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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83화 (28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83화

"우웁! 우우우우웁!"

어둑어둑한 빈 집.

전신에 흉터와 문신이 가득한, 썩 불량스러워 보이는 20대 남자가 입이 막히고 두 손이 결박당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입이 헝겊으로 틀어막혀서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두 다리는 바닥을 쿵쿵 걷어차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메이린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던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아, 시끄러! 가만히 좀 있어!"

그녀의 윽박에도, 남자의 몸부림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여기예요!"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때에, 카미바레즈가 시몬을 데리고 왔다. 메이린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왔어?"

"어떻게 된 거야? 이 사람은 누군데?"

시몬의 물음에 메이린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열심히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성녀 후보자 '사샤'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은 모른다고 잡아떼거나 자리를 피해 버리는 등 철저히 메이린을 무시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뭐라고? 너 왜 그 아이를 찾아? 너 뭐야?

대뜸 정색부터 하는 남자가 있었다.

메이린이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덤벼들었다.

겉모습만 보고 어렵잖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은데, 초 단위 만에 역으로 제압당해서 지금 이렇게 의자에 묶여 있는 꼴이 됐다.

'사샤를 데려간 사람들의 관계자일까?'

아무래도 메이린이 제대로 한 건 해낸 것 같았다. 시몬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조, 조심하세요 시몬!"

"괜찮아."

그러곤 남자의 입을 틀어막은 헝겊을 풀어주었다.

"이런 %$@&@!!!"

바로 욕지거리부터 튀어나왔다.

"망할 꼬맹이들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아? 눈깔을 쪽 빨아 먹......."

"누구신데요?"

시몬이 물었다.

얼마나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물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대답할 뻔한 남자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말해주겠냐!"

시몬은 남자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시몬은 남자를 내버려 두고 빠른 걸음으로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구경하던 주민들은 움찔 놀라더니 도망치듯 걸어갔고, 시몬도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잡았다.

"저 사람 누군지 아세요?"

시몬이 그들과 나란히 걸으면서 물었지만 반응이 없다.

시몬은 바로 질문을 바꾸었다.

"우리는 사샤라는 아이를 찾고 있어요. 사소한 거라도 아는 게 있으시다면......."

"사샤?"

한 주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딴 괴물, 사라지든가 말든가."

괴물이라.

아주 적나라한 표현이었다.

시몬은 동네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사샤의 이미지를 한번 머릿속에 박아넣고는 되물었다.

"사샤가 왜 사라졌는지는 모르세요?"

"아, 뭔데 자꾸 귀찮게 해? 당신 누구야?"

역으로 이쪽의 정체를 묻는 건가.

키젠이 여기 와 있다는 소문이 나는 건 곤란하다. 뭣보다 이곳은 키젠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중립지대이기에 강제적인 수사권을 발휘할 수도 없다.

[크흐흐! 귀찮은 일에 휘말린 것 같구나 소년.]

'이럴 땐 딕에게 배운 어른의 방식을 쓰면 돼요.'

[어른의 방식?]

시몬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아, 주머니에 이런 게 있었네."

그러곤 손바닥을 펼쳐 금화 하나를 보였다.

어른의 방식에 바로 어른들이 반응했다. 두 사람의 눈이 탐욕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시몬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덤으로 말하자면, 중립지대에서도 암흑연합의 화폐인 실버, 골드가 통용된다.

"그 남자에 대해서만 알려주세요."

시몬이 금화 하나를 더 꺼냈다. 그러자 한 아저씨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서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 갱이야. 갱. 이쪽 근방에서는 꽤나 큰."

"아하. 무슨 갱이요?"

"센티널 갱단이라고 해. 코어를 개방한 네크로맨서 전투부대까지 있을 정도로 커. 우리 마을도 이 녀석들의 영역권이지."

시몬이 코인 두 개 위에 하나 더 꺼내 올렸다.

"그 '센티널'이라고 불리는 갱들이 사샤를 데려갔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다른 건 안 바라니까, 동의하신다면 고개만 끄덕여 주세요."

남자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은 기꺼이 3골드를 두 사람에게 지불하고는 다시 갱을 붙잡은 현장으로 돌아왔다.

"어때?"

메이린이 물었다. 그사이 갱단원이 또 이상한 말을 했는지, 메이린이 그의 멱살을 붙잡아 올리고 있었다.

"몰라. 끝까지 말 안 해주시더라."

갱단원이 클클 웃었다.

"당연하지! 이 영지는 우리 소속권이니 주민들도 우리 편이다! 잘 알아들었으면......."

"어, 방금 여기 소속권이라고 했죠?"

시몬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이렇게 스스로 밝혀주시네. 여러 갱단들이 있지만 센티널 파가 이 일대를 꽉 잡고 있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죠."

갱단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 그럼. 센티널 갱단이 사샤를 왜, 그리고 어디로 데려갔는지 말해줄래요?"

"모른다!"

"야이 씨! 이걸 진짜 확! 빨리 안 말해?"

보다 못한 메이린이 끼어들었고 두 사람이 또 싸우기 시작했다.

시몬은 슬쩍 한 발짝 물러나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 딕이 이리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손바닥을 펼쳐서 들어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낸 다음, 눈짓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키젠 생활 내내 붙어 다닌 두 사람이다. 바로 시몬의 뜻을 캐치한 딕이 나만 믿으라는 듯 엄지를 척 세우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흘흘, 늦어서 미안합니다."

노인으로 분장한 딕이 이상한 거적때기를 두른 차림으로 나타났다.

'......분장이 아니라 진짜 노인 같네.'

딕은 본인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생체얼굴을 쓰고 있었는데, 딕의 얼굴이 드러나면서도 수십 년은 늙어 보이는 인상을 줬다.

거기에 입고 있는 거적때기나 몸에 줄줄이 매단 해골 등은, 요즘의 스마트하고 트렌디한 엘리트 네크로맨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주 전통적인 네크로맨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할배는 또 뭐......!"

딕이 불쑥 앞으로 다가오더니 갱단원의 눈을 붙잡아 위아래로 벌리게 했다.

"으으음."

순간 압도당해 버린 남자가 당황한 듯 말을 멈췄다.

"뭘 하겠다고 했지?"

딕의 물음에, 시몬도 눈치껏 맞춰주었다.

"정보를 안 불어서요."

남자가 발작하듯 몸을 들썩였다.

"고문 기술자를 데리고 오다니! 하지만 소용없다! 난 그 어떤 고문을 받아도......!"

"떽!"

딕이 괴성을 질러댔다.

"나를 모욕하지 말게. 고문은 아-주 저급한 방식이야."

실감 나게 노인의 목소리를 흉낸 딕이 가위를 들었다.

서걱 서걱!

망설임 없이 남자의 앞머리가 잘려나갔다. 쇠의 섬뜩한 소리에 남자의 표정은 갈수록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어서 딕이 아공간에서 블러드 포션을 꺼내더니, 손끝으로 피를 찍어 남자의 이마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나?"

딕이 창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갱단원은 창가에 비춘 자신의 모습에서, 이마 위에 피로 그려진 점선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녁이었다.

왠지 모르게 전신에 소름이 돋은 갱단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문을 통해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가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지. 가장 확실한 방법은-"

딕이 케이스에서 수술용 칼을 꺼내 손에 쥐었다.

"두개골을 가르고 뇌를 꺼내서 조사해 보는 걸세."

"!!"

딕은 정말로 실감 나는 네크로맨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갱단원은 물론, 지켜보는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마저 당황할 정도로.

딕이 침을 꺼내서 이마에 꽂아 넣기 시작했다. 그 커다란 침이 절반 넘게 머리에 꽂혀 쑤욱 쑤욱 들어가자 남자는 진심으로 공포에 질린 듯 울먹이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미친 새끼들아! 중립지대에서 이러면 너네가 무사할 줄 알아?"

"걱정 말게. 뇌를 꺼낸 뒤, 자네의 몸뚱이는 들개들의 밥으로 줄 터이니."

딕이 수술용 칼을 꺼내 이마에 댔다. 피가 흘려내려 그의 시야를 붉게 가렸다.

결국 원초적인 공포에 이기지 못한 남자가 소리쳤다.

"말할게! 말한다고!!"

하지만 딕은 수술용 칼을 멈추지 않고 길게 그었다.

"제발! 내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 말할게! 그러니 저거 좀 말려봐!!"

비로소 시몬이 딕의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

"일단 한번 들어보고 판단하죠."

결국 갱단원은 모든 정보를 술술 불었다.

그가 속한 센티널 갱단에서 사샤를 납치해 데려오라는 고액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은 말단이라 의뢰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의뢰자는 사샤가 이 마을에 사는 것과 집 주소, 그리고 이 마을이 센티널 갱단의 영향권이라는 것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고 한다.

목적지는 '할둔 산맥'이라고 했다.

"뇌를 가를 필요는 없겠네요."

시몬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우리에 대해선 함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뭐, 조직의 정보를 발설했다는 걸 갱단이 알았다면 거기서 당신을 죽이려 들겠지만."

갱단원이 눈물 콧물을 줄줄 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네 사람은 건물을 빠져나왔다. 딕이 푸하! 하고 생체얼굴을 벗었다.

"으핫하! 나 연기 개쩔지 않았냐?"

시몬이 잘했다는 듯 딕의 머리를 툭 쳤다.

반면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딕과 약간 거리를 두고 걸었다.

"야, 평민. 오늘 하루 나한테 말 걸지 마. 소름 끼쳐."

"......딕, 무서워요."

"아, 연기라고!"

딕이 억울하다는 듯 거적때기를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때 네 사람의 앞으로 세이위르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났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그 목소리에는 무척이나 초조하고 애타는 감정이 느껴졌다.

"프리스트들은요?"

시몬이 역으로 질문했다.

"내가 위협하니 전부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사샤는 놈들이 데리고 있지 않았던 것 같더군요."

"그 말대로였습니다! 세이위르 요원님!"

딕이 불쑥 끼어들었다.

"처음에 세이위르 님이 프리스트를 쫓지 말고 주민들을 조사하라고 하셨을 땐 의아했는데, 진짜 요원님 말씀대로 프리스트가 아니라 갱단이 납치한 거였어요! 이걸 또 간파하고 계셨던 거죠?"

그 말에 잠시 멍해 있던 세이위르가 바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이며 앞머리를 넘겨 올렸다.

"물론입니다! 그런 의심은 처음부터 했으니까요."

"역시!!"

두 사람이 쿵짝이 잘 맞는 가운데, 시몬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뭐, 그 프리스트들은 가짜였을 테니까.'

그도 그럴게, 아까 골목에서 신성폭발이 일어나고 바닥이 박살 나고 했던 그 흔적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자! 그래서 이젠 사샤를 데려간 갱단을 쫓으면 되겠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이위르의 말에 메이린이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요원님이 지시해 주셔야죠."

"하, 하하! 내, 내가 정답을 알려주면 그건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니까요. 자, 여러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

웃는 얼굴이지만 입꼬리 끝이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빨리 니들이 방법을 생각해 내!'라고 닦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 붙잡은 갱단의 소지품에서 지도를 손에 넣었습니다."

지도를 펼쳐 들고,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갱단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할 자본과 기술력은 없겠죠. 산을 오르려면 마차를 타고 갔을 겁니다. 목적지는 할둔 산맥인데, 진짜 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네요. 여기서 갱단과 의뢰자는 사샤를 거래하겠죠. 그리고 그 의뢰자들은 아마도-"

"에프넬 쪽 사람이란 거지?"

메이린의 말에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정보력이라면 키젠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용병들을 움직여서 먼저 사샤를 확보하고, 할둔 산맥에서 그녀와 돈을 교환하려 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지원받아 할둔 산맥으로 가서 갱단을 쳐부수고 사샤를 구해내는 방법이네요."

시몬이 거기까지 말하고 세이위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이위르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까도 말했듯 텔레포트는 곤란합니다. 좌표의 위치가 에프넬 측에 들킬 이유가 있고 또......."

세이위르가 열심히 변명을 했지만, 아마 권한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권한이 있다 한들 벤젼스에서도 텔레포트 마법진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키젠이나 돈이 썩어나는 바닐라 및 상아탑 정도나 가능한 거니까.

"......."

이제 감을 잡았는지, 세이위르를 바라보는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의 눈에도 의심이 서렸다.

"그럼 다른 방법."

시몬은 모른 척하며 지도의 강줄기를 가리켰다.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중간에 끊어버리죠. 아직 갱들은 산에 오르진 못했을 거예요."

"강으로 간다고? 배, 배는 또 어디서......."

시몬이 딕을 응시했다. 딕이 입꼬리를 올리며 흐흐 웃었다.

"보트의 마나 엔진을 점검해 봐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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