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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75화 (27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75화

"자네, 신성을 쓸 수 있나?"

"......!!"

파라한의 그 물음에, 시몬은 뒷목까지 닭살이 쭈욱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안 거지?

시몬은 필사적으로 웃는 얼굴을 유지했으나, 얼굴 근육은 어쩔 도리 없이 뻣뻣하게 경직되어 갔다.

입안이 바싹 마르며 목구멍이 울렁였지만, 간신히 쥐어짜 내 한마디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허허!"

시몬의 입장에선 갑자기 두려운 존재가 된 노인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난 평생을 신성과 함께 살아왔네. 자네에게는 미약한 신성의 기운이 느껴져. 무엇보다 아까 수업에서 자네의 몸에 손을 댔을 때."

파라한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네크로맨서라면 응당 있어야 할 극도의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네. 자네의 고통스러운 반응과는 별개로, 자네의 몸은 내 신성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단 걸세."

시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처음부터 그걸 알아보기 위한 훈련이었나.

"자네가 무슨 염려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네."

파라한이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없던 일로 하고 밖으로 나가도 좋네. 이 늙은이는 앞길 창창한 젊은이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

시몬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파라한 교수가 아직 믿을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고, 자신을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사람의 앞에서 신성을 쓸 수 없다는 발뺌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성의 달인이었고,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도 어떤 확신이 있어서이리라.

'사실 신성방어학 교수가 키젠 본부에 증언하면 그냥 그걸로 끝나는 상황이야.'

키젠은 성녀 사태 이후 스파이에 극도로 민감해진 상황이다. 신성 사용자로서 심문을 당하게 되면 리처드와 안나에 대한 사실까지 새어 나갈지도 몰랐다.

그때 시몬의 주저하는 표정을 읽은 파라한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이 늙은이가 너무 조급했으이. 오늘은 그만 물러가도 좋네."

"......."

자리를 파하고 다음 기회를 마련할까?

아니다.

저기서 이쪽의 비밀을 아는 이상, 질질 끌어서 좋을 건 없다.

"계속."

시몬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교수님."

그 말에 파라한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대답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가 담긴 한마디였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군. 인내를 가지고 늙은이와 대화할 자세가 된 젊은이는 많지 않지."

그가 입고 있던 정갈한 도복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자네의 신뢰를 얻으려면, 먼저 지금 내 처지에 대해 이야기해야겠군."

펄럭!

파라한이 도복을 젖혀 상체를 드러내는 순간, 시몬은 깜짝 놀랐다.

그의 가슴과 복부 등에 수많은 '영속 마법진'들이 째깍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보다시피 내 목숨은 키젠 본부가 쥐고 있네."

파라한이 말했다.

"그들이 손가락 한번 까닥하면 이 늙은이는 즉시 흙으로 돌아가지."

"너,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난 감사하게 생각한다네."

파라한이 수염을 쓸었다.

"연방을 배신하고 오갈 길 없는 처지였네. 네크로맨서 측에서도 우리를 굳이 살려줄 필요가 없었지. 하지만 네프티스 님께서는 친히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네."

그가 흘흘 웃었다.

"세계의 반대편에서 이렇게 목숨도 건사하고, 반듯한 직장까지 얻고, 내 지식을 젊은이들을 위해 쓰고 있지 않나? 내 말년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허이."

"......."

"물론 사정은 내 조교들도 마찬가지일세. 영속 마법진은 학교에서 일하는 대가로 부착한 키젠 본부의 통제책이지. 프리스트들을 통제수단 없이 키젠에 풀어둔다면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의 눈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의 신성 능력자, 나와 자네의 처지는 비슷하네. 이 부분에 대해선 누구보다 이 늙은이가 자네의 고충을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네."

평온한 미소에 간결한 표정.

남에게 자신의 진심을 이렇게까지 완벽히 전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며, 절대 연륜은 무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게 뭘 원하시죠?"

"질문이 거꾸로 됐군."

파라한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내게 뭘 원하나."

"!"

"자네는 학생이고 나는 교수일세. 자네는 배우는 사람이고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지. 그래, 예를 들자면."

파라한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자네만 원한다면, 정식으로 백마법을 가르쳐 줄 수 있네."

그 한마디에.

시몬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칠흑과 신성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자네를 부정하지 않는다네. 자네는 운명론을 믿나?"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나는 여신께서, 네크로맨서인 자네에게 신성을 주신 것은 틀림없이 중대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파라한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 늙은이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키젠에 당도한 건, 바로 자네를 만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군."

시몬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갑작스러운 비밀 백마법 과외제의라니.

[크하하하하하!]

난데없이 머릿속에서 피어의 거대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깜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노, 놀랐잖아요 피어!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요?'

[저 노인은 제대로 미쳤다! 네크로맨서의 성지인 키젠에서 백마법을 가르치겠다고? 크흐흐흐!]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피어는 반대할 거예요?'

[반대할 이유는 없다! 성녀 사태 때, 나도 그 망할 '신성 언데드'라는 괴이한 상태를 경험해 봤으니까. 거기에 네놈은 성체폭발이란 기술도 썼다. 넌 이미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크게 신성에 관여되어 있어.]

'.......'

무엇보다 시몬은, 안나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시몬의 반은 엄마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시몬이 엄마가 태어나 살았던 곳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부정해도, 이미 자신을 이루고 있는 절반은 프리스트였다.

뭣보다 신성 또한 내 자산이다. 네크로맨서가 됐다고 해도 굳이 이 힘을 묻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배울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

"......교수님, 저."

시몬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결연한 눈빛으로 파라한을 보았다.

"백마법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바로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파라한이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파라한은 간단히 시몬을 테스트했다.

시몬의 백마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앞으로의 교육 방향이 잡히기 때문이었다.

"놀랍군! 아주 놀라워!"

파라한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몬은 한 가지 과목을 집중해서 파진 않았지만,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기본 공격기인 신성화살은 물론.

치유학의 기본인 힐과 큐어.

축복학의 스트렝스, 헤이스트, 인듀어런스.

그 외에 수호학의 방어기술도 가능했다.

이렇게 넓게 배운 이유는 역시, 프리스트가 되는 수업을 받은 게 아니라 신성연방에서 프리스트 연기를 하기 위한 훈련을 했기 때문이었다.

"기본기가 착실해. 에프넬의 학기 초 프리스트라고 해도 믿을 것 같구만!"

실제로 시몬은 연방에서 수많은 이단심문관들을 속여넘긴 전적이 있었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로 배웠어."

시몬은 슬쩍 미소 지었다. 동시에 누구한테 배웠는지 물어보지 않는 파라한이 고마웠다.

파라한이 정신없이 깃펜을 움직이며 말했다.

"오랜만에 백마법 강의를 하려니 설레는군. 혹시 자네, 전공하고 싶은 백마법이 있나? 물론 이대로 백마법의 수준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려도 된다만."

"으으음, 글쎄요."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혹시...... 제가 신수학도 배울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하네만, 신수가 없으면 수업을 시작할 수도 없네. 그리고 암흑연합의 땅에서 신수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걸세."

"역시 그렇겠네요."

일단 전체적으로 골고루 배우면서 에프넬의 7과목 중 적성을 찾아보기로 했다.

'키젠에서 백마법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시몬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레테는 잘 지내고 있을까?'

* * *

하늘섬.

에프넬 본부.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신성연방의 대주교이자, 신성역학 교수 라흘이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하얀 에프넬의 교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학생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번 일주일 동안 당신이 친 사고를 한번 보세요."

촤르륵.

라흘이 책상 앞으로 서류를 흩뿌리며 말했다. 여학생은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반항끼 다분한 표정을 지었다.

"동급생 구타, 상급생 폭행, 구타 폭행 구타 폭행."

서류를 줄줄 읽어내려가던 라흘이 이마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랑 싸우고 다니는 겁니까? 레테."

아무런 이색 없이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의 소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지들이 먼저 시비 걸었어요. 얘는 자꾸 뭔 고백하면서 귀찮게 하니까 줘팼을 뿐이에요. 에프넬에서 연애는 교수님도 싫어하는 교칙 위반이잖아요."

"폭력이 더 큰 교칙 위반이야!"

라흘이 버럭 소리치다가 이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제발, 에프넬 선발 1번 수석으로서! 아니, 그전에 한 사람의 여성 신도로서 행실 하세요. 니가 무슨 치고받고 싸우는 6살짜리 남자애예요? 왜 자꾸 사람을 두들겨 팹니까! 체통을 지키세요. 체통을!"

"여성 신도면 뭐 사람 패면 안 됨까."

레테가 시니컬하게 투덜거리자 라흘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레테!"

"솔직히 에프넬은 너무 딱딱하고 고지식한 것 같슴다. 직위, 신분, 성별에 맞는 몸가짐이 따로 있고 그거 안 지키면 잔소리 잔소리."

"레테도 잘 알지 않습니까! 경건한 몸가짐에서 경건한 마음이 나오는 법! 프리스트의 기본입니다!"

"그렇게 엄숙하게 하고 다녀도 딱히 신성이 더 오르는 것도 아니고, 애들 줘패고 다니는 지금도 제 신성은 변함없어요."

라흘이 한숨을 푹 쉬었다. 이 꼬맹이가 뭐 잘못 삶아 먹었나.

다소 성격이 까칠하고 우악스럽긴 해도 프리스트로서 경건하게 행실 하던 레테는 어느 순간부터 좀 바뀌어 있었다.

그래, 아마도 방학이 기점이었다. 방학이 끝난 뒤, 2학기부터 레테는 에프넬과 신성연방이 강제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것 같았다.

대체 누구와 만나서 무슨 영향을 받은 걸까.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네요."

라흘이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레테는 에프넬의 핵심 인재이자, 장차 어떤 방식으로든 연방을 이끌어나갈 거물이다.

아직까지 다음 '정화의 성녀'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정화의 성녀 후보 압도적 1순위의 인물이기도 하고.

안 그래도 상층부에서 레테 관리 안 하냐고 라흘의 신경을 벅벅 긁고 있었다. 언젠가 성녀가 되어서 반신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지금 버릇을 확실히 잡아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을 꿇도록 하세요, 레테."

"네에."

싱거운 목소리로 대꾸한 그녀가 의자에서 내려오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맨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부터 금식 기도 12시간을 지시하겠어요. 여신께 기도하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히 반성을......."

"라흘 교수님!"

문이 벌컥 열리며 수도사가 뛰어 들어왔다. 그러곤 귓속말로 뭐라고 보고하자 라흘이 인상을 확 구겼다.

"지금 당장 가겠어요."

라흘이 벌떡 일어나 꿇어앉아 있는 레테를 노려보았다.

"명심해요. 12시간이에요."

"네. 다녀오십쇼~"

레테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준비를 하며 말했다.

라흘이 헐레벌떡 관계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웃차."

그녀는 바로 일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옆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미쳤슴까. 그딴 거 미련하게 하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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