례하겠습니다."
너무나 정상적인 맹독학 수업. 원래는 별야가 수업 전부 자신의 스타일 대로 바꿀 생각이었지만, 교과서 진도는 나가라고 제인이 압박하는 바람에 이렇게 바꿨다.
시몬은 메이린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괜찮아?"
"......."
그녀는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봉투에는 본인이 직접 뚫은 것으로 보이는 눈구멍만 두 개 있었다.
"뭐야 그건?"
시몬이 봉투를 향해 손을 뻗자, 그녀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얼굴 보지 마!!"
"?"
봉투를 꽉 붙잡은 그녀가 뺨을 붉히며 아주 조용히 말했다.
"......얼굴에 두드러기 나서 흉하단 말이야."
시몬이 하하 웃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흉한 건 나도 마찬가진데."
"아, 닥쳐! 내가 보여주기 싫어!!"
그녀는 정말 중요한 최후의 방어벽이라도 되는 듯 봉투를 끌어안으며 사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