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86화
전투는 끝났다.
모든 갱단원들을 쓰러트렸고, 대충 죽지 않을 정도로만 치료해서 항복한 갱단원들과 함께 나무 밑동에 묶어놨다.
나중에 복귀해서 벤젼스나 중립지대의 자경단에 연락하면 알아서 처리하리라.
"안녕-"
메이린이 다가와 최대한 예쁘게 웃는 얼굴로 사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낯선 사람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사샤는 몸을 샥 돌리며 카미바레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메이린은 섭섭한 표정으로 허리를 세웠다.
'쉽게 경계를 안 풀어주네.'
사샤는 카미바레즈 외의 사람들에겐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경계심 가득한 어린 동물처럼 주위를 휘휘 둘러볼 뿐이었다.
"하하하! 다들 훌륭합니다!"
그때 짝. 짝. 박수를 치며 세이위르가 나타났다.
다들 로브에 모래를 뒤집어쓰고 피가 묻고 난리인 가운데, 그 혼자만 멀쩡한 차림이었다.
"내 지휘에 잘 따라와 줘서 고맙습니다 요원들."
"지휘는 무슨......!"
메이린이 버럭 소리쳤다.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나요? 전투 중에 꽤 위험한 상황도 있었는데 왜 안 도와준 거냐고요!"
"무슨 섭섭한 말씀을."
세이위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 또한 생사를 건 치열한 전투 중이었습니다. 한 번에 30명을 넘게 상대했지요."
"저 갱단 인원이 30명 조금 더 되는데 무슨 소리야!"
"메이린 요원. 그런 벅벅 긁어대는 태도는 팀워크를 해칠 뿐이에요. 이대론 팀워크 점수에 감점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네요."
점수에 민감한 메이린이 분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점수 가지고 더럽게 쪼잔하게 구네 진짜!'
"아, 저기 왔군요."
누더기를 입은 딕과 시몬이 포로들을 심문한 뒤 복귀하고 있었다.
딕은 저번에 마을에서 붙잡은 갱단원을 조사할 때와 같은 방법을 쓰고 오는 길이었다.
"쟤들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본데요?"
딕이 보고했다.
"중립지대에선 의뢰자가 정체를 숨기고 접근하는 건 비일비재하대요. 큰돈을 받았으니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 것 같아요."
시몬도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대단히 수고했습니다 요원들."
세이위르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내 지도와 지휘로 일취월장한 여러분의 실력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
시몬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쵸 그쵸. 전부 요원님 덕분이죠."
워낙 싹싹하고 사회생활 잘하는 딕이 맞장구를 쳐줬지만 슬슬 그의 목소리에도 예전과 같은 텐션이 없었다. 영혼 없는 칭찬 같은 느낌.
딕도 이번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세이위르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이제!"
세이위르가 시몬을 척 가리켰다.
"이 뒤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제시해 보도록 하세요! 시몬 요원!"
"......."
시몬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자, 세이위르가 슬슬 그의 눈치를 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과 가까운 답을 내놓는다면! 전술 점수를 주도록 하겠어요!"
이제 점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시몬이 가볍게 한숨을 쉰 다음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산언덕이 보였다.
"의뢰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센티널의 대장으로부터 접선장소를 알아냈습니다. 여기서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라 직접 가서 의뢰자를 붙잡고 싶었는데."
시몬이 다시 고개를 돌려 마차가 박살 나고 피가 흩뿌려진 전투의 흔적을 보았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전투가 일어났어요. 당연히 소란을 들었을 거고, 우리가 쫓아가 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네요."
"그렇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세이위르가 추임새처럼 말했다.
"일단 사샤도 다리를 다쳤고,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여기서 빠져나가서 벤젼스 본부가 있는 처음 마을로 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이동수단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세이위르도 동의했고, 다들 빠르게 흩어졌다.
"오, 이거 봐 시몬! 여기 그나마 멀쩡한 마차 하나 남았다!"
딕이 마차 몸체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바퀴 한쪽이 나간 것 같은데, 고칠 수 있어?"
"당연하지! 다른 멀쩡한 걸로 갈아 끼우면 돼!"
딕이 마차 보수에 들어간 사이, 시몬은 마차를 끌어줄 말들을 찾아다녔다. 대부분의 말들이 난리통에 도망치거나 전투에 휘말려 죽은 뒤였다.
'해골마를 만들 순 없겠지.'
시몬은 죽은 말 사체 앞에 쪼그려 앉아 살펴보았다.
이 대륙에서 마차를 이끄는 건 대부분 몬스터와 말의 교배로 태어난 '하노브레드'라는 종이다. 그리고 해골마로 만들 수 있는 건 순수한 말 몬스터의 시체여야 했다.
'이것도 하노브레드구나.'
시몬이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말 하나가 쓰러진 채 쌕쌕거리며 숨을 쉬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런.'
이 말은 마차에 줄이 걸려 있어서 도망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전투에 휘말렸는지 배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 말은 틀렸군요. 그냥 숨을 끊어 편하게 해주는 게 좋겠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세이위르가 슬쩍 참견했다.
"제가 한번 상처를 봐볼게요."
시몬이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냈다.
"소용없다니까."
세이위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번엔 메이린에게 훈수를 두러 떠났다.
시몬은 포션 뚜껑을 열어 말의 상처에 붓는 척하며 뒤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무도 안 보고 있지?'
다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 틈에 시몬은 말의 상처 앞으로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아무도 모르게.
최대한 빨리.
<힐(Heal)>
우우웅!
시몬의 손바닥으로부터 하얀 신성이 흘러나와 말의 상처를 감싸기 시작했다.
'집중, 집중.'
그동안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백마법을 배운 성과가 나타났다.
말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말의 호흡도 규칙적으로 변했고, 자신을 치료해 주는 것을 아는지 얌전히 있었다.
'됐다.'
상처가 말끔히 봉해졌다. 시몬은 치료를 마친 뒤 포션을 대충 뿌리듯 묻히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 말,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딕과 메이린이 '진짜?'를 외치며 다가왔다.
세이위르도 합류했다가 정말로 말의 상처가 나은 것을 보며 입이 벌어졌다.
"흠흠, 아주 잘했습니다 시몬 요원! 사실 아까 숨을 끊어 편하게 해주라고 한 건 당신을 자극해서 진가를 끌어내기 위한......."
"네, 네."
시몬이 다음으로 사샤의 상태를 보러 갔다.
그때 메이린이 시몬의 옆으로 따라붙어 속삭이듯 물었다.
"야, 시몬. 세이위르 요원님 쫌 수상하지 않냐?"
시몬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수상하지.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다 맞을 거야."
"응?"
시몬은 거기서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사샤는 카미바레즈가 함께 있어 주고 있었다. 이미 다리를 응급처치한 듯 붕대로 둘둘 말아져 있었다.
"안녕."
시몬이 말을 걸자 사샤가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려 했다.
"진정해."
그전에 시몬이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사샤가 카미바레즈의 품에 폭 안기자, 그녀도 따뜻하게 끌어 안아주며 머리를 쓰담쓰담했다.
메이린도 조금 거리를 둔 채 무릎을 모으고 쪼그려 앉았다.
"그나마 카미는 잘 따라줘서 다행이네."
그러곤 꽃받침을 하며 카미바레즈와 사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 끌어안으며 꽁냥거리는 모습을 살살 녹아내리는 미소로 바라보았다.
"귀여움 더하기 귀여움은 왕왕 귀여움!"
'......뭔 소리야.'
시몬도 메이린의 옆에 쪼그려 앉아 카미바레즈에게 신호를 보냈다.
카미바레즈가 시몬의 신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사샤에게 말했다.
"여기 있으면 또 누군가 공격해 올지도 몰라.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
그 말에 사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랑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아."
* * *
다행히 사샤는 순순히 카미바레즈를 따라와 주었다.
이내 다섯 명이 마차를 탔다. 딕이 앞에서 마차를 몰기로 했고, 앞 좌석에는 시몬과 세이위르가 탔고, 뒷좌석에는 메이린, 사샤, 카미바레즈 순서대로 탔다.
시몬과 세이위르가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 사이, 카미바레즈는 사샤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부모님은 마을에 계셔?"
사샤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엄마 아빠는 얼굴도 본 적 없어."
그녀는 고아였다.
"그럼 혹시 사샤는 마을로 돌아가고 싶니?"
"마을은 싫어, 무서워!"
그녀가 꽤 강하게 반응했다.
"무섭다니 누가?"
"......마을 사람들."
그녀의 어깨가 떨리더니 나뭇잎들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미바레즈가 얼른 그녀를 꼭 껴안고 달래주었다.
"응, 알았어. 마을에는 안 갈게."
카미바레즈가 그렇게 말하며 시몬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켈소의 사람들이 사샤보고 분명 '괴물'이라고 했지.'
태어날 때부터 이능을 가진 아이.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몬스터와 한없이 가까운 괴물처럼 보일 수 있다. 사샤처럼 능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타입이라면 더더욱.
이번엔 메이린이 물었다.
"엄마 아빠가 안 계시면, 마을에 혼자 살았던 거니?"
사샤가 고개를 저었다.
"대부님이 가끔 들러."
"대부님?"
"응."
"그분은 누구야?"
"사샤도 잘 몰라. 그래도 사샤가 아팠을 때 도와줬어. 안 아프게 해줬어."
시몬은 사샤의 집에 누군가 왔다 갔다 한 흔적을 떠올렸다. 주사기랑 약품도 있었고.
시몬은 그 대부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좋아, 대충 정리해 보자면.......'
사샤는 고아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이능 때문에 켈소의 마을 사람들에게 괴물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마을에 돌아가는 걸 두려워한다.
그리고 대부라는 사람이 들러서 그녀의 능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막았던 것 같다.
'대충 여기까지, 일단은 벤젼스로 돌아가는 데 집중하자.'
시몬이 지도를 펼쳐 들었다.
"세이위르 요원님. 이렇게 움직이죠."
처음 올 때는 벤젼스 본부 → 사샤의 고향 켈소. → 할둔 산맥의 순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바로 할둔 산맥에서 벤젼스 본부가 있는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중간에 숲이 있어서 몬스터의 공격이 염려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추적대나 에프넬 프리스트들의 습격을 피해서 도망치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었다.
"그리고."
시몬이 세이위르를 보았다.
"벤젼스와 연락해 주세요. 언제 에프넬이 공격해 올지 모르니까, 마중 나올 수 있는 데까지 마중 나와달라고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세이위르가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표정을 짓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하, 하하!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시몬 요원! 벤젼스도 바쁘니까 이건 우리끼리 해결해야......!"
"설마아."
메이린이 잘 걸렸다는 듯 미소 지었다.
"벤젼스 에이스 요원이 본부와의 연락책인 통신 수정구도 없다는 그런 말은 안 하겠죠?"
* * *
-끄어어억!
-꾸룩! 꾸룩!
현실에 지옥이 있다면 이런 광경일까.
피로 차오른 연못 속에서 신체 일부가 비대하게 부풀어진 몬스터들이 고통스러운 괴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 수는 거의 수백에 이르렀다.
산맥의 몬스터를 모조리 털어서 만든 지옥 속에, 오렌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우뚝 남자가 서 있었다.
화상을 입은 듯 문드러진 얼굴에, 한쪽 눈의 동공이 희미했다.
겉에 걸친 펄럭이는 프리스트 로브 안에는, 무수한 케이스와 작업용 주머니가 있는 복장이 보였다.
그 안에는 주사기와 약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이걸로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어떤 감정의 고저도 없이 주사기를 몬스터의 몸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몬스터의 손가락 하나가 바위처럼 쩌적 부풀었다.
몬스터가 괴로워하며 비틀거렸지만, 남자는 고통은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몸을 일으켰다.
"악취미네요."
어둠 속에서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에 남자가 등을 돌렸다. 그러곤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라우스(Laus), 레이디 여러분."
어둠 속에서 하얀 에프넬의 교복을 입은 네 명의 여학생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각양각색의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인솔자인가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피가로라고 합니다."
"리리넷입니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인솔자님, 대체 뭘 한 거죠?"
그때 리리넷 뒤의 한 여학생이 몬스터들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여신의 저주를 받은 자들로 유익을 창출하고 있었습니다."
피가로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신성연방에서 몬스터는 그냥 여신의 저주를 받은 괴물들이라는 인식이었다.
리리넷도 몬스터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입을 열었다.
"일 이야기나 하죠."
"예, 우선 상황을 먼저 브리핑하겠습니다."
피가로의 말에 리리넷이 어깨를 으쓱했다.
"브리핑할 것까지 있어요? 그냥 신성 적합도가 높은 중립지대 사람을 납치하는 것뿐이잖아요."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키젠이 냄새를 맡고 뛰어들었습니다."
키젠이란 말에 리리넷의 눈이 커졌다. 뒤쪽의 여학생들도 자기들끼리 숙덕댔다.
"키젠 측이 한발 빨랐습니다. 여러분의 도착이 늦어져서, 제가 먼저 임의로 움직였습니다. 지방 갱단을 고용해서 목표물을 이리로 데리고 오려고 했죠."
"센스 있네요. 성공했나요?"
"실패했습니다."
피가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기어이 키젠에서 따라잡아 소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지금쯤 빠져나갔겠죠."
"......끙."
리리넷이 인상을 굳혔다. 피가로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키젠이 관여할 정도라면, 그냥 평범한 신성 적합도를 가진 인물이 아닐 겁니다. 그녀는 고유능력도 보유했고 어쩌면 정말로 성녀 후보자급의 인물일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뒤쫓죠."
리리넷이 열의를 불태우며 말했다.
"키젠이 습격해서 타깃을 데려갔다면, 이번엔 우리가 키젠을 습격해서 빼내면 되죠 뭐."
피가로가 미소 지었다.
"자신 있습니까? 30명이 넘는 용병단이 전부 당했는데."
"키젠과 에프넬의 승부라면 절대 피할 수 없어요. 그리고."
리리넷이 입꼬리를 올렸다.
"키젠의 네크로맨서 따위는 절대 우리 에프넬의 상대가 되지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