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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24화 (22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4화

발터의 첫 혈류학 수업이 시작됐다.

발터가 예고한 대로, 실라지의 수업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교과서로 이론을 공부하면서 마법진의 구성을 찬찬히 뜯어본 뒤, 실습으로 넘어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또 별야의 수업을 겪은 뒤라 긴장해 있던 학생들은 큰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다소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실라지에 비해 젊은 신인 교수인 발터는 학생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소통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편하게 대해준다는 점이었다.

"자, 이번 실습은 '혈류막'으로 시작할게."

혈류막은 피와 칠흑을 섞어 빠르게 전방을 가릴 수 있는 다용도 피의 방패였다. 준비만 된다면 칠흑으로 펼치는 칠흑방패보다 더 빠르게 꺼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학생들이 일제히 몸에서 피를 뽑아내더니, 칠흑과 섞어 혈류막을 펼쳤다.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혈류막이 녹아 흐르는 학생, 막이 손바닥만 한 학생, 크기는 넓지만 막의 두께가 종잇장인 학생, 막을 펼치니 펑 하고 폭발하는 학생까지.

모두가 피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조교진. 이제 피드백 들어가자."

"네!"

발터의 지시에 따라 조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처음 시도한 마법진의 구성은 모두가 같았지만 피의 유형에 따라 수정이 이루어졌다.

혈류막이 녹아내리는 학생은 피를 코팅하는 방법을 배웠다.

혈류막이 얇게 펼쳐지는 학생은 밀집 수식의 추가를 처방받았다.

"됐어요! 교수님!"

"훌륭하구나. 다들 봤지? LP-2 유형인 학생들은 이렇게 하면 돼."

"감사합니다!"

발터가 한 무리의 학생들을 챙겨주고는 카미바레즈에게로 다가갔다.

카미바레즈는 열심히 혈류막을 펼쳤지만, 펼치자마자 얼마 유지하지 못하고 폭발하곤 했다. 마음먹은 만큼 안 따라주니 그녀는 속상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발터가 부드럽게 웃었다.

"네가 가진 KP-1은 칠흑과 조합했을 때 폭발하려는 성질이 기본이야.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자잘한 공격을 막아내는 건 칠흑역학의 방어기로 하고, 혈류막으로는 큰 공격을 막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거야."

"큰 공격이요? 어, 어떻게요?"

발터는 피로 이루어진 묵직한 구체를 만들었다.

"혈류막의 폭발시간을 조종하는 건 가능하니?"

"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늘려도 결국엔 터져 버려서......."

"그럼 물체가 혈류막에 부딪히는 동시에 폭발시켜 보자."

발터가 칠흑구체에 더해 칠흑화살까지 동시에 꺼내서 날렸다.

혈류막을 펼치고 기다리고 있던 카미바레즈는, 칠흑구체가 혈류막에 닿는 순간 폭발시켰다. 구체와 뒤따르던 화살들이 동시에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다.

"바로 이런 느낌으로 공격형 방패도 만들 수 있지. 원래 네 혈류막의 두께로는 방금 내가 꺼낸 구체를 막지 못한단다. 하지만 그 문제점을 폭발로 커버했잖니. 아무리 뱀파이어의 KP-1이라고 해도, 반드시 공격용으로만 쓰란 법은 없단다. 다른 활용법도 생각해 보렴."

"......아, 뭔가 눈이 뜨이는 기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카미바레즈가 감격한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옆의 학생들은 자신의 혈류막을 자랑하며 내가 더 크니 내가 더 단단하니 자랑하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혼자 자리에 앉아서 멀뚱히 턱을 괴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다들 재밌겠다.'

다름 아닌 시몬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유형인 시몬의 'SM-1' 혈액은 칠흑과 결합하면 잘 뭉쳐지지도 않아서 대부분의 수업에서 할 일이 없었다.

심심하고 친구들이 부러웠던 시몬은 괜히 기지개만 쭉 켜보았다.

나도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혈액 유형이었다면 저 대화에 낄 수 있었을 텐데.

"시몬 학생."

그때 조교 한 명이 조용히 시몬에게 다가왔다.

"발터 교수님께서 부르세요."

"네?"

시몬이 고개를 돌리자,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 발터가 웃는 얼굴로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

첫인상이 찜찜해서 그럴까. 미심쩍기는 했지만 수업시간에 교수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시몬이 다가오자 발터가 설명했다.

"네가 가진 피 유형은 특별하니까, 4층의 내 연구실에서 직접 설명할게. 따라오렴."

발터와 시몬은 나란히 계단을 올라갔다.

다른 대화는 없었다. 시몬은 어쩐지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대체 왜 이 사람만 생각하면 유다란 말만 떠오를까. 무엇보다.

-봤니?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눈빛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물론 그냥 망상이었을 수도 있고, 진짜 그런 눈빛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두 사람은 마침내 4층의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너무 긴장한 것 같은데."

발터가 웃으며 말했다.

"혹시 교수 연구실을 방문하는 건 처음이니?"

시몬은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아론이나 제인, 랭 교수 등의 연구실도 들려본 적이 있었다.

"대단한 건 없으니 편한 마음으로 들어오렴."

발터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시몬은 침을 꿀꺽 삼키며 연구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

그의 말마따나 대단한 건 없었다.

연구실은 거의 텅 비어 있었고, 아직 짐을 다 풀지 못한 듯 각종 서류와 서적들이 들어간 상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소파만 달랑 놓여 있었다.

"키젠에 들어오고 워낙 바빠서 말이다."

발터가 웃으며 소파에 자리를 권했다.

시몬이 긴장한 채로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자 발터가 차를 마실 거냐고 물었다. 시몬은 고개를 저어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발터가 본인의 책상에 담긴 수정구 하나를 들고 와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 수정구를 가볍게 터치하자 허공에 마나 스크린이 펼쳐졌다.

"실라지 교수님께서 건네주신 자료들이란다. 같이 한번 볼까?"

마나 스크린은 1학기, 마탄 실습 사격장에서 첫 혈류탄을 쐈을 때의 시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6사로 시몬 폴렌티아. 준비됐습니다!

영상 속의 시몬이 한쪽 눈을 감고 검지 끝을 뻗어서 표적지를 조준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실라지가 '사격개시'라고 외치자, 시몬의 팔이 반동하며 혈류탄이 발사됐다.

시몬이 발사한 탄환은 갑자기 중간에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고, 잠시 후 표적지 앞에서 푸른빛을 뿜으며 나타났다.

빛이 표적지에 부딪히자, 이내 부채꼴 모양으로 화력이 퍼져 나갔다. 뒤쪽의 표적지 두 개가 찢어졌고, 좌우의 다른 표적지까지 하나씩 찢어졌다.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지."

발터가 영상을 보며 말했다.

"실라지 교수님이 왜 네가 가진 'SM-1'에 매료되셨는지 알 것 같더구나. 교수님은 1학기 내내 연구를 진행하셨고, 임무를 진행하시는 동안에는 나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에게 SM-1의 분석을 맡기셨단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중에 내 성과가 가장 뛰어났지."

발터의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우선 이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네가 가진 그 피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니?"

시몬은 알고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일종의 증식 효과라고 알고 있습니다. 피와 칠흑이 결합하면 특별한 작용 없이, 칠흑이 피를 잡아먹어 용량과 위력이 불어나는 효과요."

"틀린 말은 아니야."

발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였다면 실라지 교수님께서 1학기 내내 널 방치했을 정도로 애를 먹었을 리가 없지."

"......그, 그럼 다른 기능이 또 있단 말인가요?"

발터는 대답 대신 본인의 책상에 있던 상자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시몬 쪽으로 내밀었다.

'이거 오랜만이네.'

마법진 교정구. 칠흑을 흘려보내면 교정판의 틀에 자리 잡아 마법진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초보자용 도구다.

시몬도 저주학 수업에서 이그저스트를 처음 배울 때 사용한 경험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써본 적이 없었다.

"SM-1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실라지 교수님이 직접 개발한 마법진이란다. 한번 써보겠니?"

교정구를 보니 마법진에 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교정구의 양 손잡이를 붙잡고 칠흑을 흘려보냈다.

우우웅!

칠흑이 마법진 교정구를 따라가며 구성을 시작했다. 교정구를 써도 시몬이 만들지 못하는 수식도 있었지만, 발터가 바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었다. 전체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구조는 아니었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되어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제 네 피를 뽑아보렴. 1학기 때 피를 뽑는 마법진은 배웠겠지?"

"네."

시몬이 검지 끝에 작은 마법진을 펼치자 피 한 방울이 마법진을 통과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방금 교정구로 완성된 새로운 마법진을 통과했다.

화아아악!

마법진과 핏방울이 합쳐지며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시몬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파슷파슷 소리가 났다. 마법진은 피의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칠흑의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하며 왔다 갔다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완전한 화학반응이 이루어지며 붉은 것도 검은 것도 아닌 영롱한 청록빛을 띠는 연기의 형태로 바뀌었다. 연청색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달팽이 껍데기의 소용돌이 무늬처럼 이질적인 무늬를 가졌다.

'뭔가 멋지다.'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SM-1과 네 칠흑이 특정 비율로, 특정 마법진을 통과하게 시켰을 때만 나타나는 효과란다. 실라지 교수님은 이 힘을 SMF24-CLOUD. 줄여서 '클라우드'라고 부르셨지."

'구름이라.'

시몬이 자신의 새로운 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발터가 두 팔을 세웠다.

"자! 네 피로 만든 흑마법이란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니?"

"......."

시몬이 몸을 움찔움찔했다. 그러자 연기가 시몬의 의지대로 천천히 떠다니는 게 느껴졌다.

이건 마치.

'언데드의 사념에 접속해 조종하는 것과 비슷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사용한 지 1분 만에 클라우드를 조종하는 모습에 발터가 미소를 지었다.

"컨트롤은 능숙하구나. 그럼 이런 것도 가능할까?"

발터가 구석에 놓인 서류가 든 상자를 가리켰다.

"그 연기로 저 상자를 들어 올린다거나."

"......."

겉보기엔 기체의 형상이라 물건을 들어 올리는 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지금 클라우드를 통제하고 있는 시몬은 어쩐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팔을 뻗자, 연기가 빠르게 전진해서 상자를 감쌌다.

'그대로.'

시몬이 손바닥이 보이도록 손을 돌리고는 위로 천천히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든다!'

스르르르륵.

서류뭉치가 든 상자가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모습에 발터가 감탄성을 터뜨렸다.

"이걸 바로 해내다니! 대단한데."

"크윽."

시몬이 팔이 떨렸다.

근데 이거 어쩐지 힘겹다. 정신력이 뻐근한 건 물론, 진짜 내 팔로 물건을 드는 기분이었다.

시몬이 천천히 상자를 내려놓자 그 힘겨운 기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 클라우드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성질이 발견되었단다."

발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기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중지와 엄지손가락으로 클라우드를 집었다.

"아얏!"

시몬이 깜짝 놀랐다. 진짜 꼬집힌 것처럼 아팠다.

"이 힘은 사용자의 감각을 공유해. 아프니?"

발터가 이번엔 손톱을 피로 길어지게 해서 연기를 쿡쿡 찌르자 시몬이 놀란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교수님!"

"하하, 미안하구나. 나도 모르게 박사 시절의 탐구심이. 이제는 교수였지."

발터가 손톱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렸고, 시몬도 클라우드를 해체하며 의자에 똑바로 앉았다.

내 힘에 대해 실라지와 함께 연구해 줘서 정말 고마운 건 맞는데 어쩐지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화났니?"

"......안 났습니다."

"아무튼, 클라우드는 도저히 현대 혈류학 지식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힘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실라지 교수님께서도 원래는 혈류 학술회에 정식 논문으로 발표하실 생각이었지만, 포기하셨다."

"어째서요?"

"네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SM-1이 세계의 실마리를 찾는 연구물이라 미치광이 학자들이 달려들지도 모르거든. 네크로맨서 출신의 학자들 중에서는 진짜 미치광이가 많단다."

그가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바로 나처럼."

"......."

"사실 내가 혈류학 교수 자리를 받아들인 것도."

그의 두 눈이 시몬을 마주했다.

"바로 널 만나기 위함이었단다. 우리는 앞으로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 나는 새로운 피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고, 너는 클라우드라는 특별한 기술의 운용법을 배우게 되는 거지."

발터가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제안하마. 내 직속제자가 되어주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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