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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94화 (29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94화

촤아아아악!

촤아악!

파멸의 대검이 연신 휘둘러진다. 쏟아지는 식물형 몬스터들과, 떨어지는 흰 사과들이 검광 한 번에 번뜩이며 갈려 나간다.

'집중, 집중!'

시몬의 눈은 오로지 한 곳을 담았다. 나무의 꼭대기에 있는 피가로의 놀란 얼굴이 보인다.

[이 괴물 같은!]

피가로의 팔이 움직이자, 커다란 나무줄기들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있을 수 없다! 이건 중대한 신성모독이다!!]

시몬은 잽싸게 스탭을 밟으며 피했다.

"신성을 모독한 건!"

시몬은 여기까지 오며 본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폐허가 된 마을.

양분이 빨려 나간 주민들.

그리고 얼굴만 남긴 채 파묻힌 사샤.

"누가 봐도 네 쪽이야!"

거대한 참격이 쏘아져 나가 식물형 몬스터들과 나무 채찍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남은 거리, 내 모든 걸 끄집어내!'

시몬이 배지모양의 신성 아공간을 열자, 아칼리온이 기다렸다는 듯 네 발로 뛰어나왔다.

시몬이 그 위에 올라타고 아칼리온의 몸에 신성을 투여했다.

"가자! 아칼리온!"

-크뤄어어어어어!

아칼리온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몬은 두 다리로 아칼리온의 몸통을 딱 고정하고, 회피와 돌진은 맡긴 채 기마병처럼 달리며 새로운 백마법을 준비했다.

퉁! 퉁! 퉁!

더 많은 흰 사과들이 떨어진다.

시몬이 입꼬리를 올리며 백마법진을 펼쳤다.

'감사합니다! 파라한 교수님!'

<파라한 리메이크 - 영광의 창>

다수의 신성창이 하늘로 쏘아지며 내려오는 흰 사과와 부딪혀 강제 폭발을 일으킨다.

아칼리온은 처음 흰 사과가 폭발하는 걸 보고 바로 감을 잡았는지 영리하게 폭발의 반경에서 벗어나 달렸다.

[크윽!]

피가로가 두 팔을 교차하자, 다시 한번 나무줄기들이 날아들었다.

시몬이 두 팔을 앞으로 보냈다.

<디바인 배리어>

수호학의 커다란 방패가 펼쳐져 날아드는 나무줄기들을 안전하게 받아내 옆으로 흘려냈고, 아칼리온이 그사이에 돌파했다.

[네놈은 대체!]

피가로의 눈이 시뻘게졌다. 현역 프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숙련도였다.

'80%!'

시몬의 눈이 커졌다.

이제 정말로 다 와 간다. 육안으로도 피가로의 모습이 보인다.

[제기랄!]

반면 시몬이 돌진해 오는 모습을 보며, 피가로는 공포를 품었다.

'연방에 요청한 팔라딘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냐?!'

연방의 시스템상, 이들은 성녀가 나타나면 무조건 성녀를 지키기 위해 내려와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피가로가 꿈꾸는 계획의 핵심이었다.

그들은 남자인 자신이 성녀가 된 것을 문제 삼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건 여신의 선택이니까.

여신의 힘은 의심해선 안 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들에게 모순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종교의 한계를 넘기 위해 과학과 연구를 택했다. 그런데.

'그런데 대체 저건 뭐냔 말이다!'

신학으로도, 종교로도 설명이 안되는 괴물.

눈앞에 보란 듯이 모든 진리를 비웃는 뭔가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포기할 수 없다!'

다행히, 놈이 본체와 가까워질수록 이쪽이 쓸 수 있는 수단도 더 강해지고 다채로워진다.

피가로가 백마법을 준비했다.

<백염 증폭의 진>

곳곳의 나무의 몸체에서 백염으로 이루어진 하얀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바로 그곳에서 커다란 나무줄기들이 솟아올랐다.

나무줄기들은 모두 신성으로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가라!]

줄기들이 창격처럼 쏟아진다. 시몬은 디바인 배리어를 계속 유지했다.

콰직!

제일 먼저 다가온 나무줄기가 디바인 배리어를 한 방에 종잇장처럼 찢었다.

시몬이 급히 고개를 옆으로 젖혔고, 그의 뺨에 실선이 그어지며 핏줄기가 튀었다.

'위력이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돼!'

시몬은 바로 배리어를 걷어버리고는, 등에 찬 파멸의 대검을 붙잡고 휘둘렀다. 뒤따르던 줄기들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

이번엔 피가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나무 전체가 성녀의 그릇인 사샤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시몬에게 베인 줄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피가로는 깨달았다.

저 대검의 날에 직접 베이면 성녀라고 해도 죽는다.

[끔찍할 만큼 놀랍구나!]

마치 성녀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은 괴물.

[성녀가 된 첫날부터 가히 과분하며, 합당한 적이로다!]

<백염 증폭의 진>

피가로가 마법진을 두 배로 늘린 다음 무수한 강화 나무줄기들을 뽑아냈다.

이쪽도 필사적이었다.

퍼억!

그때 바닥에서 솟아난 줄기를 피하지 못한 아칼리온이 뒷다리를 붙잡혔다. 줄기가 그대로 아칼리온을 공중에 내동댕이쳤다.

"물러나 있어! 아칼리온!"

시몬이 아칼리온을 딛고 뛰어내려 다시 나무 몸체에 달라붙었다.

진행률 90%.

남은 거리 10%.

이제는 시몬 혼자 달리고 있었다. 신성의 하얀 망토를 휘날리며 파멸의 대검을 닥치는 대로 휘둘러댔다.

쩌억!

쩍!

쩌억! 쩌억! 쩌억! 쩌억!

눈앞에 움직이는 것이라면,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베어낸다.

'후욱!'

이제는 신성마저 고갈되어 간다.

신성은 칠흑보다 정신력의 마모가 크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시야는 꿀렁인다.

[괴물이!]

피가로가 질색하듯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몬이 대검을 붙잡지 않은 팔을 뒤로 뻗었다. 신성이 번쩍이며 일어나 신성창이 되었다.

"사샤를!"

신성창의 주위로 여러 신성의 띠가 날아와 휘감기며 드릴의 형상을 이루었다.

"데리고 돌아간다!"

<레테 오리지널 - 라 에스크림>

터어엉!

굉음과 함께 회전하는 신성의 창이 쏘아져 나갔다.

딱 한 번 열차에서 본 이미지를 현실로 구현해 낸 것이다.

[크읍!]

피가로가 자신의 앞으로 나무줄기를 일으켜 방어벽을 쳤다.

콰콰콱!

강화된 신성의 창이 줄기를 찢고 깊숙이 들어가다가 간발의 차이로 피가로의 목 앞에 딱 멈췄다.

간담이 서늘해진 피가로가 놀란 숨을 들이쉬며 정면을 응시했다.

이제 시몬이 바로 앞에 있었다.

"남은 거리!"

시몬이 대검을 앞세우며 돌진했다.

"0!"

[소용없다!]

시몬이 즉시 피가로에게 달려드는 그때, 이질을 눈치챘다.

아래에서는 보일 리가 없는 나무 꼭대기에 주변에 흰 사과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일체 폭발!]

모든 흰 사과에서 눈부신 빛이 일어나더니 신성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성녀인 자신을 제외하고 그 모든 이물질을 정화하는 백염의 폭발.

그러나.

어느새 시몬은 공중에 떠 있었다.

'폭발에 직격하지만 않는다면!'

타닷.

그가 바닥에 내려왔다.

'견딜 만해!'

이 정도의 백염은 플레마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아아아아아아!"

이제 피가로는 바로 몇 걸음 앞이다.

화살처럼 쏘아져 나간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휘두르려는 그때.

[소년!]

단 한 발을 앞두고 움직여지지 않았다. 급히 시선을 내리자 어느새 허리에 나무줄기가 휘감겨 있었다.

"아!"

피가로는 바로 눈앞에 있다!

아슬아슬 한 거리지만 이 정도면 억지로 벨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시몬이 앞발을 쭉 내밀며 대검을 휘둘렀다.

쩍!

오른팔에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시몬의 시야가 돌아갔다.

'......!!'

사람의 팔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손에는 파멸의 대검도 들려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팔이라는 걸 인지하자,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크으윽!'

시몬이 고통에 입술을 꽉 깨물었고, 그사이 나무줄기들이 시몬의 몸을 휘감았다.

[마지막 순간이라 방심했군!]

피가로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한 걸음 차이로 날 죽일 뻔했다는 건 칭찬해 주마!]

나무줄기들이 시몬의 전신을 으스러뜨릴 정도로 조이기 시작했다. 피어의 본 아머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짜부라져 고깃덩어리가 됐을 것이다.

[소년! 오래 버티지 못한다!]

피어의 본 아머에서 빠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박살 나려 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른팔도, 파멸의 대검도 없다.

'하아, 하아.'

의식이 흐려지려는 순간, 시몬은 피가로보다 더 앞에 위치한 얼굴만 남은 사샤를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사샤......!'

시몬이 그녀 쪽으로 남은 왼팔을 뻗었다.

'!'

그녀를 만지는 순간.

공간이 일변했다.

피가로의 나무 꼭대기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허무(虛無). 새하얀 순백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몸을 죄고 있던 나무도 없이 시몬은 자유로웠다.

[안녕-]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반은 하얀색, 반은 빨간색 머리를 한 소녀가 보인다. 그녀는 무색의 원피스를 입고 왕좌에 앉아 있었다.

[하도 많이 엮인 사이니,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어.]

"넌......."

시몬의 목소리가 떨렸다.

"누구지?"

그녀의 입꼬리가 길게 벌어졌다.

'너희 인간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정화의 정수라고 해두는 게 좋겠네.'

저게 바로 정화의 정수?

마치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 모습은 내가 구현해 낸 아바타고, 이 장소도 내가 구현해 낸 심상이야. 어때? 근사하지?]

"......아무것도 없는데."

[정화의 마지막 모습, 절대적 허무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 봤어. 아, 이런 이야기는 됐고.]

그녀가 턱을 괴었다.

[나와 거래를 하는 게 어때? 시몬 폴렌티아.]

"거래?"

그녀가 왕좌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보이지 않은 하얀 사슬이 생기며 그녀를 압박했다.

[보다시피, 나는 저 피가로라는 녀석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로 붙들려 있어.]

"......."

[나와 사샤는 저 꼭두각시놀음에 휘말린 꼴이 된 거야. 불쾌해. 끔찍해!]

시몬이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거래의 내용은?"

[날 자유롭게 해줘. 네가 피가로를 베면 되겠네.]

시몬은 자신의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이 심상 속에서도 오른팔은 날아간 채로 피가 철철 떨어지고 있었다.

"힘들 것 같은데."

그녀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내가 힘을 빌려줄게. 딱 이 사태를 헤쳐나갈 때까지만 힘을 합치는 거야. 어때?]

시몬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네크로맨서야. 성녀의 정수가 힘을 빌려준다고 해도 어떻게?"

[아주 좋은 질문이야!]

그녀가 손뼉까지 치며 웃었다.

[너는 네크로맨서고, 군단의 계약자고, 심지어 남자애야!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얄궂게도-]

그녀가 두 팔을 벌리며 히죽 웃었다.

[네겐 '자격'이 있어!]

"......?"

[넌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야 시몬 폴렌티아!!]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겠지."

시몬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정화의 정수."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 손을 잡아.]

그녀는 사슬에 묶여서 움직일 수 없었다.

시몬이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하얀 손을 붙잡았다.

[최강을. 구경시켜 줄게.]

* * *

허무의 세상이 걷히고,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시몬은 여전히 나무줄기에 옥죄여 있었고, 피가로는 승리를 확정 짓고 시몬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그때.

[!]

피가로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니, 이, 이게 어떻게- 어?]

당황한 듯,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듯, 두 팔로 스스로의 몸을 정신없이 더듬고 만졌다.

'......아하.'

시몬은 비로소 깨달았다. 가슴에 솟구치는 이 힘의 정체를.

그리고 다음으로 할 일은 간단했다.

이 넘쳐흐르는 힘을.

'아주 조금 방출하는 거야.'

화르르르르르르륵!

시몬의 전신에서 태산과도 같은 순백의 불꽃이 일어났다. 그를 옥죄고 있던 나무가 단번에 잿더미가 되어 휘날렸다.

[왜 성녀의 힘이!]

피가로가 악에 받쳐 부르짖었다.

시몬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색되며, 장발처럼 길어지고 불꽃처럼 넘실거렸다. 두 눈은 찬란한 황금빛으로 번쩍였고 백염의 천이 시몬을 보호하듯 휘감았다.

화르르륵!

시몬의 떨어져 나간 오른팔의 상처에도 불꽃이 일어나더니 원래대로 팔이 재생되었다.

백염의 재생 능력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피어가 쩌렁쩌렁 웃었다.

[이제는 세상의 섭리조차 우습게 가지고 노느냐! 소년!!!]

시몬이 새로 재생된 오른팔을 뒤로 뻗었다. 그의 손아귀로 집채만 한 백염이 일어나더니 형체가 굳어졌다.

그것은 '검'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 이루어진 이질. 순백의 검신은 수려했으며, 날의 형태는 불길과도 같은 곡선을 이루었다.

이것이 바로 시몬이 정수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권능이었다.

스으.

군단장이자 성녀인 존재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눈부신 백색의 불타는 검은, 하늘의 끝에 닿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검이라는 형태의 기적이 내려왔다.

<시몬 오리지널 - 종언(終焉)>

쩌어어어어어어어엉!

백염의 검이 만물을 이등분하며 지나갔다. 그 사선에 존재하는 만물이 거대한 빛의 균열에 집어삼켜져 타올랐다.

단지 그 한 번의 일격은.

[커흡!]

고정되어 있던 피가로의 몸을 간단히 절단해 냈다.

[하, 하하! 아하하하하!]

상체만 남은 피가로의 몸이 기울어졌다.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상반신이 나뭇가지에 부딪히며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신체가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가 낙하하면서 시몬을 향해 팔을 뻗었다.

하얀 불꽃 같은 머리카락의 소년은,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평생을 꿈꿔온, 이상으로 그리던 청사진이 눈앞에서 완벽하게 재현된 모습에, 피가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남자가 성녀의 정수를 받아들인다고?

-집어치워.

-제발 정신 차리세요.

자신의 이상을 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던가.

하지만 보아라.

가장 완벽한 모습과 형태로.

성녀의 힘을 구축해 낸 건 저 소년이다.

[경의를 표한다 군단장. 아니.]

그의 입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최초의 성자(聖者)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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