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6화
시험 시작 10분 전.
출렁출렁.
시몬은 바다 위의 부유물 발판 위에 대기 중이었다.
발판은 슬라임 부산물로 만든 듯 평평하고 물에 잘 뜨는 재질이었다. 한 발판마다 2~30명가량의 학생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다들 키젠에서 제공한 잠수복 위에 방호조끼를 입고 팔에는 텅패드를 찬 모습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부유물들이 무수히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즉, 이번에는 1학년 전체 847명이 한꺼번에 치르는 시험이었다.
"시모오온! 나 여깄다!"
한참을 떨어진 발판에서 딕이 팔을 흔들며 소리치는 모습이 보인다. 시몬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좋아. 집중하자.'
시몬은 손목에 착용한 텅패드를 점검해 보았다.
'섬 생존 평가 때 찼던 거랑은 디자인이 달라졌네.'
몬스터 사냥으로 인한 포인트는 텅패드가 원격으로 계산해 본부로 데이터를 넘겨 집계한다. 현재 포인트와 전체 등수도 이 텅패드로 확인이 가능했다. 시몬은 경기 전에 여러 기능을 점검해 보았다.
다들 긴장했는지 주위에는 한마디도 없었다. 묵묵히 몸을 풀거나, 심호흡하며 마인드 컨트롤 중이었다.
[크하하! 긴장했나? 소년.]
피어의 목소리에 시몬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아요. 아직 긴장할 때는 아니라.'
우우우웅!
그때 하늘에서 음성 마법진이 펼쳐지며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다리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3차 '종합 흑마법 능력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10.]
[9.]
.......
학생들이 힘차게 카운트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6.]
[5.]
스크린으로 지켜보는 로크섬의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분 국적 할 것 없이 모두가 숫자를 외치고 있었다.
[2.]
[1.]
[시험을 시작합니다!]
뿌우우우우우우!
바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바다로 뛰어들었다.
풍덩! 풍덩! 풍덩! 풍덩!
수백 명의 학생들이 동시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로 뛰어내리는 모습은 대단한 장관이었다.
"으하하! 먼저 간다!"
놀랍게도, 전교생에서 제일 선두에서 나아가는 건 딕이었다. 그가 오리발에 인챈트를 걸고 시동을 걸자 칠흑이 부스터처럼 뿜어져 나왔다.
"코인은 다 내 차지...... 응?"
팽팽!
선두인 딕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낚싯대같이 생긴 괴이한 장비를 든 남학생이 히죽 웃고 있었다.
어느새 딕의 오리발에 바늘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어디 가냐아!"
그가 낚싯대를 당기자 딕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끌어당겨졌다.
"우와아아악! 무슨 짓이야! 너 나 아냐?"
"몰라! 그냥 먼저 가는 놈 노리는 거야!"
남학생이 낚싯대를 치켜올리자 선두였던 딕의 몸이 수면 위까지 날아갔다. 그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퍼억! 퍽!
"윽!"
갑자기 등 뒤에서 날아오는 칠흑화살에 그의 배리어 게이지가 크게 깎여 나갔다.
"누구야!"
뒤를 돌아보자 또 다른 학생들이 그의 등을 향해 손을 펼치고 있었다.
"이것들이......!"
"뒤통수 조심해야지?"
바다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바다 밑바닥에 있는 코인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처음 뿌려진 코인의 수는 고작 1,000개.
한 사람당 10개를 모아야 시험에 합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최대 100명 정도만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는 거였다.
당연히 경쟁은 극도로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물론 키젠 측에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더 많은 코인들을 바다 밑바닥에 뿌리지만 최상위권 경쟁을 위해 학생들은 더욱 불이 붙었다.
"저거 잡아!"
"빠져나간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냐! 내려가는 얘들부터 잡자니까!"
얽히고설키고 사방에서 투사체와 저주와 흑마법들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 일일 해설 중인 제인이 말한, 주목해야 할 학생 중 한 명으로 손꼽힌 시몬은.
"......."
그냥 부유물 발판 위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바다 아래의 상황을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었다.
바다에서 펑펑 소리가 나고 물보라가 올라온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바로 뛰어들 필요는 없지. 앞서나가면 집중 공격을 받아서 힘만 빠져.'
실제로 시몬뿐만이 아니라, 상위권의 강자들은 대부분은 부유물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히 힘을 빼지 않고, 다른 학생들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시몬도 공기 마법진을 충전하면서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시험 시간은 고작 4시간이다.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니냐 소년?]
피어가 말했다.
[차라리 순서를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순서요?'
[그렇다! 외해로 나가서 몬스터를 잡고 포인트를 올리다가, 코인 쟁탈전이 좀 널널해지면 그때 들어오는 거다!]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해요.'
실제로, 치열한 코인 경쟁을 피해 바로 외해로 넘어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코인이 밑바닥에 있는 이쪽은 수심이 20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얕은 바다지만, 외해로 넘어가면 수심이 확 깊어지게 되고 몬스터도 많이 나온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포인트를 먼저 챙긴 후에, 넉넉하게 한 시간 정도 남기고 돌아와 코인을 회수하는 방법이다. 그때쯤이면 다들 코인을 확보하고 외해로 나갔을 테니 말이다.
물론 외해에서 다른 학생을 사냥해서 코인을 회수해도 된다. 지금 외해로 나가는 학생들은 전부 이쪽 생각이었다.
'그래도 저는 조금 더 기다려 보려고요.'
이쪽은 비장의 무기인 데이모스가 있다.
다만 틈틈이 몇 번 같이 훈련해 본 결과, 데이모스는 연비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
그래서 시몬은 코인 먼저 획득하고, 시험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룰을 듣자마자 계획은 빈틈없이 세워뒀어. 이번엔 반드시!'
태연한 얼굴이었지만 시몬의 전의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데이모스를 가지고, 1등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 * *
"이번 3차 BMAT! 아주 특이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경기 시간 30분이 넘어가는 지금! 8개 이상의 코인을 모은 학생은 단 두 명뿐! 견제가 너무나도 살벌합니다!"
학생들은 코인보다 다른 경쟁자들을 너무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수면 위에 둥둥 떠다니며 숨을 쉬지 못하도록 막거나, 밑바닥에서 코인을 주워오는 학생을 저격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아아! 예상외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험 규정상 코인 열 개를 모으지 못하면 그 어떤 높은 점수를 받아도 탈락, 즉 퇴학입니다! 부총...... 아니, 교수님!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대규모 탈락자가 나오는 거 아닙니까?"
옆자리에 턱을 괴고 있던 제인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사회자를 바라보았다. 사회자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콘라드."
"옙! 옙! 그럼요! 역시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을 믿으시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앗! 말씀드리는 순간-!"
화면이 바뀌었다.
수중에서 시원하게 달리고 있는 한 소년이 보였다.
흰 머리카락에 흰 수영모를 쓴 짙은 갈색 피부의 소년, 그가 두 팔과 다리를 쭉 펼치자 여섯 개의 마법진에서 동시에 투사체가 날아간다.
투콱! 투콰악! 투콱!
헤엄치며 다가온 학생들이 투사체에 맞더니 '눈'에 파묻히며 모조리 무력화된다. 심지어 그것은 물속에서도 녹지도 않았다.
그사이 소년이 밑바닥의 코인 두 개를 찾아냈다.
"아아! 저 학생! 제인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학생입니다! 특례 8번의 설원성주 라헤임! 벌써 코인을 10개나 모았습니다! 단독선두!!"
이제야 좀 시원한 그림이 나와주자 관중들도 큰 소리로 환호했다.
사회자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제인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저 학생이 사용하는 흑마법은 대체 뭡니까!"
라헤임이 자신의 발 밑창에 마법진을 그렸다. 아까 그 투사체를 날려 보낸 것처럼 연기를 뿜어내며 물고기처럼 초고속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설원성 가문의 고유의 흑마법인 '금설'입니다. 보통의 눈처럼 보이지만 녹는점이 없고, 한번 눈에 파묻히면 눈이 스스로 증식하며 극도로 무거워집니다."
라헤임의 눈폭탄에 맞은 학생들이 버둥대며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저런 학생들의 운명은 텅패드로 구조신호를 보내서 아웃 처리되거나, 호흡 마법이 끝나서 공기가 부족하게 되면 키젠 측에서 일괄적으로 아웃 처리시켜서 텔레포트 되는 것뿐이었다.
"그야말로 물에서는 극강의 흑마법입니다! 그런데 라헤임 학생은 코인을 다 모으고도 외해로 진출하지 않네요. 계속 내해를 돌아다니는 걸 보니 누굴 찾고 있는 걸까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코인 10개를 모은 학생들이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라헤임을 시작으로, 네임드급이라고 불릴 만한 강자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특례 7번 엘리사는 유령선을 넘어선 일종의 '잠수함'을 만들었다. 모든 공격을 얻어맞으면서 바다 밑바닥에 도착해 코인을 쓸어 담았다.
특례 10번 말콤은 도플갱어를 이용해 바다 밑바닥에서 코인을 빠르게 찾아냈고, 카미바레즈는 큼지막한 핏방울 안에 본인이 들어가서 바다 밑바닥에 도착한 다음, 공처럼 굴러다니며 코인을 줍고 있었다.
세르네는 스타트 지점인 발판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데 학생들이 알아서 코인을 갖다 바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경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수면에 떠다니며 견제하던 학생들도 상당수가 밑바닥으로 내려갑니다!"
"코인이 불어나길 기다린 겁니다."
제인이 설명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밑바닥의 코인은 점점 더 늘어납니다. 방금 막 1,000개의 코인이 추가됐습니다. 이제 수면에서 막는 것보다 수집하는 쪽의 메리트가 늘어나는 거죠."
"그렇군요!"
볼거리가 풍성해지며 관중들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사회자도 더욱 힘을 내서 침을 튀기며 중계했다.
그때 조교 한 명이 다가와 서류 한 장을 사회자와 제인에게 내밀었다.
"아아, 방금 새로운 통계가 나왔습니다! 현재 마투학, 맹독학 지망생들이 우위! 그리고 소환학 지망생들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단 통계가 나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말 나온 김에 소환학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특례 1번 시몬 폴렌티아 학생을 보겠습니다!"
팟.
메인 스크린이 돌아가며 여전히 스타트라인에서 대기 중인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 * *
시몬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두 시간에 바짝 포인트를 끌어모으는 전략을 짰으니 어쩔 수 없긴 한데, 조금 몸이 근질거리는 건 사실이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살짝 다녀와 볼까?'
시몬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옆이 소란스러워졌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
시몬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투사체들이 날아와 부유물에 박히자, 펑! 펑! 하고 눈폭발이 터져 나왔다.
'이 능력은 설마.'
끼기기기기긱!
순식간에 눈폭탄이 일어난 쪽으로 무게가 쏠리며 부유물이 뒤집힌다.
시몬과 같이 부유물에 있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빠지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즉시 칠흑을 밟고 타다닷 뛰어올라 부유물의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드디어 찾았다!"
물에 흠뻑 젖은 흰 머리의 남자가 수영모를 벗어 던지며 웃었다.
"지금 당장 메이린을 걸고 결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