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2화
타닷!
시몬이 두 발에 칠흑을 일으키며 클라우디아를 향해 돌진했다.
이에 대처하는 클라우디아의 방식은 심플했다.
다시 한번 두 개의 포션 병을 꺼내서 발밑에 깨트렸다. 그 안에서 일어난 갈색 독가스가 주위를 자욱하게 뒤덮었다.
'독으로 근접전을 원천봉쇄. 알 만해.'
상대가 펼치는 전술의 의도가 확실하다면, 대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몬은 두 종류의 소환수를 꺼냈다. 오버로드의 촉수가 막 아공간에서 나온 좀비를 붙들고 독연기를 향해 일직선으로 쭈욱 뻗어 나갔다.
터어엉!
'벽?'
오버로드의 촉수가 뭔가에 막혔다.
물론 크게 상관은 없다. 시몬은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체폭발!'
꽈아아아아앙!
시체폭발이 주위에 자욱하던 독가스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후우.'
시몬이 오른팔을 내리고 정면을 응시했다.
독연기가 걷히고 보이는 광경은, 무너진 녹색 벽의 잔해와 그 뒤로 인상을 찡그린 채 주저앉아 있는 클라우디아였다.
"크윽!"
그녀가 급히 일어나며 주위에 퍼뜨려 놓은 슬라임들을 자신의 앞으로 보냈다.
<슬라임 월>
스멀거리며 기어가던 슬라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다시 한번 클라우디아의 전면을 가리는 울퉁불퉁한 녹색의 벽을 펼쳐냈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공격은 포이즌 포그에 맡기고, 철저하게 방어 위주로 싸우는구나.'
아직까지는 전형적인 맹독학 지망생의 경기 운영이었다.
굳이 벽을 부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시몬은 발로 달려서 전면에 펼쳐진 벽을 지나왔다.
<고르고네스>
그런데 벽을 넘자마자 난데없이 뱀들이 공중에서 공격해 왔다. 클라우디아의 머리카락이 뱀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문 고유의 흑마법!'
시몬은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꺾으며 정신없이 뱀들을 피해 달렸다. 뱀들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시몬은 하는 수 없이 칠흑을 밟고 날아올랐다.
"걸렸어!"
클라우디아의 뱀은 여섯 마리가 최대가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두 가닥의 뱀으로 바뀌어 공중에 뜬 시몬을 향해 뻗어 나갔다. 공중에선 피할 수 없을 거란 계산이었다.
"아닌 것 같은데."
시몬이 씩 웃으며 팔을 뒤로 보냈다. 그러곤 허공을 붙잡아 열어젖혔다.
쩌엉! 소리와 함께 허공이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화살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아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켈레톤 아처들의 공격이었다. 클라우디아의 뱀 두 마리가 화살에 맞아 다시 머리카락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급히 칠흑방패를 펼쳐 화살비를 막는 사이 시몬은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개문!'
촤르르륵!
촤르륵!
여섯 개의 아공간이 열리며 촉수칼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클라우디아는 급히 슬라임 한 마리를 앞으로 보내서 이번에도 '슬라임 월'을 시전했다.
투콱!
콱!
오버로드의 칼날은 벽을 뚫지 못하고 막혔다.
'보통의 슬라임 월이 아냐. 클라우디아가 개조한 거네.'
그녀는 아공간에서 화살을 뿌리는 변칙 전술에는 당황했지만, 오버로드는 간단히 막아냈다.
이미 알려진 기술만큼은 방어법을 확실하게 준비한 듯했다.
시몬이 미련 없이 촉수칼날을 회수하는데, 이번엔 벽 너머로 그녀가 던지는 포션 병들이 날아왔다.
'웃차.'
시몬은 즉시 칠흑을 밟고 옆으로 달렸다. 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기 무섭게 독가스가 터져 나왔다.
쨍! 쨍! 쨍! 쨍!
클라우디아가 던지고, 시몬이 그것을 피하는 전투 양상이 반복되었다. 슬라임 월 너머에 몸을 숨긴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숨을 골랐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돼. 조금만 더 버티면......!'
지금 뿌려져 있는 포이즌 포그 중에서는 '신경 마비' 효과가 있다.
이제 곧 시몬의 움직임이 더뎌질 테고, 그때 총공격을 퍼붓는 게 그녀가 생각한 승리 공식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 이후로 시몬과 몇 번이고 공방을 주고받으며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움직임은 전혀 굼떠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왜 마비가 안 듣는 거지?'
클라우디아는 초조해졌다. 이대로 시간이 질질 끌리다가, 시몬이 블러드 골렘을 완성하기라도 하면 상황이 너무나 어려워진다.
시몬도 맹렬하게 몰아붙이던 처음과는 달리, 일정 거리를 두고 클라우디아의 공격을 피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마법진 시전에 힘을 실어서 블러드 골렘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언제까지 마비만 기다릴 순 없어.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해!'
그녀가 스스로 '슬라임 월'을 허물고 공격에 박차를 가하려는 순간.
"......!"
목격하고 말았다.
시몬이 쭉 뻗은 오른팔 끝에 들려있는 '골렘의 핵'을. 넘실거리는 에메랄드빛 연기가 핵을 휘감고 있었다.
"늦었어. 클라우디아."
시몬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등 뒤로 초대형 아공간을 열고는, 23기의 스켈레톤을 전장으로 불러냈다.
"반격할게."
시몬이 골렘의 핵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청녹색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가 스켈레톤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설마!'
그 모습을 본 클라우디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몇 번이고 메모리얼 수정구로 영상을 돌려보면서 저 흑마법의 파훼법을 연구했지만, 저 흑마법만큼은 자신이 이길 가능성이 전무했다.
'......막아야 해!'
그녀는 공포에 다리를 떨면서도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꺼낸 건 커다란 두 개의 포션 케이스였다.
'저 기술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해!'
마음이 급했다. 바로 정면에 대형 마법진을 펼치고, 양손에 든 케이스의 입구를 개봉했다. 그 안에는 폭죽처럼 생긴 독성포션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케이스를 들어 올려 마법진에 딱 붙이자, 포션들이 꿀렁거리며 마법진으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마법진의 테두리에 불이 들어왔다.
지금의 클라우디아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기.
<맹독다발>
투콰콰콰콰콰콰콰!
마법진에서 독성구체들이 포성과 함께 날아가 스켈레톤들을 폭격했다.
퍼버버버벙!
콰콰콰콰!
경기장이 폭발로 가득 채워졌다. 본래는 신경독에 당해 움직임이 더뎌진 시몬을 마무리할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아낄 때가 아니었다.
"하아, 하아."
절그럭.
쿵!
그녀가 양손에 든 케이스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노랗고 검고 푸른 연기가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 막았어.'
잠시 후 연기 속에서 흐릿하지만 스켈레톤들이 무너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감격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특례 1번의 최고 기술을......!'
그때였다. 인기척을 느낀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돌리자, 시몬이 옆으로 우회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도 포기 안 한 거야?'
피차 최고의 무기를 소모한 건 마찬가지, 이제 포이즌 포그를 깔아둔 이쪽이 더 유리하다.
저 마지막 발악만 막으면 된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더니 여섯 마리의 뱀으로 변해서 뻗어 나갔다. 시몬이 스탭을 밟으며 피하다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뱀을 피해 칠흑을 밟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그녀와의 거리가 좁아졌다.
"흐읍!"
그녀가 모든 칠흑을 끌어올렸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뱀들 외에, 또 머리카락이 여섯 마리의 뱀으로 바뀌어 공중에서 다가오는 시몬을 향해 날아갔다.
'해냈어!'
그녀가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터업.
텁.
갑자기 시몬의 몸에서 에메랄드빛 연기가 흘러나왔다.
'어?'
그것은 사람의 손처럼 변해서 시몬의 목덜미와 팔꿈치를 물려는 뱀의 목을 붙잡아 옆으로 꺾어버렸다. 여섯 개의 뱀들이 모두 연기에 붙잡혔다.
"속여서 미안해 클라우디아."
시몬은 처음부터 블러드 골렘은 쓸 생각도 없었다. 아까 보여준 건 그녀의 힘을 낭비시키기 위한 한 수.
사실 원래 클라우드의 사용법은 이거였다. 그녀의 뱀을 붙잡아 돌진을 위한 공간을 열어젖힌 시몬이 그녀의 발 앞까지 내려왔다.
"!"
그녀가 뻣뻣하게 팔을 올리며 가드 자세를 취했지만, 시몬은 공격하지 않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 즉시 '슬라임 월'이 솟구쳐서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처음부터 날 속인 거야?!"
"맞아. 그건 그냥 보여주기식이었어."
블러드 골렘을 완전히 완성한 뒤에 그 힘으로 스켈레톤을 입혀야 '친위대'가 만들어진다.
방금은 그냥 클라우드 연기로 스켈레톤을 휘감는 척만 했다가 그녀가 퍼붓는 화력을 보고는 모든 클라우드를 회수한 후 옆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그녀는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내렸다. 그녀의 그림자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것은 벽 너머로 이어져 있었다.
'저주?!'
그녀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그냥 물러난 게 아니라 저주를 걸고 뒤로 물러난 거였다.
"내가 이런 저주를 쓴다는 건 분석에선 없었지?"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바힐에게 배운 저주를 발동시켰다.
<인돌렌스(Indolence)>
그간 시몬의 몸에 쌓여있던 통증을 비롯한 모든 현상들이 두 사람에게 분담되었다. 물론.
'우, 움직일 수가 없어!'
혼란 효과와,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신경 마비 효과까지도 같이.
그녀의 정신이 흔들리며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던 슬라임 월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당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시뻘게진 그녀가 낑낑거리며 애를 썼다.
지금까지 쌓여온 모든 신경 마비 효과가 동시에 작용하는 바람에 손가락 하나도 꿈쩍할 수 없었다. 거기에 혼란 효과로 머리가 멀미 난 것처럼 돌아가서 흑마법도 쓸 수 없다.
물론 움직이지 못하는 건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제 뭐 어쩌려고?"
클라우디아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치킨런이야? 멘탈 잡고 먼저 흑마법을 쓰는 쪽이 승리?"
"아니."
시몬이 미소 지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계산이었다.
"이 상황에서 맹독술사가 칠흑으로 마법진을 쌓아 올리는 게 빠를까? 아니면."
우웅! 우우우웅!
"소환술사가 그냥 사념으로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빠를까?"
촤르륵!
촤르르르르륵!
여섯 개의 촉수칼날들이 일제히 뻗어나가 그녀의 몸을 밀어내 뒤편의 경기장 벽에 처박아 넣었다.
콰콰콰콰쾅!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며, 경기장 끝에 처박힌 그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보랏빛 배리어의 잔여물이 대량으로 쏟아졌다.
스릉.
이내 가장 긴 칼날 하나가 그녀의 목덜미를 겨누자. 그녀가 움찔하며 턱을 세웠다.
"항복해."
시몬이 차갑게 말했다.
"굳이 더 아플 필요는 없잖아."
"크윽!"
그녀가 표독한 눈으로 시몬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오버로드에 붙잡혀 버린 이상, 여기서 뭘 어쩔 방법이 없었다.
분해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항...... 복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심판이 즉시 팔을 들어 올렸다.
"경기 종료! 승자는 시몬 폴렌티아 학생입니다!"
곳곳에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승리를 확정 지은 시몬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오버로드를 회수해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잘했어요 시모온!!"
"역쉬! 경기 깔끔했다!"
제일 앞자리에 앉은 카미바레즈와 딕이 열렬하게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도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관중석 끝에 누구보다 기뻐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좀비처럼 허리를 비틀고 앞머리를 내린 채 끅끅거리는 바힐의 얼굴은 쾌락에 젖은 괴물처럼 적나라했다.
"봤습니까? 지금 봤습니까 체헤클! 시몬이 저주로 이겼습니다. 내가 가르쳐 준 저주로!"
"......아, 예. 축하드려요."
체헤클이 주위의 눈치를 보며 얼른 바힐을 잡아끌었다.
"가요. 그리고 쪽팔리니까 제발 입 좀 다물어요."
"역시 내 진심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저주로 이기다니! 저주로! 당신은 역시 저주를 전공해야 합니다! 시몬 폴렌티아!!"
한편 시몬의 승리를 선언한 심판은 관리원 하수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10분 휴식 후, 바로 다음 경기를 속행하겠습니다."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은 클라우디아가 힐끔 시몬의 등을 응시했다.
'참패야.'
시몬을 철저하게 공략했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시몬은 그것마저 자신의 승리에 이용했고, 시몬을 공략하긴커녕 오히려 자신이 역으로 그에게 공략당했다.
설마 맹독학의 마비효과를 역이용해서 이길 줄이야.
'......진짜 천재는 천재구나.'
시몬의 경기 운영은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때 시몬이 그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