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46화
쿵! 쿵! 쿵! 쿵!
블러드 골렘이 자욱한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기동요새처럼 돌진해 왔다.
이에 맞서는 안드레의 소환수, 엔시페르의 대검이 연신 골렘의 몸뚱이를 강타했지만 골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휘두른 팔에 대검이 튕겨 나가기도 했다.
'엔시페르가 힘에서 밀리다니......!'
안드레가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1학년이 3학년들의 기술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시몬의 블러드 골렘은 완전체는 아니었다. 몸이 흘러내리는 건 물론, 크기도 진짜 블러드 골렘에 비해서는 작았다.
'그래, 그냥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뿐이야. 초조해할 필요 없어.'
각오를 다잡은 안드레가 팔을 거칠게 아래로 내렸다.
부아앙!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내리쳐진 엔시페르의 대검이 돌진하는 블러드 골렘의 어깨를 깊게 파고들어 갔다.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시몬의 어깨에도 피가 튀었다.
'짝퉁이지만 꼴에 라이프링크 효과까지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안드레는 즉시 마법진을 시전해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블러드 골렘이 바로 앞까지 도달하는 순간, 그것을 발동시켰다.
<솔루티오>
마법진을 밟은 블러드 골렘의 하반신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솔루티오는 물체를 용해시키는 저주였다.
'네놈의 어설픈 가짜 블러드 골렘에겐 이게 적격이겠지!'
블러드 골렘의 발이 녹아서 바닥에 멈춰 있자 엔시페르가 기다렸다는 듯 대검을 휘둘러 댔다. 골렘의 몸에 연달아 상처가 생겼다.
그와 동시에.
푸슛! 푸슛!
시몬의 몸에도 베인 상처가 생기며 핏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드레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블러드 골렘은 양날의 검! 차라리 해제하는 게 좋을 거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던 블러드 골렘이 갑자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곤 팔 힘만으로 불쑥 튀어나갔다.
쾅!
골렘에 부딪힌 안드레가 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근처에 있던 귀부인들이 놀란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크윽!'
위험했다. 안드레가 몸을 일으키자 어느새 엔시페르도 사라져 있었다.
"역시 고정형 마법진이었나 보네요."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술사의 위치를 바꿔 버리면 유지하지 못하는 종류의 흑마법이었다.
"네놈의 노림수는 알겠다만."
안드레가 숨겨둔 마법진을 바닥에 깔았다. 주위에 자욱한 연기가 일어나며 또다시 엔시페르가 생겨났다.
"당연히 상정 내의 일이다! 내가 좌표 재연산 훈련을 한두 번 한 줄 아느냐!"
왕궁파의 귀족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반면 시몬은 회심의 일격이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 이 상황에서도 웃을 여유가 있나?"
"블러드 골렘의 역할은 다 한 것 같네요."
시몬이 머리 위로 팔을 들어 마법진을 펼쳤다.
"돌아와."
용해되고 있던 블러드 골렘의 몸이 연기로 변하더니 마법진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몬에게 있어, 블러드 골렘은 거쳐 가는 단계에 불과했다.
등 뒤로 팔을 보낸 그가 허공을 붙잡은 다음.
'흐읍!'
힘주어 열어젖혔다.
쩌어어어어어어엉!
시몬이 팔을 움직이는 방향으로, 20M가 넘는 거대한 포털이 직선의 형태로 펼쳐졌다.
저벅.
척.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스켈레톤 부대. 아처까지 포함한 도합 23기의 스켈레톤들이었다.
"뭐냐, 뭘 꺼내나 했더니 그냥 스켈레톤?"
안드레는 비웃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특히 몰리 공주는 눈을 빛내며 깡충깡충 제자리에 뛰고 있었다. 로레인과 세르네의 얼굴에도 비로소 웃음이 걸렸다.
반면 왕실파 귀족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왕자님! 빨리 막아야 합니다!"
"분명 키젠의 시험에 나왔던......!"
이미 늦었다. 시몬이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팔을 내리그었다.
"갑니다."
마법진에서 연기 형태의 클라우드가 내려와 23기의 스켈레톤의 몸에 깃들었다.
하얀 뼈대가 에메랄드빛으로 물들고, 손에 든 검은 마치 빛줄기를 쥔 것처럼 눈부시게 변했다. 등 뒤에는 뼈로부터 이어진 클라우드가 망토의 형태로 펼쳐졌다.
따닥.
딱.
일변한 23기의 스켈레톤들이 바람결에 망토를 휘날리며 무기를 고쳐 쥐었다. 그들의 텅 빈 안구의 구멍에서 청록빛 안광이 일렁였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親衛隊)>
'크읍! 저건 또 뭐야?!'
안드레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무려 23기의 언데드들이 살아 숨 쉬듯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건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기술이었다.
'설마 오리지널인가!'
안드레는 놀라면서도 신속하게 대응했다. 아공간을 열고 머릿수를 맞추기 위한 소환수를 꺼냈다.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축 늘어진 시체들이 안드레의 흑마법으로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커엉!
-컹! 컹!
개과 몬스터의 시체로 만든 좀비들. 8기의 좀비도그(Zombie Dog)들이었다.
이들을 쓰면 엔시페르의 컨트롤 능력이 떨어지지만, 머릿수를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었다.
"자본이 다르다!"
안드레가 소리쳤다.
"네놈의 그 하찮은 기본 스켈레톤과는 들인 비용이......!"
그때 무릎을 굽힌 친위대들이 총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10미터를 주파하며 도착한 그들이 청록의 검을 휘두르자, 댕강! 소리와 함께 좀비도그의 몸통이 두 동강 났다.
'이, 일격?'
마치 광선검을 휘두르는 듯한 스켈레톤의 검술은 어두운 밤이라 더 잘 보이고, 화려했다.
좀비도그가 언어 그대로 갈려 나가고 있었다.
"크윽!"
다급해진 안드레는 계속해서 자신의 아공간에서 좀비도그를 내보냈다.
하지만 시몬의 컨트롤도 상당했다.
푸욱! 푹!
검사들이 물러나고, 창을 든 친위대들이 정면에서 창을 찌르며 돌진했다. 검사들은 옆으로 우회해서 옆구리를 부수며 들어가 상대의 진형을 무너뜨렸다.
쐐액!
쐐애애애액!
거기에 술사인 안드레를 노리는 청록의 화살이 날아들자, 안드레는 다급히 컨트롤을 멈추고 칠흑방패를 펼쳐야만 했다.
활을 든 친위대들이 좀비도그를 상대하며 호시탐탐 안드레를 노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금까지 안드레는 거의 20기가 넘는 좀비도그를 꺼냈지만, 단 한 기의 친위대도 줄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치이이이!
블러드 골렘 때문에 생겼던 시몬의 상처에 연기가 생기며 아물어갔다.
안드레는 경악했다.
"어, 어째서 스켈레톤에 블러드 골렘의 회복 효과가......!"
블러드 골렘을 소환하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했던 시몬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처음 봤다면 놀라셨겠지.'
친위대는 단순히 스켈레톤에 클라우드를 입히기만 하면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블러드 골렘을 먼저 완성하고, 그 뒤에 골렘을 이루고 있던 클라우드를 스켈레톤의 몸에 입혀야 했다.
시몬은 지금도 '서먼 블러드 골렘' 흑마법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즉, 친위대는 클라우드를 입은 스켈레톤들이 아닌, '블러드 골렘을 입은 스켈레톤'이었다.
촤아아악!
촤악!
친위대가 좀비도그를 썰어버리며 안드레에게 도착했다. 당황한 안드레가 허우적거리며 엔시페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꽝!
엔시페르의 검격에 정통으로 부딪힌 친위대 하나가 무수한 뼈들로 흩어졌다. 친위대라고 해도 스켈레톤 특유의 약한 방어력은 어쩔 수 없었다.
"큭!"
라이프 링크의 효과로 멀리서 시몬이 비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안드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블러드 링크는 양날의 검. 저 기술을 쓰면 놈도 목숨을 건 거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이길 수 있어!'
엔시페르가 연신 위협적인 대검을 휘둘러 친위대의 수를 줄이고 시몬에게도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그사이 친위대들은 좀비도그를 베어서 시몬의 체력을 회복시켰다.
타격과 회복의 반복.
이대로는 끝이 없다. 안드레는 어쩔 수 없이 좀비도그들을 다시 아공간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악수였다. 좀비도그의 공급이 끊기자, 시몬은 머릿수의 우위로 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안드레는 순식간에 친위대 두 기에 등을 잡혔다.
"크윽!"
안드레가 급히 자세를 낮췄고, 휘둘러진 청록빛 검격이 그의 머리카락을 베고 지나갔다.
사방에서 공세가 밀려들자 안드레는 바빠졌다. 엔시페르로 견제하고, 안드레가 직접 마투까지 써야 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촤악!
촥!
그의 몸 곳곳에 친위대들이 만든 검상이 생겼다. 숫자에서 밀리니 모든 공세가 집중되고 있었다.
"크아아아!"
안드레가 거칠게 두 팔을 펼치자, 칠흑 충격파가 뻗어 나가 친위대 두기의 몸을 흩뜨렸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입꼬리를 올리는데.
딸칵 딸칵.
날아가던 친위대들의 뼈들이 어느새부턴가 공중에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멀리서 지휘하는 시몬이 손바닥을 쫙 펼쳤다.
<본 네일>
푸욱! 푹! 푹! 푹!
전후좌우 사방에서 에메랄드빛의 본 네일들이 안드레에게로 쇄도했다. 그의 몸에 날카로운 뼈마디의 끝이 창처럼 틀어박혔다.
"끄아아아악!"
쨍!
고통으로 집중력의 선이 끊어지며 유지 중이던 엔시페르마저 사라졌다.
그 틈을 파고든 친위대가 안드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허억!'
이때 안드레는 사령학 전공자의 상징. '혼령화'를 써서 포위를 빠져나갔다. 친위대의 검 또한 안드레를 지나쳤다.
[됐다 소년! 혼령화를 소모시켰다!]
신디 비바체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혼령화는 한번 사용 시 다음 사용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사령술사를 상대하려면, 혼령화부터 쓰게 하라는 격언까지 있을 정도였다.
즉, 지금부터는 공격찬스다. 안드레는 혼령화를 오래 유지 못 하고 다시 물질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단계.'
시몬이 승부수를 던졌다.
다시 한번 머리 위의 마법진을 작동시키자, 친위대를 형성하고 있던 클라우드가 전부 빠져나가며 마법진으로 들어왔다. 스켈레톤은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뒤이어 마법진의 수식을 수정해 클라우드의 비율을 비틀어 깬 시몬이 마법진에서 활과 화살을 꺼냈다.
"끝났습니다 왕자님. 항복하세요."
시몬이 검푸른 화살을 시위에 메기며 경고했다. 안드레의 입술이 경련이 일어나듯 떨렸다.
"항... 복?"
1학년한테 패배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이건 정말로 회생 불가다.
심지어 아바마마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던전 독점공략권까지 왕가의 맹세로 걸어버렸다. 지면 밑바닥에 내려앉는 게 아니라 지하에 처박혀도 모자라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두 팔이 정면으로 향했다.
"물러날 곳이 없다!!"
그의 정면으로 여러 겹의 마법진이 펼쳐지며 상위 방어기인 '칠흑대문'이 겹쳐지고 또 겹쳐졌다. 안드레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방어기였다.
'어쩔 수 없네.'
화살의 에메랄드 빛깔은 완전히 빠지고, 칠흑의 색깔로 바뀌었다.
시몬이 팽팽해진 시위를 놓았다.
<시몬 리메이크 - 블러드 에로우>
슈콰아아앙!
포성과 함께 날아간 화살이 5겹의 칠흑대문에 틀어박혔다.
퍽! 퍽!
접촉과 동시에 두 겹의 문이 깨져나가고, 후속의 문들도 연달아 박살 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안드레의 앞에는 한 겹의 칠흑대문만 남았다.
안드레가 입고 있던 옷이 찢겨 날아갔지만, 그는 힘겹게 자세를 유지했다.
그가 비명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화살이 검푸른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로 퍼져나갔다. 통째로 지면이 쩍쩍 갈라지고 사방으로 바위 파편이 날아다녔다.
"허어억!"
커다란 파편이 지켜보던 귀족들에 떨어지려는 순간, 두 손에 단검을 쥔 로레인이 번뜩이며 지나갔다.
파편들이 작은 돌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고생시키네요."
마찬가지로 공중에 떠오른 세르네가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무수한 깃털을 컨트롤 하고 있었다. 바윗더미만 한 파편을 작은 깃털 하나로 들어 올리는 모습은 대단했다.
쿠구구구구구!
시몬이 길게 숨을 토해내며 전면을 응시했다.
"흐흐흫! 흐흐!"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흡! 하하하하!"
폭발 속에서 넝마가 된 차림으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안드레가 보였다. 두 다리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악으로 버티고 있었다.
"버텨냈다! 버텨냈어! 이제 어쩔 거냐 시몬 폴렌티아!!"
피어의 분신이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마지막에 손속을 뒀나? 성격도 좋군.]
'......아니, 당연하죠. 왕족을 죽일 순 없으니까요. 대신.'
시몬은 천천히 손가락을 내렸다. 안드레의 시선도 시몬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
그의 그림자가 붉은색이었다. 그 붉은 그림자가 시몬의 그림자와 합쳐져 있었다.
'이 자식! 어느 틈에 저주를......!'
"인돌렌스(indolence). 무통의 저주입니다."
"그런 저주가 있다고?"
안드레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인돌렌스는 바힐이 시몬을 위해 만든 4대 저주 중 하나였으니까.
"일정 시간 동안, 통증을 비롯한 어떤 현상도 내 몸이 느끼지 않도록 마법진에 쌓아두는 저주입니다. 이제 지속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시몬이 미소 지었다.
"고통, 분담하시죠?"
울컥!
그간 시몬이 느꼈던 고통이 해일처럼 밀려들며 안드레의 이성이 하얗게 증발됐다.
'......끄어어!'
인돌렌스는 모든 통증을 쌓아놓고 있다가, 지속시간이 끝나는 순간 감각을 공유한 상대와 나눠 갖는 효과가 있었다.
'어,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왕가의 자식인 만큼 그는 이런 고통이 낯설었다. 고통에 지배당해 잠시 멈칫한 사이, 산전수전 다 겪은 시몬은 인상만 살짝 찡그린 채로 돌진해 왔다.
쩌억!
생사를 건 결투에서는, 잠깐 상대를 경직시키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취하기에는 충분했다.
칠흑이 깃든 시몬의 주먹이 그대로 안드레의 턱을 쳐올렸다. 그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
집사장이 헐레벌떡 뛰어와 쓰러진 안드레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눈이 뒤집힌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겨, 경기 종료! 승자는 시몬 폴렌티아 학생입니다!"
시몬이 가뿐히 손을 털었다.
'던전, 잘 받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