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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31화 (23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31화

시몬은 바힐의 연구실에 들어왔다.

'......오.'

바힐답다고 해야 할까.

다른 교수들의 연구실은 다소 복잡하거나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다면, 바힐의 연구실은 다소 결벽증 환자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된 공간이었다.

블랙톤과 화이트톤이 조합된 심플한 인테리어, 곳곳에 장식된 화단과 벽에 걸려 있는 값비싼 명화들. 방 전체에 기분 좋은 커피향이 났다.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벽면에는 거대한 칠판이 통째로 붙어 있었다. 바힐이 수없이 쓰고 지운 듯한 흔적들로 가득했다.

"앉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교수님."

시몬이 소파에 앉자 바힐은 바로 커피를 가지고 왔다.

준비한 지 한참은 됐는지 커피는 다 식어가고 있었다.

달칵.

그런데 접시 위에 찻잔을 올리는 순간, 부글부글 끓으며 뜨거워졌다.

시몬이 그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바힐이 다리를 꼬고 앉아 머리에 쓴 모자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저주는 해롭기만 하다는 편견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진 중에서, 사실 저주 수식이 들어가지 않는 것들이 거의 없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찻잔을 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맛보았다.

따뜻하고 달짝지근한 게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바힐이라면 또 씁쓰레한 고급 커피를 즐길 것 같았는데, 의의로 애들 입맛을 저격한 듯한 맛이다.

"슬슬 수업도 다 끝나가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바힐이 허공에 책장 형태의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얇은 책을 하나 꺼내 테이블에 놓고는 시몬 쪽으로 스윽 밀었다.

시몬은 그 책을 다시 자기 쪽으로 가져와서 펼쳐보았다.

저주 마법진의 구성요소가 적혀 있는 책이었다.

"교수님. 이건......."

"시몬 폴렌티아. 당신을 위해 개발한 저주 세트입니다."

바힐이 사뭇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어떤 책을 찾아봐도 없을 겁니다. 오로지 세상에 하나뿐인 저주들이죠."

시몬은 기쁨 이전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바힐을 바라보았다.

"왜 제게 이런 걸......."

"뛰어난 학생이 있다면 가르치고 싶어지는 게 교육자 아니겠습니까? 사제(師弟)의 연이라고 해두죠."

시몬이 깜짝 놀라며 책을 내려놓았다.

"바, 바힐 교수님! 이건 제게 너무 과분해요. 저는 교수님께......!"

"아아-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바힐이 손을 들며 미소 지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닙니다. 특례 1번이라면, 어떤 교수들이든 조금씩 내 흔적을 묻혀보고 싶죠. 당신도 학생이고 배움이 본분인 신분이라면,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시몬은 조금은 감격한 표정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바힐이 허례허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가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했다면, 정말로 하나뿐일 것이다.

책에는 모두 네 개의 저주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명이 지나칠 정도로 간략하다. 수식에 대한 설명도 거의 생략됐고, 이 저주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도 확실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설명이 적다고 느낄 겁니다."

바힐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시몬 학생이 가진 창의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교육은 필연적으로 학습자에게 무언가를 규정하게 된다. 학습자 또한 지식의 습득을 우선시하게 되기 때문에,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그저스트를 발동시킬 때 시몬이 사용한 그런 번뜩이는 기지들. 그런 것들을 다 살리기 위해 바힐은 시몬이 조금 더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시몬 학생이 저주 공부에 대한 틀을 익혔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아......."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고 하던가.

바힐이 알려준 이 네 가지 저주를 익히려면 적지 않은 공부량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시몬 학생이 이번 통합 2학기 내에 책에 나와 있는 네 개의 저주를 모두 익힌다면,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선물이요?"

"네."

바힐이 허공에 차례대로 네 개의 저주 마법진을 동서남북 방향으로 띄웠다. 그리고 중앙에 텅 빈 마법진의 베이스만 그렸다.

'뭘 하시려는 거지?'

이어서 바힐은 손끝을 뻗어 다른 네 개 마법진의 특정 룬어와 수식을 빼 와서 중앙의 베이스에 옮겨 담았다.

마치 뷔페식당의 접시처럼, 필요한 수식들만 쏙쏙 골라와 중앙의 마법진을 이루었고, 거기에 새로운 수식을 약간만 첨가했다.

"네 가지의 마법진을 모두 마스터했을 때 비로소 익힐 수 있는 마법진입니다."

사실 책에 나와 있는 네 개의 저주들은, 이 저주 하나를 시몬에게 습득시키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했다.

덜컹! 덜컹!

엔진음 같은 소리가 나더니 중앙의 마법진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경탄음을 흘렸다.

'아름답다.......'

마법진은 생태계라고 했던가.

모든 수식과 흐름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시몬은 지금까지 봐온 마법진들 중에 가장 정교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름다웠다.

"이 저주의 이름은 콤펠로니아라고 합니다."

바힐이 말했다.

"대상자의 콤펠로(compéllo)를 인위적으로 열어젖힐 수 있는 저주죠."

"콤펠로요?"

"위대한 네크로맨서들이 간혹 체험한다는, 절대적인 진리의 영역에 진입하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도 몇 번 경험해 봤죠?"

바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매 전투, 혹은 중요한 순간, 당신은 당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어떤 대단한 기적들을 일으킨 경험이 있지 않나요?"

시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당연히 경험했다.

수도 없이 많았다.

첫 수업에 아일랜드 랫맨 스켈레톤을 그레이 랫으로 바꿨을 때, 프린스의 왕관을 쓰고 배우지도 않은 시체폭발을 썼을 때, 성녀를 베었을 때, 좀비들을 신성화하고 성체 폭발을 썼을 때.

바로 그런 기적을.

'......내 마음대로 열어젖힐 수 있다고?'

* * *

"교수님!"

시몬이 연구실 밖으로 나가고, 근처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수석조교 체헤클이 연구실로 들어왔다.

"별일 없었죠? 또 뭔가 학생한테 이상한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니죠?"

"그럼요. 잘 끝났습니다."

바힐이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가자는 듯 손짓했다.

그렇게 연구실 밖으로 나와 걷던 중 체헤클이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요."

"오롯이 당신에게 집중되던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 분할되어 섭섭한 심정은 이해합니다. 체헤클."

"저번에 사표 낸 거 수리해 주세요."

"나 참, 농담도 못 하게 하는군요."

평소답지 않게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하는 바힐을 보며, 체헤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교수님."

"말해보세요."

"시몬 학생을 위해 힘들게 개발한 마법진인데, 너무 대충 알려주시는 거 아닌가요? 교수님 성격이라면 그렇게 아끼는 시몬 학생을 앉혀놓고 하나부터 열까지 숟가락으로 정성스레 떠먹어주리라 생각했는데요."

바힐이 슬쩍 웃음을 흘렸다.

"내가 1학기 내내 시몬을 저주학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간의 실패로 배운 게 많습니다."

"오."

"시몬 학생은 그렇게 길들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길들인다는 워딩이 그리 달갑지 않았기에, 체헤클이 미간을 좁혔다.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거죠?"

"이건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줘야겠군요."

바힐과 체헤클은 자신의 몸에 인식 장애를 유발하는 저주를 걸고는 키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오후 수업이 끝나고 많은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시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쿵!

탑처럼 쌓은 저주학 교재들을 내려놓고, 그 중앙에는 아까 바힐에게 받은 교재를 놓고 공부하고 있었다.

'좋아 죽으시네 아주.'

체헤클이 힐긋 바힐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요약하자면 그런 거죠. 아무리 내가 큰 관심을 보여도, 그게 타인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와,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게 바로 시몬 학생을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떠먹이는 게 아니라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자기가 스스로 찾아 공부하도록 하는 겁니다. 보세요. 얼마나 저주 공부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바힐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체헤클이 어깨를 으쓱했다.

"실패로부터 배운 게 있다니 다행인데요. 저거 1학년이 독학으로 익힐 만한 수준의 저주가 아니지 않아요?"

"그때는 저를 찾아오겠죠. 저주학 수업이 끝나고 안 풀리는 거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오라고 했습니다."

"보충수업 방식이네요. 이거 마치...... 어, 잠깐!"

체헤클의 미간이 가늘어졌다.

"이거 소환학의 아론 교수님 방식이죠?"

바힐의 얼굴에 아주 잠깐 뜨끔한 기색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거기서 아론 선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체헤클."

"맞네! 아론 교수님 스타일을 벤치마킹했네! 어쩐지 평소답지 않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 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떼는 모습을 보며 체헤클이 한숨을 쉬었다.

"시몬!"

그때 누군가가 시몬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시몬과 항상 같이 붙어 다니던 소년. A반의 딕 헤이워드였다.

"와, 배신자! 또 혼자 공부하고 있었냐?"

시몬이 쓰게 웃었다.

"그냥 잠깐 하는 거야."

"내일 주말이잖아! 메이린이 넷이서 홍펭 교수님 별장에 놀러 가자는데?"

"아, 진짜? 거긴 꼭 가야지."

시몬이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를 챙겼다. 딕을 바라보는 바힐이 분노로 부들부들 몸을 떠는 모습이 보였다.

체헤클이 와락 그를 끌어안으며 외쳤다.

"야이 미친! 그 주문 뭔데요! 학생한테 저주는 안 돼요!!"

"들키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 이 또라이 교수가 진짜......!"

* * *

주말은 빛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시몬은 주말 동안 새로운 혈류학 기술과 바힐의 4종 저주세트를 공부했고, 남는 시간엔 피어의 유적으로 가서 함께 군단 운용 훈련도 했다.

그리고 키젠에서는 이번 주에 2차 BMAT시험을 시작하겠다고 공지했다.

적어도 다음 주 정도에 시작할 줄 알았던 학생들은 발칵 뒤집혔고 급히 시험 대비를 시작했다.

이제는 소문이 날 만큼 났다.

키젠에서 '왕국 전역의 무기 싹쓸이'라는 꽤 적나라한 행보를 보였고, 거기에 전국의 트레저 헌터들과 함정 전문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소문까지 추가로 들어왔다.

교수들도 수업시간에 방어 및 탐색 흑마법 위주로 가르치는 중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번 시험의 테마를 '던전 탐험'으로 생각하고 준비했다.

학생들은 트레져 헌터 스터디를 열고 함정 해제에 관해 공부했다. 발 빠른 어떤 학생들은 트레져 헌터들을 직접 섭외해서 통신 수정구로 과외를 듣기까지 했다.

키젠의 모두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전이 아닌 게 아쉽긴 한데."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딕이 말했다. 그의 입장에선 너무 쉽게 정보가 풀려나간 감이 있었다.

"키젠 입장에선 학생들이 충분히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시험을 짜는 게 맞아."

"뭐래."

시몬의 옆에서 걸어가고 있던 메이린이 반대의견을 냈다.

"키젠이 언제부터 학생들을 그렇게 학생들을 배려했다고?"

카미바레즈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모두가 예상하던 바에서 완전 반전 테마로 나오는 게 더 키젠틱하지 않을까요?"

"자, 자. 개학식 때 아론 교수님이 테마는 다소 극단적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잖아? 즉, 키젠이 점찍어놓은 우수한 학생들도 떨어질 수 있단 거야. 저번 1차 시험 때는 그 리콘인가 뭔가 사령학 90점 맞은 B반 에이스도 떨어졌잖아."

"변수가 너무 크단 거네."

시몬이 맞장구쳐 주자 딕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뭣보다 학교에서 내는 시험의 목적은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그 자체보다, 학생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성향이 짙어. 지금 나와 있는 정보대로 던전 탐험이랑 함정 피하기가 맞을 거야!"

"그래서."

시몬이 딕의 차림을 지적했다.

"그 옷차림은 뭔데?"

딕은 치렁치렁한 황금 목걸이를 목에 걸고, 열 개의 손가락에 패션용 아공간 반지를 꼈으며, 교복 위에는 최신 디자이너가 개발한 화려한 상의를 두르고 있었다.

딕이 '음흐흐흐!' 하고 음침한 웃음소리를 냈다.

"요새 돈 좀 만져서 기분 좀 냈지!"

"돈 좀 만지다니?"

"정보를 알아내자마자 트레져 헌터 서적 싹 다 사들여서 권당 1골드에 팔았어."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펄쩍 뛰었다.

"야! 뭔데 그 미친 폭리는!"

"딕! 1골드는 너무해요!"

"폭리가 아니라 센스지. 센스. 지들이 산다는데 누가 말려? 1골드에 팔았더니 어떤 놈들은 3골드에 되파는 경우도 있더라."

"돈 버는 건 좋은데."

시몬이 다소 걱정스럽게 딕을 보며 말했다.

"정작 니가 시험에 떨어져 버리면 다 소용없는 거 알지?"

"......음?"

거기까진 생각 못 했다는 듯 딕이 손뼉을 탁 쳤다.

메이린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시몬 학생!"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나름 익숙한 얼굴의 소환학 조교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론 교수님께서 지금 바로 찾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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