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54화
"미안해. 클라우디아."
독을 먹는 수업 자체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몬은 랭거스틴에서 별야의 실력을 봤고, 그녀가 수업 때 말한 가치에 공감했다. 단지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수업을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별야 교수님을 계속 믿어보고 싶어."
"......."
시몬의 대답을 기다리던 클라우디아의 표정에 깊은 실망감이 깃들었다.
"왜? 그 교수님의 어디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데?"
"그-"
시몬이 뭐라 대답하기도 그녀가 먼저 울분을 쏟아냈다.
"넌 생각이 깊은 애인 줄 알았어! 이대로 학생들의 권익에서 눈 돌리겠단 거야? 교수들이 죽으라면 죽을 거니? 지금의 키젠 시스템은 단단히 잘못되어 있어! 우리가 실패하면 앞으로 교수들의 요구는 더 심해질......!"
"비약이 심해. 클라우디아."
이번엔 시몬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가 생각하는 바는 존중해.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의자를 밀어 넣으며 덧붙였다.
"지금 네 말은 근거 있는 설득이 아니라, 감정적인 호소일 뿐이야."
그 말을 남기고 시몬이 등을 돌려 떠났다. 딕 또한 서명하지 않은 빈 서류를 휙 그녀 쪽으로 던지고는 뒤를 따랐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마음 약한 카미바레즈는 못내 미안한지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고는 그들을 따랐다.
"야! 같이 가!"
뒤늦게 짐을 챙긴 메이린이 세 사람을 따라가려는데, 클라우디아가 덥석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메이린! 넌 쟤들이랑 다르지? 그치? 서명해 줄 거지?"
"이게 미쳤나! 놔!"
메이린이 손길을 뿌리쳤다.
클라우디아가 상처받은 표정으로 손을 움츠리자, 메이린이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뭘 이렇게까지 해?"
"......."
"수업 거부는 키젠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야. 내 생각엔 니들 좀 오버하는 것 같아. 머리 좀 식히고 와."
클라우디아의 입술이 뒤틀렸다.
"머리 식히면 뭐가 달라져?"
사실 클라우디아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미 모든 행동은 시작됐고, 여기서 멈춘다고 한들 키젠 교수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소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무려 전공과목 교수와 척질 각오를 하고 벌인 일이고, 학교생활 전체를 걸었다. 실패하면 학교생활이 급격히 꼬일 수밖에 없다.
"미안, 난 아직 서명할 생각 없어."
메이린이 등을 돌리며 강의실을 떠나려는데.
"메이린."
클라우디아가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성적이 그렇게 중요하니?"
우뚝.
메이린의 걸음이 멈췄다.
"이해해~ 교수님들한테 잘 보여야 하지? 알랑방귀도 뀌고 아양도 떨고, 그래야 태도 점수랑 성적도 잘 받으니까. 그게 바로 전교 2등의 내신 노하우......."
"야."
뒤를 돌아본 메이린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클라우디아는 마치 강의실 전체가 하얗게 일변하며 천장에 꽁꽁 서리가 끼는 것처럼 느꼈다.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선, 넘지 마."
순간적으로 압도당한 클라우디아는 뒷목에 닭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스스로 자존심이 상한 듯, 더욱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내가 어디 틀린 말 했......!"
"너희 독찔이들이 맹독학 수업을 반대하는 이유."
메이린이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붙잡아 뒤로 넘기며 내뱉었다.
"말할까?"
"......."
"별야 교수님의 수업으로 학생들이 독 내성을 갖추면, 앞으로 결평이든 BMAT든 힘들어지겠지. 안 그래?"
그 말을 들은 클라우디아는 가슴 깊은 곳에서 열화가 화아악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메이린──!"
그녀가 전신에서 칠흑을 일으켰다. 땋은 머리가 풀려 생머리처럼 휘날리더니, 이내 머리카락이 뭉치며 무수한 독사들로 변했다.
"지, 진정해 클라우디아!"
"강의실에서 흑마법으로 싸우면 중징계야!"
클라우디아의 친구들이 달려와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뜯어말렸다.
"와. 와보라고 해."
메이린이 같잖다는 미소를 지으며 냉기를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덥석! 하고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 사람이 있었다.
"아하하! 쏘리 쏘리!"
A반의 임시반장인 제이미 빅토리아였다. 메이린이 팔을 흔들며 버둥거렸다.
"웁! 읍읍! 우부붑!"
"메이린이 좀 욱했나 봐! 얘 말은 이렇게 해도 속은 여린 거 알지? 그럼 우린 먼저 나갈게! 안녕!"
제이미가 메이린을 강의실 밖으로 끌고 간 뒤, 강의실은 깊은 정적이 흘렸다.
다들 클라우디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진정했는지, 클라우디아의 독사들이 다시 머릿결로 돌아왔다. 그녀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자 친구들이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미쳤어 미쳤어!"
한편, 메이린을 붙잡아 강제로 강의실 밖으로 끌고 나온 제이미는 그녀의 엉덩이를 찹찹 때리고 있었다.
"야! 왜 때려!!"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제이미를 밀어냈다. 제이미가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클라라, 보이콧 앞두고 엄청 예민할 텐데 둘 다 말이 너무 심했어. A반은 BMAT 때 만나면 힘을 합치기로 했잖아. 너 진짜 클라라 얼굴 안 볼 거야?"
"안 봐!!"
메이린이 빽 소리 질렀다.
"그리고 클라우디아 그 기지배가 먼저 도발했거든! 내가 교수님들한테 아양 떨어서 성적 땄다는 식으로......!"
"그마안~ 우리 메이린이 예쁘니까 참으셔."
제이미가 그녀를 꼭 끌어안자, 메이린이 질색하며 몸부림쳤다.
"들러붙지 마! 더워!"
"나중에 클라라랑 화해하는 거다?"
"싫어!!"
* * *
클라우디아의 보이콧 선언은 키젠에 대단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식당에 왔는데 만나는 학생들 모두가 그쪽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애들한테 강제로 독 먹이는 건 좀 심하긴 했지."
"아무리 그래도 학생들이 수업을 보이콧한다는 게 말이 돼? 이건 교권에 대한 도전이야."
"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교수 걸고넘어지는 것 같아서 별로. 제인 교수님이나 바힐 교수님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거면서."
"난 보이콧 응원할래~ 이제 토하는 건 지긋지긋해."
시몬은 먹던 빵이 어떻게 넘어가는 줄도 몰랐다. 사방에서 별야와 수업거부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진짜 할까? 보이콧.'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점심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식당에서 나온 네 사람은 별야의 수업을 들으러 맹독학관으로 향했다.
"얘들아! 저기 봐!"
딕이 맹독학관 입구를 가리켰다.
"와! 한다더니 진짜로 하네? 분위기 장난 아냐!"
그의 말대로, 맹독학관 출입구의 앞에서 한 무리의 남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독을 먹이는 기행을 멈춰주세요!"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보이콧을 선언한 학생들이 별야의 독 먹는 수업을 규탄하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학생도 사람이다!' '독살당하고 싶지 않아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 엄청 부담스럽네.'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맹독학관으로 들어갈 때마다, 피켓을 든 학생들은 눈에서 빛이라도 뿜어낼 듯 그들을 노려보며 더 크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별야 교수님의 수업은 횡포입니다!"
"키젠 교수의 권한을 남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내 7조의 네 사람이 맹독학관 건물에 도착했을 때도, 기다렸다는 듯 입구 앞의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딕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고, 겁먹은 카미바레즈는 시몬의 옷깃을 슬쩍 쥐었다. 시몬은 저쪽에서 카미바레즈가 보이지 않도록 옆에 서주었다.
"학생도 사람입니다! 우리는 실험쥐가 아닙니다!"
그중에는 클라우디아도 있었는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피켓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메이린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앞장서서 걸어가 버렸다. 클라우디아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메이린의 등으로 꽂혔다.
이내 맹독학관으로 들어오자마자 카미바레즈와 딕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 무서웠어요."
카미바레즈가 겁먹은 토끼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걔들 노려보는 거 봤냐? 무슨 눈빛으로 발목을 분질러서 못 들어가게 막을 기세였다니까."
딕도 한마디 했다.
'으음.'
시몬도 이번 시위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린, 괜찮아요?"
그때 카미바레즈가 메이린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뭐가?"
"강의실에서 클라우디아랑 싸웠잖아요."
"......걘 이제 신경 안 쓰기로 했어. 빨리 올라가자."
네 사람이 3층 강의실에 들어왔다.
수업 5분 전인데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강의실에 들어찬 학생들은 이번 이슈로 열을 올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딕이 빈자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내 키젠 생활 오래 했지만 이런 적은 또 처음이네. 햐~"
"하하하! 말씀하시는 건 꼭 3학년 같아요!"
딕과 카미바레즈가 애써 분위기를 밝게 하면서 메이린의 눈치를 보았지만, 저기압인 그녀는 묵묵히 교과서를 꺼내고 노트를 펼쳤다.
잠시 후, 수업 시작 1분 전이 되자 별야의 조교들이 강의실로 들어와 강단의 뒤편에 기립했다.
조교들의 퀭한 얼굴을 보니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몬은 좀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딜 가나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힘들구나.'
별야는 타인의 눈치를 보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자신만의 확고한 교육관이 있다.
학생들은 불만이 있어도 성적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교수 앞에선 찍소리도 못했으니, 상대적으로 만만한 조교들에게 짜증과 서러움을 표출했다.
별야와 학생들 사이에서, 조교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훤했다.
"후아아아암."
얼마 기다리지 않아 별야까지 강의실에 들어왔다. 두 손을 겉옷의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강의실에 들어온 그녀는 긴장감도 없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바로 건물 아래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건만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키젠 교수의 권한을 남용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득하게나마 밖에서 시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쾅! 소리가 나게 강의실 문을 닫은 별야가 언제나처럼 교수석에 퍼질러지듯 앉아 손가락을 까닥했다.
수석조교가 앞으로 나와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쩜.'
'조교 언니 얼굴 완전 핼쑥해졌네.'
아마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듯한 수석조교였다.
수석조교는 별야에게 거듭 독의 함량을 낮추거나, 수업 때 먹는 독을 두 세트 정도로 줄여달라고 건의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결국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녀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콜번 아일."
"네!"
"딕 헤이워드."
"넵!"
그때 출석을 부르던 수석조교가 흠칫했다. 잠시 망설이던 표정으로 눈을 굴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클라우디아 멘지스."
"......."
강의실이 짙은 정적에 휩싸였다. 당연히 대답은 들려올 리가 없었다.
수석조교가 어색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반장인 제이미가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클라우디아 안 나왔습니다. 조교 선생님!"
"네, 그럼 다음으로."
이후 수석조교가 이름을 부르고, 제이미가 '안 나왔습니다'를 외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수업 분위기는 급격히 처져갔다. 마지막 한 명까지 '안 나왔습니다'를 들은 수석조교가 눈을 꾹 감으며 출석부를 덮었다.
"교, 교수님. 출석 다 불렀습니다."
"어, 그래."
무표정한 얼굴로 귀를 후비적거리고 있던 별야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이 허공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결석? 수업 거부? 아주우 지랄들을 한다. 지랄들을 해."
그녀가 유연하게 몸을 일으켜 강단으로 걸어 나왔다.
수석조교는 뒤로 물러나 조교들 곁에 섰다. 후배 조교들이 그녀에게 힘내라는 시선을 보냈다.
"오늘 수업 끝나면, 저기 밖에 있는 친구들한테 전해."
별야가 입을 벌리며 삐쭉삐쭉한 상어 이빨을 드러냈다.
"니들이 뭔 난리법석을 떨고 떠들든, 난 내 방식을 꺾을 생각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