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89화
"하아! 하아!"
한편 카미바레즈는 사샤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 위로 나무를 밟고 휙휙 뒤쫓아오는 에프넬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아이를 넘겨!"
밤하늘이 번쩍이더니 새하얀 빛줄기가 떨어졌다. 그 악명높은 백마법인 '엑소시즘'이었다.
콰르르릉!
카미바레즈가 사샤를 끌어안고 풀밭으로 몸을 던졌다. 빛줄기가 바닥을 강타하며 흙먼지와 자갈들이 피어올랐다.
'읏!'
카미바레즈가 벌떡 몸을 일으켜 달리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녀의 앞에 투명한 벽 같은 게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도망쳐도 내 손바닥 안이야."
그렇게 말한 프리스트가 나무 위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카미바레즈는 사샤를 뒤로 보내며 칠흑을 끌어올렸다.
'싸워야 해. 내가 사샤를 지켜야 해!'
지금 따라붙은 건 프리스트 한 명.
아군은 시몬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갔고, 그다음은 메이린까지 나서서 쫓아오는 프리스트를 요격했다.
그사이 카미바레즈와 사샤는 안전하게 도망쳤지만, 바로 뒤쫓아온 한 명이 있었다.
적어도 이 한 명은 자신이 쓰러트려야 했다.
'시몬과 메이린이 걱정되지만, 두 사람이라면 괜찮을 거야.'
카미바레즈가 각오를 다지고 뒤를 돌아보았다.
"사샤. 물러나 있을래?"
"응."
사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에프넬 측도 성녀 후보자의 확보가 목적이니 따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네크로맨서치곤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네."
프리스트가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혼자 앞에 나온 그 남자애도 그렇고."
그 말을 들은 카미바레즈의 눈이 확 커졌다. 저 사람이 말한 사람은 틀림없이 시몬일 것이다.
"그, 그 사람을 어떻게 했죠?"
"당연히 지금쯤 우리 자매들에게 작살 났겠지."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리리넷 자매님은 강하거든. 지금쯤 코어가 깨지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카미바레즈가 복부에 손바닥을 올리더니 옆으로 돌렸다.
"없어요!"
철컥! 소리와 함께 우르슬라 가문의 피의 봉인이 부분적으로 풀렸다.
눈동자가 피처럼 붉게 물들어지며, 등 뒤에 달린 날개가 조금 더 커졌다. 뾰족한 송곳니는 예리한 빛을 발했다.
"이제 좀 괴물 같아졌네."
프리스트가 두 팔을 펼쳐 교차했다.
그그극!
난데없이 카미바레즈의 좌우에서 투명한 벽이 다가왔다. 그녀가 위로 점프해서 도망치자, 두 벽이 중앙에서 만나며 쩡! 소리를 냈다.
카미바레즈는 속으로 안도하며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터엉!
"아?"
난데없이 머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프리스트가 미리 하늘에도 벽을 설치해 둔 것이다.
"걸렸어!"
프리스트가 재빨리 팔을 내리그었다.
벽이 카미바레즈와 함께 그대로 내려와 그녀를 바닥에 딱 붙여 버렸다.
"잡았다 괴물!"
프리스트가 서늘한 음색으로 말하며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하늘에서 '엑소시즘' 마법진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빠져나갈 수 없어!'
벽의 압력이 얼마나 강한지 카미바레즈의 몸이 계속 바닥을 파고 내려앉고 있었다.
그때 사샤가 다급한 목소리로 '언니!'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읍!'
정신을 바짝 차린 카미바레즈가 두 손바닥으로 벽을 타닥 짚더니 그대로 고개를 젖혀 날카로운 송곳니를 벽에 쑤셔 박았다.
쩌저적!
송곳니의 강도, 그리고 벽의 내려오는 힘 때문에 송곳니를 중심으로 금이 가더니 쨍! 소리와 함께 벽이 깨져나갔다.
카미바레즈가 즉시 몸을 굴렸고, 간발의 차이로 엑소시즘이 떨어졌다.
"흡혈귀는 동화 속 존재인 줄 알았는데."
프리스트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신성화살을 여러 발 만들었다.
"이제 그만 동화 속으로 사라져 줄래?"
슈웅! 슝슝슝슝!
카미바레즈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서 신성화살을 피하고는 총처럼 말아쥔 손을 프리스트에게 겨누었다.
반동과 함께 폭발하는 혈류탄이 쏘아졌지만 프리스트는 투명한 벽을 자신의 앞에 펼쳐서 가볍게 막아냈다.
'수호학 전공자.'
카미바레즈도 시몬처럼 신성방어학에서 배운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방어에 특화된 전공이고, 전투에서는 결계나 보호막 등으로 상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뒤, 마무리 공격을 퍼붓는 타입.'
그녀의 분석대로, 프리스트는 투명한 벽을 동시에 여러 장 만들어 날려 보냈다.
카미바레즈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다가오는 벽을 피해 움직였다.
'!'
정면에서 밀려드는 벽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벽 하나가 떨어졌다.
그녀가 급히 뒤로 물러나 피했다. 방금 막 그녀가 있던 자리에 벽이 내려오며 커다란 사각형 자국을 남겼다.
'저, 전부 다 못 피하겠어!'
카미바레즈가 연거푸 날아오는 벽을 피하느라 중심을 잃은 사이, 결국 앞에서 밀려든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녀의 몸이 벽과 함께 뒤로 밀려났고, 벽은 뒤에 보이는 나무를 향해 그녀를 끌고 가고 있었다.
'고정 당하면 끝장이야!'
카미바레즈가 얼른 손바닥을 펼쳐 벽 한쪽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고는 주먹으로 그 마법진을 강타했다.
<블러드 스트라이크>
쩌어엉!
벽이 깨지며 카미바레즈가 내려왔다.
그러나.
"완-성."
어느새 카미바레즈를 중심으로 널찍한 반원형의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프리스트가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흘리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스스스스스스.
결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카미바레즈가 혈류탄을 연달아 발사해 결계를 깨려고 했지만,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결계는 순식간에 그녀의 몸 치수만큼 줄어들었고 카미바레즈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채로 온몸을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아으윽!"
"꼴좋네. 흡혈귀."
프리스트가 즐겁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리자 결계에 갇힌 카미바레즈의 몸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아까처럼 그녀의 송곳니에 결계가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함인지, 얼굴 쪽은 둥글게 여유 공간을 남겨둔 채 목 아래부터 전신을 강하게 압박했다.
카미바레즈는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전신을 강하게 옥죄는 건 물론, 특정 부위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도 가능해."
프리스트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카미바레즈의 목을 죄고 있던 결계 쪽만 더 힘이 강해졌다.
그녀가 컥컥 소리를 냈다.
"카미 언니를 풀어줘!!"
사샤가 소리쳤다. 프리스트는 그 모습을 보고는 생긋 웃더니 손짓했다.
"그러길 원한다면 이쪽으로 오세요. 성녀 후보자님~"
"저, 절대 안...... 아으윽!"
"질식하든, 목뼈가 부러지든, 이대로 두면 저 귀여운 흡혈귀는 확실히 죽는다구요?"
결국 사샤가 충혈된 눈으로 프리스트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프리스트가 입꼬리를 올렸다.
"옳지."
팟.
카미바레즈가 지독한 압력과 싸우며 손바닥을 세웠다.
팟. 팟. 팟.
그녀가 뭔가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프리스트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
"사샤!"
그녀의 입이 뻐금거렸다.
"도망쳐!!"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프리스트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난데없이 나타난 피의 회오리가 나무나 수풀 등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나랑 싸우면서 저런 대형 흑마법을 준비하던 거였어?'
움직이면 카미바레즈를 붙잡아둔 결계도 풀려 버린다.
프리스트는 급히 팔을 뻗어 자신의 뒤로 벽을 쳤지만, 피의 회오리는 벽째로 프리스트를 집어삼키며 전진했다.
<우르슬라 혈계고유 - 콜 템페스트>
고오오오오오!
카미바레즈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흑마법이었다.
술사가 무력화되자 카미바레즈를 옥죄고 있던 결계도 풀렸다.
"콜록! 콜록!"
그녀가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콜록이며 목을 매만지고는, 이내 눈에 힘을 주며 두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짜악!
회오리가 흩어지며, 그 중앙에 성의포로 제작한 에프넬 교복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피범벅이 된 프리스트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하아. 하아."
이겼다.
사샤는 환하게 웃으며 카미바레즈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그녀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그녀의 동공이 더더욱 시뻘겋게 변하더니, 피범벅이 된 프리스트를 향해 살벌한 눈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벅저벅.
무척이나 갈증이 나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기절한 프리스트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드러내고 이빨을 꽂으려는 순간.
덥석!
사샤가 카미바레즈의 몸을 꽉 끌어안아 주었다.
지금까지 매번 카미바레즈가 그래 왔던 것처럼.
"......어, 언니. 괜찮아?"
카미바레즈의 몸이 가늘게 떨리며 멈췄다. 거친 숨결이 몇 번 토해지다가, 이내 천천히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괜찮아."
비로소 힘겨운 대답이 들려왔다.
사샤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동공은 다시 보랏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확인하듯 꼭 끌어안았다.
* * *
<피어스 오브 블리자드>
쏴아아아아아아아!
메이린이 두 팔을 풍차처럼 휘두르자 하늘의 마법진에서 얼음송곳들이 쏟아져 내렸다,
"막아. 제키."
프리스트의 명령에 돌덩이처럼 생긴 신수가 앞으로 나와 몸을 말았다.
신성으로 몸이 더욱 단단해지며 메이린의 블리자드를 가볍게 막아냈다.
메이린이 끙 소리를 내며 혀를 찼다.
'은근 까다롭네.'
상대는 신수학 전공자.
다섯 마리의 신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해 싸웠다.
그중에 세 마리는 메이린의 공세에 쓰러져 프리스트가 신성 아공간으로 불러들였지만, 아직도 두 마리나 남아 있었다.
"지금이야! 지노!"
프리스트의 외침에 메이린이 얼른 고개를 낮췄다.
매의 형상을 한 신수가 허공을 날카롭게 찢으며 지나갔다. 하늘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려 날아올랐다.
'대체 신수가 몇 개야? 도저히 일대일로 싸우는 것 같지 않아!'
두 사람의 실력은 거의 백중세였다.
메이린이 다시 한번 양손에 다크플레어를 일으켰고, 프리스트는 아공간에서 또 다른 신수를 불러낼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메이린!"
어둠 속에서 시몬이 수풀을 뚫고 불쑥 나타났다.
"아, 시몬!"
메이린이 반가움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 뭐야."
그리고 프리스트 쪽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리리넷 자매님이랑 이스타르 자매님은?'
시몬이 메이린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신수학 전공자라면 상성상 내가 더 유리해. 넌 빨리 카미 쪽으로 가줘."
"상성? 갑자기 뭔 헛소리야!"
시몬은 설명 대신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부탁해. 얼른 쓰러트리고 갈게."
"......."
메이린은 자신이 상대한 프리스트와의 결판을 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시몬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뭣보다 전원의 최우선 목적은 사샤를 지키는 거였다. 임무의 중요도를 혼동해선 안 된다.
"알았어! 무리하지는 마."
메이린이 등을 돌려 어둠에 잠긴 숲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한번 뒤를 보고는 빼액 소리 질렀다.
"다치기라도 하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하하."
그렇게 메이린이 떠나고, 두 사람이 대치했다.
프리스트가 한숨을 푹 쉬었다.
"리리넷이랑 이스타르 자매님을 쓰러트리고 오는 길입니까?"
"응, 맞아."
"......도움이 안 되네요. 그 두 사람. 혹시 죽었어요?"
"나도 몰라. 힘 조절을 안 하긴 했는데, 운 좋으면 살아 있지 않을까."
"강한가 보네요 당신."
그녀가 가슴에 붙어 있는 배지를 떼어내 앞으로 척! 세웠다.
"그렇담."
배지에 신성 아공간이 열리더니, 거기서 작은 곰돌이 인형 같은 신수가 통통거리며 튀어나왔다.
"이쪽도 전력으로 갑니다."
그녀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이며 신수의 몸에 손바닥을 댔다.
콰콰콰콰콰콰콰!
그녀의 신성이 흘러 들어가는 순간 곰인형 같던 신수의 덩치가 확 커졌다.
육중한 근육질 덩치에, 네발로 걷는 거대한 곰 괴물이었다. 그 몸에는 하얀 에너지 같은 것이 일렁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영광으로 생각해요. 내가 가진 최강의 신수, 아칼리온으로 상대해 드리죠."
그녀가 '가라!'하고 소리치며 팔을 뻗자, 아칼리온이 들소처럼 시몬에게 달려들었다.
'.......'
이에 대응하는 시몬은 자세를 낮추며 저주를 준비했다.
그런데.
타닷.
그야말로 모든 걸 분쇄해 버릴 기세로 돌진해 오던 아칼리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시몬의 앞에서 딱 움직임을 멈췄다.
"?"
시몬과 프리스트, 두 사람 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칼리온? 뭐 하는 거야! 확 들이받아 버려!"
하지만 아칼리온은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눈동자를 굴려 시몬을 신기한 듯 관찰하더니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러곤.
할짝.
혓바닥으로 시몬의 얼굴을 핥으며 친근감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무, 무무무 무슨 짓이야! 갑자기 왜 그래?!"
프리스트가 방방 뛰었지만 아칼리온은 시몬에 대한 공격의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뻘쭘하게 있던 시몬이 팔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칼리온은 콧김을 뿜으며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까 어떻게 한 거였더라.'
아칼리온을 쓰다듬던 시몬이, 프리스트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신성을 흘려 넣어 보았다.
그러자.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아칼리온의 몸에 아까보다 훨씬 더 큰 신성의 불길이 치솟았다. 아칼리온이 몸을 돌리더니. 이내 시몬을 한 바퀴 감싸며 그의 옆에 섰다.
그러곤 콧김을 뿜어내며 프리스트를 경계하듯 노려보았다.
"아이 미친!"
패닉에 빠진 프리스트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게 말이 돼애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