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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60화 (26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0화

다행스럽게도, A반 강의실에 난입한 저 학생들로 무력시위를 벌인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클라우디아가 강단에서 서명과 보이콧 참여를 호소하는 가운데, 다른 반 학생들은 강의실 출구나 벽 근처로 흩어져서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압박이 됐는지, 학생 두 명이 떠밀리듯 서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얘들아!"

반장인 제이미가 보다 못해 나섰다.

"좀 나가주면 안 될까? 우리 반 애들이 부담스러워해서."

제이미가 항의했지만, 다른 반 학생들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 빈둥거리거나 딴청을 피웠다.

"됐어 반장."

메이린이 일어났다.

"저딴 것들 신경 쓸 가치도 없어. 지들이 뭐 어쩔 건데."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서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메이린을 기점으로 눈치를 보던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뒤따랐다.

"부탁이야 얘들아!"

강단에 선 클라우디아는 더욱 절절한 음성으로 호소했다.

"별야 교수님의 수업이 비정상적이란 건 다들 인정하잖아! 그런데 왜 바꾸려고 하지 않는 거야? 우리랑 같이 행동에 나서줬으면 좋겠어!"

이때 시몬은 딕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넉살 좋게 카미바레즈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도 나가자, 카미! 오늘 점심은 좀 바삭바삭한 게 당기지 않냐?"

"아, 네! 바삭바삭한 거......."

딕은 그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말까지 걸어주며 함께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짐을 챙긴 시몬이 강의실을 나가려는 그때.

"시몬!"

강단에 있던 클라우디아가 훌쩍 뛰어와서 시몬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그동안 생각이 좀 바뀌진 않았니?"

현재 보이콧에 찬성하는 A반 학생의 비율은 30% 후반대.

클라우디아가 생각하기에, 이 비율을 50%까지 넘기려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핵심인물이 세 명 있었다.

헥토르, 제이미, 그리고 시몬.

물론 헥토르는 자기 멋대로고 남에게 설득당할 인물이 아니다.

제이미는 모든 학생들과 두루두루 친하고 다들 반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서명만은 받아낼 생각이다.

그리고 시몬.

그는 반을 넘어서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 중 하나고, 7조 전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조장은 메이린이라지만 7조의 중심은 시몬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시몬만 설득하면 나머지 세 사람도 따라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 악순환을 멈춰야 해."

클라우디아가 애원했다.

"이건 나 하나 어쩌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키젠 학생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일이야. 여기서 우리가 무너지면 앞으로도 키젠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야. 똑똑한 넌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

시몬은 조금 당황했다.

평소에 그녀와 친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아는 클라우디아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반에서 맹독학 공부를 제일 잘한다는 점만 빼면, 그냥 학급 어디에도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여학생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가 일주일 만에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본인의 어깨에 키젠 학생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굳게 믿고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방법까지 쓰고 있다.

차라리 세르네의 정신지배에 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그녀는 급격히 바뀌어 있었다.

'역시 소속감이란 게 무섭구나.'

한 명 한 명,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는 건 가볍다. 책임을 지지 않기에 가볍게 내뱉고, 생각을 바꾸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다수가 하나로서 목소리를 내고 대중에 입김을 내는 순간, 그 힘은 무궁무진하게 커진다. 어쩌면 키젠 교수를 몰아낼 정도로.

물론 커진 힘에 따라 책임감도 무거워지는 건 당연하다.

"미안해 클라우디아."

무슨 말을 해도 지금의 클라우디아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기에, 시몬은 더 말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도대체 왜 안 도와주는 거야?!"

하지만 그녀는 붙잡은 시몬의 옷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들 알잖아! 학생들에게 독을 먹이는 게 잘못됐다는 걸! 그걸 정정하는 요구는 정당하고 바른 일이란 걸! 그래서 우리가 너희들을 위해 나섰어. 근데 왜 힘을 안 보태주는 거냐고!"

시몬이 대답하지 않자 그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그렇게 성적이 중요하......."

"클라우디아."

"......아, 응."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시몬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이러고 싶지 않지?"

쿵.

클라우디아의 동공에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 물음이, 그 한마디가.

그녀의 생각을 뒤흔들었다.

왜냐하면 바로 부정하지 못했으니까.

그녀가 당황한 가운데, 보이콧에 참여한 남녀 학생들이 클라우디아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

그녀가 얼른 대답했다. 속마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았지만 더더욱 악을 지르듯 말했다.

"나는 시간을 되돌려도 몇 번이고 똑같이 싸울 거야!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교수들 눈치나 보고 행동하지 않는 너희들이 겁쟁이일 뿐이야! 알아?"

"......."

시몬은 안쓰러운 시선을 한번 보내고는 등을 돌렸다.

어느새 옷자락을 쥐고 있는 클라우디아의 손길에는 힘이 빠져 버린 뒤였다.

* * *

오후에 있던 맹독학 수업까지 무사히 마치고, 오늘 일과도 무사히 끝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시몬은 딕과 함께 남자 기숙사의 공용 목욕탕에 들어왔다.

'하아아, 정말 좋다. 문명의 이기가 이런 거구나.'

오늘은 여러모로 기분이 뒤숭숭했는데,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기분전환이 됐다.

그렇게 뜨끈한 온탕에서 몸을 노곤하게 녹인 다음, 탈의실로 나와서 잘 개어진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가져온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먼저 탈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딕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와우! 진짜 대박이야."

"뭐가?"

"방금 화장실 갔다 왔는데 보라색 똥 쌈."

시답지 않은 소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킥킥댔다.

"올라가자. 카쟌은 왔어?"

"벌써 자고 있던데."

시몬이 개운한 기분으로 공용 목욕탕을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타다다다다다다!

쿠웅! 쾅! 쾅!

난리가 났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성난 들소처럼 우르르르 복도를 달려가고 있었다.

"뭐야, 점심시간인가?"

딕이 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문이 벌컥벌컥 열리며 신발도 제대로 안 신은 학생들이 헐레벌떡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함성과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무슨 좀비 떼도 아니고."

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우리 대체 왜 좀비를 로체스트가서 돈 내고 사는 거야? 그냥 여기서 한 마리 골라잡으면 되겠네!"

계단으로 내려가던 학생들을 구경하던 시몬이 고개를 되돌렸다.

"딕, 무슨 일인지 짐작 가는 거 있어?"

"나도 몰라.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간식 뿌리는 거 아닐...... 아!"

딕이 손뼉을 짝 쳤다.

"맞다! 제인 교수님이 오늘 결투평가 상대 나온다고 했잖아!"

"아!"

두 사람도 좀비떼에 합류하여 1층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걸음을 멈춰야 했다.

시몬이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니 3층 계단에서부터 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1층 라운지 전체가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꼭~ 못하는 것들이 저래요. 결평 상대 좀 빨리 확인한다고 본인 스쿼드가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그러는 우리도 줄 서 있잖아."

딕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검지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놉! 우리는 다른 방법을 쓸 거야."

"?"

딕은 시몬을 데리고 창가로 나왔다. 아공간에서 꺼낸 밧줄을 능숙한 솜씨로 기둥에 묶은 다음, 줄을 타고 창밖으로 살살 내려갔다.

"관리원들한테 걸리면 혼나니까 뒤처리 부탁해 시몬!"

그렇게 말한 딕은 순식간에 줄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뒤처리는 맨날 내 몫이라니까.'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며 스켈레톤을 꺼냈다. 그러곤 자신도 줄을 타고 내려온 다음, 사념으로 스켈레톤에게 줄을 자를 것을 명령했다.

사락.

잘린 밧줄을 회수한 시몬이 팔을 머리 위로 들었다. 뼈로 분해된 스켈레톤이 창밖에서 내려와 다시 시몬의 아공간으로 들어왔다.

"역시 척하면 척이구만!"

딕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무사히 1층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빠르게 정원을 가로질렀다.

"근데 어디로 가?"

"옆으로 좀 돌아가서 기숙사 당직실로!"

두 사람은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기숙사 1층 프런트를 지나쳐서,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 쪽으로 빠져나왔다. 딕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당직실 게시판에도 결평 리스트가 있어. 공문으로 나오는 거 먼저 받아보나 봐."

"근데 당직실에 학생이 막 들어가도 돼?"

"용무가 있으면 상관없지! 여기서부턴 연기력이 생명이야!"

먼저 시범을 보이겠다고 말한 딕이 당직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곤 배를 붙잡고 꽤액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고 배야! 창자 끊어지겠네에에!"

연기톤으로 소리친 그가 어기적거리며 당직실 안으로 들어왔다.

"별야 교수님! 대체 수업시간에 우리한테 뭘 먹인 겁니까아! 아이고오!"

그렇게 소리치던 딕이 눈을 찡긋하며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왜 항상 부끄러움은 내 몫일까?'

시몬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뒤따라 들어왔다.

"어머, 무슨 일인가요?"

커튼 너머로 당직실 관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등을 돌린 채 분주히 뭔가를 찾고 있었다.

"아이고! 배가! 복통이......! 어쩐지 소화제를 먹으면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딕이 열연하는 사이, 시몬은 재빨리 게시판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찾았......! 응?'

게시판을 찾긴 했는데, 반갑지 않은 얼굴들이 먼저 와 있었다.

"별짓 다 한다. 쓰레기."

커다란 몸집의 헥토르가 차가운 눈으로 딕을 응시했다. 그 곁에 있는 파벌 남학생 두 명이 낄낄대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내 헥토르의 시선이 시몬 쪽으로 향했다.

"......."

"......."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파벌 남학생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헥토르! 여기 네 이름 찾았어!"

그 말을 들은 헥토르의 입가에 음침한 미소가 걸렸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우열을 가리겠다. 시몬 폴렌티아."

"누가 상댄지 보기나 하지?"

와락 인상을 구긴 헥토르가 등을 돌려 파벌 학생이 짚은 부분을 보았다.

시몬도 슬쩍 눈동자만 굴려 확인했다.

[제3경기장 - 2R 6차전]

A반 헥토르 무어 vs L반 말콤 랜돌프.

"망할!"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자, 딕이 배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아아아! 배가아아! 상위 스쿼드가 몇백 명인데에에! 그게 딱 매칭되는 걸 기대하는 게 웃겨서 배가 아프네에에!"

크흡!

풋!

파벌들조차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헥토르가 성큼성큼 시몬의 앞으로 다가왔다.

워낙 살벌한 얼굴로 다가와서 시몬도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헥토르가 툭 내뱉듯 말했다.

"승부는 3차 BMAT로 미루겠다."

그 말만 남기고 시몬을 지나쳐 걸어가는 헥토르였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어쩐지 이번 시험엔 날 노리는 사람들이 많네.'

"같이 가 헥토르!"

파벌들도 얼른 헥토르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때 관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헥토르 학생! 소독약 찾았어요!"

하지만 헥토르는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가버렸다.

잠시 후 삐걱하고 문을 연 파벌이 고개만 내민 채로 조그맣게 한마디 했다.

"이, 이젠 필요 없다네요. 하하!"

그러곤 얼른 문을 닫고 도망쳤다.

"하여간 성깔 하고는."

딕이 쯧쯧 혀를 찼다.

"쟤는 죽은 뒤에도 본인 비석에 '승부다! 시몬 폴렌티아!'라고 쓸 놈이야 진짜."

"학생들은 무슨 일로 왔어요?"

기숙사 관리원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딕이 다시 배를 부여잡고 연기를 시작했다.

"아이고오오! 배가아아! 별야 교수님 원망스럽습니다아아!"

딕이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시몬은 얼른 결투평가 상대를 확인했다.

딕의 상대를 먼저 찾아서 외운 다음, 바로 그 옆의 자신의 이름도 발견했다.

'세르네, 샤텔, 로레인만 피하면 돼. 메이린과도 가급적이면 싸우고 싶지 않은데.......'

시몬은 그런 생각을 하며 상대의 이름을 확인했다.

'아, 이런.'

그의 입가에 난감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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