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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88화 (28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88화

"시간이 별로 없네요. 바로 설명하겠습니다."

시몬은 주위를 순찰하던 도중 프리스트들이 사용하는 '크리쳐'를 발견했다. 이걸로 프리스트들이 쫓아오고 있다는 건 기정사실화됐다.

그들의 목표는 틀림없이 성녀 후보자로 지목된 '사샤'.

다행히 환경적 요소는 이쪽에 유리하다. 야간이고, 수색이 어려운 숲 지형이기도 하다.

이에 시몬은 두 개 조로 나누어져 흩어지자는 전략을 세웠다.

우선 세이위르의 환상마법으로 가짜 마차를 만들어 프리스트들의 시선을 끌고, 그사이에 사샤와 다른 조원들은 발로 뛰어서 숲을 빠져나가자는 게 골자였다.

"나, 나보고 죽으란 소립니까!"

작전을 들은 세이위르가 펄쩍 뛰었다.

"하지만."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대론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될걸요. 벤젼스와 키젠. 양쪽 모두에게서."

"......윽!"

"이번 일에 협조해 주신다면, 키젠 측에는 멘토로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 줬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세이위르가 암흑연합을 떠날 게 아닌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으리라. 결국 그는 시몬의 계획을 수락했다.

"내가 같이 갈게."

딕이 세이위르의 감시역을 자청했다.

"괜찮겠어?"

"어차피 이 인간 혼자 보내봐야, 환상 치우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갈 게 뻔한데 뭐. 누군가는 따라가야지."

시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너도 위험해질지 몰라."

"아, 걱정 마셔! 어떻게든 내 몸 하나 정돈 건사할 자신이 있으니까."

확실히, 생존능력만큼은 딕처럼 믿음이 가는 네크로맨서가 없었다.

시몬과 메이린이 고개를 끄덕였고 카미바레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꼭 무사해야 해요 딕!"

"고럼!"

이내 계획대로 움직였다. 마차는 근처의 호수에 빠트렸고, 말은 자욱한 수풀로 데려가 메이린이 수면 저주를 걸어서 들키지 않도록 했다.

딕은 보트에 달린 마력엔진을 뜯어서 아공간에서 꺼낸 수레차에 달았다. 그리고 세이위르가 수레에 환상을 일으켜 마차를 만들어내니 감쪽같았다.

"먼저 갈게! 살아서 보자!"

딕과 세이위르가 탄 가짜 마차가 떠났다. 시몬 일행도 사샤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이린이 앞장서서 달렸고, 그 뒤를 카미바레즈와 사샤, 가장 뒤에서 에프넬이 쫓아오는지 확인하는 건 시몬이었다.

"카미는 사샤를 보호하는 데에만 집중해 줘."

"네, 시몬! 저 열심히 할게요!"

카미바레즈는 평소 자주 쓰던 '블러드 실크' 흑마법을 사용했다. 다리를 다친 사샤를 양탄자로 감싸서 공중에 띄워놓고 달리고 있었다.

"메이린은 프리스트가 다가오면 떨어져 나와서 요격해."

"오케이. 그럼 넌?"

"나도 마찬가지. 에프넬을 발견하면 내가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갈 거야. 내가 없으면 프리스트랑 싸우는 중이라고 생각해 줘."

메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위르의 정체를 밝혀낸 게 시몬이기도 하고 크리쳐를 찾아낸 것도 시몬이었으니,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이동을 시작했다.

어둠에 잠긴 숲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언제 어디서 에프넬이나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가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 달리고 있었다.

"사샤. 불편하진 않아?"

카미바레즈의 물음에 사샤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고개를 돌려 메이린을 보았다.

"프리스트들이 바로 우리 쪽으로 올 수도 있겠죠?"

"글세? 기척이나 칠흑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프리스트들이 있다면 또 모르겠네. 그래도 이 방법이 최선이야."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 그래 시...... 어?"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가장 뒤에서 달리던 시몬이 사라져 있었다.

"버, 벌써 나갔어?"

* * *

타다다다닷!

타닷!

다섯 명의 프리스트들이 두 다리에 신성을 일으키며 들판을 내달리고 있었다.

네 명은 에프넬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작업복 차림에 오렌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중년 남자였다.

"인솔자님. 진짜 여기로 간 거 맞아요?"

리리넷의 물음에, 인솔자 피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크리쳐가 포착했습니다. 갱단원들이 사용했던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리리넷이 흠- 하고 턱을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도 늦었고, 전투 직후고, 날도 어두워졌으니까 슬슬 야영 준비를 하겠네요. 자는 중이라면 처리하기 쉬울 텐데."

"아쉽지만, 키젠 측에서도 우리가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렸을 겁니다."

피가로가 말을 이었다.

"크리쳐 하나가 당했거든요."

"일 처리 허접해!"

"하하, 완벽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때 들판을 내달리던 다섯 명의 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으음- 키젠이 우리의 추격을 알고 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네요. 근데."

리리넷이 헛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뻗었다.

"당신 혼자?"

어둠에 잠긴 숲 앞에, 로브를 눌러쓴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는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멈춰 서서 에프넬 무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에프넬 여학생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종 자살 방식인가요?"

"재수 없네."

"네크로맨서들은 대갈빡이 안 돌아간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 자매님들."

단신으로 프리스트를 가로막고 선 갈색 로브를 입은 소년.

무려 5:1의 상황임에도, 소년은 무척이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팔짱을 낀 채 들어와 보라는 듯 손가락만 까닥거리고 있었다.

근데 너무 자신 있게 저러고 있으니까.

'......찜찜.'

오히려 가까이 가는 게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함정일까요?"

리리넷의 물음에 인솔자 피가로가 고개를 저었다.

"주위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본인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혼자 나온 것 같습니다."

"미쳐 돌았네."

리리넷이 양손에 신성을 휘감았다. 하얀 아우리가 그녀의 손안에서 일렁였다.

"시간 없습니다! 가죠!"

다섯 명의 프리스트들이 각자 발에서 은빛 꼬리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시몬은 따로 큰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천천히 자세를 낮추고 오른팔을 세웠다.

'본 아머.'

아공간에서 흘러나온 뼛조각들이 시몬의 오른팔을 빈틈없이 덮었다.

타다다닷!

그때 정중앙에서 오던 리리넷만 속도를 확 높여 한 줄기 섬광처럼 쇄도해왔다. 시몬도 정면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주먹과 주먹이 부딪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의복이 거칠게 휘날리며 주위의 나무가 흔들거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주먹을 맞댄 사이, 다른 프리스트들은 신성을 밟고 도약해 두 사람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아."

시몬이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쪽 걱정할 여유도 있나 봐요?"

리리넷이 반대쪽 손을 펼치는 동작을 본 시몬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신성창이 다발로 쏟아져 바닥을 꿰뚫었다.

"혼자 이러고 있는 꿍꿍이가 뭔진 모르겠지만, 다섯 명 모두 붙들려 있는 것 자체가 당신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

처억!

그녀가 주먹 쥔 손을 뻗으며 웃었다.

"내 말이 틀렸나요?"

시몬은 의외라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에프넬 학생들도 생각보다 똑똑하네."

"!"

그 말을 들은 리리넷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가, 싸구려 도발이란 걸 깨닫곤 재빨리 평정을 되찾았다.

"중립지대 협약으로 살상은 참겠지만, 다시는 그 입을 나불대지 못하게 해드리죠!"

"음."

시몬은 리리넷과 대치한 채 파라한의 수업을 떠올렸다.

-상대가 어떤 전공인지 알았다면, 그것만으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네.

시몬의 시선이 그녀의 손 쪽으로 향했다. 빛으로 엮어낸 권투글러브를 낀 것처럼 빛이 일렁일렁이며 커졌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단순히 주먹에 신성을 두른 게 아냐. 치유학의 홀리 버스트.'

치유학은 후방에서 환자를 돌보고, 전투원의 서포트에 특화된 학문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네크로맨서를 상대하기 위한 공격마법도 자연히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치유학의 가장 효과적인 공격기는, 상대의 몸에 신성을 넣어 회복이 아닌 역으로 세포의 분열을 발생시켜 내부부터 망가뜨리는 '역치'.

저기에 닿기만 해도 장기가 엉망이 된다. 체내에 칠흑이 흐르는 네크로맨서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리리넷이 자신의 몸에 자줏빛의 축복을 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파라한의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랐다.

-일종의 도핑효과일세. 몸을 망가뜨리는 대신 강한 힘과 속도를 얻을 수 있지. 금지된 백마법 중 하나지만, 치유술사에 한해 사용이 가능하네. 치유술사들은 몸을 회복시키면서 리스크 없이 싸울 수 있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 시몬도 저주로 대응하기 위해 마법진을 그리려 하자, 리리넷이 돌진해 왔다.

"!"

시몬은 동물적인 반응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공격은 정면이 아니라.

투확! 투확! 투확!

등 뒤에서 왔다.

후방에서 삼각의 신성 투사체가 쏟아져 내렸다.

"크윽!"

시몬이 덤블링을 하고 풍차돌리기를 하며 정신없이 피해 나갔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주근깨에 양 갈래 머리를 한 여학생이 히죽 웃는 모습이 보인다.

'전면에서의 돌진은 눈속임이었어. 진짜 공격은 등 뒤!'

"반응이 꽤 빠르네요."

네 명이 모두 시몬을 뛰어넘는 척했지만, 사실 에프넬 측의 노림수는 처음부터 2:1이었다.

"빤히 혼자 있는 적을 그냥 두고 가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주근깨 소녀가 바닥에 착지하더니 두 팔을 뻗었다.

계속해서 투확! 하는 소리와 함께 삼각의 신성체가 날아오고, 시몬의 옆으로는 리리넷이 따라잡아 주먹을 휘둘러댄다.

"큭!"

순식간에 좌우로 포위당했다.

시몬이 주근깨 소녀의 신성체를 피해 뒤로 뛰어오르려는 순간, 집요하게 따라붙은 리리넷의 주먹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쩌억!

홀리 피스트에서 나오는 섬광과 함께, 시몬의 눈이 커지며 입에서 '커헉!'하는 소리가 나왔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겁니다!"

시몬이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자, 하늘에서 도약해 온 주근깨 소녀가 멈춰 있는 시몬을 향해 신성폭격을 날려냈다.

꽈아앙!

꽝!

시몬의 몸이 신성에 뒤덮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전투불능이겠지만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두 여학생들이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더니, 동시에 연기 속 시몬을 향해 돌진했다.

터엉!

푹! 푸욱!

연기가 걷혔다.

시몬은 멍한 표정으로 멈춰져 있었다.

그리고 시몬의 가슴은 리리넷의 홀리 버스트가 작렬했고, 등 뒤는 주근깨 소녀가 신성을 날카롭게 만들어 가슴에 삐져나올 정도로 신성을 관통시켰다.

시몬의 동공에 초점이 사라져 갔다.

"됐다!"

"까불더니 꼴좋네요."

완벽하게 쓰러트렸다.

두 사람이 신성을 거두어들이려는 순간.

덥석! 덥석!

"?"

"어?"

두 사람의 뒤통수가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혔다.

그대로.

꽝!!

그녀들의 이마가 중앙에서 정면충돌했다.

"악!"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주근깨 소녀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중앙에 서 있는 시몬은 태연하다 못해, 심지어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나 장래희망을 연기 쪽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아욱! 뭐야? 분명 제대로 먹였는데?"

리리넷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이마를 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

주근깨 소녀는 풀썩 바닥에 쓰러졌고 시몬이 성큼성큼 리리넷에게 다가왔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야! 분명 신성으로......!"

시몬이 문답 무용으로 칠흑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그때 리리넷의 동공이 커졌다.

바람 때문에 로브가 벗겨지며 소년의 푸른 머리카락이 흘러나와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리리넷은 중립지대에 도착했을 때 레테의 충고를 떠올렸다.

-혹시 임무 중에 머리가 푸르스름한 키젠 남자애를 보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고 도망치십쇼.

시몬이 자신의 복부에 손바닥을 올리는 것을 보며 리리넷의 눈이 커졌다.

-잘못 걸리면 너 같은 건 진짜 죽어.

이 인간이었어!!

리리넷은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의 복부에 발현하는 흑마법을 바라보았다.

<홍펭 오리지널 - 취타>

투콰아아아아악!

리리넷의 몸이 디귿 자로 꺾인 채 나무를 몇 그루나 박살 내며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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