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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53화 (25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53화

다음 날 아침.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었다.

첫 수업은 제인의 초급 흑마법 수업이었는데, 미리 경고했던 만큼 그녀의 BMAT 피드백은 살벌했다.

학생 한 명 한 명 지적하며 고쳐야 할 점을 샅샅이 짚어주었다.

그리고 시몬이 지적받은 부분은 역시 30분이나 걸린 블러드 골렘의 소환시간이었다. 제인은 지적을 넘어서 수식을 간소화하는 방안과, 새로운 혈류학 기술의 훈련법까지 알려주었다. 전부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그렇게 피드백 시간이 끝나고, 제인은 장소를 옮겼다. A반 학생들은 근처에 있는 실내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실습? 무슨 수업을 해주시려는 걸까?"

"글쎄."

대부분의 학생들이 BMAT 3차 시험의 테마를 듣고 잔뜩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수업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았다.

"자."

제인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마법진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

7조 조원 넷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학생들은 조교들의 통제에 따라 일정 거리를 두고 선 다음, 기본기인 '칠흑화살' 마법진을 펼친 채 대기했다.

그리고 조교 한 명이 흑마법으로 만든 검은 바람을 일으켰다.

위이이이이잉!

"윽!"

"앞이 하나도 안 보여!"

마치 검은 황사 한복판에 뚝 떨어진 느낌.

다행히 학생들은 멀쩡했고 눈 한번 따갑지 않았지만, 그들이 펼치고 있는 마법진은 달랐다.

검은 풍압에 노출된 마법진이 점차 금이 가더니, 이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사방에서 연달아 쨍! 하고 마법진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바람이 걷힌 뒤, A반에서 마법진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보기보다 어렵네 이거."

"한 명은 버틸 줄 알았는데."

몇몇 학생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혹시 이번 BMAT. 바람이나 비행에 관련된 거 아냐?"

"맞네 맞네!"

가끔은 정보가 느려서 완전히 헛다리 짚는 학생들도 나왔다. 그 말을 들은 딕이 낄낄거리며 시몬의 팔꿈치를 툭툭 쳤다.

"주목하세요."

제인이 다시 앞으로 나왔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실패했으니 다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겠네요. 자, 이제 마법진 결속의 3요소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시몬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설명을 들었다.

베이스.

결속 수식.

생태계.

이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마법진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방금 여러분의 마법진이 어떻게 파괴됐는지 떠올려 보도록 하세요."

그녀가 이동형 칠판에 직접 마법진을 그리며 설명했다.

"만약 마법진이 겉에서 안으로 파괴됐다면, '베이스'의 강도 설계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베이스는 마법진을 감싸는 최고의 보호 수단입니다."

"내부부터 무너졌다면 결속의 문제겠네요.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마법진 내에 결속 수식을 추가하는 겁니다. 다만 공격력이나 출력, 시전속도 등 무언가를 희생해야 합니다."

"다른 부분은 괜찮은데 특정 수식만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때는 수식 간의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가진 마법진은 절대로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제인의 수업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일말의 빈틈도 없이 치밀하게 짜인,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학생들을 세 분류로 나누어서 각각의 처방을 내렸다.

학생들이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뒤에 다시 조교가 검은 바람을 일으켰고, 6명이 성공했다. 실패한 학생들은 3요소 중 어느 한쪽이 미흡한 거였다.

다음 처방을 내리고, 조교가 바람을 일으키자 이번엔 무려 25명이 성공했다.

그렇게 네 번째 시도에서.

"됐다!!"

시몬을 포함한 A반 전원이 성공했다.

전원 실패에서, 무려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성공으로 변했다. 그녀의 수업은 마법과도 같았다. 학생들은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런 게 수업이지!"

"딴 건 몰라도 우리가 담당교수님 복은 타고났다."

그렇게 훈련장 실습을 끝낸 뒤 다시 강의실로 돌아왔다. 강의실에서는 이론적인 조언도 곁들였다.

특히 그녀의 설명에는 '수식 수정'에 대한 부분이 있었기에 시몬에게도 큰 참고가 되었다.

'블러드 골렘이랑 칠흑어뢰도 조금 더 손볼 필요가 있겠어.'

수업을 듣다보니 30분이라는 시전시간을 줄일 아이디어가 폭발적으로 떠올랐다. 당장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가 마법진을 수정해 보고 싶었고, 바다에서 펼치는 마법진도 준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수고하셨습니다!"

오전 시간을 꽉 채운 제인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그녀와 조교들이 서류가방을 들고 바람처럼 강의실에서 떠났고, 학생들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짐을 챙기고 있었다.

"최고였어! 역시 제인 교수님이 칠흑역학을 강의하셨어야 해!"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메이린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가방에 교과서를 집어넣고 있던 딕이 히죽 웃었다.

"오, 방금 그 발언! 에릭 교수님 무시하는 거야? 다 말해야지~"

"내가 언제!!"

메이린이 발끈하며 교과서를 휘둘렀고, 딕은 얼른 자세를 낮추며 피했다.

"앗, 또! 싸우지 마세요!"

카미바레즈가 기겁하며 말했다. 시몬은 그러려니 하며 카미바레즈에게 말을 걸었다.

"카미, 혹시 다음 수업 뭔지 알아?"

"네. 맹독학이에요!"

그 말을 들은 메이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1교시랑 2교시가 완전 극과 극이네."

"그러게."

다들 잡담하며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짝! 짝!

"얘들아! 미안한데 잠깐 주목해 줄래?"

강단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여학생이 있었다.

땋은 머리를 곱게 늘어뜨린 그녀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멘지스. A반 최고의 맹독학 지망생이었다.

그녀의 외침에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던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걸음을 멈췄다.

"다들 알다시피, 다음 수업은 맹독학이야."

그녀는 역력히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뒤에 서 있던 친구들이 힘내라며 응원하자, 그녀는 애써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새로 부임하신 별야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독을 먹이는 극히 고통스럽고 야만적인 수업을 강요하고 있어."

가만히 듣고 있던 시몬의 눈동자가 커졌다.

'잠깐, 지금 뭐라고?'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놀라서 웅성거렸다.

별야 교수야 뒷담이야 다들 몰래몰래 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모두의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토로한 적은 없었다.

"솔직히 그건, 수업도 아니라고 생각해."

클라우디아는 제대로 작심한 듯, 점점 발언의 수위를 높여 나갔다.

"차라리 랭 교수님 때가 나았다고 봐. 그때는 뭐라도 배우는 게 있었지만, 별야 교수님 수업에서 배운 내용은 독을 먹으면 아프다는 사실뿐이야. 토하고, 구역질하고, 피부도 망가지고, 심지어 다음 수업의 컨디션까지 영향을 미쳐. 다들 알잖아?"

학생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발언의 수위는 그렇다고 쳐도 대부분이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강하게 탕 두드렸다.

"가지고 있던 병이 악화된 학생들도 있고! 병동에 갇혀 있느라 내신에 타격이 있는 학생들도 있어! 이건 진짜 좀 아니라고 생각......."

"잠깐."

그때 그녀의 말을 끊고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가 있었다.

그 한마디에 A반 강의실이 묵직한 정적으로 뒤덮였다.

"니 까짓 게 뭔데."

가장 뒷자리에 있는 소년, 마치 드높은 산언덕 같은 덩치의 남학생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애들 가는 거 막고 지랄이냐?"

바로 헥토르였다.

예상치 못한 A반 실세의 반발에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연설에 마음 깊이 동조하던 헥토르의 파벌들도 표정을 싹 바꾸며 말했다.

"맞아! 쟤 뭔데 나대? 어이없어."

"난 첨부터 맘에 안 들었어."

헥토르를 중심으로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클라우디아의 입술이 두려움으로 달달 떨렸지만 이내 힘겹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미, 미안해 헥토르. 난 그저......."

"그래서 X발 본론이 뭐냐고."

다행히 발언권을 박탈하는 게 아니라 들어줄 용의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용기를 낸 클라우디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야 교수님의 수업을, 보이콧할 생각이야."

웅성 웅성 웅성!

충격 선언에 강의실 전체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절대적인 성역으로 여겨지던 키젠 교수의 수업을 학생들이 보이콧한다니! 이건 다들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보이콧은 나 혼자서 결정한 게 아니야."

강의실이 어수선한 가운데, 클라우디가 더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별야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다른 반 애들까지 전부 힘을 합치기로 했어. 오늘부터 독 먹는 수업을 보이콧할 건데, 당연히 우리 A반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반과도 연동된 대규모 수업 거부운동! 일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물론, 우리들은 별야 교수님의 은퇴를 종용하려는 게 아니야. 학생들에게 독을 먹이는 괴팍한 수업을 중지하고, 교과서와 학문에 근거한 수업을 하도록 시정하신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에라도 보이콧을 중지할 의사가 있어. 그전까지는 수업을 거부하고, 맹독학관 건물 앞에서 시위하며 싸울 거야."

클라우디아의 친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학생들의 앞에 서류와 깃펜을 놓기 시작했다. 시몬의 앞에도 한 여학생이 다가와 서류를 내려놓고는 '잘 부탁한다'며 말하고 갔다.

시몬이 서류를 눈으로 훑었다.

<별야 교수님의 독 먹는 수업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독살당하고 싶지 않아요!>

별야가 벌이는 기행에 대해 낱낱이 적혀 있었고, 그 외에도 그녀의 복장 문제, 태도 문제, 학생들에게 행사하는 폭언 등에 대한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

"이건 학생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이야."

클라우디아가 강조했다.

"동의한다면 사인해 줘.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드르르르륵!

그때 헥토르가 의자를 밀어내며 태산 같은 몸을 일으켰다.

"같잖아서 못 들어주겠군."

그가 등을 돌려 강의실을 떠나고, 뒤이어 헥토르의 파벌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굳은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클라우디아가, 헥토르가 강의실을 나가자마자 더욱 소리를 높였다.

"부탁이야! 이제는 별야 교수님의 기행을 우리 힘으로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헥토르가 빨리 나가준 게 클라우디아 입장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헥토르의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빠르게 서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몇몇 학생들도 깃펜을 들었다.

"서명은 해주는데, 보이콧은 같이 못 해주겠다."

한 남학생이 클라우디아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키젠 교수한테 찍히는 건 싫거든."

"아, 물론 이해해. 서명이라도 고마워. 혹시 생각이 바뀌면 얼마든지 이야기해 줘."

비율로 보자면 A반의 30% 이상의 학생들이 서명한 것 같았다. 시몬도 서류를 읽어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이 소란스러웠다.

신디 비바체와 클라우디아가 싸우고 있었다.

"난 안 해."

신디가 시큰둥하게 거절하자, 클라우디아가 배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신디! 넌 진짜 믿고 있었는데!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전에 맹독학 노트도 보여줬잖아!"

"별로 안 내켜."

신디가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수업 조용히 잘 받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제 와서라니! 그야......"

"툭 까놓고 말해서."

신디가 의자에 걸려 있던 겉옷을 집어서 툭 어깨에 걸쳤다.

"넌 반 합동 보이콧이라고 했지만, 그냥 각 반의 독찔이들을 중심으로 애들 선동해서 하는 거 아냐?"

독찔이는 키젠 학생들 내에서 맹독학 지망생을 비하할 때 쓰는 은어였다.

클라우디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최근 2차 BMAT에서 독찔이들 순위 엄청나게 떨어졌잖아. 이번 임평 기간 내내 그거 가지고 쫑알대더라. 다른 교수들은 다 자기 애들 케어해 주는데 우리 교수는 BMAT와 상관없이 독만 퍼먹인다고."

"야! 그거랑은 상관없어! 너 말이 좀 심......!"

"말 나온 김에 끝까지 할게."

신디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맹독학 수업 안 들어서 상관없음. 그리고 네 말이 사실이라면 별야 교수님이 계속 독찔이들 발목 잡아줬음 좋겠네. 원래 키젠은 극도의 경쟁 무대잖아? 남의 불행이 나의 생존율을 올려준다면야."

그녀가 A반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니들도 키젠답게 생각해. 가자 얘들아."

신디와 그녀의 조원들이 강의실을 떠났다.

클라우디아가 표독한 눈으로 신디를 노려보았다.

"......너랑은 영원히 절교야. 신디."

그 말에 신디가 뒤를 돌아보며 픽 웃었다.

"친한 적이 있었어야 절교도 하든가 하지."

이렇듯 별야의 맹독학 수업이 너무 고통스럽다며 동의해주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신디 비바체처럼 맹독학 학생들을 견제하려는 학생들도 있었다.

좌절할 만도 했지만, 클라우디아는 오히려 악에 받쳐서 더욱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몬!"

그녀가 시몬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부탁해! 이건 우리 학생들이 최소한의 권익을 되찾기 위한 일이야. 특례 1번인 네가 보이콧에 참여해 준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가만히 서류를 바라보던 시몬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잠시 후, 그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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