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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65화 (26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5화

와슈번 산맥에 사는 사람들은, 산 정상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고성'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느니.

세상을 뒤엎을 끔찍할 괴물들이 가득하다느니.

그 고성의 주인은 산으로 숨어든 아름다운 여성이라느니.

하지만 소문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앞선 두 가지는 맞고, 마지막 하나는 틀렸다.

증기가 뿌옇게 일어나는 유황탕 안에는,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몸을 담그고 있었다.

하얀 피부, 얇은 몸, 그리고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본다면 잠시 여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는 틀림없는 사내였다.

그가 고개를 젖히고 멍하니 고성의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때, 뚜벅뚜벅하고 홀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매그너스 님."

다름 아닌 집사옷을 입은 좀비, 에이션트 언데트 특유의 강력한 칠흑이 몸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매그너스가 뒤를 돌아보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크섬 출입은?"

"외부강사 건, 본부보고 건, 그리고 BMAT 시험 참관까지 막혔습니다. 이 정도면......."

"죽음의 마녀가 관여했나."

매그너스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면도가 잘된 깨끗한 턱을 쓸었다.

"딸을 무척이나 아끼는 모양이야."

"탈라제를 잃었다는 사실로, 키젠 본부에 정식으로 항의를 넣는 건 어떻겠습니까?"

좀비집사가 외눈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물론 우리도 로크섬에 무단으로 전력을 보낸 부분에선 문책을 받겠지만......."

"항의? 나더러 구질구질하게 일러바치라고?"

매그너스가 날카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딴 건 내 방식이 아니야! 뭣보다 그쪽은 다 한통속이다. 장차 그 로레인이란 꼬맹이가 본부까지 다스릴지도 모르는데 굳이 밉보일 짓을 하겠나?"

"그, 그렇군요. 실언했습니다."

"물건은?"

좀비집사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부하들이 쇠사슬로 결박당한 네 마리의 몬스터를 끌고 왔다.

"이게 그것들이냐?"

"예."

4급 위험도의 몬스터 '하드다일'.

생김새는 바다악어를 연상케 하는 이 개체들은 모두 쇠사슬로 몇 겹이나 입을 묶어놓았지만,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또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곧 키젠에서 벌어질 BMAT 시험 장소에 하드다일의 서식지도 있었습니다. 흔적이 남지 않는 저주를 불어넣었으니 수상한 점을 찾지 못할 겁니다."

쏴아아아.

매그너스가 유황천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에 허연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그래, 부하가 죽었는데 빚은 제대로 갚아줘야지."

그가 젖은 몸 위에 가운을 걸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알라제. 있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이 꿈틀거리더니 살덩이 같은 언데드가 불쑥 튀어나왔다.

[알라제. 탈라제의 원수. 보복해야 한다.]

"알아, 알아. 탈라제의 원수는 확실히 해주지. 네 살을 조금 떼어내서 저 몬스터에게 먹여."

[군단장의 명령을 따르겠다.]

가운 차림의 매그너스가 고성의 왕좌에 앉아 와인 잔을 들었다.

"그럼, 조용히 소식을 기다려 볼까."

* * *

드디어 결전의 날.

제3차 BMAT의 당일 아침이 밝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키젠 교정에 쭉 깔린 대형 스테이지에서, 확성 수정구를 든 화려한 복장의 남자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스테이지 아래에는 무수한 관중들이 보였다.

"이번 3차 BMAT 참관에 찾아와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3차 시험도 사회를 맡게 된 콘라드 하야본입니다!"

관중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왔다. 사회자는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아하하! 반갑습니다! 아니, 익숙한 얼굴들도 있군요. 오우, 어머님 또 오셨네요! 학부모라고 해도 참관 당첨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들었는데, 이야~ 운수대통이십니다! 하하하!"

적극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린 사회자는 품에서 대본이 적힌 카드를 꺼냈다.

"자! 이번 3차 BMAT 참관에서 저를 도와 해설을 맡아주실 또 한 분의 키젠 교수님을 모시겠습니다!"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사회자 본인은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별야 교수는 안 돼. 별야 교수는 안 돼. 제발 그 여자만큼은......!'

사회자는 간절히 마음속으로 빌며 카드를 바라보았다.

"!"

그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맘 같아선 기쁨의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프로답게 감정을 절제하고는 말했다.

"상당한 거물께서 해설로 와주셨습니다! 소개하겠습니다! 키젠 교정의 이인자이자, 현 1학년 A반을 담당하시는 제인 올리비아 부총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부총장이라는 말에 관중들이 발칵 뒤집혔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스테이지를 타고 번졌다. 절제된 느낌의 단발과 냉기가 넘실거리는 듯한 차가운 인상의 여인이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드디어 별야 교수에게서 벗어났다!'

사회자가 신이 난 얼굴로 달려갔다.

"부총장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핫하하!"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듯, 사회자가 정중하게 자세를 낮춰 안내했지만 제인은 쌩 지나쳐 버렸다. 외면당해버린 사회자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몸을 바로 세웠다.

무대로 중앙으로 올라온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들었다. 관중들은 과연 키젠의 부총장이 무슨 이야기를 해줄지 기대하며 고개를 들고 있었다.

"조명팀."

그게 그녀의 첫 마디였다.

"측면의 마나 스크린이 오른쪽으로 15도 치우쳐 있습니다. 햇빛 때문에 왼편에 앉은 관객분들이 불편해하십니다."

그 말에 조명팀에 속한 하수인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음량팀. 내가 확성 수정구 완충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까지 지적해야 하는 겁니까."

"자리 배치부터 다시 해야겠네요."

"불량이던 텅패드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학생들의 안전이 달린 문젭니다. 기획팀 선임자들 앞으로."

선임자들이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올라오자, 제인은 확성 수정구를 끄고는 육성으로 탈탈 털기 시작했다. 워낙 빈틈없는 논리로 질책하니 입 한번 뻥긋할 수 없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관중들은 갑자기 벌어진 일련의 상황에 당황했다.

"부, 부총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녀에게 불려온 조명 담당자가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 제인이 차갑게 질책했다.

"전문가 맞습니까? 마나 조명 세팅을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정한 겁니까?"

"소, 소, 송구합니다만! 1차랑 2차 시험에도 이렇게 세팅했는......."

그녀의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과거의 똑같은 잘못을 현재도 답습해야 하는 이유가, 당신들의 번거로움 외에 무엇이 더 있는지 낱낱이 말해보십시오."

"죄, 죄송합니다!"

"행사 끝나고 싹 다 본부로 오십시오. 경위서는 미리 써놓는 게 좋을 겁니다."

제인은 본인이 직접 지휘해서 기어코 여러 배치와 설정을 바꿨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사회자는 자신도 모르게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찍소리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었다.

'......이, 이번엔 완벽주의자냐.'

키젠은 어째 정상인이 없는 것 같았다.

"주최 측의 미흡함으로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인이 관중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사실 관중들은 뭐가 불편한지 몰랐지만 그녀의 기세가 워낙에 흉흉했기에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결국 경직된 분위기를 푸는 건 사회자의 몫이었다.

"흠흠! 하하하!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제인 부총장님을 모시겠......!"

"저는 1학년 교수자격으로 해설하는 겁니다. 교수 직함으로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제인 교수님을 모시겠습니다!"

짝짝짝짝!

관중들도 다소 얼이 빠진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들고 무척이나 근엄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교의 행사에 참석해주신 학부모, 내빈 여러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본교는 엘리트 네크로맨서 양성 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거기에 연설까지.

제인은 뭐 하나 그냥 지나치는 게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연설이 끝나자 사회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자, 자, 제인 교수님! 이제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안 그래도 방송 하수인이 사회자에게 눈치를 엄청 주고 있었다. 계속 급박하게 끊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자기도 부총장 앞에선 꼼짝도 못 하던 주제에.'

그렇게 제인을 해설석에 앉히는 데 성공한 사회자는 얼른 행사를 진행했다. 그녀가 세팅된 테이블이 마음에 안 드는 듯 관계자를 부르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선수를 쳤다.

"자, 그럼 교수님! 이번 3차 BMAT 시험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메인 스크린을 띄워주세요."

그녀의 지시에 메인 스크린이 드넓은 바다의 모습을 비추었다.

"이번 3차 시험의 테마는 바다입니다."

웅성 웅성 웅성.

학생들과는 달리, 관중들은 처음 들은 이야기였기에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아시다시피, 네크로맨서에게 바다는 최악의 자연조건입니다."

제인의 똑 부러지는 음성이 교정에 울려 퍼졌다.

"인간은 원하는 전장과 환경을 고를 수 없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싸울 수 있어야 하죠. 우리가 시험 무대로 바다를 택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아-! 정말 놀랍습니다! 바다에서의 시험이라니! 그럼 이번 시험의 평가 항목은 학생들의 수영 실력이겠군요?"

나름 분위기를 풀기 위한 회심의 조크였건만, 제인은 벌레 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사회자 본인도 믿기지 않지만, 별야 교수가 그리워질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시험에서는 낯설고 힘든 환경에서 학생들의 대응력과 적응력, 그리고 창의성을 평가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험 룰을 내빈 여러분께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인 스크린이 팟! 하고 바뀌었다. 그녀가 한번 털어주니 하수인들의 군기가 바짝 잡힌 모습이었다.

"화면을 봐주십시오."

메인 스크린이 비추는 건 바다 밑바닥이었다.

"뭔가 이상한 점을 찾으셨나요?"

제인의 물음에 관중들이 눈을 크게 뜨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뿌옇고 이끼 낀 평범한 바다 밑바닥이었다. 찾았다는 사람도 있고 못 찾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뚫어져라 응시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화면 더 키워주세요."

그녀의 말에 화면이 특정 부분을 확 잡아주었다.

밑바닥에 동전 하나가 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흙색과 비슷해 구분도 쉽지 않았다.

"이게 시험에서 통용되는 '코인'입니다. 이번 BMAT의 합격 커트라인은 간단합니다. 바다 밑바닥에 있는 열 개의 코인을 모으는 겁니다."

"바, 바다 밑바닥이요?!"

지금 이 순간, 제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전혀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보물찾기 같은 거군요!"

"......비유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두죠. 그리고 이번 시험에서는 학생 간의 교전이 허용됩니다."

시험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수영복 위에 방호조끼를 입게 된다. 정신을 잃거나 배리어 게이지가 0이 되면 그대로 아웃. 모든 코인을 잃어버리고 안전지대로 텔레포트된다.

아웃된 학생은 30분이 지난 후에 다시 배리어 게이지 100%로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럴 수가! 그렇담 이번 시험은 정말로 경쟁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교수님!"

차분한 제인과는 반대로, 열정적인 사회자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바다 밑바닥을 뒤지는 학생들과! 그 학생들을 노리는 학생들로 나누어지겠군요! 그렇다면 코인 열 개를 회수한 학생은 그대로 경기가 끝나나요?"

"그럴 리가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메인 스크린의 화면이 수십 가지로 나뉘었다.

"저게 다 뭐야?"

"모, 몬스터?"

수십 개의 다리를 휘두르는 문어 몬스터, 전기를 뿜어대는 초대형 가오리 같은 몬스터, 바다 밑바닥에서 입을 뻐끔거리는 심해어 몬스터까지.

"코인 10개 수집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최소조건입니다. 시험이 진행되는 4시간 동안 열 개를 모으지 못한 학생은 전부 탈락합니다. 코인을 다 모은 학생은 이제 '포인트'를 쌓으러 더 넓은 바다로 나가야 하죠."

반대편 화면에는 몬스터의 그림과 포인트 수치가 나와 있었다.

"몬스터가 제거되면, 그들이 팔에 차고 있는 텅패드가 포인트를 기록합니다. 시험이 끝나기 전에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한 학생이 1등이 되겠죠."

"아하!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코인 모으기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고, 전체 순위는 바다 몬스터 사냥으로 정해지는 거군요! 역시 키젠입니다! 정말 쉬운 시험이 없네요!"

거기까지 말한 사회자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만요! 만약 코인 열 개를 다 모은 학생이 몬스터를 잡는 도중에 다른 학생들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게 되면......."

"네, 지금까지 모은 모든 코인과 포인트가 증발됩니다. 처음으로 돌아와 코인 줍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허어! 엄청난 하이리스크군요!"

두 사람이 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관중석에서 '와아아아아!' 하는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모든 화면에 전교생 847명의 학생들이 바다 위의 스타트라인에 서 있는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시작할 기세였다.

"힘내라 엘리사! 드레스덴의 희망!!"

"가라! 얀젠! 드레스덴에 질 수는 없어!"

"1등은 이번에도 샤텔 마에르다!"

"상아탑 자매 화이팅!"

특히 스타급 학생들을 위주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다들 즐길 준비가 된 모양이었다. 사회자도 벌떡 일어났다.

"역시 딱딱한 룰 이야기보다는 사람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해야죠! 그럼 교수님! 이번 바다 테마의 3차 BMAT에서 주목해 볼 만한 학생이 누가 있을까요?"

그녀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변수는 많지만 수중전에 뛰어난 학생들이 아무래도 유리할 겁니다. 유령선을 모는 엘리사, 설원성주의 라헤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화면 중앙에 쭉쭉 스트레칭을 하며 본아머를 점검하는 소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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