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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30화 (23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30화

바힐의 저주 수업은 모든 학생들이 기다려왔다.

존경하는 교수 1위, 가장 본받고 싶은 롤모델 1위, 수업 만족도 또한 홍펭과 함께 키젠 최고 수준이었다.

바힐은 언제나 강의실에서 프로페셔널하게 행동했고,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건 물론, 그가 가진 광활한 지식을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녹여서 설명하는 교육자로서 능력도 출중한 편이었다.

이렇게 여러모로 완벽해 보이는 바힐에게도, 최근 큰 고민이 있었다.

툭툭.

바힐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았다.

수석조교 체헤클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교수님. 자꾸 그 표정 나와요. 그 표정."

"아, 미안합니다."

"침도 좀 닦으시구요."

바힐이 소매로 입가를 가볍게 훔치고는 다시 강의실 한쪽을 응시했다.

지금은 A반의 실습시간이었다.

조교들이 흩어져서 학생들의 저주 실습을 지도하고 있는 가운데, 바힐의 시선은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안 봐준다?"

하늘색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휘날리며, 메이린이 팔 스트레칭을 쭉쭉 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봐주면 의미가 없잖아."

상대는 시몬이었다.

일단 메이린은 평균 90점대의 전 과목 전천후 엘리트였다.

저주학은 무려 96점. 조별수업에서 처음 7조를 구성했을 때, 자진해서 저주지망을 맡을 정도로 저주학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시몬의 저주로 그녀를 이길 가능성은 요원했고, 그만큼 실력 차가 많이 나는 과목이었다.

두 사람은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시몬 폴렌티아, 메이린 빌렌느. 두 학생 모두 준비됐나요?"

"네!"

두 사람 외에 다른 곳에서도 1:1 대련 실습이 일어나고 있었다. 조교가 서류판을 들고 외쳤다.

"그럼, 시작!"

촤아악.

시몬이 즉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며 두 팔을 앞세웠다. 마주 보게 세운 두 손바닥에서 칠흑이 일렁이며 모여들더니 마법진의 원을 구성해냈다.

반면 메이린은 가뿐히 오른팔만 들어 올린 채로 여유롭게 마법진을 완성하고 있었다.

"받아봐."

<이그저스트(Exhaust)>

1학기 첫 수업에 배운 기본기이자, 다용도 저주인 이그저스트가 회색 기체 형태로 쏘아져 나갔다.

반면 시몬의 마법진은 아직 준비 중이었다. 완성 진도는 이제 60% 정도.

'흐읍!'

저주가 다가오는 걸 본 시몬의 눈에 힘이 빡 들어갔다.

갑자기 완성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며, 시몬은 마법진이 완성된 것도 보지 못한 채 그것을 메이린이 날린 저주 쪽으로 보냈다.

<캔슬레이션(Cancellation)>

터어엉!

정말로 간발의 차이로 저주와 완성된 마법진이 서로 상쇄되어 사라졌다. 충격으로 휘청이던 시몬이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번 수업에서는 상대의 저주를 파훼하는 저주인 '캔슬레이션'에 대해서 배웠다.

지금 이 실습도 캔슬레이션 저주를 익히기 위한 것으로, 상대 학생과 공방을 주고받는 실습이었다.

"주저앉아 있을 시간 있어?"

이번엔 메이린이 캔슬레이션을 전개하고 있었다. 시몬도 이에 질세라 앉은 자세에서 바로 이그저스트를 준비했다.

그렇게 시몬이 이그저스트를 완성했을 즈음, 메이린은 귀밑머리를 넘기며 여유롭게 캔슬레이션을 완성한 채 서 있었다.

'......와, 진짜 대단하다. 역시 저주만으로는 격차가 심해.'

정공법으로는 못 이긴다.

시몬은 준비한 이그저스트 마법진을 슬쩍 기울이더니 손끝에 칠흑을 짜내서 수식을 몇 글자 추가했다.

그 모습을 본 메이린의 눈이 커졌다.

'어? 방금 뭘 더 추가한 거야? 나 못 봤......!'

<이그저스트>

즉시 시몬의 저주가 쏘아져 나갔다.

그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오른쪽 손바닥에 만든 캔슬레이션을 마법진을 앞세우는데, 갑자기 저주의 방향이 아래로 휙 기울어졌다.

'방향이 틀어지는 이그저스트?!'

이그저스트가 그대로 그녀의 오른손을 지나 허리 쪽으로 향했다. 시몬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겼다!'

터어엉!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왼손이 불쑥 튀어나와 이그저스트를 막아냈다.

중심이 흔들린 그녀가 옆으로 몇 걸음 주춤거리며 물러났지만, 저주에 당하지 않고 멀쩡했다.

'두 장의 캔슬레이션!'

"바보야! 나 다중영창 가능한 거 벌써 까먹었냐!"

그녀가 두 팔을 세우며 미소 지었다.

공수역전. 시몬이 급하게 캔슬레이션을 준비했지만 메이린의 양손에서 이그저스트가 뻗어 나갔다.

시몬은 하나는 막고 다른 하나는 저주에 맞으며 뒷걸음질 쳤다. 조교가 서류판에 체크하며 말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아싸 이겼다!!"

메이린이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시몬은 팔을 늘어뜨리며 아쉬워했지만, 저주전에서 메이린을 상대로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패가 없는 친선전이긴 한데."

조교가 시크한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따지면 메이린 학생이 룰 위반으로 패배예요."

"네? 아, 왜요!"

"딱 한 발씩만 주고받기로 했잖아요. 3분 전에 설명했는데 벌써 잊었어요?"

메이린이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시몬은 소리 내어 웃었다.

"너 저번 피구에서도 그렇고 자꾸 룰 위반하더라."

"시, 시끄러!"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 질렀다.

시몬이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말하려는 순간.

"방금."

갑자기 뒤에서 훅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느새 바힐이 시몬의 등 뒤에 안광을 빛내며 서 있었다.

"이그저스트에 무슨 수식을 추가한 겁니까."

시몬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교수들이 마법진의 오리지널을 강조하는 게 아니었다. 마법진은 하나의 복잡한 '생태계'였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전체가 망가진다.

벌레가 너무 많아서 잡았더니 꽃들이 수정을 못 해서 죽고, 그 벌레를 먹이로 삼는 새들까지 싹 다 죽는 것처럼.

무분별한 수정으로 인한 마법진의 폭발사고는 네크로맨서의 필연이라고 불릴 만큼 위험천만했다.

키젠에서 가르쳐 주는 마법진의 모든 수식과 순서에는 이유가 있었다.

"교수님 그게......."

"질문에 대답하십시오."

바힐은 무척 진지한 표정이었다. 시몬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그저스트의 사출 수식에 부하를 섞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출 직후 저주가 무거워져서 아래로 가라앉게 되고."

"그걸 이용해 방향을 비트는 효과를 유도했다."

"네, 그렇습니다."

"별개의 식을 섞어서 본래의 수식이 손상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탓하는 듯한 질문이었다. 시몬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될까 하는...... 제 감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몬이 고개를 푹 숙였다.

분위기가 워낙 험악해서 메이린조차도 뭘 끼어들지 못하고 시몬의 등만 보고 있었다.

그것이 다행이었다.

이때 두 사람이 바힐이 지은 표정을 보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사람을 안달 나게 하는 천재성이다.'

바힐은 먼 미래 자서전에 쓸 문장을 떠올렸다.

'감이 아니라 피부로 이해하고 있었겠지. 수식을 추가하는 손길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편안했다. 그냥 생각난 아이디어를 메모하듯이 툭툭.'

바힐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지금껏 내 직업이 이토록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바힐 교수님!!"

지켜보던 체헤클이 기겁한 표정으로 뛰어왔다.

"여, 연구실에 가보셔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체헤클."

바힐이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두 사람도 고개를 들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은 날 따라오세요."

"......네."

두 사람이 나란히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시몬이 꼼짝없이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각오를 굳힌 메이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따라나섰다.

"교수님! 잠시만 제 말을......!"

"멈춰요."

체헤클이 다가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심해도 좋아요. 바힐 교수님께서는 혼내려고 시몬 학생을 부르신 게 아니니까."

"조교 선생님......!"

'혼내긴 무슨,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겠지.'

기껏 가르친 마법진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건 교육자로서 따끔하게 혼내야 할 부분은 맞다. 이런 고난도의 테크닉은 고학년 급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바힐은 그냥 보통의 교육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체헤클의 예상대로.

"아까는 잘했습니다."

바힐은 시몬을 칭찬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런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하도록 하세요. 물론 이건 키젠 교수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네, 네?"

"별로 재미있는 화제는 아니니,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나 해볼까요."

바힐은 가볍게 얼버무려 버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보통 이야기 말입니다."

시몬이 당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보통'을 강조하는 게 보통이 아닌 사람들의 특징 아닌가.

연구실로 향하는 길,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바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방학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와, 진짜 보통 이야기네.

시몬은 내심 안심하며 대답했다.

"아버지 일 도와드리면서 지냈어요."

바힐의 눈이 강하게 빛났다.

"오!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네크로맨서였습니까? 성함은? 직업은? 키젠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은 뭘 하고 계시죠?"

......전 군단장 요나라고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 못 한다.

시몬이 우물쭈물하자, 바힐은 뒤늦게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가정사를 밝히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있으니까요."

"......죄송합니다."

"다시 보통 이야기로 돌아오죠."

바힐이 빙그레 웃었다.

"방학 동안에는 무슨 흑마법을 연습했습니까? 새로 익힌 기술이라도?"

"네! 있어요! 시체폭발이랑 머드 골렘을 탑승형으로 개조해서......."

쿠르릉!

'또 또 또 소환학!'

격분한 바힐은 시몬 모르게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바힐의 홧김으로 뿜어져 나간 저주들이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가 밖으로 나갔다.

"교수님. 방금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요?"

"나는 잘 모르겠군요."

잠시 뒤 아래에서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던 커플의 비명이 들렸다.

어느새 두 사람 다 너구리로 변해 벤치에서 떨어졌다. 두 시간 동안 사람을 동물로 만드는 저주였다.

"뭔가 소란스럽네요."

미친 듯이 꽥꽥 울부짖는 동물 소리에 시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바힐이 어깨를 으쓱했다.

"야생동물이 들어온 모양이군요. 그건 그렇고 이번 시험의 테마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냈습니까?"

"아직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다수의 무기를 이용한 함정 던전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바힐의 얼굴을 보았지만, 바힐은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

"교수는 학생에게 어떤 힌트도 줄 수 없어서 미안하군요. 그래서, 시몬 학생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죠?"

"골렘을......."

격분한 바힐이 또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멀리서 공놀이를 하고 있던 남학생들의 뼈가 전부 연체동물처럼 되어 바닥에 흐물렁거리며 쓰러졌다. 그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진짜 무슨 소리지?"

시몬이 당황해서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밖은 평화로웠다. 저주가 떨어진 것은 건물 뒤편이었다.

"자, 들어오시죠."

얼굴에 철판을 깐 바힐이 천연덕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강의실 문 앞에 섰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게 있습니다."

오늘 이후로, 시몬의 주도권 양상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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