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67화
와아아아아아!
빅매치가 벌어졌다.
시몬과 라헤임, 두 특례 입학생의 대치장면이 메인 스크린에 나타나자 관중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덩달아 흥분한 사회자도 테이블에 발을 올리며 소리쳤다.
"시험 초장부터 대단한 매치업입니다! 십대에 설원성주 자리에 오른 특례 8번의 라헤임! 그리고 2차 BMAT에서 거대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특례 1번의 시몬 폴렌티아!"
사회자가 고개를 돌렸다.
"제인 교수님! 이 승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교롭게도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이번 시험에서 주목해야 할' 두 학생이 만났습니다!"
제인은 테이블에 올라간 사회자의 발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일단은 라헤임 학생의 우위겠죠."
"아, 그렇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저주학과 혈류학으로도 활약했지만, 시몬 학생의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소환학입니다. 바다라는 전장은 소환학 학생에게 무엇보다 큰 난관이죠."
"확실히 맞는 말씀이십니다! 통계를 봐도 소환학 학생들이 크게 고전하고 있습니다!"
소환학 지망생들은 대부분 소환수를 포기하고 다른 학문의 흑마법으로 시험을 치르는 상황이었다.
물론 자신의 주특기가 아닌 만큼,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벌써 관중들 사이에선 탈락자 50명 중의 30명은 소환학 학생이 아닐까 하는 말이 오갈 정도였다.
"과연 소환학이라는 한계를 시몬 학생이 어떻게 뛰어넘을지 궁금합니다! 계속 지켜보시죠!"
* * *
첨벙! 첨벙!
시몬은 정신없이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런 그를 공중에 뜬 라헤임이 뒤쫓아오며 눈폭탄 투사체를 연달아 날려 보내고 있었다.
퍼어엉! 퍼어엉!
시몬의 주위에서 연신 물보라가 일어났다.
'끙, 저런 녀석 때문에 벌써 데이모스를 쓰긴 싫은데.'
일단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몬은 숨을 참고 바다로 들어갔다.
꼬르르륵!
잠수한 채로 도망치고 있는데 라헤임은 끈질기게 하늘에서 공격을 퍼부어댔다. 수면을 뚫고 내려온 투사체들은 물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지 빠르게 뻗어 나갔다.
'이미 수중전 처리까지 해뒀구나.'
시몬은 잽싸게 헤엄쳐서 학생들이 많은 곳으로 숨었다. 이 인원을 적으로 돌리긴 부담스러울 거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라헤임은 시몬은 물론, 걸리적거리는 다른 학생들까지 모조리 포격했다.
눈폭탄에 맞은 학생들은 마치 다리에 쇳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억! 뭐야?"
"하늘에서 공격이다!"
그때 시몬이 '푸하!'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곤 큰소리로 외쳤다.
"저 녀석이 라헤임이야!"
"라헤임?"
"라헤임이라면 지금 코인 10개 다 모은 1위야!"
"저 새끼부터 노려!"
바다에서의 반격이 시작됐다. 칠흑 마법과 저주가 쏟아지자 라헤임은 인상을 구기며 거리를 벌렸다.
"쥐새끼 같은 놈이......!"
그사이 시몬은 어디론가 또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라헤임이 다른 학생들과 싸우느라 붙들린 사이.
"푸하아아!"
슬쩍 잠수해서 빠져나간 시몬은 또 다른 부유물 발판 위로 올라왔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그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공중전과 해전이 모두 되는 네크로맨서라니, 까다롭네.'
간신히 한숨 돌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 그때였다.
투콰아악!
공중에서 라헤임이 혜성처럼 날아와 시몬이 발을 딛고 있는 발판에 착지했다.
"왜 도망치는 거지?"
그가 발판의 한 귀퉁이에 내려앉자 부유물 발판 전체가 그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우왓!'
시몬이 무릎을 굽히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메이린을 걸고 대결하기로 했을 텐데! 주몬 볼렌디스!"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뭐? 난 시몬 폴렌티아인데."
"그냥 쳐 알아들어라."
그가 하얀 수영모를 꾹꾹 붙잡아 눌러쓰고는 히죽 웃었다.
"널 이 시험에서 떨어뜨리고, 앞으로는 메이린이 나만 바라보게 하겠다. 어디로 도망치든 소용없다 제몬 볼렌토나!"
"......이름이 갈수록 이상해지는데."
"내가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이름은 메이린 빌렌느뿐이다!!"
라헤임이 제 가슴을 탕탕 쳤다.
"아무튼! 난 네놈을 어떻게 해서든 탈락자 50명에 밀어 넣을 생각이다. 30분 후에 돌아와도, 돌아오는 족족 죽여주지!"
"......어, 음. 그래."
"다만, 네가 키젠에서 계속 지낼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그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맹세해라. 다시는 메이린에게 미련을 두지 않고, 나와 메이린 앞에 영원히 나타나지 않겠다고! 옵저버로 지켜보는 수많은 관중 앞에서 말이야!"
이쯤 되니 시몬은 슬슬 저 라헤임이라는 소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너 혹시 정신에 약간 좀, 뭐 그런 문제가 있어?"
"일개 학생 따위가 감히 설원성주를 우롱하느냐!"
라헤임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옆구리 쪽으로 당기자, 그가 밟고 있던 부유물 발판이 다시 끼긱 소리를 내며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발밑에 '금설'을 깐 것이다.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자 시몬은 왼발을 의식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개문!'
촤르르르르륵!
촤르륵!
여섯 개의 칼날이 한꺼번에 쏘아져 나갔지만 라헤임은 먼저 발판 위에서 뛰어내렸다.
"용서하지 않겠다! 주본 볼렌도디나!"
'......그냥 이름은 신경 쓰지 말자.'
발판이 뒤집혔다. 그대로 바다에 빠지고 만 시몬이 얼른 헤엄쳐 나가려고 했지만, 라헤임이 발판으로 투사체를 연달아 날렸다.
금설에 뒤덮인 발판이 극도로 무거워지며, 밑에 깔린 시몬을 이끌고 함께 바다 아래로 내려갔다.
'크흑!'
내려오는 힘이 워낙 강해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시몬은 주먹을 쥐고는 칠흑을 끌어모았다. 그의 주먹이 검푸른 광채를 뿌리며 현란하게 휘감겼다.
<홍펭 오리지널, 취타>
투콰악!
시몬이 주먹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발판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시몬은 그 사이로 쏘옥 빠져나갔다.
바다 밑바닥까지 쭉쭉 내려가는 발판을 보며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풍덩!
그런데 저 멀리 라헤임도 바다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을 찾느라 분주히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가 소지한 코인에 눈이 먼 학생들이 일제공격을 퍼부었다.
'쟤는 왜 이렇게 생각이 없을까. 나야 좋지만.'
라헤임이 다른 학생들과 싸우는 사이, 시몬은 유유히 수면으로 향했다. 또 하나의 부유체 발판을 찾아내서 그쪽으로 헤엄쳤다.
'이번에도 쫓아오면 하는 수 없이.......'
[소년! 뒤에서 온다!]
라헤임이 싸우던 학생들과의 전투를 무시하고 시몬을 쫓아오고 있었다.
마법진을 펼친 그의 발바닥에 연신 기포가 뽀글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하는 수 없네요. 피어.'
계획한 대로 모든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몬은 결심을 굳히고 발판 위로 올라왔다.
'꺼내겠습니다.'
[크흐흐흐!]
시몬이 칠흑을 일으키며 뛰어올랐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시몬이 딛고 있던 발판이 바다에 가라앉았다. 라헤임이 눈폭탄을 날려 적중시킨 것이다.
시몬이 공중에 떠올라 있는 사이, 라헤임도 수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가 시몬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제 끝이다!"
라헤임의 몸 위로 여덟 개의 마법진이 펼쳤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주위의 학생들도, 메인 스크린으로 지켜보는 관중들도, 모두가 시몬의 다음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몬은, 공중에서 유유히 팔을 뒤로 보내 공간을 길게 열어젖혔다.
-우우우우우우우우!
마치 개벽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진동에,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라헤임도 급히 움직임을 멈췄다.
이내 그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괴, 괴물?"
몸길이 5미터가 넘는 커다란 고래의 뼈였다.
위턱과 아래턱으로 구성된 긴 두개골, 이어지는 목뼈. 그리고 등, 허리, 꼬리로 연결되는 기다란 척추뼈 끝에는 가공의 지느러미가 달려 있었다. 가슴에서 쭉 뻗은 두 개의 가슴지느러미는 마치 육지에 사는 포유류를 연상케 했다.
시몬은 가뿐히 그 위로 올라타고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라헤임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퍼어어어엉!
시몬과 데이모스가 바다에 들어가자, 산더미만 한 물보라가 솟구쳤다. 거기에 얻어맞은 라헤임이 한번 휘청했다.
"와아아아!"
"저게 뭐야?"
학생들은 놀라 자빠질 것 같은 표정으로 데이모스에 탑승한 시몬을 보았다.
해골고래에 타고 바다를 광속으로 가로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네크로맨서의 로망이었다.
[크하하하하하!! 좋구나! 아주 좋아!]
피어가 속도감을 만끽하며 소리쳤다.
시몬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발로 헤엄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스피드로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시선이 엄청나게 끌렸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흑마법을 날려댔지만 데이모스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새끼!"
라헤임이 뒤따라 바다로 들어왔다. 그의 두 발밑에 있는 마법진이 가속하며 방울을 마구 뿜어냈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다시 한번 라헤임의 주위로 여덟 개의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금설의 투사체들을 연달아 날려 보냈다. 물속에서는 유도기능이 부여되어 데이모스를 따라왔다.
'해보자 이거지?'
시몬이 데이모스의 사념에 접속해 속도를 냈다. 데이모스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슈우우우우!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하며 바다를 활보하는 데이모스와, 그 아래로 바짝 뒤쫓아오는 라헤임의 투사체들. 바다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궤적을 뿌리며 고속기동하는 둘의 모습에 모두의 입이 딱 벌어졌다.
'미친.'
'쟤들만 다른 시험 치르고 있냐?'
지켜보던 학생들은 어이가 없었다.
'더, 더 빠르게!'
시몬의 집중력이 가속했다.
여덟 개의 투사체 중 여섯 개가 물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붕괴되고, 남은 두 개는 끈질기게 따라왔다. 데이모스는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있었고 마침 딱 위에 부유물 발판이 보였다.
'지금이야!'
데이모스가 발판 바로 아래에서 방향을 급커브 하며 꺾었고, 뒤따라온 투사체들이 발판에 부딪혀 파괴됐다.
'됐다!'
고양된 데이모스가 수면으로 올라와 점프했다.
-우우우우우우우!
가동 중인 마법진의 구성요소끼리 충돌하고 긁히며, 마치 동물의 포효와도 같은 음을 냈다.
수면에 떠 있는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공중으로 떠오른 거대한 해골고래와 그 위에 올라탄 시몬에게로 향했다.
태양광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그 모습은 마치 명화가 포착한 걸작이나 다름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당연히 로크섬의 관중석은 난리가 났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바다에서 스켈레톤을 쓰는 시몬 폴렌티아!!"
사회자가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제인은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팔에 묻은 침방울을 닦았다.
"대체 저게 뭡니까 교수님! 어떻게 스켈레톤이 저렇게 바다에서 빠를 수가 있죠?"
"8급 위험도의 몬스터, 바다의 지배자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데이모스의 새끼입니다."
제인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특수 언데드인 '황천고래'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언데드네요. 스켈레톤 버전은 저도 처음 봅니다."
"아아아아! 그랬군요! 대단합니다! 수중전에 대비해 저런 걸 준비해 오다니!"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시몬과 데이모스는 다시 바다 밑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시몬을 노리는 다른 학생들의 공격은 맞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그 뒤를 라헤임이 끈질기게 뒤따르고 있었다.
이내 라헤임이 좌우로 팔을 펼쳤다. 그의 몸 주위로 다시 한번 여덟 개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시몬도 그 모습을 돌아보고는 데이모스의 방향을 돌려 라헤임과 근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보여주자. 데이모스!'
시몬이 절대명령을 내리자, 데이모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안에서 칠흑이 무서운 기세로 일렁이며 주위의 바닷물을 빨아들였다.
우우우우우우웅!
'무슨!'
라헤임이 멈칫했다. 그의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거대한 고래 뼈의 입에서 눈부신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은 이미지였다.
<해류포>
쏴아아아아아아아!
포성과 함께 데이모스의 입에서 해류포가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 거대한 물의 파장에, 라헤임이 발사한 여덟 개의 투사체 따위는 미약해 보일 지경이었다. 투사체들이 모조리 화력에 떠밀려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버리고 그 핵이 라헤임까지 도달한다.
"......!"
콰아아아아아아!
바다를 통째로 뒤흔들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시몬이 팔에 찬 텅패드를 살피자 십수 명의 탈락자들이 발생했다.
'크으으!'
시몬이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와 정신이 연결된 데이모스도 뒤이어 거대한 음성으로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