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47화 (24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47화

"승자는 시몬 폴렌티아 학생입니다!"

박수나 환호는 없었다.

그저 쥐 죽은 듯한 침묵만이 귀족들 사이에 감돌았다.

오늘은 드레스덴 왕족의 무도회였고 여기는 왕궁이었기에, 귀족들은 승리한 시몬에게 박수를 보내지 못했다. 그저 놀란 눈으로 힐끔힐끔 시선만 보내고 있었다.

"왕자님!"

"괘, 괜찮으십니까?"

왕실파 귀족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쓰러진 왕자의 상태를 살폈다.

로레인과 세르네는 사뿐한 걸음으로 시몬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시몬."

로레인이 시몬의 엉망이 된 옷을 털어주며 말했다.

"응, 멀쩡해."

"잘했어요. 시몬~"

세르네가 살살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이제는 그 힘을 쓰지 않아도 실력이 궤도에 오른 느낌이네요."

"그 힘?"

로레인의 물음에 세르네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은 몰라도 돼요. 나와 시몬만이 공유하고 있는 은밀한 비밀이니까."

시몬이 쓴웃음을 지었다. 굳이 또 그걸 그렇게 설명해 버리면 오해의 여지가.......

"왕비전하께서 등장하십니다."

"!"

갑작스럽게 인파가 좌우로 갈라졌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이 왕비란 걸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나타났다. 다소 통통한 몸집에 시릴 정도로 차가운 인상의 중년여성이었다.

"왕비전하를 뵙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왕비에게 예를 취했다.

그녀는 앞으로 걸어 나와 쓰러진 안드레를 내려다보았다. 막 정신을 차린 그는 눈을 뜨자마자 왕비를 발견하고는 겁먹은 표정으로 덜덜 떨었다.

"한심한 것."

차갑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는 일말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꼴도 보기 싫구나. 치워라."

흑기사들이 다가와 안드레의 양팔을 붙잡아 끌고 갔다. 로레인은 그런 왕비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전부 당신의 계책이었겠죠.'

키젠에 협조적으로 구는 국왕과는 달리, 왕비는 대표적인 반키젠파였다. 왕국이 키젠의 영향력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게 그녀의 염원이다.

갑자기 파티가 중단된 것도, 안드레의 난입도, 그 모든 게 왕비의 계획이었으리라. 물론 시몬이 안드레를 이겨 버리는 바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겠지만.

"......."

계획을 망쳐놓았다는 분함 때문일까, 왕비가 무서운 눈으로 시몬을 노려보았다.

이에 로레인이 앞으로 나와 그녀의 시선을 대신 받았고, 세르네는 시몬에게 말을 시키면서 왕비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결국 왕비는 더 말하지 못하고 등을 돌려 사라졌다.

* * *

결투가 끝나고, 무도회는 정상적으로 재개되었다.

시몬은 치료를 받으러 갔다. 왕실의 의사들이 시몬의 상태를 봐주었고, 다행히 피로와 빈혈 증세가 살짝 있는 것 외에는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시몬이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퍼억!

쩍!

왕비가 기거하는 별궁에서는 적나라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도회에서 이런 개망신을 당하다니!"

왕비는 구둣발로 안드레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반인이고 안드레는 네크로맨서였지만, 안드레는 감히 그녀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사실 안드레의 잔혹한 성격은 다름 아닌 저 왕비에게서 나왔다. 눈이 회까닥 돌아가면 피붙이고 뭐고 없었다. 국왕이 극도로 아끼는 몰리 공주를 제외하면, 그녀에게 맞지 않은 자식들이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이러려고 기회를 준 줄 아느냐!"

왕비는 이번 무도회에서, 몰리 공주가 시몬 일행을 불러들였단 사실을 알게 되고는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시몬에게 원한이 있는 안드레에게 가서 결투를 신청하라고 했고, 뒤처리는 모두 자신이 하겠다고 약속했다.

키젠의 콧대를 꺾어놓을 좋은 기회였으나 안드레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1학년에게 패배했다. 왕실은 크게 망신을 당한 꼴이 됐고, 결국 또 키젠의 명예만 드높이게 됐다.

발을 멈춘 그녀가 분노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콧김을 뿜었다. 구두는 어느새 피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안드레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약속."

그녀의 입이 열렸다.

"패배했을 때 그 아이에게 들어주기로 한 약속이 무엇이냐."

왕비도 이미 흑기사들에게 들어서 상황은 알고 있었다.

안드레는 가슴 앞에 R자를 그리며 왕실의 이름까지 걸고 시몬의 조건을 수락하기로 했었다.

"......."

그동안 덤덤히 폭력을 받아내고 있던 안드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얼굴엔 커다란 두려움과 낭패감이 드러났다.

"거짓 없이 고하거라."

그녀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곧 죽을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던 안드레는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왕국의 던전 한 곳의 독점공략권을......."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동시에 그녀의 발이 천천히 내려갔다. 안드레는 그녀가 폭력을 멈춘다는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매달리듯 소리쳤다.

"어마마마! 제가......!"

"넌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안드레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허망한 눈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안드레를 내버려 두고 왕비는 방을 나왔다.

'멍청한 것!'

던전은 잠재적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어떤 자원이나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중 한 곳을 꼼짝없이 뭣도 모르는 17살 꼬맹이에게 넘기게 됐다.

어쩌면 그 소년의 선택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쪽의 방식으로 살짝 위협해서 보상을 적당한 것으로 바꾸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 소년의 옆에는 로레인과 세르네라는 거물들이 있다. 위협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10대 꼬맹이야. 내일 아침 다른 보상을 제시해 봐야겠다.'

* * *

"거절할게요."

침대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던 시몬이 말했다.

기껏 왕비의 새로운 제안을 들고 찾아온 재무관은 칼 같은 시몬의 거절에 당황했다.

잘 구슬리면 넘어올 거라는 말과는 다르게, 시몬은 제안을 다 들어보지도 않았다.

"하, 학생."

재무관이 두 손을 맞잡으며 비즈니스 미소를 지었다.

"의뢰금의 두 배면 무려 4천 골드입니다. 4천 골드! 집을 몇 채나 살 수 있는 돈이에요! 다시 한번 생각을......."

"우와아~ 어른이 애들 등쳐먹는다~"

세르네가 끼어들었다. 어제부터 시몬의 방에 눌러앉은 그녀는 의자에 앉아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던전 공략 권리를 팔면 4천 골드가 아니라 몇만 골드까지 불릴 수 있는데, 고작 2천 골드로 삥땅 치려고요? 애들이라 잘 모른다고 너무 막 지르시네."

'제발 방해 좀 하지 마......!'

재무관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하하! 왕비 전하께서 특별히 세 배로 올리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공훈도 직접 수여하시겠다고 하시는......."

"재무관님."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집에서 가져온 분홍색 파자마를 입은 흑단 같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소파에 누워 두 다리를 번갈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읽고 있는 책에서 잠깐 시선을 떼어 말했다.

"시몬은 불리한 결투에 지명받았지만, 목숨을 걸고 싸워서 승리했어요. 그저 약속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뿐이에요. 왕실의 이름이 이렇게 가볍던가요?"

'미치겠네 진짜!'

시몬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저 두 소녀가 변호인처럼 옆에서 훈수를 두고 있었다.

당근 작전은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작전의 방향을 조금 틀어볼 필요가 있었다.

"타국에서 오신 여러분께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그의 눈가에 촉촉한 물기가 섞였다.

"사실 왕국의 재정 상황이 많이 어렵습니다. 최근엔 곡창지대의 지독한 가뭄으로 왕비 전하께서도 백성들과 아픔을 함께하시겠다며 끼니를 거르......."

"아,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

재무관의 말을 끊은 세르네가 손거울을 착 내려놓으며 요염하게 다리를 꼬았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왕실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아직 학생이니까 대충 둘러대면 넘어갈 줄 알았어요?"

"저, 저는 지금 시몬 학생과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재무관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시몬을 보았다. 시몬이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세르네의 말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크윽......!'

이상한 애들한테 제대로 잘못 걸렸다.

이대로는 상당히 힘든 협상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턱대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내뱉은 안드레 왕자가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이걸 확! 어른의 권위로 윽박지를 수도 없고.'

그의 시선이 잠시 분홍 파자마 차림의 로레인에게로 향했다.

저 소녀가 죽음의 마녀 앞에서 입 한번 뻥긋하면 왕국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

소문으로는 에프넬의 하늘섬도 초토화했다는데 랭거스틴이라고 못 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몬이 말했다.

"왕국에 너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던전을 선택할 테니까요."

"시, 시몬 학생! 부디 한 번만 더 재고를......!"

"잠깐만요,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세르네가 한쪽 다리를 쭉 펼쳐서 의자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대뜸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기 시작했다.

"???"

그녀의 돌발 행동에 재무관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한쪽 스타킹을 벗은 그녀가 구깃구깃 말아서 재무관의 앞으로 걸어왔다.

"손 내밀어봐요."

재무관이 홀린 것처럼 손을 내밀자 그녀가 스타킹을 손에 쥐여주었다.

"추가 조항이에요. 이걸 드릴 테니까 약속대로 던전을 넘기는 조건으로 해요. 어때요?"

"......!!"

재무관의 두 눈이 감격으로 떨려왔다. 갑자기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고,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어지는 듯한 그런 속 시원한 기분을 느꼈다.

고대 학자들이 100년 만에 룬어의 비밀을 파헤쳤을 때의 기분이 바로 이랬을까.

"그, 그렇군요! 스타킹! 스타킹이라니! 이런 묘수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왕비전하께 보고하러 가요."

"예! 옙! 알겠습니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자, 잠깐만요!"

시몬이 말릴 틈도 없이, 재무관은 전속력으로 방에서 뛰쳐나갔다.

로레인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

"너 성격 진짜 나빠."

"호호호!"

재무관이 헐레벌떡 전속력으로 궁을 달려갔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이 좋은 소식을 왕비 전하께 전해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왕비전하! 왕비전하!"

재무관이 왕비의 방에 들어왔다.

마침 그녀는 방에서 관원들과 긴급회의 중이었는데, 재무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자네 표정이 좋군! 그 꼬맹이들과 합의했나?"

"예, 제가 해냈습니다!"

재무관이 보란 듯이 번쩍 스타킹을 들어 올렸다. 구멍이 나서 이제는 쓰지도 못할 스타킹이 주르륵 그의 손에서 흘러내렸다.

"스타킹! 스타킹입니다! 이 스타킹을 저희가 받는 조건을 계약에 추가했습니다!"

"......."

방에 짙은 정적이 흘렀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절대로 던전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원들이 무슨 미친놈 보듯 재무관을 응시했다.

거기에 왕비는 물론, 방을 치우고 있던 시녀들까지 경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당장 저자를 끌어내서 정신 차릴 때까지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라."

"네, 네?"

관원들이 재무관의 두 팔을 붙잡고 방에서 끌어냈다.

"와, 왕비전하! 억울합니다! 이걸 좀 봐주십시오! 스타킹이라니까요!"

재무관은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 스타킹 타령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목덜미에는 선명한 깃털 한 장이 꽂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