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1화
다음 날.
제3 실내 경기장.
BMAT가 대중 공개시험으로 치러지는 대신, 이번 학기의 결투평가는 전부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만큼 실내 경기장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관중석에 듬성듬성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후 경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이나, 전력을 염탐하러 온 학생들, 그리고.
"하아암."
심심해서 구경 온 고학년생들이었다. 여기, 가장 뒷자리에 다리를 꼰채 앉아 있는 단발머리의 2학년 여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때 한 남학생이 대뜸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1학년?"
"넵! 딕 헤이워드라고 합니다."
딕이 화사한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굽신거렸다.
"결평 구경도 좋지만 슬슬 출출하실 시간대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는 딕의 옆에는 음료와 스낵을 잔뜩 들고 서 있는 카미바레즈가 있었다.
2학년이 인상을 구겼다.
"무슨 짓이야? 이딴 거 안 사."
"허허! 어찌 하늘 같은 선배님께 돈을 받겠습니까. 그렇게 힘들다는 키젠 2학년 커리큘럼, 힘내라는 의미에서 드리는 후배의 작은 응원이옵니다!"
"그래?"
공짜라는 말에, 그녀는 음료수를 낚아채듯 빼앗아 들었다.
"꼴에 선배 챙기는 개념은 있나 보네? 과자는 됐어, 다이어트 중이거든."
"옙! 편히 쉬십쇼!"
딕과 카미바레즈가 등을 돌리려는데 그녀가 '야'하고 다시 불렀다.
"이거 뭐 이상한 거 탄 건 아니겠지?"
"하하하! 하늘 같은 선배님께 나쁜 짓을 했다가 학교 못 다닐 일 있겠습니까! 교내 카페에서 가져온 개봉도 안 된 완전 새 물건입니다!"
"알았어. 그럼 가봐."
2학년이 빨대를 꽂으며 휙휙 손짓했다. 그렇게 딕과 카미바레즈는 몇 명의 선배들을 더 돌며 음료와 스낵을 나눠주었다.
"오케이, 다 끝났다!"
딕이 뿌듯한 표정으로 좌석에 앉으며 말했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카미! 오늘내일 점심 저녁 내가 다 쏠게!"
그녀는 이런 일이 영 어색한 듯 얼굴을 붉히며 옆자리에 앉았다.
"그보다 딕, 왜 선배님들께 음료수랑 간식을 나눠주는 거예요?"
"다 인맥이지~ 인맥작업."
딕이 거들먹거리며 팔짱을 꼈다.
"이렇게 선배들 100명한테 말 걸다가, 우연히 한두 명이라도 걸려서 친해져도 이득이야. 결평 구경하러 온 선배들은 대체로 후배들한테 너그러운 편이거든! 그리고."
딕이 카미바레즈가 든 음료수를 가리켰다. 음료수통에 스티커처럼 로고가 붙어 있었다.
"아!"
광고였다.
카테고리에서 주문만 하면, 다음 날 로체스트에 물건을 가져와 기숙사까지 운반해주는 딕의 대리거래 사업이었다.
스티커 로고는 날개 달린 샌들이었는데, 그 아래에 작게 탈라리아(Talaria)라는 브랜드명이 적혀 있었다.
"2학년들은 아직 내 사업을 잘 몰라서 틈틈이 광고 중이야."
그 말에 카미바레즈가 조그맣게 탄성을 흘렸다.
"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열심히 사는 거 같아요!"
"음? 잠깐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치는데?"
"게으르고 요령 피우는 이미지요!"
딕이 과장되게 상처받은 표정으로 가슴을 붙잡자, 카미바레즈가 소리 내어 웃었다.
"메이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걘 오전 경기가 있으니까. 아, 슬슬 시작한다!"
"저기 시몬도 보여요!"
학생들이 천천히 몸을 푸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중에는 시몬도 있었다.
심판은 앞으로 나와 룰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결투평가부터는 새로운 방호슈트를 채용합니다."
시몬을 비롯한 출전 학생들은 이미 그 새로운 방호슈트를 입고 있었다. 위아래로 깔끔한 군청단색의 옷이었는데, 강력한 흑마법이 걸려있는지 은은하게 빛이 났다.
"이전의 방호슈트는 타격을 우선 감지해 배리어가 펼쳐지고, 배리어에 가해진 충격에 따라 화면의 '배리어 게이지'가 줄어드는 방식이었습니다."
심판이 손에 단검 하나를 들더니 스스로 자신의 허벅지를 그어버렸다. 학생들이 놀란 소리를 냈다.
하지만 단검이 그의 허벅지를 가르는 순간, 피 대신 보랏빛의 마력이 피처럼 흘러나왔다. 심판의 허벅지도 멀쩡했다.
"본 슈트는 상대방의 공격을 그대로 받습니다. 통증은 물론 저주효과와 중독효과까지 전부 실제처럼 느껴집니다. 거기에 더해."
심판이 옆으로 몇 걸음 걸어보았다. 그의 다리가 절뚝거렸다.
"공격을 받으면 슈트가 출혈, 골절, 절단 등의 효과까지 재현해서 착용자에게 실제 전투를 하는 것과 같은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그런 생동감은 필요 없어!'
이 순간, 모든 학생들이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물론 착용자의 몸은 방호슈트가 찢어지지 않는 이상 멀쩡하니 안심해주시길 바랍니다. 본 슈트는 2학년부터 착용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통합 2학기인 1학년들도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실에 관중석이 떠들썩해졌다. 딕은 쯧쯧 혀를 차며 팔로 뒷머리를 받쳤다.
"참- 키젠놈들 독하다 독해. 뭐만 하면 준전시 커리큘럼이니, 통합 2학기이니 하면서 난이도를 다 올려버리네."
"아, 아프겠죠?"
카미바레즈가 겁먹은 표정을 짓자 딕이 태연하게 웃었다.
"그래 봐야 가짜 고통이야. 진짜로 베이거나 찔리는 것보다는 약하대. 어, 어?"
"왜 그러세요?"
"저기 바힐 교수님도 왔다!"
카미바레즈의 고개도 올라갔다.
과연, 관중석 끝자락에 바힐과 수석조교 체헤클이 나란히 앉는 모습이 보였다.
유명인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바힐은 슬쩍 입술에 검지를 올리고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곳곳에서 숨죽인 비명이 들렸다.
"누굴 보러 온 걸까요?"
"당연히 나지!"
딕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나 바힐 교수님 연구실도 초대받아서 가봤다니까! 청소했지만!"
"......딕은 오후 경기잖아요."
그때 심판의 외침이 들렸다.
"그럼 바로 첫 번째 경기를 준비하겠습니다. A반의 시몬 폴렌티아 학생."
이름을 불린 시몬이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심판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A반의 클라우디아 멘지스 학생."
반대편에서는 클라우디아가 걸어왔다. 시몬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클라우디아가 상대라니.'
최근에 부딪힌 일 때문에 그녀와는 좀 찜찜한 관계였다. 이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안녕, 여기서 만나게 되네."
시몬이 먼저 인사했다. 그의 얼굴엔 다소 여유가 있는 반면, 클라우디아는 눈에서 살벌한 적대감을 불태우고 있었다.
"어제오늘 온종일."
"?"
"널 어떻게 쓰러트릴지 고민했어. 메모리얼 수정구로 네 결평 영상을 수없이 돌려봤고, 밤새워 가면서 공략법을 연구했어."
시몬은 순수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럼 내 공략법을 알아낸 거야?"
"당연하지."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승률이 100%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때 심판이 두 팔을 앞으로 기울였다.
"두 학생. 악수."
시몬과 클라우디아가 다가와 손을 맞았다.
"기대할게. 좋은 경기 하자."
"아직도."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별야 교수님에 대한 믿음은 변함없니?"
시몬은 악수한 손을 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를 갈며 등을 돌렸다.
이내 두 사람이 거리를 벌리고 마주 보자 심판이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A반 시몬 폴렌티아 학생과 A반 클라우디아 멘지스 학생의 결투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관중석에서 시끌벅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시몬! 깔끔하게 잡고 와라!"
"화이티잉! 힘내세요 시몬!!"
딕과 카미바레즈의 응원하는 소리도 들렸다. 두 사람을 발견한 시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시몬과 클라우디아를 번갈아 보던 심판이 머리 위로 치켜든 팔을 내렸다.
"경기 시작!"
차악! 착!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클라우디아는 허리춤에 맨 두 개의 포션 병을 들어 올려 자신의 발아래에 떨어뜨렸다.
치이이이이이!
깨진 병 안에서 갈색의 연기가 자욱하게 새어 나와 그녀의 몸을 보이지 않게 가렸다.
시작하자마자 독가스였다.
블러드 골렘 마법진의 베이스를 등 뒤에서 붙인 시몬이 정면을 응시했다.
독은 널리 퍼지지 않고 그녀의 주위에서 맴돌며 가라앉았다. 시큰거리는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독성이 꽤 강해 보였다.
'넌 절대 못 들어올걸.'
독가스 속에서 클라우디아의 눈빛이 번뜩였다.
'네가 어떤 전투를 하는지, 어떤 흑마법을 사용하는지 완벽하게 분석했어.'
클라우디아는 시몬의 전투 스타일을 시간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누었다.
초반 - 마투.
중반 - 오버로드.
후반 - 블러드 골렘과 이어지는 오리지널 스켈레톤 기술.
'시몬의 마투는 극강이야. 접근전으로 가면 내게 승산은 없어.'
그래서 그녀는 접근전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자신의 발밑에 독을 깔았다.
다소 무리한 행동이었고, 해독제를 삼킨 그녀 본인에게도 타격은 있었지만, 시몬의 마투를 막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힌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몬은 뒷심도 상당히 강한 편이야. 후반에 블러드 골렘을 소환하면 승산이 없어. 나중엔 막 23기의 스켈레톤을 한꺼번에 컨트롤하는데 그걸 어떻게 이겨?'
접근전으로 가면 필패. 너무 시간을 길게 끌어도 필패.
그녀는 그런 정보를 머릿속에 되새기며 새로운 마법진을 펼쳤다.
'그나마 시몬이 약한 시점은 경기 중반이야. 이때 오버로드만 주의하면서, 시몬이 블러드 골렘을 소환하기 전에 쓰러트리는 게 가장 이상적이야.'
그녀가 완성된 마법진 위에 맹독포션을 올리고 발동시켰다.
<포이즌 포그(Poison Fog)>
포션을 삼킨 마법진에서 녹색의 구체가 일어나더니, 사방으로 독안개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갈색 독가스와는 달리, 포이즌 포그는 널리 퍼져 나가 순식간에 경기장 전체를 뒤덮었다.
당연히 관중석은 마력 차단망으로 연기가 나가지 못하고 경기장 안에만 자욱해졌다.
'좋아. 이러면 첫 단계는 성공.'
포이즌 포그는 맹독학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쓰는 핵심적인 흑마법이었다.
포이즌 포그를 깔아놓고 상대의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맹독술사는 방어와 카운터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게 기본이다.
시간은 언제나 맹독술사의 편이며, 상대를 심리적으로도 압박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시몬은 새로운 흑마법을 준비하며 흥미로운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역시 클라우디아는 포이즌 포그로 나오는구나.'
시몬도 1학기 때 맹독학 지망생과 결투평가를 했던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마나 스크린을 응시했다.
[시몬 폴렌티아 : 98%]
[클라우디아 멘지스 : 94%]
벌써 배리어 게이지가 깎이기 시작했다. 독 안갯속에 들어오자 목이 메고 온몸이 따끔거렸다.
그 사이에 클라우디아는 연달아 새로운 포이즌 포그를 일으켰다. 이번엔 노란색과 주황색 독연기가 추가되었다.
각각 신경계를 마비시키거나, 상대의 시야를 흔들리게 하는 독이었다. 시몬의 마투와 블러드 골렘 시전을 견제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 모습이었다.
시몬은 솔직히 감탄했다.
'괜히 A반 최고의 맹독학 학생이 아니구나.'
포이즌 포그를 3회 중첩해서 깐다고 해서 위력이 세 배가 되는 건 아니다. 독 사이에도 상성이 있고, 잘못 쓰면 어느 한쪽 독이 묻혀 버리거나, 상대의 몸속에서 작용을 방해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클라우디아의 독을 조합하는 능력이 가히 뛰어난 것 같았다.
[크흐흐! 남 실력을 감탄만 할 때냐! 소년!]
'방금 막 완성했어요. 저주는 조금 익숙하지 않아서 준비하느라 늦었네요.'
시몬이 마침내 완성한 저주를 자신의 몸에 걸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시몬 폴렌티아 : 92%]
[클라우디아 멘지스 : 94%]
어느새 배리어 게이지가 역전당했다. 독의 효과는 계속되고 있는지 슈트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가 돌아왔다가를 반복했다.
'날 완벽하게 공략했다고 했지?'
시몬은 슬쩍 미소 띤 얼굴로 클라우디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그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