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84화
그날 밤.
할둔 산맥 초입부.
좁은 오솔길에 말발굽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졌다. 다섯 대의 마차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중이었다.
몇몇 남자들은 마차 지붕에 올라타 있었고, 또 몇몇은 개인 말을 타고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공통점은, 모두가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는 거였다.
특히 마차 위에 나부끼고 있는 적색 배경의 깃발. 방패에 박힌 단검 문양은 울던 아이도 뚝 그친다는 '센티널' 갱단을 뜻했다.
그리고 마차 내부.
다섯 명이 들어가도 넉넉한, 크고 호화로운 마차 안에는 앳된 소녀가 무감정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에프넬과 키젠 모두가 찾고 있는 소녀, '사샤'였다.
"하하하! 그래서 그 여자가 결국!"
"아- 밥맛 떨어지게!"
곳곳에서 왁자지껄한 음담패설과 육두문자들이 쏟아졌다. 소녀는 무슨 소린지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보다 이 어른들은 누굴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어른들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꼬맹아."
그때 그녀의 우측에 앉아 있던 갱단원이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앞이나 봐 앞. 도망칠 생각일랑 하지도 말고."
"......."
사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양옆에 남자 두 명, 앞자리에 또 두 명, 뒤따르는 마차들과 말을 타고 있는 남자들까지.
그의 말대로, 도망칠 생각도 들지 않는 극히 삼엄한 경계였다.
"근데요, 대장."
갱단원이 고개를 기울여 앞 좌석으로 말을 건넸다.
"우리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닙니까? 그냥 애 하나 데려가는 것 가지고."
"모르는 소리."
앞자리에 앉은 올백머리의 중년 남자가 말을 받았다. 이마에 세월이 느껴지는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는 고집스러운 인상이었다.
"산맥에 득실거리는 몬스터도 경계해야 하고, 뭣보다 의뢰자가 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에 갱단원이 냉소를 흘렸다.
"대갈빡에 화살 처맞은 놈들 아닌 이상 누가 우릴 습격해요? 이 근방에 센티널의 악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이 인원으로도 안심이 안 돼."
대장이라 불린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뒷자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거 좀 치워줘라."
"아, 귀찮게."
어느새 사샤가 앉은 주위에는 나뭇잎과 나뭇가지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망할 꼬맹아, 이런 거 그만 좀 싸.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잖아."
갱단원이 그녀의 주위에 떨어진 나뭇잎을 집어서 창밖으로 던지며 투덜거렸다.
사샤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륙에서 극소수의 선택받은 존재만이 손에 넣는다는 태생적인 힘. 흑마법도, 신성마법도, 순수마법도 아닌 규격 외의 이능.
"기분 나쁘네."
마침 그녀의 넓은 이마에 나뭇가지 하나가 삐쳐 나와 있었다.
갱단원이 짜증스럽게 그것을 붙잡아 뚝! 소리가 나게 꺾자 사샤가 '앗' 소리를 내며 작은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크크, 그래서 쟤가 살던 마을에서도 저 꼬맹이를 끔찍하게 보더라. 우리가 데려간다니까 다들 좋아죽는 눈치였잖아."
"알 만하네."
그 말을 들은 사샤의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어, 어어?"
"뭐야!"
그녀의 몸에서 나뭇가지들이 죽죽 삐져나오더니 급기야 유리창까지 박살 내며 뻗어 나갔다.
가지에서는 새싹이 피어났고, 그 새싹이 나뭇잎이 되어 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이 씨! 갑자기 무슨......!"
"꼬맹이를 자극하지 마!"
올백머리의 대장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곤 사샤가 있는 뒷좌석으로 직접 건너왔다.
"니들은 그냥 입 다물고 있어. 도움이 안 되니까."
딸칵.
그가 허리춤의 포켓에서 주사기 같은 물건을 꺼내더니 그녀의 몸에 꽂았다.
의뢰자가 사샤를 포획할 때 쓰라고 준 안정제였다.
안정제가 들어가자 무럭무럭 늘어나던 나뭇가지와 쏟아지는 나뭇잎의 성장이 가까스로 멈췄다.
"와-하! 진짜 괴물이네 괴물이야."
올백머리 대장이 그 말을 한 갱단원의 머리를 퍽! 소리가 나게 쳤다.
"입 다물라고 두 번 말한다. 쓰레기 치우기나 해."
"다른 애들이랑 교대 좀 해주십쇼! 이 자리 죽겠네 진짜!"
소녀의 좌우에 앉은 갱단원들이 투덜거리며 나뭇잎을 밖으로 던지기를 반복했다.
대장은 다시 앞 좌석에 들어와 등을 기대고 앉았다.
'슬슬 경사가 높아지는 걸 보니 다 와 가는군.'
이번 의뢰만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는 거나 다름없다.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큰돈이다.
다만 그의 경험상, 별거 아닌 일에 이렇게 큰돈이 걸리는 의뢰는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의뢰자를 만나 돈주머니를 받기 전까지 절대 방심할 수 없다.
-히이이이이힝!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차가 덜컹거리며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불길함을 느낀 대장이 얼른 마차 밖으로 뛰쳐나와 보았다. 가장 앞에서 마차를 끌던 말들이 공포에 질려서 날뛰고 있었다.
이내 다른 말들에게도 공포가 전염되기라도 한 듯, 발굽을 구르고 투레질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대, 대장! 저기......!"
한 갱단원이 손가락을 뻗어 앞을 가리켰다.
어둠 가득한 숲속에서, 새하얀 뭔가가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갱단원들이 소리쳤다.
"어, 언데드다!!"
"전원 전투 준비!"
따다닥!
따딱!
어둠에 잠긴 숲속에서, 무기를 하나씩 든 스켈레톤들이 다가오는 모습은 숨이 멎을 만큼 공포스러웠다.
"여, 여기서 언데드가 왜?"
올백머리 대장은 표정을 굳혔다. 틀림없이 저건 자연형 언데드가 아니다.
"조심해라! 네크로맨서들이다!"
"예?"
그 순간.
밤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작은 인영이 보였다.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소녀의 눈동자는 붉었고, 그 뒤로 보이는 커다란 보름달마저 붉게 보였다.
그녀의 두 손이 거칠게 내려갔다.
<풀 블럼(Full Bloom)>
투콰아아아아아악!
맹수처럼 날아온 소녀가 마차로 떨어지며 두 팔을 내리긋자, 높이 6미터가 넘는 시뻘건 피의 파도가 마차를 수 개의 조각으로 박살 내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우아악!"
"허억!"
마차에 타고 있던 갱단원들이 그대로 피의 파도에 밀려났다. 그 가운데 있던 사샤도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사샤는 티끌만큼도 다치지 않았다. 그녀를 중심에 놓고 피의 파도를 일으킨 것이다.
차악.
바닥에 내려온 소녀가 다가와 사샤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혼자 무서웠지?"
"......."
"이제 괜찮아."
이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
그럼에도 사샤는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따뜻하다고 느꼈다.
"마차로 가!"
그 모습을 본 갱단원들이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놈들이 꼬맹이를 노리고 있다!"
"막아!"
쿠궁―!
마차로 달리던 갱단원들이 급히 걸음을 멈췄다. 난데없이 바닥에서 커다란 얼음벽이 솟구쳐 앞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건 또 뭐야!"
콰콰콰콰콰!
쿠구구구!
얼음벽들은 계속해서 바닥에서 올라왔다. 마치 피자 조각 자르듯 갱단원들 사이를 가르고 또 갈라 버렸다.
"지,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거기! 괜찮냐?"
그와 동시에, 대기하던 스켈레톤들이 얼음벽에 막힌 갱단원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언데드가 온다!"
"이쪽부터 막아!"
채앵! 까아앙!
망자와 생자의 무기가 서로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전술도, 전략도 없는, 오롯이 눈앞의 적을 치우기 위한 치열한 난전이 펼쳐졌다.
'빌어먹을!'
마차의 제일 앞으로 와 있던 올백머리 대장은 퉷 하고 침을 뱉었다.
'스켈레톤의 숫자로 미루어보면, 이 네크로맨서들은 한둘이 아니다.'
"대장!"
한 갱단원이 앞을 가리켰다.
"저, 저기......!"
마차 무리의 전면, 어둠에 잠긴 오솔길에서 후드를 눌러쓴 소년이 저벅저벅 로브자락을 휘날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다.
"여기도 네크로맨서가 있다!"
갱단원들이 검을 세우며 경계하는 가운데, 올백머리 대장의 눈이 번뜩였다. 뒤에서 언데드나 부리던 놈들이 웬일로 전면에 나섰을까.
"놈을 처치하면 다수의 스켈레톤들을 멈출 수 있다! 먼저 가서 쳐라!"
대장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갱단원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우르르 달려들었다.
새까만 후드 안에서 소년의 안광이 번뜩였다.
"후웁!"
제일 먼저 달려든 갱단원이 검을 높게 들어 올렸다.
"죽......!"
쩌억!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찰나에 검을 든 갱단원의 코뼈가 으적거리며 내려앉고 핏물이 터져 나왔다.
성큼 다가온 소년이 갱단원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쥐고는 힘주어 던져 버렸다.
퍽!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갱단원이 부딪히고, 포개어 있는 두 사람의 복부를 소년이 날아올라 걷어찼다.
"크헉!"
"컥!"
두 사람이 한 번에 나뒹굴고, 소년이 바닥에 내려왔다.
"이 새끼!"
옆으로 우회해 온 새로운 갱단원이 기합성과 함께 도끼를 휘둘렀다.
부아앙!
묵직한 일격이 허공을 가른다. 옆으로 슬쩍 피한 소년은 툭 하고 갱단원의 발목을 가볍게 걷어찼다.
"!"
그가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사이, 맹금류처럼 날아오른 소년의 무릎에 얼굴이 찍히며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크아아아!"
부웅!
측면에서 뛰어온 또 다른 갱단원이 소년의 등을 노렸지만, 마치 등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가뿐히 허리 굽혀 피하는 소년이었다.
"이 새끼가!!"
갱단원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부웅!
수직베기.
부웅!
횡베기.
부웅! 부웅! 부웅!
푸른 검격이 연신 소년을 노렸지만, 소년은 제자리에서 스탭을 밟거나 몸을 회전하는 등, 살짝살짝 움직이는 최소한의 동작만으로도 공격을 피해냈다.
갱단원에 입장에선, 계속 검이 빗나가는 게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아니, 이게 왜 안 맞는......!"
으적!
소년의 발등이 갱단원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가 커흑! 소리를 내며 코와 입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싸울 줄 아는 놈이야!"
"둘러싸서 잡아!"
갱단원들이 일정 거리를 두고 포위망을 구성했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은 두 무릎을 크게 굽히는 자세를 취하더니, 힘껏 땅을 걷어찼다.
쩌어어어어어엉!
그리고 소년이 나타난 곳은 난데없이 얼음벽 근처, 후방에 있던 활을 든 갱단원이 얼음벽을 반쯤 부순 채로 처박혔다.
소년은 바로 다음 목표를 향해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의 주먹이 검푸른 칠흑에 휘감긴 채 뻗어 나갔다.
퍼억! 퍽! 으적!
압도적이었다.
마치 양 떼 속에 들어온 늑대처럼, 소년이 가는 곳마다 터지고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며 갱단원들이 하늘 높이 날아다녔다.
"!"
그때 처음으로 소년이 멈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살벌한 검은 검격이 그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소년이 목에 살짝 베인 피를 만져보더니 고개를 들어 의외라는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칠흑을 쓸 수 있는 게 너희 네크로맨서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올백머리 대장이 칠흑으로 물든 검을 들고 있었다.
동시에 뭔가를 한 움큼 집어 든 그의 왼손이 움직이자, 새까만 뭔가가 촤르륵!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터엉!
텅!
소년이 전면에 칠흑방패를 펼쳐 막아냈다. 바닥에 떨어져 툭툭 지면에 박히는 것은 검은 표창이었다.
"칼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지."
올백머리 대장이 자세를 낮췄다.
"우리도 이제는 돈을 모으면 코어부터 개방하러 간다. 그런 시대가 왔어. 그 힘은 이제 너희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거다, 네크로맨서!"
그러자 네크로맨서가 눌러쓰고 있던 로브를 걷어냈다.
푸르스름한 빛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귀공자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소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호오."
생각보다도 더 앳된 모습에, 올백머리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지금 칠흑에 대해서 논하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한 소년의 인영이 팟! 하고 사라졌다.
올백머리가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자 소년이 뒤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올백머리가 급히 방패를 당겨 몸을 가드했고, 달려든 소년의 주먹이 방패에 닿았다.
<홍펭 오리지널 - 천흉>
퍼벅!
소년의 주먹에서 나아간 파장이 방패를 넘어 올백머리에 복부에 충격을 가했다.
그가 '크헙!'하는 소리를 내며 잇새에서 침이 터져 나왔다.
'막았는데 어째서!'
무용지물이 된 방패를 집어 던진 올백머리가 검을 양손으로 잡고 거칠게 휘둘렀다.
물러나듯 피한 소년이 오른 주먹을 쥐고 머리 위로 휘둘렀다.
"칠흑은 누가 쓰느냐 보단."
<홍펭 오리지널 - 착검>
촤아아아아악!
난데없이 올백머리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가 당황한 듯 눈알을 굴렸고, 소년은 칠흑이 깃든 팔을 늘어뜨리며 미소 지었다.
"누구한테 배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