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9화
와슈번 산맥 정상, 마왕의 고성.
쿠우우우웅!!
조용하던 고성에 하늘이 부서지는 듯한 굉음이 쏟아졌다.
성내에 주둔하고 있던 언데드들은 소리의 진원지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매그너스 님!]
고성의 실내에 있는 드넓은 목욕탕.
그 안에서 장발의 사내가 피를 흘리며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머리카락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깨끗했던 목욕탕은 그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검고 뻘건 살덩이들이 죽죽 흘러나와 엉망이 되었다.
"......."
장발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가슴에 그려놓았던 '영속의 진' 몇 개가 망가져 피와 살점을 줄줄 토해내고 있었다.
완전히 고장 난 마법진을 확인한 남자는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탈라제가 죽었다."
[......!]
그 말에 매그너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네 언데드들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믿을 수 없습니다. 탈라제가......!]
[보복한다! 살육한다!!!]
상의는 인간, 하반신은 뱀의 형상을 한 여인.
안경을 쓰고 잘 다린 집사복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좀비.
실로 살을 기워 만든 몸뚱이에, 손에는 피 묻은 식칼을 든 괴인.
그리고 얼굴도 팔도 없이 번데기처럼 꿈틀거리는 괴생명체.
이들 모두가 에이션트 언데드였다.
[탈라제는 로크섬에서 수색 중이었지 않습니까?]
집사복을 입은 좀비의 물음에, 매그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명의 정글에서 마주친 그 에이션트 언데드는 틀림없이 강했다. 하지만 전력으로 도망치는 탈라제를 10번이나 죽일 정도는 아니다. 그런 판단에 매그너스는 기꺼이 탈라제를 보낸 거였다.
하지만 과연 누가 탈라제를 없앴을까? 불법 침입이긴 했지만 키젠이 탈라제를 소멸시킬 이유는 없다. 붙잡아서 자신에게 핸디캡을 먹이면 먹였지.
탈라제를 죽인 건, 탈라제가 본 것을 감추려는 자.
거기까지 생각한 매그너스가 입을 열었다.
"적은 새로운 군단일 가능성이 크다."
네 언데드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군단장들은 자기들의 위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어. 즉, 로크섬에서 7군단이 탄생했고 그들이 탈라제를 죽였다. 그것 말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아."
스르륵.
반은 뱀, 반은 인간인 여성이 목욕탕에 쓰러진 매그너스의 몸을 휘감더니 그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진짜 괜찮아 자기?]
"그래."
매그너스는 피범벅이 된 가슴에 손을 대더니 그 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예비 수식을 준비해 둔 보람이 있었다.
망가진 마법진의 수식을 피로 연결해 새로운 마법진을 옆으로 그린다. 만약 탈라제가 소멸할 시, 그 주위의 광경을 볼 수 있는 흑마법이었다.
우웅!
피의 마법진이 작동하며 탈라제가 소멸한 좌표가 맞춰진다. 이내 그의 앞으로 좌표의 광경이 흐릿한 안개처럼 보였다.
자리에 있는 네 명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쏴아아아아.
파도가 치는 해변가. 형체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채, 마치 불살라져 최후를 맞이한 탈라제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탈라제의 주위에 서 있는 건 맨발에 원피스를 입은 흑발 적안의 소녀였다.
[저 인간이었군요.]
[복수! 복수! 찢어 죽이자!]
성에 있는 망자들이 함성을 토해내며 분노를 토해냈다.
그때 매그너스가 머리 위로 손가락을 척 올리자 주위가 다시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알라제. 저 여자는 누구지?"
매그너스의 물음에, 네 기의 에이션트 언데드 중에서 대형 번데기처럼 꿈틀거리는 살덩이가 대답했다.
[내 형제 탈라제를 없앤 원수. 키젠 1학년. 로레인 아크볼드. 네프티스 아크볼드의 딸.]
네프티스의 딸이라는 말에 망자들이 술렁였다. 집사좀비가 외눈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7군단장이라면 상황은 맞아떨어집니다.]
만약 제7군단이 실존한 경우, 네프티스가 간섭해서 관리자를 숨겼을 가능성이 컸다. 7군단의 마지막 전쟁에 네프티스도 참여했었으니까.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 네프티스는 성장해서 키젠에 입학한 딸에게 그동안 숨겨둔 군단을 넘겨준다. 충분히 추측 가능한 그림이었다.
"저 여자는 강한가?"
매그너스의 물음에 좀비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마녀의 피를 물려받은 여자인데 강할 수밖에요.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인지 키젠에서 중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녀의 실력은 막강합니다. 게다가 7군단은 배신의 군단이니, 제아무리 네프티스의 딸이라고 해도 군단을 숨겨야 했겠지요.]
라미아라고 불린 반인반사의 에이션트 언데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려워. 상대가 귀족이나 왕족, 하물며 일국의 왕이라도 해도 죽이려고 했는데 네프티스의 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로레인 아크볼드. 대단한 재능. 그녀가 군단을 보유했을 경우. 탈라제의 생환 확률 10%.]
여러 부하들의 말을 듣던 매그너스가 턱을 슥슥 쓸었다.
"자기 에이션트 언데드를 빼앗아간 보복이라 이건가? 쪼그만 게 성깔 있네. 재미있어."
그때 흑마법으로 만든 화면을 보고 있던 망자들이 술렁거렸다. 로레인이 고개를 들어 그들이 보고 있는 화면을 딱 올려다본 것이다.
[눈치챘군요.]
그녀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붉은 눈동자를 빛냈다.
쾅!
화면이 망가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매그너스가 흥미로운 듯 미소 지었다.
"감도 좋은데."
[어쩔 생각이야? 매그너스.]
"역시 로크섬에 가봐야겠어."
쏴아아아.
피범벅이 된 목욕탕에서 일어난 매그너스가 성큼성큼 걸어가 근처의 옷걸이에 걸려 있는 가운을 걸쳤다.
"차기 총장이든 뭐든 상관없어. 군단장 선배로서 후배에게 훈수 좀 두러 간다."
라미아가 표정을 굳혔다.
[네프티스의 딸을 죽이는 것만큼은 안 돼. 7군단꼴 나고 싶어?]
"알아, 알아. 내가 알아서 할게."
매그너스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알라제. 로크섬에 가는 방법을 알아봐. 출장이든, 행사든, 외부교수 노릇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부인. 로크섬에 절대 출입 불가. 매그너스 군단. 이미 마음대로 탈라제를 보내서 룰을 어겼다. 출입 불가.]
"그럼 더 열심히 알아내. 그게 네 역할이잖아."
[명령 확인.]
가운의 주머니에 손을 넣은 매그너스가 끌끌거리며 웃었다.
"기대되네. 배신의 군단이라......."
* * *
"홍펭 교수님께서 페이스 올리시랍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다 함께 갑니다!"
통합 2학기의 첫 마투학 수업이 시작됐다.
A반 학생들은 가파른 산길을 달리는 중이었다. 모두가 헉헉대며 선두에서 달리는 홍펭을 따라잡고 있었다.
"시몬?"
시몬은 중간에서 적당한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옆에서 카미바레즈가 말을 걸어왔다.
"어쩐지 오늘 기분 좋아 보이세요."
"어, 그래?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셔서 그런가 봐."
사실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매그너스 군단의 눈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탈라제가 피어의 유적을 발견하면서 돌이키기 힘든 상황이 될지도 몰랐는데,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10번의 목숨을 모두 소진시켜서 다행이었다.
그를 휘하 에이션트 언데드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이미 군단의 계약에 묶인 언데드들은 군단장을 죽이지 못하는 이상, 같은 편으로 만들 수 없다고 피어가 말했다.
그래도 정말 큰 산을 넘었다. 아무리 매그너스라고 해도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로크섬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아아."
기분도 좋고 컨디션도 무척 좋았다.
마침내 중간 지점에 도착했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널브러져 숨을 헐떡였고 조교들이 체력 회복 효과가 있는 드링크를 돌렸다.
'2학기부터는 맛이 좀 달라졌네?'
기존의 적색에서 녹색의 건더기 같은 게 들어갔다. 뭔가 몸에 좋은 맛이었다.
"지몬!"
시몬이 쉬고 있는데 홍펭이 빙긋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시몬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홍펭 교수님!"
"오늘 컨디젼이 엄청 좋아 보이는데요! 나랑 같이 더 뛸래요?"
"좋죠!"
엎드려서 숨만 헐떡이던 메이린이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눈으로 시몬을 응시했다. 저게 인간의 체력인가 싶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가볍게 몸을 풀었다. 홍펭이 팔을 들어 가리켰다.
"저기 언덕에 보이는 나무 딱 찍고 오는 거예요!"
"좋아요."
두 사람이 자세를 낮췄다.
"......나도, 간다!"
헥토르가 저벅저벅 다가와서 시몬의 옆 스타트라인에 섰다. 홍펭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오, 헥토르 학쟁도 같이 해주는 거예요? 좋아라!"
두 사람이 홍펭에게 합류했다. 그 모습을 본 마투학 조교 브레드는 슬쩍 몇몇 학생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 눈치 X나 없네. 우리 애들이 마투 지망도 아닌 놈들한테 꿀리고."
그 말에 주저앉아 쉬고 있던 마투학 지망생들이 움찔했다.
"키젠 많이 좋아졌다. 나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네, 진짜. 나다 싶으면 딱 뛰어나가야 하지 않나? 이런 거."
결국 브레드의 눈치를 견디지 못한 마투학 지망생들이 헐레벌떡 일어나 뛰쳐나왔다. 마투학은 다른 전공 학생들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편이었다.
"저희도 하겠습니다!"
"저도요!"
홍펭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에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마투학 지망생들은 원망 어린 눈길로 시몬과 헥토르의 등을 흘겨보았다.
"뭘 꼬라보냐."
헥토르는 귀신같이 눈치챘다.
학생들은 불같은 그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딴청만 피웠다. 시몬과 홍펭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 준비~ 출발!"
홍펭과 시몬, 헥토르, 그리고 마투 지망생들이 스퍼트를 올리며 단번에 언덕을 올라갔다.
몸을 혹사한 상태에서 또 달리는 거라 시몬은 숨이 터질 것 같았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자연을 만끽하다 보니 마치 몸의 독소가 빠지는 것 같은......
'독소?'
시몬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본 모든 산책로에, 저 둥둥 떠다니는 녹색의 뭔가가 있었다. 기분도 전보다 훨씬 상쾌해졌다.
"헤모피라는 직물의 꽃가루는 독조 배출에 탁월해요. 여러분이 먹은 드링크에도 그게 들어 있어요."
홍펭이 복잡미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언니가 온다는 말을 듣고 곳곳에 헤모피의 씨앗을 짐어뒀어요."
"......아."
어쩐지 홍펭의 표정이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니 별야의 난행이 신경이 쓰이겠지. 수습해 줄 사람도 그녀 정도밖에 없었다.
"힘내세요 교수님! 별야 교수님 수업도 재밌어요."
"고마워요 지몬. 그래도 좀 아닌 것 같으면 명확히 언니에게 말하제요."
그때 옆에서 헥토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확 속도를 올렸다.
순식간에 달려간 그가 나무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그러곤 보란 듯이 시몬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 1등 축하해 헥토르."
뒤따라온 시몬이 말했다. 그 말에 헥토르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지금 날 놀려먹나?"
'아니, 뭐 어쩌라고.'
"자, 그만 그만. 싸우면 안 돼요."
홍펭이 제지하자 헥토르도 성질을 거둬들였다. 역시 어른들 앞에서는 말 잘 듣는다.
그리고 뒤늦게 마투학 지망생들이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그럼 두 사람의 승부를 이제 내볼까요?"
홍펭이 다시 출발했던 곳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시작!'을 외쳤다.
시몬과 헥토르가 즉시 튀어나갔다.
'쟤들 대체 정체가 뭐야!'
'아니, 진짜. 지치지도 않나?'
마투학 지망생이 숨을 헐떡이며 짜증스럽게 뒤따라갔다.
* * *
탁. 타닥. 탁.
저주학 교수 바힐이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칠판에 수식들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칠판을 보지도 않고, 머릿속의 수식을 그대로 붙여넣는 것처럼 막힘없이 줄줄 쓰는 모습은 거의 기예에 가까웠다.
"교수님."
그때 연구실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수석 조교 체헤클이 나타났다.
그녀가 깍듯하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A반 수업 가실 시간입니다."
바힐이 분필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러곤 테이블에 놓인 물수건으로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닦고는 일어나 옷걸이에 걸린 흰색 정장 수트를 걸쳤다.
"오늘만을 기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