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6화
'블러드 골렘. 블러드 골렘~'
아론이 가르쳐 주겠다는 새로운 소환마법이 너무 기대돼서 그럴까. 시몬은 온종일 머릿속에서 블러드 골렘이 떠나질 않았다.
다음 날까지도 설렘은 이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다음 주가 아니라는 사실이 실망스러웠지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제발 그만 좀 해."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딕이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놈의 블러드 골렘, 블러드 골렘! 너 어젯밤부터 계속 그 소리 흥얼거리는 거 아냐?"
"그, 그랬어?"
갑자기 몰려오는 민망함에, 시몬은 슬쩍 딴청을 피웠다.
"어! 그랬다! 이제 좀 있으면 내가 그 멜로디 피아노로도 칠 수 있을 거야! 블러드 골렘~ 블러드 골렘~"
"너도 중독됐네."
"아악!"
딕이 절규하자 시몬이 큰 소리로 웃었다.
화내고 비난하고 누가 뭐라 해도 좋다. 그래도 나는 블러드 골렘을 배우니까.
"아무튼! 이제 블러드 골렘이란 말 할 때마다 딱밤 한 대씩......."
야아옹~
갑자기 들리는 고양이 소리에 두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
돌담 근처에서 박쥐 날개가 달린 여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카미다.'
어쩐지 익숙한 뒷모습이라고 생각했더니, 그녀가 쪼그려 앉아서 새끼 고양이들이랑 놀아주고 있었다.
한 마리는 하얀색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검은색이었다.
카미바레즈가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을 내밀자 고양이들이 작은 발로 펀치를 콩콩 날려댔다.
"귀여워~"
시몬과 딕이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카미?"
"꺄아아아!"
갑자기 말을 걸어서 놀랐는지, 그녀의 등 뒤에 달린 날개가 열심히 파닥파닥거렸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돌담 뒤에 등을 착 붙인 그녀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는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까, 깜짝 놀랐어요!"
"여기서 뭐 해?"
"아, 그게......."
야옹야옹.
새끼 고양이가 카미바레즈의 무릎 위로 올라와 애교를 부렸다. 그녀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검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릉그릉 소리를 냈다.
"앗, 거기 들어가면 안 돼!"
카미바레즈가 치마 속으로 들어가는 하얀 고양이를 붙잡아 자신의 무릎 위로 올렸다.
"......음."
딕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저거 고양이 아닐지도 몰라."
시몬은 딕의 농담을 귓등으로 넘기며 고양이 놀아주기에 참여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나 봐."
시몬이 가까이 오는 걸 본 새끼 고양이들은 일단 경계했다.
그러나 시몬이 손가락을 뻗어서 천천히 좌우로 흔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신이 나서 아프지도 않은 이빨로 물어뜯고 장난치고 난리였다.
"오, 재밌어 보이는데?"
딕도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내밀기 무섭게 고양이의 발톱에 긁히며 나가떨어졌다.
시몬이 큰 소리로 웃었고 카미바레즈는 기겁하며 고양이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 그러면 안 돼! 괜찮아요 딕?"
"아 쓰려어......!"
딕이 얼굴을 매만지며 카미바레즈의 품속에 안겨 있는 고양이를 노려보았다.
"저거 진짜 고양이 아닐지도 몰라."
"재미없어. 그 농담."
"아니, 농담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야! 몬스터의 새끼일지도 모른다고! 저것 봐! 머리 가운데에 작긴 하지만 뿔이 나 있잖아!"
"......뿔?"
시몬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확실히 손끝에 뭔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게 만져진다. 털 안에 아주 작은 뿔이 숨어 있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하양이랑 까망이는 몬스터가 아니에요!"
카미바레즈가 두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빼앵 소리쳤다. 벌써 이름까지 지어준 모양이다.
딕은 어깨를 으쓱했다.
"몬스터가 아니란 근거는?"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데 몬스터일 리가 없어요!"
"비겁하게 감정론에 호소하다니, 젠장."
"야 이 밥팅들아아아!!"
갑자기 뒤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리며 딕에게 물통이 날아왔다.
딕이 뒤를 돌아보는 타이밍에 맞춰, 아까 할퀴어진 부위에 물통까지 맞았다. 그가 '억' 소리를 내며 뒤집어졌다.
"학술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며!"
메이린이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벌써 20분째야! 20분! 사람 많은 학생식당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 얼마나 쪽팔리는지 아냐?! 애들이 지나가면서 밥 혼자 먹는다고 쑥덕거리잖아!"
딕이 물통에 맞은 부위를 매만졌다.
"그런 김에, 우리 말고 왜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나 친구 많거든!!"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닥치고! 니들 쓸데없는 일로 늦은 거면 가만 안 두...... 앗!"
메이린이 카미바레즈의 품에 안겨있는 고양이들을 발견했다.
분노에 찬 표정이 봄눈 녹듯 녹아내리며, 그녀의 만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귀여워!!"
"그쵸 그쵸?"
두 소녀는 새끼 고양이의 귀여움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그냥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도 난리법석이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딕은 수첩을 꺼내서 살폈다.
"흠흠, 파수꾼한테 연락해야겠네~ 야생 몬스터가 키젠 교정 내 출현했으니 사살하라고."
"......."
메이린이 딕을 짜릿 흘겨보았다. 카미바레즈는 기겁하며 고양이들을 끌어안았다.
"제, 제발 그러지 마세요! 딕! 제가 잘 돌볼게요!"
커다란 보랏빛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지자 딕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네가 문제가 아니라......!"
"하여간 싸가지를 밥 말아 먹었어. 저 귀여운 아가들 앞에서 사살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와? 너 어른들 부르면 두고 봐 진짜."
"얘들아."
시몬이 얼른 중재했다.
"나도 사살은 반대하지만, 딕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교정 내에 뒀다가 정말로 몬스터라서 사고라도 나면 곤란하잖아. 대책이 필요해."
"흠."
잠시 고민하던 메이린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여자 기숙사에 가서 내가 아는 하수인들한테 맡길게. 몬스터인지 알아볼 사람도 부를 거야. 됐지?"
시몬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고, 딕도 동의하기는 했지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참나, 피곤하게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냥 두면 알아서 애들 엄마가 찾아가겠지."
"......너 여기 네크로맨서 학교인 거 잊었냐? 이상한 애들한테 붙잡혀서 실험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오우, 그 생각을 못 했네."
그렇게 협의가 이루어졌다. 네 사람은 고양이를 안고 여자 기숙사로 향했다.
"으하하! 안녕하십니까!"
금남의 구역에 들어오면서 누구보다 활짝 웃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딕이었다. 메이린이 눈치를 주었지만, 그는 벌써 아는 하수인 하나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저어......!"
카미바레즈는 고양이들을 안고 기숙사 창고관리원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여자 기숙사 뜰에 잠시 고양이를 키워도 될지 물었다.
"꼭 1년에 한 번은 이러는 애들이 나온다니까."
하수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학생. 고양이들의 사정은 딱하지만, 우리도 우리 일이 있으니 언제까지고 짐승을 돌볼 수는 없어요."
카미바레즈가 먹이를 주거나 번거로운 일은 전부 자신이 하겠다고 했고, 부모를 찾을 때까지만 여기 두면 안 되겠냐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흠."
그때 카미바레즈의 뒤에서 메이린이 헛기침을 한번 했다.
"요즘 로크섬의 마정석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는데. 아니, 오를 예정이던가?"
"......."
하수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몬이 쓴웃음을 흘리며 만류했다.
"메이린. 권력을 그런 데 쓰지 마."
"누가 뭐래?"
메이린이 여왕님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물가에 대한 고민인데."
고작 애완동물 키우는 귀찮음 때문에 상아탑과 척을 질 수는 없었다.
결국 하수인은 딱 두 달. 몬스터인게 판명이 나든 말든 두 달 뒤에는 쫓아내는 조건으로 창고에서 키우는 걸 허락했다.
"정말 감사드려요!"
카미바레즈가 꾸벅꾸벅 인사했다.
자유가 된 새끼 고양이들도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먹이 줄 사람을 알아보았는지 창고관리원 앞에 벌러덩 누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관리원도 흐물흐물한 표정이 되었지만, 학생들 앞인지 애써 헛기침을 했다.
"그럼 학생들은 이만 가보세요. 다음 수업 준비하셔야죠."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일이 생각보다 잘 마무리됐다. 그렇게 세 사람이 여자 기숙사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아까 하수인이랑 이야기하던 딕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으하하! 빅뉴스다 빅뉴스!"
딕은 방금 얻은 따끈따끈한 정보를 줄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검, 창, 철퇴, 화살 등등 키젠에서 로체스트의 무기들을 싹쓸이하고 있대! 그걸로도 모자라 랭거스틴에서 직접 무기를 조달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다음 시험의 테마랑 관련된 거겠지?"
"글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카미바레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이상하네요. 흑마법을 평가하는 시험인데 무기는 조금 뜬금없이 느껴져요."
"아님 이런 거 아냐?"
메이린이 얼른 아이디어를 냈다.
"무기 하나 고르게 하고, 그걸로 막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학생들끼리 서로 싸우게 하는 거야!"
"에이, 설마."
딕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키젠에서 사들이는 무기는 대부분 싸구려야. 그런 거 쓸 바에 그냥 마투 쓰고 말지."
키젠에서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딱 이 정보만으로는 시험의 테마를 확정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중요한 열쇠임은 틀림없었다.
'무기라.'
시몬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 * *
그렇게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날이 어두워졌다.
시몬은 오늘도 월담을 했다. 피어의 유적에 들러서 새로 얻은 이 클라우드란 힘에 대해 피어와 논할 생각이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차박차박 금지된 숲을 걷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달이 참 밝네.'
날씨도 평소보다 추워서 어깨를 스르륵 쓸어내린 시몬이 서둘러 길을 걸었다. 평소 매번 가는 그 길이라 이제는 익숙함마저 느껴졌다.
'......어?'
그러나 그 익숙함이 낯설어지는 순간. 시몬은 급히 자리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발자국이 나 있었다.
'파수꾼들의 정찰일을 피해서 왔는데, 혹시 비정규 정찰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발자국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모양도 계속 바뀌고 보폭도 일정하지 않다. 몬스터로 추정되지만 이런 발자국을 가진 몬스터는 금지된 숲에 없다.
시몬은 기척을 죽이고 신중히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
소름이 쭉 하고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시몬은 급히 나무 뒤에 몸을 가린 다음, 슬쩍 고개만 내밀어 앞을 보았다.
-즈으. 즈으으으으으.
이상한 검은 생명체가 촉수로 바닥을 훑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걸어 다니는 오징어를 연상케 하는 외형에, 몸체는 슬라임처럼 흐물거렸다.
밤하늘처럼 새까만 피부에, 머리는 이목구비나 얼굴이 없이 좌우에 달린 뿔만 솟아 있는 형태였다.
얼굴에서는 입 같은 기관이 삐쭉 튀어나와 바닥을 훑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분주하다.
'저게 대체 뭐야?'
1학기 내내 본적이 없는 괴생명체가 금지된 숲을 뒤지고 있다. 몸에서 칠흑이 나오는 걸 보니 언데드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키젠 측의 언데드는 아닌 것 같았다.
-키리리리.
시몬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내렸다.
'......깜짝이야.'
에르제베트의 송장거미가 시몬에게 몸짓 발짓으로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타다닥 뛰어가더니,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엉덩이를 흔들어 보였다.
시몬은 괴생명체를 한 번 더 눈에 담은 다음 송장거미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대기하는 중인 큰 키의 스켈레톤이 보였다.
"피어!"
피어는 무영의 망토를 두르고 파멸의 대검을 까지 든 완전무장 상태였다.
"피어도 봤어요? 아까 저기......!"
[봤다.]
피어의 사념에서 짙은 분노가 느껴졌다.
[망할! 놈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일 줄이야.]
"그 말씀은 역시......."
[그래, 매그너스가 보낸 에이션트 언데드다.]
시몬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피어의 사념을 쫓아서 부하들을 보낸 모양이었다.
[에이션트 언데드 '탈라제'. 놈과 그의 분신들까지 모두 7기의 언데드를 발견했다.]
피어가 바닥에 박힌 파멸의 대검을 어깨에 짊어지며 인상을 썼다.
[일단 에르제베트가 저 괴물들이 금지된 숲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거미줄로 결계를 치고 있다. 그래도 놈들이 유적까지 도달하는 건 시간 문제야.]
"......끙,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매그너스는 내 사념을 감지했다. 내가 로크섬 밖으로 나가 놈들을 유인하겠다.]
그 말에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허락할 수 없어요 피어."
피어는 군단에서 가장 중요한 관리자다. 아무리 매그너스에게 포착당했다고 한들, 심장을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군단장도 네프티스 님이 지키는 로크섬에는 못 들어온다면서요? 그럼 피어는 로크섬에 머무르는 게 최선이에요."
[그러면 어쩔 생각이지? 매그너스가 7군단의 정체를 밝혀내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간다.]
입을 일자로 다물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몬이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디로 도망치든지 소용없다면 기꺼이 도발을 받아주죠. 매그너스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파괴하겠습니다."
[......이봐.]
"매그너스가 제 아버지의 언데드를 빼앗았으니, 저도 매그너스와 우호적으로 지낼 생각은 없습니다."
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젊은 군단장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는 게 피어 자신의 역할이었다.
[탈라제의 능력은 특별하다. 전투와 파괴에 특화된 녀석은 아니지만 매그너스의 힘으로 강해져 있어. 만약 놈을 놓친다면 그때는 진짜 군단과 군단 간의 전면전이다!]
"할 수 있어요. 우리도 그동안 놀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시몬은 아공간에서 수첩 하나를 꺼냈다. 그러곤 필기체로 빠르게 휘갈긴 다음 송장거미에게 내밀었다.
"남자기숙사 409호에 있는 카쟌에게 이 쪽지를 보내줘. 카쟌은 우리 사정을 알고 있고 기꺼이 도와줄 거야."
[키이이이!]
송장거미가 시몬에게 종이를 받았다. 거미줄을 써서 몸통에 종이를 붙이고는 빠르게 숲을 빠져나갔다.
"자."
시몬이 다시 피어를 보았다.
"결국 탈라제가 매그너스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여기서 확실히 파괴하면 되는 거잖아요. 탈라제의 능력을 말해주세요. 피어."
이제는 피할 수 없다.
군단과 군단의 전투가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