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63화 (26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3화

시몬이 쓰러진 클라우디아에게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

그녀는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의 마비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지, 엉덩이를 들자마자 볼품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대기실까지 부축해 줄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냅둬."

하지만 시몬은 그냥 두지 않았다.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하고는,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었다. 얼마나 힘이 센지 시몬이 움직이자 그녀의 걸음도 강제로 옮겨졌다.

"......."

클라우디아는 퀭한 눈으로 옆을 보았다.

경기장은 독연기를 빼내고 바닥을 닦느라 난리였다. 얼마나 바쁜지 다른 하수인들은 두 사람을 챙길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경기장을 떠나 학생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로 들어왔다.

클라우디아가 시몬을 보았다. 나름 아끼는 마비약을 썼는데도, 성큼성큼 잘만 걷는 그가 어쩐지 얄미워졌다.

시몬이 이렇게 멀쩡한 건 아마.

"......별야 교수님의 독 먹는 수업."

클라우디아가 소리 내어 말했다.

"마비에 걸려도 네가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 그 수업 덕분이겠지?"

잠시 답을 망설이던 시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가 없진 않다고 봐."

"......하하."

그녀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치. 네프티스 님이 데려온 사람이잖아, 다 이유가 있었겠지. 쓸데없는 수업일 리가 없어."

혼자서 중얼중얼하던 클라우디아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있지, 뼈에 사무치더라."

"뭐가?"

"이틀 전에 네가 한 말 말이야. 사실은,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녀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이러고 싶지 않지? 라고 물었잖아."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대답할 수 없어."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개인이 아니라 다수를 대표하는 입장이야. 보이콧은 내가 주도했어. 내가 포기해 버리면 지금까지 날 믿고 따라와 준 애들을 배신하는 꼴이 돼."

대기실 문에 도착했다. 시몬이 한 손으로 문을 연 다음, 그녀를 부축해서 소파에 앉혔다.

"푹 쉬어."

"......."

시몬이 등을 돌려 나가려는데.

"시몬."

클라우디아가 그를 불러세웠다.

"내가 보이콧을 주도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

시몬이 등을 돌려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그건 사실 시몬도 무척이나 궁금했던 이야기였다.

"뭔데?"

"별야 교수님이......."

그녀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우리를 안 봐주시니까......."

"응?"

"그렇잖아. 다른 교수님들이 자기 과목 지망생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본 적 있어? 특훈도 시켜주고, 이런저런 힌트도 주고. 교수님들도 본인의 실적과 연결되는 인재들이 떨어지길 원치 않으니까. 바힐 교수님도, 발터 교수님도, 홍펭 교수님도 다들 그렇게 해. 근데 왜......."

그녀의 목소리가 비탄에 잠겼다.

"별야 교수님은 왜 우리를 봐주시지 않는 거야?"

"......."

"교수님은 모두에게 평등해. 모두에게 똑같이 항체를 기르는 수업을 시켜. 경쟁자들의 몸에 항체가 길러지면 우리 맹독학 애들에게 불리할 텐데, 우리가 2학년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더 떨어질 텐데. 왜? 왜 교수님은 우릴 예뻐해 주시긴커녕 더 힘들게 하는 거야?"

그녀가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 나도 알아! 나 이기적이고 못된 년인 거! 근데 키젠은 무한 경쟁체계잖아! 내가, 아니, 우리가 전공 교수한테 조금의 편애를 기대하는 게 그렇게 손가락질받을 만큼 나쁜 짓이니?"

시몬이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급기야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져 갔다.

"이번 2차 BMAT에서 맹독학 애들은 전부 순위가 급락했어! 메이린 그 기지배가 9위에서 220위로 떨어졌다면서 난리 쳤지? 난 35위에서 700위대로 떨어졌어! 키젠에 와서 처음으로 퇴학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데, 그런데 별야 교수님은 그다음 날에도......!"

그녀의 입에서 울음이 섞여 나왔다.

"그냥! 독만 먹이시잖아!!"

"......."

"이 정도면 내가 서운함을 느껴도 되는 거 아니니? 나도 교수님이랑 싸우기 싫었어!"

결국 그녀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다.

시몬은 뭐라 위로할 수도, 타이르거나 달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그녀의 감정 상태는 너무나 격해 있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별야 교수님도......."

시몬은 여러 말들을 입안에서 굴리다가 결국 말꼬리를 늘렸다.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신 걸 거야."

그녀가 훌쩍훌쩍 소매로 눈가를 닦아냈다. 하지만 닦아낸 자리에 또 눈물이 쏟아졌다.

"......미안. 괜히 상관도 없는 너한테 이상한 한탄만 늘어놔서."

"괜찮아."

"나 지금 너무 주책이네. 혼자 있고 싶은데."

"그래, 푹 쉬어."

달칵.

시몬이 대기실을 나가서 문을 닫아주었다.

그러곤 천장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 * *

그날 저녁.

시몬은 별야의 연구실을 찾았다.

"교수님, 시몬입니다."

"어어, 들어와."

문을 열자, 시몬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사람 방이야? 쓰레기장이야?'

여러 의미에서 놀라운 광경이었다.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이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고, 벽면이나 가구들은 그녀의 몸에서 나온 독으로 녹슬어 있었다.

그 난장판 가운데에 떡 하니 누워 있는 여자가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네."

별야가 손을 휙휙 흔들며 웃어 보였다. 시몬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와서 앉아."

"감사합...... 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보니 바닥에 묻어 있던 끈끈이 같은 걸 밟아버렸다.

아무리 힘을 써도 떨어지지 않았다.

"푸하하하하하!"

시몬이 끙끙대는 모습을 본 별야는 배를 잡고 신랄하게 웃어댔다.

시몬이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우, 웃지만 마시고 좀 도와주세요 교수님!"

"이거 써봐."

그녀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슥슥 후비더니 정체를 모를 파란 사각형의 물질을 휙 던져주었다.

'윽.'

시몬은 끈끈이가 붙지 않은 다른 발로 사격형의 물질을 슬슬 밀어 넣었다. 이내 그 파란 덩어리와 끈끈이가 만나자 거짓말처럼 끈끈이가 녹아 없어졌다.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정리 좀 하고 사시면 안 될까요? 홍펭 교수님이 봤으면 난리 났을 것 같은데."

"내 방을 어떻게 쓰든 내 맘이야!"

이내 두 사람이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았다. 별야가 턱을 괴며 미소 지었다.

"고민스러운 표정이네. BMAT 준비하다가 뭔가 막히는 게 있나 봐? 뭐든 말해. 한번은 무조건 도와줄게."

"아, 실은."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 3차 BMAT는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오, 그래? 축하할 일이네. 그럼 왜 날 찾아왔는데?"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시몬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독을 먹는 수업이 끝난 뒤에는, 어떤 수업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그 말을 들은 그녀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게 왜 궁금하지?"

"오늘 결투평가에서 클라우디아를 만났습니다."

시몬은 클라우디아와의 일화를 설명했다. 물론 그녀의 개인적인 사정이었던 보이콧을 벌인 이유 등은 생략하고, 최대한 클라우디아의 입장을 대변했다.

별야는 시큰둥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었다.

"걔들이 너한테 부탁하든?"

"아뇨."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순전히 제 결정입니다."

"......."

별야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긴 정적이 흘렀다.

시몬이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래, 좋아."

마침내 그녀의 입이 떨어졌다.

"내 오리지널 맹독학 기술을 가르칠 생각이었어. 독에 적응시키는 건 그 준비단계에 불과해."

시몬의 눈이 커졌다. 역시 별야에겐 계획이 있었다.

"그 말씀을 학생들에게 미리 해주셨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있어."

"아, 넵."

"굶주린 동물들이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지. 그럼 사과가 '안녕하셔유 저 몇 시 몇 분 몇 초에 나무에서 따악 떨어질 테니 바로 그때 대기 타셨다가 잡아 잡수셔유.' 이렇게 통보하고 떨어지냐?"

"아, 아뇨."

별야가 짜증스럽게 두 다리를 들어 탕! 탕!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래. 아니잖아 X발! 여기 귀족 애새끼들은 콧대만 더럽게 높아서, 대놓고 나한테 브리핑을 요구한다니까? 선생인 내가 굽신굽신 고개 숙여가면서 지들한테 뭘 가르칠지 설명해줘야 하냐? 그걸 학생한테 평가받고 검사받아야 해?"

아무래도 별야 또한 꾹꾹 쌓인 감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호,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시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 로크섬에 들어갔을 때, 장로들이 날 불렀어."

그녀가 이를 갈았다.

"그 꽉 막힌 새끼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니 하나 배웠다. 백날천날 설명해 줘 봐야 결국 또 어딘가 꼬투리 잡히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당할 뿐이란 걸. 장로들이나 저 수업거부 하는 애새끼들이나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안 들 뿐이라고!"

'......으음.'

생각보다 감정의 골이 깊다고 생각하며, 시몬이 입을 열었다.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교수님,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클라우디아의 예도 있어요. 학생들은 교수님의 생각과 교육관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불만이 생긴 거예요. 이 부분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 됐어!"

그녀가 확 소리 질렀다.

"나도, 걔들도, 각자의 방식을 선택했어. 그리고 선택에 대한 대가는 피차 치러야지. 초원에서는 살아남는 방법을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아!"

"그래도."

시몬이 진중하게 말했다.

"여긴 초원이 아니잖아요."

별야가 으르렁거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키젠에선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학생들은 키젠의 문화에 익숙해졌고, 왜 다른 교수들이 해주는 걸 우리 교수님은 안 해주실까. 하고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애들이니까요."

라고 17살의 시몬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교수님이 한 번만 학생들과 대화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내가 그 웃기지도 않는 수업거부 운동에 숙이고 들어가라고?"

"아뇨."

시몬이 미소 지었다.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죠."

* * *

시몬이 떠나고, 별야는 연구실에 남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피차 지금 필요한 건 대화예요. 간단히 독 먹기 수업 이후의 어떤 오리지널을 가르쳐 주실 건지. 그것만 보여주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린다.

"나 참, 답지 않게 괜한 약속을 해서."

똑똑똑.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수석입니다."

"어어, 들어와."

퀭한 얼굴의 맹독학 수석조교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석아."

"예, 교수님!"

"조교들 동원해서 지금 당장 보이콧하던 애들 다 불러 모아봐. 안 온단 새끼들은 그냥 까버려도 돼."

또 무슨 괴상한 짓을 할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수석조교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교, 교수니임!!"

"아이 씨, 뭐야.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아, 죄송합니다! 너무 기뻐서...... 그런데 용무는 뭐라고 할까요?"

별야가 음모를 꾸미는 악당처럼 히죽 웃었다.

"그냥 내가 할 말이 있다고만 말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