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36화
-케에에엑!
-쿠룩!
소란을 들은 코볼트 떼가 괴성을 토해내며 새까맣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집중력을 끌어올린 시몬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마치 총탄이 장전되는 것처럼, 에메랄드빛 망토를 휘날리는 스켈레톤들이 무릎을 굽혔다.
츠팟!
친위대들이 청록의 궤적을 그리며 쏘아져 나간다. 대쉬 한 번으로 선두의 목을 치고, 허리를 움직여 두 번째의 목을 날린다.
일격에 일살. 등 뒤의 에메랄드빛 망토가 휘날릴 때마다 몬스터들의 목이 텅텅 떨어져 나간다. 도저히 뻣뻣한 스켈레톤이라고 볼 수 없는 유연하고 세련된 검술이었다.
[소년! 4시 방향에서 코볼트 무리가 온다!]
피어의 목소리에 시몬의 시선이 돌아갔다.
스켈레톤 아처들이 활시위에 세 발의 화살을 장전하더니 그대로 대쉬, 코볼트의 코앞에서 활시위를 당겨 세 마리씩을 동시에 맞춰 쓰러트린다.
-케에에에!
다른 코볼트들이 날아와 망치와 쇠붙이를 휘두르지만 스켈레톤 아처들은 다시 대쉬로 빠져나오며 장전. 아처에 닿기 전에 모든 코볼트들이 화살에 맞아 무너져 내린다.
시몬은 그저 앞으로 걸을 뿐이었다. 그 주위를 친위대들이 현란한 청녹색 궤적을 그리며 호위했다.
멀리서 보면 청록의 섬광이 방어막처럼 시몬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코볼트를 23기의 스켈레톤만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키젠 교정에서 화면으로 지켜보는 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단해!"
"저 스켈레톤은 대체 뭐야?"
"스켈레톤에 흑마법을 입혔어!"
관중들의 흥분한 외침이 섬을 뒤덮었다.
누구도 다른 학생들의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두 팔을 번쩍 세우며 시몬의 이름을 연호했다. 시몬에게 돈을 걸었던 관중들은 거의 신이라도 영접한 듯 뒤집어질 기세였다.
"역시 특례 1번은 다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극도로 흥분한 사회자는 좀처럼 자리에 앉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다들 보셨습니까? 스켈레톤들에게 블러드 골렘의 힘을 내려받게 했습니다!! 23기의 언데드 동시 운용! 게다가 더 강해졌습니다! 세상에 이런 또 소환술사가 있었던가요!"
"뭐, 난 놈은 난 놈이야."
별야가 팔짱을 끼며 낄낄 웃었다.
"교수님! 1학년 학생이 23기의 언데드를 동시 운용하는 게 가능한가요?"
"어지간해선 힘들다고 봐야지. 근데 저건 일반적인 사념으로 컨트롤하는 게 아냐."
별야가 손에 깍지를 끼고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난 지금까지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강자들이랑 싸웠어. 근데 블러드 골렘의 피를 스켈레톤에게 뒤집어씌우니까 더 강해진다고? 저딴 능력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친위대들은 지치지도 않고 검을 휘둘러댔다. 시몬이 가는 길마다 시체가 쌓여갔다.
하지만 성배에 가까이 갈수록 코볼트 외에 다른 몬스터도 나타났다.
그림맨더. 코볼트들이 기르는 중형 몬스터였다. 마치 파충류와 침팬지를 섞어놓은 듯한 외형에, 온몸이 단단해 보이는 비늘로 덮여 있었다.
화륵!
놈의 배가 붉은빛으로 물들더니 쩍 벌어진 입에서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시몬은 일체의 회피나 방어 동작 없이 가던 길 그대로 앞으로 걷기만 했다. 그의 앞으로 두 기의 친위대가 뛰어 들어왔다.
스릉!
청록색의 검격이 X자로 그어지며, 불꽃이 그대로 베여 사라져 버렸다.
스으.
시몬이 손가락을 뻗었다. 아공간에서 좀비들 두 기가 튀어나오자, 또 다른 친위대 두 기가 달려와 좀비들을 안고 대쉬를 시전했다.
순식간에 먼 거리를 이동한 스켈레톤들이 좀비들을 던졌다.
좀비들이 괴물에게 철썩 달라붙어 이빨로 물어뜯었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몬이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체폭발>
꽈아아아아아앙!
커다란 두 개의 폭발이 일어나며 비늘로 덮인 괴물의 육중한 몸이 쓰러져 내린다. 이 모든 컨트롤이 채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까다로운 몬스터까지 간단히 정리! 정말 대단합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위로 사회자가 열변을 토했다.
"스켈레톤과 좀비의 조합! 게다가 마무리는 그 유명한 시체폭발이었습니다! 언데드 컨트롤의 극의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게 정말 1학년의 수준입니까?!"
"얌마! 안 보여! 화면 가리지 마!"
자리에서 일어나 짜증스럽게 소리치던 별야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오, 이번 건 꽤 벅차겠는데?"
"네? 아아!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방금의 시체폭발로 소란이 끌렸는지, 코볼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녹색의 괴물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이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이자 코볼트를 잡아먹는 괴물! 팀버 트롤입니다!"
대형 몬스터인 데다가, 위험도 4급 몬스터인 팀버 트롤이 친위대의 공격을 무시하며 곧장 시몬에게로 달려들었다.
트롤이 흉기나 다름없는 거대한 팔을 휘둘렀고, 시몬은 오버로드를 꺼냈다.
좌우에서 두 개의 촉수칼날이 올라왔다.
쩌엉!
두 개의 촉수칼날이 공격을 받아내며 움츠러든 사이, 다른 세 개의 칼날이 팀버트롤의 목과 다리를 베고 지나갔다. 그러나 몸에 살짝 베인 상처만 생겼을 뿐, 트롤은 멀쩡했다.
"아! 역시 단단합니다! 시몬 학생이 자랑하는 최고의 소환수로도 못 베는 피부 강도!"
"저건 키젠에서 피해가라고 넣은 거야."
시몬은 침착하게 자신의 등 뒤로 칼날을 하나 더 꺼내고는 손바닥을 올렸다.
근처에서 대기하던 두 기의 친위대가 바닥에 무너져 내리며, 그 클라우드가 날아와 오버로드의 칼날에 코팅되었다.
은빛의 칼날이 선명한 에메랄드빛으로 변했다.
<플랑 블레이드>
칼날이 청록의 궤적으로 휘둘러졌고.
쩍!
하늘 높이 팀버 트롤의 목이 날아올랐다. 관중석 곳곳에서 기겁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일격! 일격에 팀버 트롤을 해치웠습니다! 저런 사용방식까지 있다니!"
모두가 시몬의 활약을 보고 열광하는 가운데, 방송 하수인이 사회자에게 급박하게 끊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회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시몬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는 공정하게 최대한 많은 학생의 활약을 담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럼 이제 다음 학생들도 보겠습니다! 넵! 헥토르 무어 학생의 활약이로군요!"
메인 스크린에 다른 학생이 뜨자 몇몇 관중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우우 야유했다.
사회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중계를 이어나갔다.
'......쓰으읍! 여보, 넬리야.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돈 번다 진짜.'
* * *
"허억! 후우!"
시몬이 연신 거친 숨을 헐떡였다. 시야가 꿀렁거리고 정신력도 바닥이다.
역시 '친위대'는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는 기술이었다.
[크흐흐! 너무 성대하게 날뛰었다! 성배만 부수고 튀는 스타일로 가야 했는데, 지금 베어버린 코볼트만 100기가 다 될 지경이야!]
'그러네요.'
저 멀리 언덕 위에 성배가 보인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코볼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수는 거의 수백 기가 넘었다.
23기, 이제는 21기가 된 친위대만으로 다 뚫고 들어가기에는 정신력이 못 버틴다.
오늘 하루만 벌써 세 번째 느끼는 벽. 시몬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정신력을 힘겹게 유지했다.
이대로는 내가 먼저 힘이 다한다.
'여기까지 왔으면 거리는 충분해. 성배를 한 번에 치자.'
시몬이 떨리는 오른팔을 하늘 위로 세웠다.
우우우웅!
처음에 블러드 골렘의 클라우드를 빨아들였던, 바로 그 마법진이 다시 펼쳐졌다.
친위대를 움직이던 모든 클라우드가 마법진으로 빨려 들어가며, 언데드들은 일반 형태로 되돌아왔다.
'이게 마지막이야.'
마법진을 손바닥에 붙인 시몬이 칠흑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앞으로도 그런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하도록 하세요. 물론 이건 키젠 교수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머릿속에서 바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 성장에 따라 위력을 증강시켜 줄 수식을 넣을 여지도 남겨두셨다. 이 남은 부분을 채워 넣는 건 이제 네 몫이겠지.
아론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 목소리들이 마치 등을 떠미는 것 같다.
바라던 바다. 시몬은 공중에서 추가 수식을 새겨넣고 작동시켰다.
까드드드득!
원래 클라우드의 피와 칠흑의 비율은 6:4 정도.
그 비율을 크게 비틀었다.
'여기서 클라우드를 깨버린다!'
안 그래도 시몬이 한번 비틀었던 클라우드의 피와 칠흑 비율이 마법진 속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시몬은 그것을 가지고 저 멀리 떨어진 성배를 향해 겨누었다.
화아아아악!
찬란한 에메랄드 빛깔의 힘이, 다시 칠흑색으로 변하며 하늘을 어둡게 물들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클라우드를 배우기 전에 SM-1은 원래 칠흑을 증식하는 효과였다.
마탄 사격장에서 처음 혈류탄을 쐈던 그 효과.
바로 그걸.
'지금 여기서 재현한다!'
클라우드를 뭉개면 혈류탄 효과를 내는 거대한 폭탄으로 변한다.
시몬은 그 폭탄을 화살로 바꾸어 칠흑의 시위에 걸고 당겼다.
<리메이크 - 블러드 에로우>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발사음과 함께, 새까만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발사만으로 후폭풍이 일어나며 시몬의 몸이 공중에서 몇 미터나 날아갔다. 검푸른 마력이 시몬의 피를 잡아먹고 점점 더 덩치를 부풀린다.
그리고 정확히.
퍽!
성배를 박살 내며 바닥에 틀어박히며 대폭발을 일으킨다. 밀집해 있던 몬스터들이 하늘 높이 날아가고, 화력은 탄착점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몇백 미터나 뻗어 나갔다.
아득해지는 시야로, 메모라이즈 마법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4단계 시험을 클리어했습니다.
-시험을 종료합니다.
텔레포트가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며, 시몬은 정신을 잃었다.
* * *
"......!"
세상모르고 기절해 있던 시몬이 눈을 번쩍 떴다.
병실이었다. 그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관이 몸 곳곳에 꽂혀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체육복이 보였고 병실 끝의 마나 스크린에서는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끝났구나. 요즘 병원 신세 많이 지네.'
시몬이 안도하며 고개를 돌렸다.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걸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피어?"
대답이 없다.
혹시 여기로 넘어오다가 옷에서 피어의 분신이 떨어지거나 한 건 아닐까?
놀란 시몬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꿈틀 꿈틀.
갑자기 하얀 이불 속에서 불룩한 뭔가가 보였다. 그것은 애벌레처럼 빨빨거리며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왓!"
시몬이 기겁하며 물러나려는데 갑자기 이불이 걷히며 작은 소녀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안뇽!"
"네프티스 님!"
"또 쓰러졌다길래 걱정돼서 와봤어!"
그녀는 입에 뭔가를 질겅질겅 물고 있었다.
그게 뭔지 알아본 시몬은 식겁했다. 배지 모양을 한 피어의 분신이었다.
그녀가 이빨로 쿡쿡 깨물어 보더니 입에서 뺐다. 온통 침이 흥건했다.
"우이씨, 맛없어."
그녀가 시몬의 품으로 배지를 휙 던졌다.
시몬의 몸에 닿자마자 피어의 질색하는 외침이 머릿속에서 쏟아졌다.
[죽여 버린다! 죽여 버리겠다! 저 여자가 감히이이!]
'......하하.'
"일단 인사부터 해야겠지?"
네프티스가 입가를 슥 닦고는 생긋 웃어 보였다.
"시험 합격 축하해 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