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8화
벌써 일곱 번이나 당해서 그럴까.
연못이 된 탈라제는 바로 나타나지 않고, 찰랑거리고만 있었다. 그 옆에서 프린스가 약 올리듯 소리쳤다.
[뭐 해! 쫄았냐? 쫄았지?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시몬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설마.......'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 여섯 개의 오버로드 칼날을 동시에 발밑에서 솟아오르게 했다. 시몬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군단장님?]
[야, 왜 올라가?]
밤바람을 뚫고 공중으로 날아가던 시몬이 대검의 손잡이를 꽉 틀어쥐고 후으읍 숨을 들이마셨다.
아래를 보니 찰랑거리던 연못의 흐름이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온다!'
이내 연못이 솟구쳐 오르며, 드릴과도 같은 형상의 탈라제가 공중에 일직선으로 튀어나왔다.
'역시 이렇게 나올 줄 알았어.'
각오를 다지듯 입술을 꽉 깨문 시몬이 온 힘을 다해 파멸의 대검을 내리그었다.
솟구치는 탈라제, 내려오는 시몬. 두 존재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쿠우우우웅!
엄청난 후폭풍이 터져 나오며 나무와 풀들이 흔들렸다.
시몬은 검을 내려치는 자세로 내려오고 있었고, 그 위로 드릴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탈라제가 균등하게 반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나이스!!!]
[군단장니임-!]
프린스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에르제는 황홀한 표정으로 무영의 망토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시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제 딱 두 번 남았어!'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스르르르르.
공중에서 반으로 갈라진 탈라제의 몸통이 다시 하나로 합쳐져 커다란 연못의 형상을 이뤘다.
'공중에서도 부활을......!'
터어어엉!
그 안에서 두 번의 목숨이 남은 탈라제 본체가 튀어나갔다.
시몬은 공중에서 내려오는 중이라 바로 뒤쫓을 수 없었고, 에르제베트와 프린스가 기겁하며 거미와 좀비들을 데리고 추적했다.
[탈라제. 무조건 생환. 상황에 맞게 변이.]
꾸득꾸득.
탈라제의 두 팔에 박쥐 날개처럼 막이 펼쳐지며 허리까지 닿았다. 그것을 위아래로 열심히 흔들며 강하했다.
[탈라제. 8번 사망한 경우. 총 11번. 하지만 모두 생존.]
탈라제는 바다에서의 수상전투에 특화되어 있지만, 비행이 가능한 개체는 아니었다.
공중을 활강하듯 내려와 거리를 대폭 벌린 탈라제가 이제는 다시 작은 네발짐승의 모습으로 변해 풀밭을 달렸다.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생환할 자신이 있었다.
타다닷!
[반드시 생존. 매그너스에 보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중, 탈라제의 기민한 감각이 인기척을 읽어냈다.
정면에서 로브 자락을 휘날리는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간 이 숲을 수색할 때 자주 나타나서 귀찮게 했던 그 '파수꾼'이라는 사람들 같았다.
탈라제의 입이 벌어지며 비키라는 뜻으로 위협적인 포효를 터뜨렸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포효만 듣고 겁에 질려 물러났겠지만, 로브를 입은 남자는 그냥 걸음을 멈추더니 무릎을 굽혔다. 여기서 탈라제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터엉!
섬광처럼 날아온 남자의 주먹이 탈라제의 복부에 꽂혔다.
으저적!
몸에서 뭔가가 강하게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탈라제의 몸이 움푹 들어가며 풀밭을 나뒹굴었다.
[경고. 물러나라.]
빨리 7군단 놈들이 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다. 탈라제의 몸이 부풀며 몸길이 5미터의 위협적인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물러나라.]
탓!
그러나 남자는 마지막 경고에도 바닥을 딛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공중에서 남자의 자세는 특이했다. 가슴을 내밀고 두 팔을 쭉 펼치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 다리도 뒤통수에 닿을 정도로 젖혀졌다.
마치 억눌린 스프링처럼 힘을 끌어모으는 것 같은 자세였다.
<카쟌 오리지널 - 팽>
그 자세 그대로 두 팔이 앞으로 나오며 X자로 교차됐다. 열 개의 손톱자국들이 탈라제의 몸통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며 상체와 하체, 심지어 목까지 절단했다.
그 공격으로 탈라제의 몸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연못으로 변했다.
"카쟌!"
마침 공중에서 나무를 밟고 나타난 시몬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몬에 뒤를 이어 들이닥친 에르제베트가 인상을 구겼다.
[또 당신이옵니까?]
"오랜만이다."
두 사람은 성녀 사태 전의 합동 수사로 서로 아는 사이였다.
반면, 마지막으로 도착한 프린스는 카쟌을 보고 깜짝 놀라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이, 인간?!]
"카쟌은 괜찮아 프린스. 이 사람은......."
부글부글부글!
다시 연못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고 탈라제 쪽을 경계했다.
"방금 내 공격을 받고 저렇게 변했다."
"네, 저도 봤어요."
이제 남은 건 딱 한 번의 목숨.
이것만 잡으면 이긴다.
그때 연못에서 탈라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탈라제. 9번 죽은 경우. 단 한 번. 하지만 생존.]
연못이 순간 쪼그라들었다.
튀어나오는 탈라제를 사냥하기 위해 모두가 모든 칠흑을 끌어올리며 공격을 준비하는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연못의 크기가 확대되었다. 연못은 시몬과 세 사람을 덮으며 반경 수백 미터까지 뻗어 나갔다. 동시에 그들의 몸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큭!]
에르제베트가 다리를 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바닥에 딱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아!
이내 연못의 중앙이 솟아오르며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것보다 거대한 탈라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계획 변경. 전부 죽이고 생환.]
탈라제가 두 팔을 아래로 내리긋자, 시몬과 카쟌, 그리고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몸이 동시에 연못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꼬르르르륵!
시몬은 숨을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리고 냄새나는 연못 속이었다. 짐승의 뼈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찌꺼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밑바닥도 있었는데, 바닥에는 검고 더러운 이끼들이 껴서 물결에 흔들렸다. 마치 사람의 팔이 이리로 오라며 손짓하는 것 같아서 으스스했다.
"이 연못은 뭔가 이상해. 헤엄쳐 나갈 수가 없다."
카쟌이 헤엄을 치고 있었지만 제자리에서 팔다리만 움직일 뿐 앞으로 나아가진 않았다.
시몬은 고개를 들었다. 연못 위의 거대한 탈라제가 칠흑이 깃든 두 팔을 휘적거리며 뭔가 수상한 짓을 꾸미는 모습이 보였다.
[소년! 아래를 봐라!]
피어의 외침에 시몬의 고개가 내려갔다.
연못의 밑바닥, 어두운 이끼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이빨 난 피라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연못 아래에 새까만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
[흐익! 뭐 이리 많아!]
[여기서는 거미줄을 칠 수도 없사옵니다! 어쩌죠?]
"......."
시몬은 대답 대신 천천히 파멸의 대검을 붙잡고 아래로 내렸다. 피어의 투구와 시몬의 눈에서 동시에 검푸른 안광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가죠 피어."
[크흐흐!]
시몬이 두 손으로 붙잡은 대검을 천천히 좌우로 흔들다가, 이내 힘주어 들어 등 뒤로 보내는 자세를 취했다. 대검에 모든 힘과 칠흑을 다 때려 박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칠흑이 집결하며 물결이 요동쳤다.
파멸의 대검에서 거대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며 어두운 연못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었다.
'천천히.'
시몬의 몸이 연못의 격류를 타고 미끄러지듯 회전한다. 아래를 향했던 두 다리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동시에 두 팔이 움직여 대검을 끌어내린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대검이 거대한 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대검이 지나가는 자리로 공간을 가르는 거대한 선이 그어지고, 그 선에 닿은 모든 것들이 모조리 반으로 찢어진다. 피라냐 떼가 삭제되고, 꿈틀거리는 이끼들과 연못 바닥이 크레바스처럼 갈라진다.
거대한 힘을 운용한 반동으로 잇새에 신음이 흘러나오고 머리에 피가 돌았지만, 시몬은 이를 악물고 계속 그 힘을 이끌었다.
연못 바닥을 가르며 올라온 검격이 이제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최후의 도착점. 시몬의 시선은 이제 연못 위의 있는 탈라제에게 향해 있었다.
'공간째로―'
원심력으로 그어지는 대검의 끝이 바닥을 지나 하늘로 향하고 시몬의 몸은 아래로 향한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시몬은 머릿속으로 함성을 토해냈다.
'베어내는 감각!'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그어지는 순백의 궤적은 연못과 하늘을 가르며, 그 사이에 있던 탈라제의 몸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베어버리며 지나갔다.
이어지는 거대한 후폭풍이 연못과 금지된 숲을 뒤흔들었다.
-케아아아아아악!
탈라제의 두 팔이 하늘로 향했다가 그 갈라진 몸뚱이가 산산이 무너져 내리며 떨어져 내렸다.
네 사람은 떨어지는 잔해를 피해 헤엄쳤다.
[푸하!]
"크으!"
탈라제가 파괴되며 이제는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연못의 크기는 크게 줄어들어 있었다. 에르제베트가 거미줄을 보내 연못에 뜬 네 사람을 동시에 들어서 안전한 지상으로 내보냈다.
이 순간에도 연못은 점점 줄어들다가 이내 핏덩이로 변해 바닥에 작은 점처럼 남았다.
꼬르륵.
결국은 점이 된 연못에서 곤죽이 된 장기와 시체들이 쭉쭉 쏟아져 나오고는 연못은 완전히 소멸했다.
[이겼사와요! 10번 전부 잡았어요!]
[해냈다!!]
에르제베트와 프린스가 환호했다. 시몬은 너무 지쳐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카쟌이 다가와 말했다.
"수고했다."
"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시몬이 힘겹게 웃어 보였다. 이제 좀 목을 턱 죄고 있던 위압감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야! 빨리 승리의 세레머니 해야지!]
[군단장님의 품으로 소녀, 달려가옵니다!]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들러붙었다. 아무래도 쉬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 *
타닷.
타다닷.
쥐로 변한 탈라제가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였다. 마지막 목숨일 때, 탈라제는 7군단의 일원들을 연못 속으로 빠뜨린 뒤 본체는 지금 이 쥐의 형태로 빠져나가고 있다.
마지막 목숨인 만큼, 모든 힘과 에너지를 분신에 투자했다. 충분히 시간을 끌어줄 줄 알았지만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그 강력한 분신조차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저들은 극도로 위험하다.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군단장으로 추정되는 네크로맨서는 키젠 학생으로 보이지만, 벌써 저렇게까지 강하다.
그가 성장하면 매그너스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이미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강제로 손에 넣었으니 분쟁은 피할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그너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바다! 바다로만 나가면 된다.
숲을 빠져나오니 해변가와 모래사장이 보인다. 파도 소리가 탈라제에겐 무척이나 반가웠다.
쥐로 변해 있던 그가 뺨에 아가미를 만들고 물가로 달렸다.
[!]
인기척을 느낀 탈라제가 즉시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사람이 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달빛이 내리쬐는 해변가를 홀로 거닐고 있는 검은 머리의 소녀.
그녀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막 잠에서 깬 듯 피곤한 얼굴이었고, 옷은 하얀 원피스 한 벌만 입고 맨발이었다.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들었다.
"네, 엄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말씀하신 곳에 나와 있어요. 이 밤에 뭐예요. ......아, 맨날 부려먹어. 네, 네. 알았어요."
탈라제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저 인간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괜히 발각돼서 좋을 건 없었다.
지나가라. 그냥 지나가라.
차박.
통신 수정구를 아공간에 던져 넣은 소녀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해변을 걸었다.
"당신에게 원한은 없지만-"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검붉은 비수가 들려 있었다.
"죽어줘."
쐐액!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에 탈라제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비수가 바위를 쪼개고 모래사장에 틀어박혔다.
[나는 매그너스 군단 소속. 탈라제다.]
탈라제가 급히 말했다.
[네크로맨서라면. 소속을 밝히라고 요청한다.]
차박 차박.
그녀가 하얀 맨발로 물에 잠긴 모래사장을 밟으며 다가왔다.
"소속?"
걸음을 멈춘 그녀의 눈빛이 야생동물처럼 야광으로 붉게 변했다.
이내 그녀의 등 뒤, 달빛이 내리는 해변가에서 공간이 입처럼 쩍 벌어지며, 어둠 속에서 그녀와 똑같은 붉은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오지랖 넓은 어느 엄마의 딸."
심연 같은 어둠 속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응집된 붉은 기둥이 일직선으로 쏟아져 내렸다.
퍽!
정신없이 도망치던 탈라제가 결국 무수한 붉은 기둥 중 하나에 집어삼켜지며 사라졌다.
그것이 탈라제의 첫 임무 실패이자, 최후의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