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79화 (27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79화

며칠 뒤.

키젠 1학년들의 파견평가 당일.

모두가 잠든 꼭두새벽부터, 시몬은 기숙사를 빠져나와 금지된 숲을 지나 피어의 유적에 들어왔다.

처억! 척! 척!

마치 악역들이 비밀 지하 기지에서 세계정복을 준비하는 것처럼, 시몬이 열어둔 초대형 아공간으로 군단화된 스켈레톤들과 송장거미들이 착착 줄을 지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도 같이 가는 거예요?"

[당연히 같이 가야죠 군단장님!]

거미 군단의 대장, 에르제베트가 말했다.

[프린스에게만 맡겨두기엔 소녀, 걱정돼서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사와요.]

제단에 앉아 있던 피어도 입을 열었다.

[로크섬 밖에서는 매그너스가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외부일정은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초대형 아공간으로 들어가는 군단의 언데드를 보며, 시몬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근데 이렇게 많이 데려갈 필요는......."

이건 뭐 전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스켈레톤 200기에 송장거미 100기다. 거기에 에이션트 언데드 둘, 나중에 합류할 프린스와 좀비부대까지 합하면 어지간한 영지를 하루 만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시몬은 확실히 해두기로 했다.

"이번 파견평가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제 목숨이 극도로 위험할 때가 아니면 나오지 말아 주세요. 어지간하면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군단이 움직이면 당연히 그 흔적도 남는다.

비명의 동굴에서 피어 혼자 움직였다가 매그너스에게 발각당해서 이 정도로 몰리게 됐는데, 만약 군단 차원에서 움직이면 매그너스에 너무 많은 정보를 내놓는 격이 된다.

[그럼 이렇게 하지!]

피어가 눈구덩이에서 검푸른 불꽃을 일으키며 말했다.

[네 목숨이 위험하거나, 매그너스 군단의 습격으로 군단 대 군단으로 대응해야 할 때만 우리가 나서겠다! 어떠냐?]

"네, 그런 제약이면 좋네요."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사이, 에르제베트가 의미심장하게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 * *

모든 준비를 마친 시몬은 피어의 유적에서 빠져나와 키젠으로 돌아왔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니 많은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설렘 반 긴장 반의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몬~ 여기예요!"

카미바레즈가 손을 휙휙 흔들어 보였다. 그 옆에서 시시덕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는 딕과, 팔짱을 끼고 있는 메이린도 있었다.

"왔냐?"

"빨리 와! 맨날 지각이야 이 늦잠쟁이!"

시몬이 얼른 달려가서 세 사람에게 합류했다.

"이거 입어."

메이린이 뭔가를 건넸다.

통풍이 잘되는 사막용 로브였는데, 모래를 막아주는 터번도 달려 있었다.

"메이린이 사줬어요!"

이미 로브를 입고 있는 카미바레즈가 제자리서 빙글빙글 돌았다. 시몬도 로브를 받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잘 입을게 메이린."

메이린이 민망한 듯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손을 휙휙 휘저었다.

"조, 조장으로서 당연한 거야!"

모두가 메이린이 사준 로브를 걸치고 만담을 나누었다. 주요 화제는 역시 중립지대였다.

"중립지대-! 살면서 거기 가보는 날이 오는구나!"

딕의 외침에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는 한숨도 못 잤어요! 조금은 무섭지만...... 여러분이 같이 있어 주셔서 안심이에요!"

"나도 그래."

시몬이 웃는 얼굴로 동의했다.

이렇게 네 명이서 같은 임무를 수행한 적은 처음이었다. 호흡도 잘 맞고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자기 역할을 잘해줄 능력도 있었으니 외부로 떠나도 든든했다.

시몬이 동의해주자 카미바레즈가 즐거운 듯 헤헤 웃었다. 긴 소매의 옷이 파닥파닥 흔들렸다.

"우웅, 카미 귀여워어."

뒤에서 메이린이 카미바레즈를 꼭 끌어안았다.

"언니만 잘 따라와. 미아 되지 말고! 나쁜 아저씨 따라가지 말고!"

"네, 언니!"

카미바레즈도 이제는 장난을 받아주는 방법을 습득했다.

예전엔 장난인지 진담인지 모르고 벌벌 떨기만 했는데, 말의 절반 이상이 장난인 딕이라는 존재 때문에 강제로 적응해 버렸다.

"난 어떤 네크로맨서가 멘토가 될지 제일 궁금하네."

시몬의 말에 딕이 얼른 끼어들었다.

"난 다른 거 안 바란다! 네크로맨서 어른들은 다들 미쳐 있으니까 덜 미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거 꽤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은......."

덥석.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여자 손이 시몬의 두 눈을 덥석 가렸다.

그의 시야가 순식간에 어둠으로 뒤덮였다.

"누구 게-에?"

시몬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잠깐, 이 목소리는?

시몬은 얼른 눈을 가린 손을 치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안녕! 시몬!"

시몬은 그대로 비명을 지를 뻔했다.

풍성하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품처럼 꼬여 있는 여자, 시몬은 그녀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에, 에르제?!'

에르제베트는 놀랍게도 키젠 교복 차림이었다. 성인 체형이라 교복이 무척이나 타이트했고, 겉옷은 허리에 둘러 묶고 넥타이는 목에 가볍게 둘렀다. 머리도 분홍색으로 염색했다.

@@ 삽화

'아공간에 들어가 있던 거 아니었어?'

"시몬."

메이린이 교복 차림의 에르제베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 뭐야?"

"아, 그......."

머릿속이 하얗게 세어버린 시몬이 우물쭈물하자, 에르제베트가 시몬의 팔에 멋대로 팔짱을 끼며 활짝 웃었다.

"반가워! 내 이름은 엘리자베스 웨퍼야! 시몬이랑은 같은 고향인 소꿉친구 사이! E반의 소환학 전공이야!"

......그딴 설정, 들어본 적 없다.

'에르제!'

시몬이 눈짓으로 얼른 아공간에 들어가라는 시선을 보냈지만 이 분홍머리의 에르제베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소, 소꿉친구?"

카미바레즈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시몬과 에르제베트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두 사람이 낀 팔짱을 응시했다.

"야."

반면 메이린은 냉랭한 표정으로 시몬을 노려보았다.

"너 레스힐인가 뭔가 출신이라매. 왜 고향친구가 키젠에 왔단 말은 안 했어?"

"아, 아니. 그게......."

"실은- 나 다른 영지로 이사 갔었거든. 그러다 키젠에서 보게 된 거야."

에르제베트가 능숙하게 대처했다.

"......음."

그때 딕은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에르제베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몬은 뜨끔했다. 딕의 정보력이라면 E반 애들을 다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혹시 에르제베트라는 여학생이 E반에 없다는 걸 바로 눈치챈 게 아닐까?

"크흡! 시몬 이 부러운 새끼......."

그냥 바보였다.

딕이 달려들어서 시몬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런 대단한 소꿉친구랑 아는 사이였으면 진작에 소개해 줘야 할 거 아냐!"

메이린이 옆으로 확 끼어들었다.

"야, 근데 너 진짜 시몬 소꿉친구 맞아? 언제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아, 안녕하세요. 저, 저는 카미바레즈 우르슬라라고 해요! 저, 저는 소꿉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갑자기 난장판이 되어간다.

시몬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고 에르제베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미안, 잠깐 둘이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

그렇게 도망치듯 에르제베트를 이끌고 나무가 울창한 숲 쪽으로 들어왔다.

시몬이 그녀를 나무 쪽으로 몰아붙이며 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에르제!"

그녀는 슬쩍 미소를 흘리며 혓바닥을 달싹였다.

"약간의 일탈이었사와요."

"일탈? 지금 매그너스 군단 때문에 위험한 상황인 거 너도 알......."

"저 학기 내내 맨날 유적에 박혀 있던 거 알아요?"

추궁하려고 했던 시몬의 표정에 뜨끔한 기색이 어렸다.

"후후, 소녀가 오로지 군단장님 한 사람만 보고 군단에 들어온 거 알죠? 우리 사정은 알지만, 매번 유적에서 지내면서 매그너스 군단이 로크섬에 상륙하지 않나 거미들로 정찰만 하고, 가끔 유적에 오셔도 피어랑 훈련하기 바쁘고. 이번에 오랜만에 외출하나 싶었는데, 역시 매그너스 군단 문제로 밖에 못 나갈 것 같고."

그녀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래서 이번엔 휙~ 나가본 것이옵니다! 벌을 주시겠다면 받겠사와요."

'......끙.'

그러고 보니 요즘 에르제베트를 너무 신경 못 써주긴 했다.

시몬이 한숨을 쉬었다.

"앞으론 내가 조금 더 신경 쓸게. 하지만 다음부터 이렇게 일탈할 거면 내게 먼저 말해줘."

"명심하겠사와요."

다행히 에르제베트는 큰 저항 없이 아공간으로 돌아갔다.

그때 마침 텔레포트 마법진 쪽이 떠들썩했다. 이제 출발하는 것 같아서 시몬이 얼른 뛰어갔다.

'출발 시작부터 정신없다 정신없어.'

마침 딱 텔레포트 마법진에 조원들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시몬 폴렌티아 학생 없습니까?"

"네, 여기요!"

시몬이 얼른 뛰어가 조원들을 따라잡았다.

카미바레즈가 시몬을 보고 물었다.

"시몬! 엘리자베스 웨퍼는요?"

다시 들어도 이름 진짜 대충 지었네.

시몬이 억지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자기 조로 돌아갔어. 하하."

딕이 흡족한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엘리자베스는 정말 최고였어. 키젠에 그런 애가 있었다니."

그때 텔레포트 관리원이 말했다.

"자, 그럼 다 왔나요?"

"네!"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는 시몬의 A반 7조 말고도 다른 반의 조원들도 와 있었다.

관리원이 문서를 들고 말했다.

"자, 여러분은 중립지대로 갑니다."

와아아!

텔레포트 마법진 밖에 있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중립지대 말고 안전한 곳으로 갈 확률이 소폭 상승해서 좋아한 것이다.

"그래 봐야 90%가 중립지대라는데 뭐."

메이린이 뿌루퉁한 목소리로 투덜댔다.

"각 조의 조장들 앞으로."

메이린과 조장들이 관리원 앞으로 섰다. 관리원이 두꺼운 편지 봉투를 사람에 맞춰서 하나씩 건넸다.

"이 편지에 파견지와 멘토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가 있을 겁니다. 그쪽으로 찾아가면 됩니다. 행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이내 텔레포트 마법진에 자리를 잡았다.

다들 손을 맞잡고 원처럼 둥글게 섰다. 카미바레즈가 쑥스러워하자, 시몬이 먼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작았다.

"그럼 출발합니다!"

네 사람의 발이 동시에 두둥실 떠올랐다.

* * *

텔레포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시몬은 추상화 속 세계의 끝없는 미끄럼틀을 타고 다니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눈을 감았다 뜨면 경관이 바뀌어 있는데, 이건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슬슬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쯤.

두 발이 묵직해지며 바닥을 딛는 감각이 느껴졌다. 피부에 바람이 느껴지고 짠 냄새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빛이 세어들어왔다.

'윽.'

햇빛이 엄청나게 밝았다. 잠시 눈이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 다들 괜찮으세요?"

"......으으으, 살아 있긴 하네."

같이 텔레포트를 타고 온 나머지 세 사람은 난잡하게 퍼질러 앉아 있었다.

시몬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일으켜 줄까?"

인어공주처럼 주저앉아 있던 메이린이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뜨고 처음 본 광경은, 눈부신 태양 뒤로 시몬이 빙긋 웃으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었다.

"......메이린?"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가 '왓!' 하고 화들짝 놀라며 시몬의 손을 잡았다. 이내 엄청난 인력에 끌어당겨지는 것처럼 그녀가 일어났다.

"......땡큐."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시몬은 웃어보인 후 다른 조원들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여기가 바로.......'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립지대.

네크로맨서의 대지도, 프리스트의 영토도 아닌 그야말로 완전한 중립과 자유의 공간, 동시에 최악의 치안으로 악명높은 무법지대.

하늘에서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쬈고, 주위에는 흙으로 쌓아 올린 듯한 특이한 양식의 집들이 가득했다. 바닥은 황톳빛이었으며 후덥지근한 날씨에 더운 바람이 불었다.

"저, 저기 봐요! 바다가 새까매요!"

카미바레즈가 도시 끝에 보이는 바다를 가리켰다.

흑해라고 불리는 이 근방의 바다였다. 이쪽의 해양 몬스터들은 격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네.'

시몬은 벌써부터 두근거렸다.

낯설고 특이한 지역에 뚝 떨어진 건 불안했지만,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은 평소와 같다는 점이 기분 좋았다.

"웃차차차! 그래도 간만에 바깥 공기 마시니까 살 것 같다!"

딕도 같은 생각인 듯 스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키젠에만 박혀 있으면 갑갑해. 가끔 이렇게 바깥바람도 쐬고 해야 사람 사는 거지! 흐흐."

"조용히 좀 해 바보야!"

메이린이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소년소녀들의 등장에,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보고 있었다.

네 사람은 일단 로브를 눌러쓰고 자리를 피했다. 건물 뒤편의 구석진 곳으로 들어갔다.

"일단 관리원님이 주신 편지부터 열어보자."

"응, 좋아."

메이린이 품에서 편지를 꺼내자, 세 사람이 그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럼 뜯는다?"

메이린이 비장하게 말하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천천히 봉투의 봉인을 뜯었다.

파직!

흑마법이 걸려 있었는지, 까만 전류가 파직 소리를 내며 튀었다.

메이린이 진지한 얼굴로 편지지를 펼쳤다.

"......뭐, 뭐야 이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