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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23화 (22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3화

요나는 불굴의 남자다.

그 어떤 집요한 공세에도 그는 꺾이지 않았다.

화공으로 드레스덴 왕국의 3천 대군을 태워버린 에프넬의 성녀가 도전자 요나에게 말했다.

-포기하시오. 모든 동료들을 잃었지 않소.

요나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 내 동료들은 영원히 나와 함께 싸울 것이오.

그 말에, 잿더미 속에서 수만 마리의 새까만 언데드가 일어났다.

전세는 역전되었다.

프리스트들이 다시는 언데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정화해도, 역으로 죽은 프리스트들이 시체로 일어나 싸웠다.

백야전쟁 승리.

그레이엄 해전 승리.

헤이츠 광야 전투 승리.

그 어떤 네크로맨서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다.

고독하지만 강했다.

요나와 그를 따르는 언데드 군단은 무서운 속도로 에프넬을 헤집고 다녔고, 모든 프리스트들이 공포에 떨었다.

"......."

여기까지 읽었던 시몬은 잠깐 책을 뒤집어 제목을 보았다.

내가 혹시 영웅 대서사시 소설을 잘못 읽은 건가?

<군단의 역사>

역사를 다루는 책이 맞다.

시몬은 아리송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술술 읽혔기에 마저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이 책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을 하긴 했으나, 대서사시라고 생각될 정도로 요나의 업적은 찬란했다.

원래 다 이런가 싶어서 다른 군단장들의 항목을 보았다. 이쪽은 그냥 역사적 기록만 쭉 나열해서 지루하고 밋밋한데, 요나의 파트만 유독 저자가 흥분한 느낌이었다.

-살아 숨 쉬는 전신 요나는 비로소 청운산의 주인마저 죽음으로 굴복시키고 생으로 일으켜 자신을 따르게 했으니. 가히 맞설 상대가 없었다.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 작가, 완전 우리 아버지 팬이네.'

처음엔 허무맹랑하고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느낌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그 아버지라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은 다소 용두사미였다.

항구도시 발롯 전투.

하로나 전투.

핸버스 전투.

요나 사망, 제7군단 해체.

흥분해서 원고를 써내려가던 작가도 마지막에는 짙은 회한을 느꼈는지, 역사적 사실만 쭉 나열해 놓고 아무런 개인적인 언급도 하지 않았다.

문장의 마지막 '제7군단 해체' 옆의 마침표 하나가 어쩐지 크게 보였다.

'키젠이나 에프넬이나, 숨기기 급급했구나.'

당대 최고의 군단장과, 당대 최고의 성녀.

양측 진영이 자랑하던 최고의 카드였던 두 사람의 마지막은, 두 진영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결말로 끝이 나 버렸다.

에프넬에서는 신권의 지엄함과 성녀진의 권위를 위해 안나가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키젠에서도 요나가 치열한 전투 끝에 성녀와 전사한 것으로 끝내고 그 외의 모든 기록을 일소해 버렸다.

어느 쪽이든, 이런 화해무드의 엔딩은 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몬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그리고 탑처럼 쌓여 있던 책 중에서 다음 책을 꺼냈다. 이번에도 소제목에 요나가 들어간 부분부터 펼쳐서 읽고 있는 그때.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

시몬은 뒷머리가 바짝 곤두서며 온몸의 피가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딱딱하게 고개를 움직여 뒤를 돌아보자, 낙엽을 연상케 하는 갈색 머리의 안경을 쓴 남자가 미소 짓고 있었다.

"뭘 읽고 있니?"

새로운 혈류학 교수, 발터 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시몬은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시몬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발터가 선수를 쳤다.

"군단장 요나에 대해서 읽고 있었구나. 나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지."

시몬은 거칠게 펌프질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교수님은 왜 그를 좋아하시나요?"

"프로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존재시잖니. 혼자 활동해서 알려진 건 크게 없지만 그분이 이룩해 낸 성과는 위대해. 물론 교재에는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발터의 두꺼운 손바닥이 시몬의 정수리 위를 덮었다.

"이 아침부터 요나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네. 장하다. 역사를 아는 건 흑마법을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해."

그러곤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쩐지 소름이 끼쳐서, 고개를 움직여 그의 손길을 피한 시몬이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교수님께서는 코어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시몬은 이미 발터가 빌린 책들의 제목을 캐치한 뒤였다.

모두 두 권이었다. 책의 제목은 <신 코어 발전학>, <코어 개방의 비밀>이었다.

"음, 그렇지. 혈류학 교수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야란다. 특히 코어 운용은......."

"코어 운용이 아니라."

시몬이 책의 제목을 검지로 가리켰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코어를 만들고 싶으신가 봐요."

발터는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재미있는 생각이구나."

그는 책을 품에 넣고는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카미바레즈와 같은 A반이지? 오늘이 첫 수업인데, 역사 공부도 좋지만 수업에 늦지는 말아라."

발터는 그 말만 남기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도서관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까지 물끄러미 지켜보던 시몬은, 이내 착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일찍 와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더 조심하자.'

시몬은 책들을 들고 걸어가 다시 원래의 자리에 꽂아놓았다.

* * *

수업 시작까지 아슬아슬했다. 시몬은 짐을 챙겨서 혈류학 강의실에 도착했다.

먼저 온 딕이 퀭한 눈으로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그 옆자리에 앉자 딕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 아침부터 어디 갔었냐? 침대에 아무도 없어서 깜짝 놀랬잖아."

"그냥 도서관에 잠깐 들렀어. 갑자기 궁금한 게 좀 생겨서."

시몬이 교과서를 꺼내며 그렇게 대답하자 딕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와, 와! 이런 배신자!"

"?"

"공부벌레 다 됐네! 너도 메이린 닮아가냐? 이제 악에 받쳐서 공부하기로 했어? 우리가 비록 입학한 시간은 다르지만 한날한시에 퇴학...... 우욱!"

그가 급격히 입을 틀어막았다. 딕이 우욱 하는 소리에 주위의 학생들이 바퀴벌레 흩어지듯 도망쳤다.

몇몇 학생들은 그 소리에 전염이라도 됐는지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으어어, 맹독학 수업 후유증 미쳤다 진짜."

간신히 진정된 딕이 다시 자리에 엎어졌다.

"두 분 다 안녕하세요!"

카미바레즈와 메이린도 강의실에 도착했다.

그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시몬이 메이린 쪽을 보았다.

"메이린은 왜 저러고 있어?"

그녀는 치렁치렁한 하늘색 머리카락을 앞으로 보내서 처녀귀신처럼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메이린은 카미바레즈에게 뭐라 조용히 귓속말을 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카미바레즈가 전달했다.

"아직 독 때문에 얼굴에 반점이랑 무늬가 안 빠져서 부끄러우니까 이쪽 보지 말래요."

"참나~ 유별나다 유별나."

딕이 낄낄거리며 약을 올렸다.

"거, 다 같이 못생겨진 건데 혼자만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아침인데 우리 얼굴은 좀 보고 이야기합시다."

메이린이 다시 속닥속닥 카미바레즈에게 귓속말을 했다. 카미바레즈가 생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입 싸물어. 라고 하시네요."

"......와, 그런 험한 말을 카미한테 들으니까 좀 상처받는데."

"아이 씨!"

그때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메이린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머리카락을 넘겼다.

"몰라! 몰라! 그냥 보든지 말든지!"

곧바로 시몬과 딕의 시선이 집중됐다. 메이린의 얼굴에는 희끄무레한 검은색 줄무늬 같은 게 보였다.

그것은 마치.

"......수박?"

"말하지 마!!"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시몬에게 교과서를 던졌다. 무늬는 순식간에 붉게 물든 얼굴 때문에 보이지 않게 댔다.

딕이 손뼉을 치며 그녀의 얼굴을 가리켰다.

"와! 수박 단면!"

"......."

이번만큼은 그녀가 장난기 없이 진심으로 딕을 죽일 기세로 냉기를 일으켰다. 카미바레즈와 시몬이 기겁하며 메이린을 뜯어말렸다.

"......하, 진짜."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의자 두 개를 얼려 버린 뒤에 분노를 억제한 메이린이 털썩 자리에 앉아 이마를 짚었다.

"앞으로 이런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들어야 한다고? 나 그냥 죽음을 택할래."

딕이 또 뭐라고 대꾸하기 무섭게, 누군가의 '교수님 오신다'는 외침이 들렸다.

학생들이 우르르 자리로 돌아갔고 이내 새로운 조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저벅저벅.

가장 마지막으로 발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걸어 다니는 조각상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새 직장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최근 키젠의 여학생들 사이에선 바힐과 발터, 어느 쪽이 더 잘생겼느냐가 중대한 대화 주제로 부상했다.

"다들 반갑다."

발터가 온화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실라지 교수님을 대신해 혈류학을 담당하게 된 발터 한이라고 해."

곳곳에서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떠들썩한 분위기는 교실이 아니라 팬클럽 현장을 방불케 했다.

"나도 실라지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어. 기존에 너희들이 듣던 실라지 교수님의 커리큘럼에서 큰 틀에서는 차이는 없을 거야. 너희가 혼란에 빠지거나 적응할 시간이 따로 필요할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렴."

그건 별야의 맹독학을 겪어본 A반 학생들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럼 간단히 복습만 하고 넘어가자."

발터가 강단으로 올라와 목을 풀었다. 귀가 살살 녹는 듯한 음성이었다.

"혈류학은 피를 매개로 사용하는 흑마법이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네크로맨서의 체내에는 칠흑과 혈액이 동시에 흐르고 있어. 당연히 이 상태에선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가 허공에 칠흑 마법진을 펼쳤다.

"네크로맨서는 흑마법이란 인위적인 방법으로 칠흑과 피를 결합시켜 다양한 마력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

그리고 그 마법진 위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붉은 핏방울 하나가 마법진을 통과하는 순간, 마법진 아래로 작은 핏방울이 피의 소용돌이처럼 변해 휘몰아쳤다. 학생들이 탄성을 흘렸다.

이번엔 발터가 반대로 시범을 보였다. 피로 마법진을 펼치고 그 위에 칠흑을 떨어뜨리자, 마법진과 칠흑이 서로 결합되며 예리한 피의 장미가 만들어졌다.

발터가 그것을 앞자리의 여학생에게 근사한 미소와 함께 건네자, 거의 자지러질 듯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어우."

메이린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시몬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다들 왤케 유난 떠는지 모르겠어. 난 좀 느끼한 인상이라서 싫은데."

그 말을 들은 뒷자리의 딕과 카미바레즈가 조그맣게 웃었다

"거 취향 참 확고하십니다."

"메이린은 피온 님뿐이니까요~"

"두, 둘 다 닥쳐!"

당황한 메이린이 뒤를 돌아보며 버럭 화를 냈다. 마찬가지로 같이 당황한 시몬도 슬쩍 창가를 보았다.

그렇게 다소의 소란이 진정된 뒤, 발터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혈류계 흑마법은 자신의 피를 직접 소모하는 만큼 체력이 빠르게 떨어지지만, 빠르고 강력하단다."

발터가 가볍게 손뼉을 치자 마법진들이 모두 허공에 흩어졌다.

"자, 그럼 이제 보여주렴. 너희들의 피는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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