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33화
시몬은 열린 철장을 지나 던전의 초입부로 이동했다.
얼마 안 가 길쭉하고 폭이 좁은 통로가 나왔다.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도 없고, 칠흑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만 코를 찌를 뿐.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멀리 떨어진 곳은 보이지 않았지만, 근처의 사물은 잘 보였다.
시몬은 신중하게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투웅.
저 멀리서 발사음 같은 게 들린다. 시몬은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응시했다.
날아오고 있는 것은 새하얀 화살이었다.
'신성화살?'
그때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통의 신성화살과는 위력이 다르다. 막지 말고 피해!]
피어가 시키는 대로 고개를 꺾었다.
순백의 섬광이 바로 눈 옆을 지나간다. 화살촉에서부터 꼬리 부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이내 시몬을 지나친 화살이 뒤쪽 벽에 틀어박혔다. 벽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걸 보니 상당한 위력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네요.'
[크흐흐흐! 감이 왔다면 시원하게 들어가라!]
시몬이 씩 웃으며 정면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퉁. 퉁. 퉁. 세 발의 발사음이 들린다.
'첫발은 아까와 동일!'
고개를 젖혀서 상단으로 화살을 피하고, 즉시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중간으로 오는 화살을 피해냈다. 마지막으로 오는 하단의 화살은 다리를 들어 피했다.
다시 자세를 바로잡은 시몬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함정을 밟지도 않았는데 그냥 날아오네. 함정 해체랑은 관련 없는 시험인가?'
시몬이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내딛기 무섭게, 바닥에서 철컥 하고 함정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칠흑을 밟고 날아올랐다.
방금 밟은 바닥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금속 창 한 뭉치. 창끝에는 보랏빛 액체가 발라져 있었다.
[마비독이군! 찔리면 1분 내에 움직임이 굳어지고, 화살에 당하게 되는 함정이야!]
'키젠 교복도 없으니까, 스쳐도 안 되겠네요.'
공중에 떠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바닥으로 내려오는 시몬의 몸을 좌우의 벽이 감지한 듯 불빛이 점멸하더니, 곧바로 마법진이 펼쳐졌다.
'큭!'
여기서 또 함정을 밟을 수는 없다.
시몬은 침착하게 아공간을 열고, 이번에 새로 구매한 장창을 꺼냈다. 그것을 바닥에 박고 장대 넘기 하듯 훌쩍 뛰어 넘어가자 좌우의 벽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화르르르륵!
후끈한 열감에 얼굴이 따가웠다. 시몬이 땀을 줄줄 흘리며 바닥에 내려오기 무섭게.
티딕. 틱.
밟고 있는 블록이 움푹 들어갔다.
'대체 함정이 얼마나 많은 거야?'
시몬은 쉴 틈 없이 내달렸다. 바닥에서는 장창이 튀어나오고 전면에는 계속 화살이 날아왔다.
티딕.
틱.
티디딕.
틱.
달릴 때마다 함정을 밟는다. 안전한 블록보다 함정을 작동시키는 블록이 더 많았다.
이렇게 되면.
'규칙성을 찾을 시간에 그냥 다 피해 버리는 게 빨라!'
시몬이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날아오고 솟구치는 함정들을 요리조리 자유자재로 피해 다녔다.
[소년! 위다!]
시몬이 즉시 오징어처럼 몸을 바닥에 딱 붙였다. 후우우웅! 하고 살벌하게 공기를 가르는 가시 박힌 통나무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통나무가 시계추 방향으로 끝까지 도달했을 때, 시몬은 급히 몸을 일으키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티딕.
틱.
티딕.
함정이 연달아 작동된다.
'윽, 이거 너무 빡센 거 아냐?'
시몬은 무아지경으로 날아오는 신성화살들을 피했다.
이제는 몸에 닿으면 함정이 작동하는 붉은 선들을 넘어가고 있는데, 다리 쪽에 선이 닿고 말았다.
치이이이이익!
천장에서 독의 안개가 분사되며 주위를 뿌옇게 만들었다.
시몬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맹독학 시간에서 배운 마스크 마법진을 펼쳐 입에 댄 다음, 아공간에서 평평한 솜을 꺼내 안개에 댔다. 솜에서 독성분이 묻어나오며 갈색으로 변색됐다.
'레드 머쉬룸의 포자독. 해독제는 명하초.'
맹독학 시간에 교과서에서 질리도록 배운 독이다.
명하초도 실습용으로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기에, 시몬은 즉시 아공간에서 포션병 두 개를 꺼냈다.
'피어! 해독제를 조제해야 하니 앞 좀 대신 봐주세요!'
[알았다!]
시몬은 이제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와 피어의 설명만 듣고 척척 피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제자리에서 계속 화살을 피하면서 포션병을 바닥에 놓았다. 이내 명하초에 수용액을 붓고 그것을 그대로 입으로 들이켠 시몬이, 마스크 마법진을 해제하고 성큼성큼 독안개 안으로 들어갔다.
목이랑 피부가 따끔따끔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크흐흐! 맹독학 시간에 졸기만 한 건 아니군!]
'그럼요.'
수업에 배운 걸 써먹는 시간이 가장 좋다.
동시에, 만약 별야의 독 먹기 수업을 전부 마스터하면, 이런 레드 머쉬룸의 독 정도야 해독제 조제 없이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다 왔다!'
이제 시야에 다음 관문으로 갈 수 있는 붉은 버튼이 보였다.
마지막까지 방심 없이, 한 대도 안 맞고 도착하고 싶었다.
시몬은 아공간에서 스켈레톤 두 기를 꺼냈다. 스켈레톤들이 분해되어 시몬의 두 다리에 달라붙으며 '본 부츠' 형태로 변했다.
'자, 한 타임 쉬고.'
화살이 한번 날아오길 기다렸다가, 그것을 피하는 즉시 칠흑을 밟고 돌진했다.
벽에서 함정이 걸렸음을 표시하는 섬광이 번쩍이고, 바닥에도 틱틱 소리를 내며 함정이 작동한다.
시몬은 계속 달렸다. 마지막엔 난이도가 확 뛴 듯, 위험천만한 신성의 칼날들이 정신없이 발사됐지만 시몬은 신성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지켜보고 있을 사람들이 눈치채면 안 되니까 차분하게 궤적을 보며 피해가고 있는데, 갑자기 전면으로 바닥이 불쑥 올라와 벽이 만들어졌다.
쿠구구구구구!
앞은 벽으로 막히고 뒤에서는 엄청난 진동과 함께 뭔가가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틀림없이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함정이었다.
[크하하! 빨리 안 가면 짜부라진다!]
시몬은 벽 앞에서 몸을 한 바퀴 회전하고는 본 부츠의 힘까지 더해 회축으로 벽을 때려 갈겼다.
쩌어어어어엉!
벽이 간단히 산산조각 나고 그 틈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앞에 불 함정이다!]
"넵!"
시몬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불함정을 피하며 바닥에 손을 짚고 두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상태에서 발을 앞으로 차올리듯 하자, 시몬의 발을 감싼 본 부츠가 스켈레톤 형태로 변해서 달렸다.
버튼과의 거리 10M.
바로 여기서.
'베어라!'
시몬의 절대명령이 떨어졌다. 두 스켈레톤들이 '대쉬'를 사용해 단번에 함정들을 돌파하더니 버튼을 검으로 찔렀다.
키이이이잉-
모든 함정이 무력화되는 게 느껴진다. 벽 너머로 굴러떨어지고 있던 바위도 내부의 폭약이 작동됐는지 터져서 산산조각 난다.
시몬은 바닥을 짚고 일어나 숨을 토해냈다.
드드드드드득!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다음 단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있었다.
* * *
"와아아아아!!"
시몬의 활약을 목격한 관중들이 열렬하게 환호했다.
다른 학생들은 날아오는 신성화살에 겁을 먹어 주춤거리거나, 조심조심 함정의 규칙을 간파하고 오느라 시간이 걸리는 와중에, 특례 1번 학생이라는 소년이 냅다 함정을 다 밟으면서 통과하는 장면은 상당한 임팩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쟤! 쟤! 내가 아끼는 친구야!"
일일 해설위원인 별야도 테이블을 탕탕 치며 소리쳤다.
분량을 뽑아낼 기회에 사회자가 얼른 말을 받았다.
"아까 즉석에서 해독제를 만들어낸 것도 그렇고! 맹독학 공부를 잘하나 봅니다!"
"푸핫! 그럴 리가! 저 새끼 중간고사 맹독학 60점이던데? 공부 쪽은 걍 꼴통이야 꼴통!"
별야가 깔깔 웃어대자 사회자도 유쾌하게 따라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맹독학 교수님께서는 시몬 학생의 어떤 면을 좋게 보셨습니까!"
"첨엔 나도 뭐, 걍 특례 1번이라는 타이틀 보고 직속제자로 꼬셔보려고 한 건데. 갈수록 맘에 들어. 나랑 비슷한 과야."
너랑?
이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올 뻔한 사회자였지만 프로답게 참아내고는 말했다.
"저 차분해 보이는 소년이 말입니까?"
"그럼! 아아주 야생적인 감각이 있어! 특히 뭣보다!"
별야가 삼각형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X나 개성적이잖아!"
* * *
시몬은 바로 2단계 시험에도 도전했다.
1단계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업그레이드됐다. 길목이 더 크고 넓어졌으며, 대신 함정의 가짓수도 늘었다.
무엇보다 함정을 밟으면 발동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규칙성 없이 펑펑 작동하며 날아왔다.
신성화살과, 바닥에서 솟구치는 창, 벽에서 발사되는 불.
거기에 더해 신성 채찍이 마구 휘몰아치고, 신성창이 천장에서 떨어졌으며 가끔은 '엑소시즘'까지 발동되었다.
'여기서도 신성이라니.'
이런 시험에서까지 굳이 네크로맨서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키젠의 악랄함에 시몬은 혀를 내둘렀다.
미친 듯이 몸을 구르고, 풍차돌리기를 하고, 천장을 타고 달렸다. 한번 들어가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신성에 맞아 아픈 척하는 것도 일이었다.
시몬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신성화살을 피해 돌진할 때, 몇 발이 몸에 박히는 모습을 영상으로 목격한 관중들은 실시간으로 안타까운 탄성을 토해냈다.
동시에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시몬에게 칭찬을 쏟아냈지만, 사실 시몬은 그냥 멀쩡한 거였다.
"허억, 허억."
결국 다 통과해 냈다. 쉬지를 못하다 보니 오히려 1단계보다 더 빠르게 넘어왔다.
'......윽, 진짜 화살도 있었네.'
가끔 화살에 신성이 입혀진 채 날아오는 종류도 있었다. 이쪽은 입술이 달달 떨릴 만큼 아팠다.
시몬은 눈을 질끈 감고 허벅지에 깊게 틀어박혀 있는 화살을 붙잡았다.
"흐읍!"
그러고는 힘을 주었다. 허벅지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며 불타는 듯한 격통이 범람했다.
"아으윽!"
생각보다 훨씬 깊게 박혔다. 통증이 허벅지 전체로 퍼져 나가며 다리 한쪽이 활활 불타는 것 같았다.
결국 시몬이 한번 손을 놓고는 숨을 헐떡였다.
진짜로 눈가에 눈물이 맺힐 만큼 고통스러웠다. 화살에 박히는 것보다 뽑는 게 더 아플 줄은 몰랐다.
[그걸 힘으로 뽑으려고 하니 당연히 안 되지!]
피어가 핀잔을 주었다.
[칠흑 인챈트는 쓸 수 있겠지?]
'아, 넵. 딕만큼은 못해도 기본 정도는요.'
[칠흑을 소량 투여해서 화살의 겉면만 칠흑으로 코팅한 채 뽑아내라.]
시몬은 피어가 시킨 그대로 했다. 정말로 칠흑으로 코팅하자 쑥 하고 뽑혔다.
포션을 그 위에 부어서 치료했다. 절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쨍그랑.
시험만 아니라면 신성을 써서 말끔히 치료할 수 있을 텐데, 시몬은 아쉬움을 삼키며 회복 포션 한 병을 더 꺼내 부었다.
이제야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시몬이 벽이 열린 틈으로 보이는 다음 난관을 응시했다.
3단계는 전보다 더 통로가 커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매끄럽기만 했다. 벽돌도 벽도 모두 매끄러운 재질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통로의 가장 끝에 보이는 빨간 버저.
하지만 함정을 설치할 만한 그런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시몬은 우선 아공간에서 스켈레톤 두 기를 꺼내서 먼저 앞으로 보내보았다. 스켈레톤들은 긴장감 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몇 걸음 가지 않아.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천장에서 무수한 무기들이 튀어나왔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무기 더미에 스켈레톤의 몸뚱이는 순식간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크하하! 이번엔 진짜로 장난 없군!]
'그러게요.'
시몬은 긴장한 얼굴로 아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꺼낸 건 골렘의 핵이었다. 핵을 바닥에 내려놓은 시몬이 팔을 걷어붙였다.
'어쩔 수 없죠. 지금 여기서 블러드 골렘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