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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39화 (23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39화

갑자기 스케일이 커져 버렸다.

적당히 로체스트 시내에서 쇼핑할 줄 알았는데, 세르네는 이미 값비싼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녀의 재촉에 시몬이 마법진을 밟자, 난데없이 랭거스틴 시내가 눈앞에 펼쳐졌다.

"빨리 와요~!"

세르네가 옷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아니, 잠깐만. 보고도 없이 로크섬 밖으로 외출하는 건 중대한 학칙위반 아냐?"

"맨날 담장 넘어서 금지된 숲에 가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고 봐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빙글 돌아 무릎을 굽히더니 시몬의 셔츠에 매달린 피어의 분신을 보았다.

"그쪽도 오랜만이네요. 잘 있었어요?"

겉으로 보기엔 그냥 해골 장식품이었다.

그녀가 피어의 분신을 장난스럽게 툭툭 건들자, 시몬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외침을 여과 없이 말했다.

"죽여 버리겠대."

"무서우셔라."

장난을 그만두고 등을 돌린 그녀가 뒷짐을 지며 말했다.

"자, 가요! 일단 쇼핑단지 쪽부터 한번 들러볼까요?"

* * *

시몬으로부터 몇백 미터 떨어진 건물의 옥상.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마나 망원경을 든 남자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두 사람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타깃 이동 확인. 햄턴로드 쪽으로 이동 중."

"알겠다."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옥상에서 팟! 하고 검붉은 섬광이 한 차례 점멸했다.

이내 어두운 톤의 롱코트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 흑발의 소녀가 타닥. 하고 허공에서 내려왔다.

처억.

척.

남자들이 소녀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로레인 아가씨."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네는요?"

"시몬 학생과 함께 햄턴로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로레인이 손바닥을 내밀자, 남자는 공손한 자세로 마나 망원경을 건넸다. 그녀가 한 다리를 옥상 난간에 올려놓고는 망원경을 조절했다.

저 멀리서 세르네와 시몬이 꽁냥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세르네 아인다르크. 이번엔 무슨 음모를 꾸미는 거지?'

키젠의 입장에서, 세르네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반칙과도 같은 정신지배 능력은 시험에서 다른 학생들의 순위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최근에는 상아탑에서 점 찍은 학생들을 일부러 그녀가 방해해 키젠에서 떨어뜨린 뒤, 낙심한 그들을 바로 상아탑이 스카웃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의혹은 의혹일 뿐,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세르네는 여우처럼 영리했고, 증거가 남지 않도록 용의주도하게 행동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녀의 연출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녀는 단편적인 기억까지 지워 버리는 것마저 가능했으니까.

'그렇다고 어른들이 간섭하기에도 애매해.'

세르네는 다른 학생들과 같은 17살의 키젠 1학년이었고, 실력 지상주의인 키젠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정당한 시험을 치르고 있는 거였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다른 꼬투리를 잡아 그녀를 퇴학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키젠의 상층부는 세르네의 퇴학을 원하지 않았다. 내부 파벌 간의 정치적인 이유도 있고, 상아탑의 후계자를 볼모로 잡은 이 포지션을 굳이 포기하는 건 결국 세르네와 상아탑만 좋은 일 시키는 거였다.

세르네가 돌아가 버리면 본격적으로 상아탑이 키젠을 적대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현재 로레인이 맡은 임무는 세르네를 막는 것.

애들 문제에 어른이 간섭했다가 큰 분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같은 1학년 학생인 로레인이 움직이는 게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 방법이었다.

'딱 결정적인 증거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로레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상황은, 세르네의 악행을 찾아내서 공론화하고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그녀를 퇴학시키는 동시에 상아탑에 핸디캡을 먹일 수 있다. 키젠의 법률대로 그녀를 가두는 것도 가능했다.

바로 오늘, 그 기회가 왔다.

세르네는 간 크게도 특례 1번인 시몬에게 접근했다.

'상아탑에서 시몬을 원하는 게 틀림없네.'

미안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얍."

세르네가 이상한 기합을 내지르며 시몬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시몬이 움찔 놀라며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과감하게 밀착해 왔다.

"잠깐만, 세르네."

시몬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녀는 순진무구한 소녀처럼 눈을 깜빡거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친한 척해주시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이 정도로 딱 붙는 건 아니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아, 솜사탕!"

세르네는 대답 대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노점을 가리켰다.

"저 단 거 먹고 싶어요!"

"......."

그 말이 무섭게 주머니가 철렁하며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시몬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자 동전 몇 개가 잡혔다.

의문이 들었다. 이게 다 연기인 건 알겠는데, 왜 굳이 이런 연기를 해야 하는 걸까.

속으로 한숨을 쉰 시몬이 노점 쪽으로 걸어가서 솜사탕 두 개를 주문했다.

"어머, 이럴 땐 하나 사서 나눠 먹는 게 보통 아니에요?"

"아니야."

노점 주인이 껄껄 웃으며 솜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들이 참 보기 좋아. 커플이지?"

"네!"

세르네가 즉시 대답하며 시몬의 옆에 착 붙었다. 시몬이 떨어지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지만 이번에도 무시당했다.

"거, 청년이 아가씨 좀 잘 챙겨줘. 예쁘장한 아가씨가 저렇게 좋다고 붙어주는데 본 척도 않으면 쓰나."

"오호호! 괜찮아요~ 아직 쑥스러움이 많아서 그래요!"

아주 장단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팔랑거리며 날아온 깃털 하나가 시몬의 몸에 달라붙었다.

-들리죠? 들리면 눈동자만 두 번 깜빡.

시몬이 그 말대로 눈동자를 깜빡였다.

-티는 내지 말고 힐긋 봐요. 여기서 오른쪽으로 두 블록 지나 보이는 남자, 그 사람 말고 까만 파란 옷 입은 남자요. 네, 그 사람.

-그리고 그 남자 바로 위, 2층 유리 난간에 기댄 사람. 네. 두 사람 전부 상아탑 쪽 사람이에요. 방금 막 미행 붙었어요.

미행이라니!

시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는 방금 막 만들어진 솜사탕을 세르네에게 먼저 건네며 투정부리듯 말했다.

"집착이 너무 심해서 그래. 어딜 가도 감시하려고 하니까 피곤하잖아."

솜사탕을 받은 그녀가 빙긋 웃었다.

-맞아요. 우리 지금 저 사람들한테 '감시'당하는 거.

깃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녀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약간의 집착은 건강한 애정의 증거가 아닐까요? 그쵸? 아저씨."

"그럼 그럼."

두 번째 솜사탕을 시몬의 손에 건네준 노점 상인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애정이 있을 때 잘해주는 게 중요해. 나도 종종 후회하거든. 이젠 돈도 제대로 못 벌어온다고 마누라가 매일 잔소리를......."

'정말 죄송하지만 별로 관심 없습니다.'

시몬은 남의 난처한 가정사를 한 귀로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세르네는 상아탑의 공식 후계자다. 왜 상아탑 사람들에게 감시를 당한다는 거지? 그리고 왜 감시를 당하니까 나랑 친한 척을 해야 하는 거고?

시몬이 그런 의문을 담아 세르네를 노려보았다.

-실은 상아탑의 어르신들이 제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거든요.

상아탑 내부에는 두 가지 파벌이 있다.

세르네와 현 상아탑주를 포함한, 키젠으로부터 독립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전통적 가치관을 중시하는 파벌.

그리고 메이린과 그녀의 가족들을 포함해, 변화한 시대에 발맞추어 조화를 중시하고 키젠과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의 파벌이다.

여기까지는 시몬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문제는 세르네 쪽의 파벌이었다.

원래는 시몬을 죽이고 자기들이 군단을 차지할 계획이었지만, 세르네가 자신의 전권으로 시몬 암살을 무기한 보류시키고, 본인이 직접 시몬을 설득하겠다고 나온 상태였다.

그러나 통합 2학기가 시작되고 슬슬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례 1번인 시몬의 대외적 인기가 커지면서 암살할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과, 암살을 보류한 세르네는 정작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세르네는 보란 듯이 시몬을 데리고 랭거스틴으로 나와, 상아탑의 사람들 앞에서 친근한 모습을 과시하는 거였다.

-시몬. 당신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깃털로 말하며, 세르네가 솜사탕을 한입 베어 먹었다.

-당신에게 우호적인 제게 힘을 실어주세요. 굳이 상아탑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잖아요?

확실히 그 말은 맞다.

매그너스 하나만으로 부담돼 죽겠는데, 굳이 상아탑까지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

"궁금한 게 있어."

시몬이 입을 열었다.

"왜 날 돕는 거야?"

왜 네가 상아탑 내부에서 내 편을 들어주는 거지? 시몬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글쎄요~"

-당신은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처음에 세르네는 누가 군단장이 되든 상관없었다. 상아탑이 군단장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시몬의 설득에 실패하면 그를 키젠에서 퇴학시킨 뒤에 없앨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겪고, 바로 앞에서 시몬의 활약을 목격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상아탑의 누가 시몬만큼 완벽하게 군단의 힘을 다룰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군단이 아니라, 군단을 다스리는 '사람', 그 자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욕심이 났고, 군단은 물론 시몬까지 상아탑에 데려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해두지만 난 네 관심에 보답할 수 없을지도 몰라."

당장 상아탑에 갈 생각은 절대 없고, 졸업 후에도 들어갈 거라 약속해 줄 수도 없다.

"그래도 지금은, 제가 가장 가까운 게 맞잖아요? 그거면 충분해요."

지금 당장 2년 후의 시몬 영입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게 상아탑인 건 사실이다. 지금은 그걸로도 충분하다.

설명을 들은 시몬의 표정이 비로소 개운해졌다.

'이제야 상황이 확실히 이해되네.'

세르네가 하는 행동의 본질은 어른들에게 보여주기식 연기. 즉, 정치다.

히히히힝!

그때 시몬의 시선이 움직였다. 옆의 마차 도로에서 말이 벌레라도 붙은 건지 흥분하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기왕 연기할 거면 제대로 하기로 했다. 시몬이 세르네의 어깨를 끌어안고는 옆으로 끌어당기며 자신의 등으로 보호하듯 감쌌다.

"??"

천하의 세르네도 놀랐는지 눈을 끔뻑였다.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인도에 조금 침입했다가 간신히 방향을 틀었다.

미행자 쪽을 확인한 시몬이 상냥하게 말했다.

"괜찮아?"

"......."

세르네의 양 볼이 희미하게 붉어졌다가,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좀 레이디를 에스코트를 해줄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부터 그러고 있었는데."

시몬이 마차 도로 쪽으로 나와서 걸으며 말했다.

그녀가 쿡쿡 웃으며 얼른 옆으로 붙었다.

* * *

건물 옥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로레인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진짜 별거 다 하네.'

팔에 들러붙고, 솜사탕 나눠 먹고, 시몬이 차도로 걸어주고, 아주 무슨 연인처럼 행세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몬이 저럴 성격은 아냐. 정신지배에 당한 게 틀림없어.'

로레인이 시몬의 몸에 꽂힌 깃털을 찾으러 망원경을 더 확대했지만 찾지 못했다. 아마 옷 속에 깃털이 숨겨져 있으리라.

'.......'

두 사람이 꽁냥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니 로레인은 기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저런 꼴사나운 방식으로 시몬을 상아탑에 빼앗길 순 없었다.

그는 키젠의 소중한 전력이고, 키젠에 졸업한 뒤에도 자신을 따라 키젠에 남아줬으면 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시몬의 선택에 달린 문제지만, 세르네의 저런 방식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사이좋게 걸으며 솜사탕을 먹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 못한 로레인이 망원경을 눈에서 뗐다.

"지금 바로 난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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