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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74화 (27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74화

와슈번 산맥 정상, 마왕의 고성.

"......실패. 라."

무수한 해골들로 쌓아 올려진 왕좌 위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중성적인 외모의 남자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돌발상황 발생.]

그의 앞에는 이목구비나 체형이 없는, 생체 반죽처럼 생긴 언데드가 더듬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작전의 도입부는 모두 성공. 하드다일, 괴공의 입으로 침입 완료. 괴공 장악. 괴공, 로레인이 아닌 다른 학생을 집요하게 공격. 괴공. 그 학생에게 완파.]

[이상하군요.]

왕좌 옆에 서 있는 집사복 차림의 좀비가 말을 받았다.

[작전대로 됐다면, 괴공은 비명의 정글에서 만난 그 에이션트 언데드의 칠흑 흔적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로레인이 아니라 제3의 인물을 쫓아갔다고 한다면.]

"알라제."

가만히 듣고 있던 매그너스의 입이 열렸다.

"괴공이 따라갔다는 그놈은 누구냐."

[시몬 폴렌티아. 죽음의 마녀가 데려온 특례 1번 입학생. 소환학 전공. 이번 BMAT시험 1위.]

"묘한데."

매그너스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녀석도 죽음의 마녀랑 연관되어 있었군. 왜 괴공이 녀석을 뒤쫓았을까."

[7군단장이 로레인 아크볼드가 아니라, 시몬 폴렌티아일 수도 있단 말씀이시군요.]

좀비집사가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탈라제가 죽을 당시, 자리에 없었습니다.]

"나도 그게 좀 걸리긴 해. 그래도 상대는 교활한 죽음의 마녀다. 우리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해."

매그너스가 잠시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기다가 말했다.

"일단 최우선 감지 순위에 로레인을 두는 건 그대로 유지. 동시에 시몬 폴렌티아에 대한 조사도 시작해라. 사소한 거든 뭐든 좋다."

좀비집사와 알라제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 했다.

"아 참."

매그너스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이제 말을 좀 듣나? 저번에 잡아 온 그 제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말이야."

좀비집사가 고개를 저었다.

[여전합니다. 무슨 수를 써도 입 한번 뻥긋하지 않습니다.]

"흐음, 이미 한번 해체된 군단에 충성심이 깊은 친구군. 언데드답지 않아."

매그너스가 손을 휘휘 젓는 것으로 나가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에이션트 언데드.'

두 부하들이 물러난 뒤 왕좌에서 일어난 매그너스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걸어가 창밖을 응시했다.

까마득한 경사의 산맥이 내려다보였다.

'내 목표를 위해선 더 많은 에이션트 언데드가 필요해.'

* * *

이제 통합 2학기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BMAT시험도 딱 두 개 남았다.

시몬의 성과는 가히 우수했다.

1차 BMAT 1위.

2차 BMAT 10위.

3차 BMAT 1위.

이렇게 보니 2차 BMAT에서 10위를 한 게 조금 뼈아프긴 했지만, 4차와 5차에서도 최상위권을 따낸다면 수석으로 1학년을 마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좋아!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자!'

다음 4차 BMAT까지는 여유가 있었기에, 학생들은 긴장감을 조금 내려놓고 하루하루 수업에 들어갔다.

첫 수업은 신성방어학이었다.

"오늘은 에프넬에서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 알아보겠네."

신선 같은 흰 도복 차림에, 우아하게 접선을 흔들고 있는 이 노인이 바로 '파라한 이미도르', 신성방어학의 교수였다.

그는 과거 에프넬의 주교였고, 현재는 반신성연방 협회의 총장이다.

연방에서 귀순한 프리스트들을 이끄는 대표격의 인물로, 인선의 충격으로만 치자면 별야보다 훨씬 더 화제가 된 교수이기도 했다.

프리스트가 네크로맨서를 가르친다는 점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거나, 파라한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사실 이 수업이 꽤 유익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다.

"에프넬의 학생들은 자네들의 가장 큰 적이자 난관일세. 졸업하기 전까지 이들과 4~5회는 마주친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게야."

파라한의 말에 A반 학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이제 막 네크로맨서가 된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있어서, 프리스트는 미지와 공포의 존재였다. 성녀 사태를 겪으며 그 공포가 더 커진 학생들도 많았다.

"질문 있습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가끔 파라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극단주의 가문의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툭툭 질문을 던져서 수업의 맥을 끊곤 했다.

"말해보게."

하지만 파라한은 오히려 학생들이 자신의 수업에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우리가 프리스트의 수업 같은 걸 왜 알아야 합니까?"

"이제 곧 설명해 주겠네."

그때 파라한이 발언권을 주지 않았는데도 벌떡 일어난 또 다른 남학생이 있었다.

"의도가 의심스럽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키젠과 에프넬, 어느 쪽의 학생들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쪽이라고 답해도 욕을 먹게 마련인 질문.

사실상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급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 세기의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에프넬과 키젠 모두를 경험해 봤지."

파라한이 수염을 쓸더니 착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실력은 백중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신력에서 자네들은 에프넬의 젊은이들과는 비교가 못 돼."

웅성웅성.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질문을 던진 학생이 잘 걸렸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교수님! 방금 그 발언은......!"

확!

파라한이 순간적으로 학생 쪽으로 손가락을 겨누었다. 신성의 흐름이 총탄처럼 날아가 학생의 미간 앞에서 멈췄다.

"허억!"

학생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성에 미간에 꿰뚫렸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것처럼."

학생은 입을 딱 벌린 채 다리를 벌벌 떨었다. 그의 바지가 눅눅하게 젖어 드는 것이 보였다.

"에프넬의 학생들은 다소 비인격, 비인권적인 강도의 훈련을 받지. 그들은 믿음과 정신력이야말로 신성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니 말일세. 자네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게 좋겠군."

조교 한 명이 남학생을 데리고 강의실 뒤로 사라졌다.

파라한이 접선을 흔들며 연단으로 돌아갔다.

"물론 수업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함세. 전투에서의 유연성과 창의성, 그리고 변수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자네들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니. 자, 다시 진도를 나가겠네."

그가 연단의 칠판으로 걸어갔다.

"에프넬의 핵심 과목은 7가지라네."

그러고는 분필을 잡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내려갔다.

축복학

신성역학

신수학

치유학

수호학

성령학

성투학

분필을 내려놓은 파라한이 수염을 쓸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제이미 빅토리아가 팔을 번쩍 들었다.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다! 제일 위에 세 과목! 개념이 '저칠소'랑 비슷해요! 저주, 칠흑역학, 소환학이요!"

"잘했네. 태도점수 5점 주겠네."

제이미가 주먹을 꽉 쥐며 좋아했다.

"자네들이 전공을 정하는 것처럼, 에프넬의 학생들도 이 중 한 과목을 선택한다네. 그리고 자네들이 프리스트와 대면했을 때, 그들이 사용하는 백마법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어떤 전공자인지 어렵지 않게 캐치할 수 있다네."

파라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상대가 어떤 전공자인지 알았다면, 그것만으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사용하는 백마법의 종류, 강점과 약점, 전투 스타일, 성향, 공수패턴까지. 이 많은 정보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얻어내는 걸세."

수업을 듣던 시몬이 자신도 모르게 휙휙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왜."

분필을 내려놓은 파라한이 미소 지었다.

"적을 알아야 하는지 알겠나?"

강의실이 다시 한번 조용해졌다.

교수가 프리스트인 걸 떠나서, 역시 파라한의 수업은 도움이 됐다. 그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프리스트들은, 네크로맨서의 공략에 크게 파고들지 않는다네. 악하고 부정한 것을 배우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어 있고, 자신의 믿음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수 있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 강박이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 자네들은 더더욱 상대를 공략해서 악랄하게 후벼팔 수 있도록 하시게. 그게 상성에서 불리한 네크로맨서가 프리스트를 이기는 방법이네. 말 그대로-"

파라한이 접선으로 칠판을 툭 치며 덧붙였다.

"네크로맨서답게. 말일세."

시몬은 하마터면 손뼉을 칠 뻔했다. 다른 학생들도 침을 꼴깍꼴깍 넘기고 있었다.

"자, 그럼 각 과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네."

사실 이 '신성방어학' 수업은, 시몬은 예습을 해와서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다.

방학 때 신성연방에 넘어가기 전, 시몬이 이단 심문관에게 들키지 않도록 레테가 빡세게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단심문관도 모조리 속여 넘길 정도로, 시몬의 신성연방에 대한 이해도는 높았다.

"혹시 여기서 수호학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학생이 있나?"

시몬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신성 보호막과 결계를 펼치는 방어에 특화된 학문입니다."

"잘했네. 대표적인 결계 백마법 하나만-"

"찬미의 결계. 프리스트들이 축복을 걸 시간을 마련할 때 사용하는 백마법입니다. 무의식의 영역에서 가동하는 백마법이기에 혼란계 저주를 쓰면 깨트릴 수 있습니다."

신성방어학 조교들이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쟤 뭐야?' 하는 표정이다.

파라한도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잘했, 아니, 훌륭하네. 태도점수 10점 주겠네."

"감사합니다!"

신성방어학 수업은 시몬의 입장에서 점수 자판기일 뿐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메이린이 팔꿈치로 시몬을 툭툭 치더니 조용히 말했다.

"야, 너 뭔데! 신성방어학 예습 언제 그렇게 해왔어?"

그녀의 부러움 가득한 표정을 보며 시몬이 빙긋 웃었다.

"그런 게 있어."

"아, 치사하게 진짜! 나도 알려줘어!"

* * *

이론수업이 끝나고, 바로 훈련으로 넘어갔다.

오늘은 신성을 체내에 받아들이는 훈련이었다. 신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칠흑으로 신성을 몰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으아아아악!"

"허억! 허억!"

학생들의 반응은 맹독학의 독 먹는 수업 그 이상이었다.

극소량의 신성만 체내에 주입해도 정신을 놓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집중, 집중.'

시몬은 다른 의미에서 긴장하고 있었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으면 말하세요."

시몬의 앞에 선 조교가 시몬의 팔을 붙들고 신성을 흘려보냈다. 조교들 또한 전 프리스트 출신이었다.

"흐읍!"

시몬이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괘, 괜찮아요?"

"......아, 넵. 아직까지는요."

고통에 젖은 듯 너덜너덜한 목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시몬의 머릿속은 약간 회의감이나 부끄러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갈수록 연기만 느는 기분인데.'

첫째로는 신성에 아파하는 연기를 잘해야 했고, 둘째로는 나도 모르게 신성을 써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가끔 신성방어학 수업을 듣다가 몰입하면, 갑자기 손에서 신성이 뿜어져 나올 때가 있었다. 한 두 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걸리진 않았다. 그 이후로 더 신경을 써서 각별히 주의하고 있었다.

"흘흘, 잠깐만."

그때 파라한이 다가왔다.

"이 학생은 내가 직접 지도하겠네."

"아, 네. 교수님."

조교가 물러나고 파라한이 시몬의 손을 붙잡아 신성을 흘려보냈다.

시몬이 인상을 찡그렸다.

"괜찮은가? 신성과 칠흑은 결국 같은 근본이지. 어서 칠흑으로 신성을 밀어내 보게."

"네!"

시몬이 어렵지 않게 칠흑을 일으켜 체내로 들어온 신성을 진압했다.

"음. 잘했네."

한 번은 실수하는 척했고, 두 번 만에 성공해 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파라한이 시몬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너무 빨리 성공시켰나?'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시몬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오늘의 신성방어학 수업도 끝이 났다.

"오늘 한정메뉴에 스테이크 떴대! 뛰어!"

딕이 교과서를 허리에 끼며 소리쳤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도 준비하고 시몬도 몸을 일으키는 그때.

"시몬 학생."

갑자기 신성방어학 조교가 시몬을 불렀다.

"파라한 교수님께서 잠깐 보자고 하시는데요."

"네?"

마침 저 멀리서 파라한이 접선을 흔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가. 얘들아."

시몬이 말했다. 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뭐지? 직속제자 제안인가?"

"또, 또 뇌 안 거치고 말한다. 필수과목은 직속제자 같은 거 없잖아."

딕과 메이린이 싸우는 사이,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파라한 앞으로 도착했다.

"내 연구실로 같이 가지."

"아, 넵."

파라한의 연구실은 바로 위층 건물에 있었다.

깔끔한 하얀 벽지의 방에 들어온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차 한잔하겠나?"

"아뇨.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파라한이 접선을 촥 펼쳤다.

그것을 신호로, 방의 커튼이 촤르르륵 쳐지고 조명이 꺼지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신성 마법진들이 가동하며 빛을 뿜어냈다.

"교, 교수님?"

"놀라지 말게. 외부에서 소리와 시각을 차단하기 위한 간단한 장치이니. 그럼, 한 가지만 묻겠네."

수염을 쓸어내린 파라한이 극도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신성을 쓸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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