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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77화 (27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77화

치열했던 3차 BMAT 이후, 키젠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오느라 학생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기에, 교수진도 몸을 쓰는 훈련이나 수행평가보다는 교과서 진도 위주의 수업을 진행했다.

이렇듯 키젠에서 쉬어가는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이런 때야말로 개개인의 실력을 키울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시몬은 일주일에 1~2회 정도, 파라한에게 백마법 개인과외를 받았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도서관에 가서 바힐이 만든 4대 저주를 공부했다.

클라우드와 블러드 골렘으로 이어지는 혈류학 흑마법들도 효율성을 개선했고, 마투는 체력 위주로 훈련했다.

소환학도 기본기를 다졌다. 이제 시몬이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수는 최대 8기까지 늘어났다. 이 정도면 거의 1학년 최고 수치에 가까운 머릿수였다.

시몬은 하루하루 알뜰하게 실력을 쌓아 나갔다. 그에게는 단순히 키젠에서 살아남는다는 목표 외에도, 군단장 매그너스와의 결전도 있었다. 동기부여는 누구보다 확실했다.

'오늘 일과도 어떻게든 지나갔구나.'

409호에 들어와 책상에 앉은 시몬이 기지개를 쭉 켰다.

시험의 부담이 사라지고 자유시간이 늘었는데, 어째 평소보다 더 바빠진 기분이었다.

시몬은 어둠에 잠긴 창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달력을 바라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통합 2학기도 반이 넘게 지나가고 있었다. 달력을 바라보던 시몬이 깃펜을 들어 표시를 했다.

곧 어머니 안나의 생일이었다. 로크섬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편지와 선물이라도 보낼 생각이었다.

"나왔어!"

달칵하고 문이 열리며 딕이 유쾌하게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어서 와 딕."

"뭐하냐?"

"저주학 공부하려고. 나 잠깐 화장실 좀."

시몬이 자리를 비웠고, 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얘가 점점 메이린을 닮아가나. 어떻게 기숙사에서도 공부를 할 수가 있지?"

그가 겉옷을 벗어서 옷걸이로 향하려는데.

"음?"

딕의 시선이 시몬의 달력으로 향했다.

* * *

키젠과 평화로움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학생들 간의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사실 이번에도 평화는 길지 않았다.

"자, 여러분. 다음 주에는 파견평가 일정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초급 흑마법 수업시간에 제인이 새로운 사항을 공지했다.

'파견평가?'

이건 또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은 딕이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음흐흐, 드디어 올 게 왔군!"

"뭔지 알아요 딕?"

"나도 선배들한테 잠깐 들었어. 이제 곧 설명해 주실 거야."

그때 무심한 얼굴로 교탁을 정리하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그 설명을 들었다는 딕 헤이워드?"

그걸 또 들었단 말인가! 딕이 기겁한 표정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무평가와 파견평가의 차이에 대해서 말해 보세요."

메이린이 꼴좋다는 듯 킥킥거렸고, 시몬과 카미바레즈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 옙. 임무평가와 파견평가의 차이 말씀이시죠! 음......!"

딕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임무평가는 혼자 가는 거고, 파견평가는 '4인 1조'로 현장에 나가는...... 뭐 그런 차이 아닌가요?"

제인이 앉으라는 듯 쿨하게 손짓했다. 그제야 딕이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로크섬 밖의 현역 프로 네크로맨서에게 찾아가서 그를 멘토로 삼고, 함께 실전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겁니다."

프로와의 실전 임무란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분의 임무평가가 어떤 꼴로 돌아가는지는, 키젠에서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교탁에 내려놓은 또 다른 서류를 줄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로크섬 내부 임무는 주민들에게 협조를 구해서 쓰레기 치우기, 쥐 잡아주기, 나무 심기 같은 걸로 대충 때우고."

몇몇 학생들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보란 듯이 키젠 교복을 입고 상단 경호 임무를 한다거나."

메이린의 어깨가 움찔했다.

"키젠의 이름으로 권력을 동원해서 의뢰를 처리한다거나, 혹은 의뢰인을 겁박해서 도장을 받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죠."

딕이 고개를 슬쩍 돌린 채 '하하'하고 웃고 있었다.

"이름값 있는 학생의 경우, 귀족들이 지명의뢰로 저택에 데려와서 호화롭게 대접하고, 의뢰 확인서와 의뢰비를 그냥 내주기도 하죠."

어쩐지 반성의 시간이 되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제인이 말을 이었다.

"이해는 합니다."

암흑연합 사람들은 키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 설령 그게 파리목숨이라는 1학년생이라고 해도 키젠은 키젠이다.

즉, 임무평가에서 의뢰자와 학생 간의 수평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양심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학생들이 더 많지만, 키젠의 이름을 팔아먹어서 임무평가를 쉽게 클리어할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원래는 여러 학생들에게 경고가 들어가야 하지만...... 이렇게 임무평가가 개판으로 흘러가는 걸 방치해 둔 이유는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통합 2학기 커리큘럼이 많이 벅차니 일종의 휴가 기간처럼 사용하도록 내버려 둔 거죠."

제인이 서류를 돌돌 말아 손바닥을 탁탁 쳤다.

"하지만! 이번 파견평가만큼은 다를 겁니다."

제인이 파견평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딕이 앞서 말한 대로, 학생들은 자유롭게 '4인 1조'를 구성해 프로 네크로맨서를 찾아가고, 프로들은 그들의 멘토가 된다.

멘토들은 학생들과 함께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설명을 듣던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조원 네 명이랑, 인솔자가 추가되는 스타일의 임무평가네.'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강의실에서 누군가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제인이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그 손을 가리켰다.

"할 말 있습니까? 반장."

이제는 제인마저도 제이미를 반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넵,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다! 구체적으로 프로들과 어떤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평소 프로 네크로맨서들이 수행하는 일정을 그대로 맡는다고 생각하십시오."

"죄, 죄송하지만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예를 들자면."

제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인 암살."

제이미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프리스트 전투, 신성연방 첩보, 극악 죄수 운송, 갱단 섬멸작전."

그녀의 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학생들이 아찔한 표정을 지어나갔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번 파견평가의 90% 이상이 중립지대에서 시행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익숙한, 단순히 몬스터를 잡는 임무 따위는."

그녀가 긴장한 얼굴의 학생들을 둘러보며 덧붙였다.

"없습니다."

웅성 웅성 웅성.

"여러분은 이번 임무에서 누군가를 살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어지간해선 프로가 대신해 주리라 믿습니다만, 상황이 급박하여 프로의 지시가 떨어진다면 무조건 그에 복종하길 바랍니다."

제인이 진지한 눈으로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만약 프로들의 지시를 어기거나 잘못 보여서 프로가 0점을 부여하는 경우, 혹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경우에 여러분은 준 퇴학 절차를 밟게 됩니다. 징계위원회에서 임무의 불합리에 대해 스스로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퇴학이겠죠. 더 질문 있습니까?"

바로 몇몇 학생들의 손이 올라왔다.

"스콧 스나이더입니다! 이번 평가는 멘토가 누가 되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멘토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무작위입니다. 물론 학생들의 출신 및 가문을 고려해서 최대한 연고가 없는 네크로맨서를 멘토로 선정합니다. 다음."

"신디 비바체입니다. 만약 멘토가 악질적으로 0점을 주면 어떻게 하죠? 꼼짝없이 퇴학인가요?"

"첫째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 본인의 처신이 가장 중요하고, 둘째로 징계위원회서 본인의 결백을 밝히도록 하세요. 다음."

워낙 중요한 사안인 만큼 여러 질문이 오갔고, 제인은 언제나처럼 막힘없이 답해주었다.

그렇게 질문 몇 개를 더 받을 즈음,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내일은 개교기념일이군요. 휴일을 영리하게 활용하길 바라고, 내일모레 뵙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내 제인과 조교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마자 학생들의 목소리가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학생들한테 프로급 임무를 맡긴다고?"

"빡센 거 하나 끝내니까 또 빡센 게 나오네."

강의실에 남은 학생들이 굳은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제인을 뒤따라간 줄 알았던 조교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학생들을 살폈다.

그러곤 종종걸음으로 연단에 올라섰다.

"자, 자. 학생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녀가 모두를 주목시키며 상냥하게 웃었다.

제인의 수석조교인 그녀는 사근사근한 성격과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태도로 조교들 중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

"조교 쌤!!"

"진짜 막 프리스트랑 싸우고 사람 죽이고 그래요?"

제인의 기에 눌려 있던 학생들이 질문과 불안감을 쏟아냈다. 조교가 빙긋 미소 지었다.

"제인 교수님께서 긴장 좀 하라고 무섭게 말씀하신 느낌도 있네요. 멘토들 말만 잘 듣고 하라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문제없을 거예요. 가서 인사 꼬박꼬박하고, 대답 크게 잘하고, 선배분들은 예우를 갖춰드리고 싹싹하게 대해야 하는 거 다 알죠?"

"네!!"

"별거 없어요. 네 명이서 가는 임무평가에 보호자 한 명 낀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다녀오면 돼요."

냉정한 제인과 따뜻한 수석조교. 두 사람의 밸런스는 꽤 괜찮았다.

그사이 7조 조원들도 고개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네크로맨서 분이 멘토가 될지 궁금해요!"

카미바레즈의 말에 딕이 턱을 짚었다.

"으으음, 중립지대의 네크로맨서라니까 감을 못 잡겠네. 시몬, 넌 뭐 원하는 사람 있냐?"

"나?"

시몬은 잠시 머리를 굴려보다가 말했다.

"혹시 바닐라 쪽 사람들이 안 써주려나. 소환 마법진에 대해 더 배워보고 싶은데."

"안 될걸."

메이린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제인 교수님이 90%가 중립지대라고 말씀하셨잖아. 제작 멘토를 기대하는 건 힘들지."

"......하하, 중립지대에 간다니 조금 무섭네요. 혹시 세 분은 중립지대에 가본 적 있으세요?"

메이린과 딕이 고개를 저었고, 시몬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세 사람의 시선이 확 쏠렸다.

"어, 뭐야? 가본 적 있어?"

"와아! 언제요? 언제 가봤어요?"

"거기 진짜 막 도시 길거리에 프리스트들 돌아다니는 거 진짜냐?"

시몬이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신성연방 쪽 국경을 넘을 때 잠시 들르긴 했는데,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엄청 어릴 때...... 부모님이랑 같이 들른 적 있어.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

"아~ 뭐야."

메이린이 김샌다는 듯 웃었다.

"그럼 이번이 사실상 첫 중립지대겠네?"

"무섭지만 또 조금은 기대되네요! 대사막과 황무지 지대라고 들었어요. 선인장도 막막 많다고 들었어요!"

"아, 근데 거기 무법지대야. 다들 몰라? 눈만 마주치면 일단 흑마법부터 쓰고......."

어느새 또 화제가 전환되는 모습을 보며, 시몬도 미소를 머금은 채 끼어들었다.

* * *

대성당.

미사 시간.

"자, 여러분의 심방 파견 장소가 정해졌습니다."

많은 에프넬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가운데, 연단에 선 신성역학 교수, 라흘이 입을 열었다.

"레테 집중하세요."

"네에."

가장 앞자리에 앉은 레테가 꼰 다리를 풀며 대답했다. 라흘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는 다른 학생들을 보았다.

"심방의 핵심 장소는 중립지대. 그리고, 여러분의 주요 임무는 하나입니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성녀 후보자들의 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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