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72화
최악의 사태가 왔음을 시몬은 직감했다.
이미 학생의 레벨을 넘어섰다는 로레인, 세르네와 비견되고, 전투능력은 그녀들과 동등한 수준이라고 알려진 특례 3번 입학생.
현 키젠 최고의 혈통, 거인혼혈의 샤텔 마에르가 난입했다.
'설득이 통할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시몬이 입을 열었다.
"그......."
낱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 무섭게 정면에 있던 샤텔의 신형이 시몬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펀치를 날린다는 게, 시몬은 마치 눈앞으로 유성 하나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뻐어어어억!
시몬의 몸이 무식하게 옆으로 짓이겨졌다. 두 팔을 세워 가슴을 가드했는데도, 가드는 단번에 뚫리며 시몬의 몸을 수십 미터 넘게 날려 버렸다. 배리어 게이지가 급속도로 깎여 나갔다.
"이 새끼가!"
샤텔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공중으로 도약한 헥토르가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저 자식의 상대는 나다!"
터업!
거칠게 내질러진 발차기가 샤텔의 손바닥에 사뿐히 막히고 말했다.
손바닥의 푹신한 감각이 마치 타격을 흡수하다 못해 쑤욱 빨아들이는 듯한 감각, 헥토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동자를 굴리자 샤텔의 반대쪽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투콰아악!
강타당한 헥토르의 몸이 바닥에 부딪히며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커헉!"
방호슈트로도 막지 못하는 거대한 충격에 헥토르의 입가에서 피가 튀었다.
그사이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게 우리랑 같은 10대라고?'
저건 그냥 시작 단계가 다른 놈 같았다.
세 살 아기들끼리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성인이 나타나서 '나도 세 살'이라고 헛소리를 하며 스타트라인에 선 것 같았다.
'카쟌과 같은 과야. 그냥 태생부터가 달라.'
쿠웅! 쿠웅! 쿠웅!
샤텔은 1위의 포인트를 노리고 시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지금은 시험 중이라서 어느 정도 그를 공략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딸칵! 딸칵!
시몬의 손가락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아공간에서 쏟아진 스켈레톤의 잔해들이 명령에 따라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본 네일>
뼛조각들이 순백의 궤적을 뿌리며 쏘아지자 샤텔이 파리 쫓듯 허공에 팔을 휘둘렀다.
그 풍압만으로 뼛조각들이 모조리 날아갔다.
'샤텔도 이쪽의 공격을 의식하고 있어.'
최강의 방어력을 가졌지만, 그는 지금 방호슈트를 입었고 그의 목숨은 배리어 게이지로 취급된다.
게이지가 0이 되면 아무리 샤텔이라고 해도 퇴학이다.
키젠이란 조직은 그런 부분에선 융통성이 잘 없으니까.
'그러니 살살 긁어보자.'
달칵. 달칵.
풍압으로 날아가 바위에 떨어졌던 뼈들이 다시 공중으로 떠올라 계속 샤텔에게 날아갔다.
그가 팔을 휘둘러 막아내곤 있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몇 발이 방호슈트의 배리어를 두들겼다.
샤텔이 인상을 찡그리더니, 발을 굴렀다.
쿵!
시몬은 섬찟한 감각을 느꼈다.
주위의 대지가 칠흑의 검은색으로 화악 물들었다. 마치 수묵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영역반전>
'이건 또 무슨 흑마법이야?'
시몬이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는데, 샤텔이 두 손으로 지면을 꾸욱 붙잡더니 힘껏 위로 쳐올렸다.
"!"
난데없이 시몬의 주위로 검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시몬이 고개를 들자 커다란 암반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샤텔이 방금 손댄 바닥은 거칠게 뜯겨나간 흔적만 남았다.
꽈아앙―!!
간발의 차로 물러나 피해냈다.
이번엔 샤텔이 뭉툭한 손가락을 위로 올리자 지면이 지층처럼 불쑥 솟아났다.
그것을 주먹으로 쾅! 내려치자, 잔해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시몬을 향해 날아갔다.
쾅! 쿠웅! 쿠웅!
낙석의 비가 끊임없이 내리며 주위를 초토화했다. 시몬이 정신없이 칠흑을 밟고 내달렸다.
'덩치나 흑마법이나, 떠들썩한 것뿐이네.'
샤텔이 다시 한번 바닥을 짚는 모습이 보인다. 그의 팔과 손목 각도를 캐치한 시몬은 칠흑을 밟고 제자리에서 최대 높이로 도약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샤텔은 퍼 올리듯 팔을 휘둘렀다. 그 방향으로 대지가 일어나 커다란 산맥을 형성했다.
'아니, 무슨 산이 만들어져?'
공중에 떠오른 시몬이 바닥을 구르며 착지했다.
샤텔이 그 인공 산맥의 한 귀퉁이를 주먹으로 쾅! 소리 나게 때리자, 산맥 전체가 암석 잔해로 바뀌어 모조리 시몬을 향해 날아갔다.
꽈앙! 꾸웅! 쿠우웅!
시몬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피했다. 몇 번 스쳤더니 배리어 게이지는 벌써 바닥이다.
체력이나 칠흑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시도라도 해봤겠지만, 지금 몸 상태론 절대 놈을 못 이긴다.
'샤텔의 흑마법이 닿지 않는 곳!'
시몬은 바다로 달리고 있었다.
꽈앙!
그때 시몬이 달리는 진행 방향 앞으로 커다란 암벽이 떨어졌다. 급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위험......!'
그런데 후속공격이 없었다. 어느새 뒤쪽에서 헥토르가 시룡의 비늘을 표창처럼 날려대고 있었다.
"놈의 상대는 나라고 했을 텐데!"
샤텔이 바위를 일으켜 그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뭔진 잘 모르겠지만 지금이 찬스다.
시몬은 첨벙첨벙 바다로 뛰어들어가 아공간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딱 한 번만 더 부탁해 데이모스!'
아공간에서 뼈로 이루어진 데이모스가 뛰어나와 시몬을 태우고 이동했다.
헥토르의 공격을 물리친 샤텔이 다가왔지만 이미 시몬은 바다로 도망친 뒤였다.
쿵!
샤텔이 다시 한번 바닥을 굴렀다.
쿵! 쿵! 쿵!
이어서 세 번을 더 굴렀다.
섬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지반뿐만 아니라 나무나 풀들도 수묵화처럼 새까매졌다.
쩍쩍 소리를 내며 지면이 갈라지더니, 이내 섬을 이루고 있던 모든 흙과 암벽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쿠구구구구구!
섬 전체를 뭉개고 부숴서 암석으로 만들어 공중으로 떠올렸다. 저 섬 전체가 샤텔의 탄환이었다.
'데이모스, 해류포.'
시몬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데이모스의 입이 쩍 벌어지며 칠흑과 마력이 휘몰아쳤다.
'먼저 쏴버려!'
투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데이모스의 해류포가 뻗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는 시룡의 날개를 매단 헥토르가 브레스를 발사하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에서 뻗어 나간 두 개의 거대한 화력이 샤텔에게서 만나 폭발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구구!
정말로 최후의 힘까지 쥐어 짜냈다. 시몬과 헥토르, 두 소년은 거의 탈진할 듯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이내 뿌연 연기 속에서 바위벽으로 몸을 숨긴 샤텔이 보였다. 그가 다시 공격을 재개하려는 순간.
삐이이이이이이익!
[모든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모든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즉각 전투를 중단하고 텔레포트를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순간부터 포인트는 증감하지 않습니다. 전투를 중단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험이 끝나자, 샤텔도 공세를 멈췄다. 그가 흑마법을 해제하자 공중에 떠올랐던 암벽 덩어리들이 내려왔다.
'하아아.'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어떻게든 살았다.
반면 공중에 떠 있는 헥토르는 분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가릴 줄 알았다! 또 또 방해를 받다니! 망하아알!'
"......."
샤텔은 아무 말도 없이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 * *
시험이 끝나고, 바다 위의 학생들이 하나둘 키젠 교정 내의 텔레포트 마법진에 도착했다. 부상이 있어서 치료를 원하는 학생들은 바로 병동으로 넘어갔다.
막 시험을 치르고 넘어온 뒤라, 학생들은 정신없이 떠들기 바빴다.
점수에 아쉬워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일단은 탈락하지 않고 큰 시험 하나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에 분위기는 밝았다.
키젠으로 넘어온 시몬도 하수인에게 받은 수건을 두르며 한숨 돌렸다.
"시몬―!"
그때 카미바레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카미! 무사했구나!"
두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재회했다. 그녀의 등 뒤에 달린 앙증맞은 날개가 기분 좋게 파닥파닥거렸다.
"정말 다행이에요! 이번 시험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았네요!"
"응, 수고 많았어."
그녀는 지쳐 보였지만 표정은 누구보다 밝았다. 시몬이 물었다.
"혹시 시험 치르면서 메이린이랑 딕이랑 만난 적 있어?"
"아뇨, 못 만났어요. 멀리 떨어졌나 봐요."
두 사람은 웃으면서 재잘재잘 시험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랭킹을 확인해보니 메이린은 전체 10위를 달성하며 다시 최상위권으로 올라섰다.
카미바레즈는 205위였다, 바다라는 장소적 특성 때문에 순위가 조금 떨어졌지만 안정적인 상위권이었다.
그리고 딕도 이번에는 평소보다 조금 넉넉하게 400위대 중상위권을 달성했다. 본인의 발명품인 방전복과 전기 방출기로 몬스터들을 손쉽게 감전시켜 잡았다고 한다.
그때 조교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주목! 주목해 주세요! 호명하는 상위권 학생들은 키젠 교정으로 가서 인터뷰를 진행해 주셔야 합니다!"
몇몇 학생들의 이름이 불렸고, 그중에는 당연히 시몬의 이름도 있었다.
"갔다 올게 카미."
"네, 다녀오세요! 화면으로 인터뷰 보고 있을게요!"
시몬은 조교의 안내에 따라 바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이동했다.
주위가 바뀌고 눈을 뜨자, 시몬은 키젠 교정 입구 앞의 스테이지에 서 있었다. 사방에 시험장을 비추는 스크린들이 펼쳐져 있고 아래에는 무수한 관중들의 모습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
천둥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자 수많은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곳곳에서 학생들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몬! 시몬!"
심지어 그중에는 자신을 연호하는 소리도 들린다.
시몬은 미소와 함께 그쪽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뭔 짓을 한 거야? 당신."
그때 옆에서 작은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수복 위에 해군 제복을 어깨에 걸친 소녀, 특례 7번이자 이번에 전체 2위를 달성한 유령선의 선장 '엘리사'였다.
"어떻게 20만 포인트가 가능해?"
수중전만큼은 1위를 스스로 확신했던 엘리사는 당혹스러웠다.
시몬은 미소를 지었다.
"운 좋게 괴공을 잡았거든."
"......뭐, 뭐? 괴공? 그 초대형 몬스터를?"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가 따가웠다. 살벌한 시선이 꽂히는 걸 느낀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윽.'
헥토르도 여기 올라와 있었다.
"이번 시험도 즐겁게 관람하셨습니까 여러분!"
그때 확성 수정구를 든 사회자가 두 팔을 번쩍 든 채로 나타났다.
그 옆에는 이번 해설위원이었던 제인도 있었다.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자 그녀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장차 암흑연방의 미래를 책임질! 이번 시험의 영웅들에게 큰 박수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곳곳에서 박수 소리와 함께 마력 촬영구의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얼른 표정관리를 하며 앞을 보았다.
"자, 그럼 Top5의 순위부터 확인해 보시죠!"
스크린의 순위가 쭉 펼쳐졌다.
5위 - 헥토르 : 9,500 Point
4위 - 라헤임 : 11,200 Point
3위 - 쥴 : 11,600 Point
2위 - 엘리사 : 18,650 Point
1위 - 시몬 : 223,500 Point
이번 BMAT 최강의 학생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2위와 1위의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 중 주인공을 만나보겠습니다! 소환학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명실상부 키젠 1학년 최고의 수중전 스페셜리스트가 된 학생!"
사회자가 팔을 뻗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을 소개합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시몬이 수많은 관중 앞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