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57화
"그 유명한 황천고래의 주재료인 데이모스의 새끼입니다! 100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의 외침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의 야유가 이어졌다.
"가장 중요한 '심장'이 빠진 빈껍데기란 건 왜 말을 안 해?"
"황천고래로 쓰지도 못하는데 100골드를 누가 지불하겠어."
"암, 암."
그때 누군가가 손을 척 들었다.
"100골드."
야유하는 건 언제고, 뒤이어 곧바로 손들이 쭉쭉 올라왔다.
"110골드."
"120골드!"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가운데, 시몬은 여전히 벤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모스를 스켈레톤으로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
그녀는 진지하게 눈을 감고 고민 중이었다.
"일단 유례가 없는 일이긴 해. 황천고래라는 완벽한 성공식을 무시하고, 뼈만 발라서 스켈레톤을 만들겠다라. 흐음."
"가장 중요한 심장을 가져가 버렸으니 어쩔 수 없죠."
물론 온전한 데이모스 새끼였다면 가격이 몇만 골드까지 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런데."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스켈레톤 버전의 데이모스, 난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시몬이 경매에 끼어들 준비를 했다.
"시세는 어느 정도 생각하시나요?"
"최소 2,000골드 정도?"
그녀가 바로 대답했다.
"만약 네가 구매할 거면, 뼈를 제외한 부산물은 우리 바닐라에 넘기는 조건으로 절반 정도는 부담해 줄 수 있어."
"정말요? 네! 그럼 그렇게 해요!"
"응. 근데 학생이 1,000골드 같은 큰돈이 있어?"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임무평가로 몰리 공주에게 받은 의뢰비 2천 골드가 있었다.
"290골드!"
"300골드!"
벌써 300골드까지 올라왔다. 경매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50골드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50골드에 구매하실 분께서는......."
"1,000골드."
주위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시몬이 팔을 들고 경매에 참전한 것이다.
"......누구야?"
"그냥 확 불러 버리네."
"고위귀족의 자제인가?"
"돈 많아 보여."
시세가 2,000골드라는 걸 알았다면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바로 승부에 들어가서 떨거지들을 쳐내고 2,000까지 달릴 생각이었다.
당연히 다른 한 손이 올라온다.
"흠흠, 1,050골드."
"1,300골드."
"크, 크흠! 1,350골드."
"1,600골드."
시몬이 빠르게 수비하자 1,350골드를 부른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들 웅성거렸다.
"원래부터 주인이 정해져 있었구만."
"독해 저거. 올려도 올려도 계속 받을 놈이야."
"들어가 보지 그래?"
"1,650 불렀다가 빼버리면 어쩌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시몬은 유일한 라이벌인 그 남자 쪽을 응시했다.
조금 당황한 듯한 남자와, 극히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몬이 시선을 마주했다.
시몬은 그의 의지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1,600골드! 더 없습니까!"
경매사는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그 또한 더 가격이 오를 걸 기대하고 있었으나 생각보다 열기가 너무 빠르게 식었다.
몇 번을 질질 끌던 그가, 결국 선언했다.
"본 상품은 1,600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나이스!'
시몬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만 같았다. 순전히 운이 좋았다. 저쪽에서 더 들어올 줄 알았는데 데이모스 말고도 달리 살 물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바닐라 측과 분담하면 800골드.
상당한 비용을 아꼈다. 돈을 다 지불해도 아직도 수중에는 1,200골드나 있다.
이내 경매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싹 흩어지고, 시몬과 벤야만 자리에 남았다.
벤야는 통신 수정구로 어딘가에 전화하고 있었다.
"곧 우리 쪽 사람들이 창고로 물건 옮기러 올 거야."
그녀가 말했다.
"창고에서 해체작업하고, 간단한 처리를 거친 뒤에 바로 서먼 스켈레톤 마법진을 새겨보자. 비용은 내가 제군을 위해 서비스로 해줄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시몬이 속으로 기쁨의 탄성을 토해내며 말했다.
"동아리 직속 후밴데 이 정돈 힘써줘야지. 대신 너도 나중에 네 밑으로 1학년들 오면 예뻐해 줘야 한다?"
"네, 그럴게요!"
당연하지만 발롯 항구에도 바닐라 측이 운영하는 창고나 업체들이 여럿 있었다.
벤야는 상황을 보러 다녀오겠다며 떠났고, 물건은 바닐라에서 인수하기 전에 경매사 측에서 안전하게 보관하기로 했다.
'시간이 남네.'
기분이 좋아진 시몬은 홀로 시장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아직 돈이 많이 남았다. 돈이 있으니까 여기 있는 물건들을 내가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모든 것에 관심이 갔다.
시몬은 시장의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 이게 여기 있었네!'
뒤늦게 상태가 온전한 폴로란의 뼈 세트를 파는 곳도 찾아냈다. 상태도 좋고 뼈의 개수도 맞았다.
'꼭 뭔가를 사고 난 뒤에 이런 물건이 보이더라.'
데이모스 스켈레톤이 실패할 때를 대비해 플랜 B로 사둘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과소비하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충동구매를 할 뻔한 시몬은 미련을 접고 다른 곳으로 걸었다.
수많은 어형 몬스터들이 얼음 케이스에 실려 있다. 거대한 문어 괴물도 있고, 바다 악어 같은 괴물도 있다.
처음엔 이런 모습이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냥 언데드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알수록 더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네크로맨서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시몬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 재밌다. 근데.'
정신없이 걷던 시몬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디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싹 사라졌다.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온 듯싶었다.
시몬은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리고 어느 한 지점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피비린내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기 온 뒤로 코가 어느 정도는 마비된 줄 알았는데, 코가 뻥 뚫려 버릴 정도로 지독했다.
'머리가 어지러워.'
엄연히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어시장'인 만큼, 이곳은 위생상태가 그렇게까지 심각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피비린내는 심해졌다.
'저기가 악취의 근원지구나.'
창고로 보이는 곳.
낡은 문이 열려 있었다.
'.......'
어쩐지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시몬이 이성에 순종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직감이 나타나 부추겼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 틀림없다고.
진짜 안 봐도 되겠냐고.
밤마다 생각날지도 모른다고.
이걸 그냥 지나친 일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냥 열린 문틈 사이로 얼른 보고 나오면 된다고.
이상했다. 알 수 없는 강한 감각에 이끌린 시몬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코가 떨어질 것 같았지만 발걸음은 계속해서 그를 창고 안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창고에서.
"......!"
산을 목격했다.
'우욱!'
시몬은 그대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것들은 '심장'이었다.
정말로 무수히 많은 심장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바닥에는 마법진이 깔려 있었는데, 밖으로 나온 지 한참은 된 것 같았지만 심장들은 두근두근 박동하듯 뛰고 있었다.
'대체 뭐야? 왜 심장만 이렇게.......'
아무리 네크로맨서들이 미쳐 있다고 해도 이건 뭔가 정상적인 그림이 아니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바로 창고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며 정신적 기절상태에서 깨어났다.
"좋은 심장을 손에 넣으셨습니다."
"그래. 황천고래 새끼를 여기서 본 건 우연이었어."
두 남자의 목소리.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시몬은 얼른 숨으러 움직였다. 잠시 후 남자들의 발소리가 멈추는 게 들렸다.
"문이 열려 있군."
"아, 제가 모시러 갈 때 잠깐 열어놨습니다. 어차피 '인식 장애 마법'도 걸려 있으니까요."
"보여도 상관은 없지만, 앞으로는 주의하게."
"하하!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내 로브를 뒤집어쓴 두 남자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시몬은 입구 쪽 천장에 칠흑으로 딱 붙어 있었다.
이들이 뒤를 돌아서 위를 올려다보면 바로 들킨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들키면 결코 '길 잘못 들었습니다'라는 말로 넘어갈 수는 없으리라.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피 냄새가 너무 강하고 이 창고 내부에 칠흑이 가득 차 있어서 상대가 네크로맨서라도 자신을 감지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물건 상태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유리케이스 안에 심장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시몬은 그동안의 정보로 대충 저 심장이 뭔지 깨달았다.
'황천고래를 구매해서 심장만 빼간 사람이 저들이구나.'
그때 이 창고의 남자가 후드를 벗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흘러나오며 빛나는 안경이 보였다.
그의 정체를 알아본 시몬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바, 발터 교수?'
그가 왜 여기에 있지?
"상태는 확실하군."
발터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준비 중인 계획은?"
"순조롭습니다. 기일에 늦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몬은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해명하겠습니다 유다 님."
유다.
또 나왔다. 저 이름.
발터가 아끼는 만년필에 적힌 이름이었다.
그동안 시몬이 관찰한 바로는, 발터는 어딜 가든 어떤 옷을 입든 항상 그 만년필을 가슴 포켓에 꽂아놓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발터와 랭거스틴에서 처음 만났을 때, 발터는 이 만년필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틀림없이 저 남자는 지금 발터를 '유다'라고 불렀다.
'발터 교수는 거짓말을 했어.'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이름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유다. 유다. 자꾸 신경이 쓰이는 이름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너무 어렴풋하다.
그때 밖에서 저벅저벅 소리가 들리더니 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들어왔다. 이번엔 여자다.
"유다 님. 카론 백작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출발하지."
발터가 후드를 눌러쓰고는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창고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혔다.
"......."
이제 그 창고에 시몬과 발터의 부하. 둘만 남겨졌다.
시몬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빡이는, 간당간당한 마나전구 하나에 의지해 상황을 파악했다.
남자는 상자를 엎어서 의자처럼 앉고는 심장들을 관리하는 마법진을 손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군단장의 힘을 쓰거나 프린스를 꺼내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누군가 이 창고에 왔다는 사실 자체도 발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천장에 붙은 시몬은 달달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천장에 등을 완전히 붙이고, 두 팔을 세워 들었다.
목표는 저기서 가장 큰 심장.
그 위에 원격으로 새로운 마법진을 그린다.
'히, 힘들어.'
이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미친 듯이 힘든데, 먼 거리에 원격으로 마법진까지 그려야 했다.
또옥. 똑.
순식간에 이마가 흥건해졌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내려와 바닥에 떨어졌다.
시몬의 입장에선 소리가 나는 것처럼 느꼈지만 다행히 남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마법진을 보수하는 중이었다.
'따, 땀이 안 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긴장하게 되고 땀이 시몬의 머리를 흠뻑 적셨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도 안 되고, 천장에 붙어 있는 지금의 상태를 깜빡해서도 안 되고, 이 상태에서 먼 거리에서 마법진을 그려야 한다.
'집중, 집중.'
시몬이 그리는 건 불량 마법진이었다. 아무런 효과도 없다.
덕지덕지 실패수식만 써놓고, 마법진이 발동하면 자기가 알아서 깨져 버리는 그런 마법진.
이런 걸 일부러 만들 날이 올지는 몰랐지만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지금!'
시몬이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듯한 강력한 소리가 창고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허, 허억! 뭐, 뭐야?"
마법진을 보수하던 남자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내 시몬이 마법진을 그린 심장에서 퍽! 소리가 들리더니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뭐가 잘못된 거야?!"
남자는 본인이 마법진을 보수하던 중에 뭔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패닉에 빠진 그는 다른 심장도 손상될까 봐 요란을 떨며 수식을 손보았다.
바로 지금이다.
괴이한 소리가 끊기기 전에, 시몬은 기민하게 천장에서 내려온 다음 문 앞으로 이동했다.
끼이익.
들킬 각오를 하고 문을 살짝 열었지만, 불량 마법진의 소음이 워낙 강한 데다가 남자는 정신적 충격에 휩싸였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진을 뜯어고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시몬은 잽싸게 문을 빠져나와 원래대로 닫았다.
그러고는 달렸다.
"허억! 헉! 허억!"
땀이 줄줄 흐르고 입에서 단내가 났다.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시몬은 지금 당장에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어, 제군아!"
얼마나 달렸을까, 마침내 경매가 진행됐던 아까 그 경매장이 보였다. 그 앞에 시몬을 찾고 있던 벤야가 보였다.
"기다려도 안 오길래 걱정했잖아! 어디 갔었어?"
벤야의 얼굴을 보자 뒤늦게 진정되며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시몬은 애써 후드를 손으로 붙잡아 깊게 얼굴을 가리고는 숨을 몇 차례 헐떡였다.
"빨리 가요. 선배님."
"으, 응?"
"작업해 주신다는 바닐라의 그 창고로요. 빨리요."
"아, 알았어. 여기서 마차 타고 좀 가야 하는데 괜찮지?"
시몬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은 그저 여기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