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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98화 (29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98화

로크섬.

1학년 학생들이 모두 파견평가로 외부에 나가 있는 가운데, 교수 소집령이 내려졌다.

중앙 연회장으로 1학년 수업에 들어가는 교수들이 모이고 있었다.

"아, 이딴 옷 입기 싫다니까?"

그리고 연회장 입구에서부터, 맹독학 교수 별야가 성질을 바락바락 내는 중이었다.

그녀는 평소의 붕대 패션에 더해 검은 정장 자켓을 어깨에 두르고 바지도 제대로 입고 있었다.

"부끄러우니까 입 좀 다물어. 제발."

그런 별야의 옆에 있는 건 마투학 교수 홍펭이었다.

"그 이상한 헐벗은 복장으로 네프티스 님을 뵐 생각이야?"

"참나."

별야가 픽 웃었다.

"밖에선 키젠의 괴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괴인 다 뒈지셨나. 도시생활 적응 완전히 다 끝났나 벼?"

"느물거리지 마."

홍펭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도 한번 말했지? 여긴 우리가 살았던 초원보다 더한 약육강식이야.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겨. 다른 문화권에 살았다고 봐주는 게 얼마나 갈 것 같......."

달칵.

그때 문이 열리며 중후한 외모의 장년 남성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아, 레이디들. 좋은 밤입니다."

칠흑역학을 가르치는 교수, '에릭 아우라'였다. 그가 홍펭과 별야 자매를 발견하고는 모자를 벗어 인사했다.

별야가 또 무례한 투로 대꾸하려는 순간, 홍펭이 번개 같은 속도로 앞으로 튀어나오며 별야의 목에 점혈을 먹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했다.

"안녕하제요 에릭 교주님!"

그러곤 상냥한 미소를 꾸며내며 두 손을 맞잡았다.

"요즘 교주들끼리 얼굴 보기가 참 힘들어요!"

"허허! 다들 수업준비만으로 바쁘니까요. BMAT니 뭐니,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려."

에릭의 시선이 별야에게로 향했다.

"특히 별야 교수님의 활약은 익히 듣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학생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별야는 '익!', '윽!' 소리만 낼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홍펭과 에릭은 몇 마디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퍽! 퍽!

별야가 홍펭의 등을 주먹으로 때리더니 사나운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홍펭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검지 끝으로 막힌 점혈을 풀어주었다.

"아! 아!"

드디어 목소리가 나왔다. 별야가 눈썹을 치켜뜨며 홍펭을 노려보았다.

"너 진짜 돌았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녹여 버리겠......!"

"우리도 빨리 들어가자. 네프티스 님께서 오시겠어."

홍펭이 불같이 화내는 별야의 등을 떠밀며 연회장 안으로 데려갔다.

연회장의 내부는 대단히 호화로웠다. 원탁에는 와인과 간단한 다과가 제공되어 있었고, 여러 교수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여교수의 등장에, 몇몇 교수들이 일어나 정중하게 합석을 제안했지만, 홍펭은 웃는 얼굴로 사양하고는 가장 구석 자리로 갔다. 거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끔찍한 맹독폭탄을 앉혔다.

"부탁이니 얌전히 있어. 제발."

"쯧."

별야가 못마땅한 얼굴로 두 다리를 테이블에 올렸지만 바로 홍펭의 제지에 막혔다.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귀찮은 동생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별야는 하수인들에게 술이나 가져오라고 시켰다. 벌써 홍펭이 입힌 바지는 독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일종의 디스트로이드 패션처럼 변해 있었다.

"네프티스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주최자가 등장했다.

모든 교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총장 제인과 함께, 은빛 머리를 휘날리는 작은 소녀가 두 팔을 착착 흔들며 연회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교수들을 보고는 활짝 웃으며 팔을 붕붕 흔들었다.

"다들 안뇽! 잘 있었어?"

교수들은 깍듯이 예를 취하는 것으로 대신 대답했다.

연회장 연단 중앙에는 크고 푹신한 의자가 하나 있었는데, 제인이 익숙한 듯 네프티스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고 훌쩍 들어서 의자에 앉혀놓았다. 그리고 본인은 한걸음 물러나 의자 뒤에서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섰다.

"1학년 담당 교수님들, 빠짐없이 다 모인 것 같군요."

제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마지막엔 끝자락에 앉은 홍펭 별야 쌍둥이로 향했다가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모인 건 BMAT에 관한 안건을 논하기 위함입니다. 교수님들의 의견을 기탄없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응! 응!"

네프티스가 고개를 휙휙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제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럼 먼저, 회의를 요청한 던컨 교수님의 주장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발언하시죠."

뒷반 학생들의 맹독학을 가르치는 던컨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최근, 별야의 맹독학을 듣고 싶다며 청강하는 자신의 반 학생들 때문에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크흠, 흠흠!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갈색 수염이 짙게 자란 그가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BMAT를 다섯 번이나 치르는 건, 역시 너무 많습니다."

몇몇 교수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교수진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이야기였다.

"요즘 1학년 수업 들어가시면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던컨이 흥분한 얼굴로 침을 튀겼다.

"'이거 BMAT에 관련된 거예요?', '이거 BMAT에 나와요?' 학생들은 뭐만 하면 이 소리죠. 교육자로서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날 지경입니다!"

그의 동공이 슬쩍 돌아갔다.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있는 별야를 아주 빠르게 훑으며 지나갔다.

"실제로 BMAT와 관련된 수업과, 그렇지 않은 수업의 집중도 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이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주객이 전도됐어요!"

이번엔 던컨의 시선이 의자에 앉아 방실방실 웃고 있는 네프티스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두 다리를 번갈아 흔들며 콧노래도 살짝살짝 부르는 등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네프티스 님께서 2학년 이상부터 진행되는 BMAT를 부활시켜, 1학년들에게 시행하신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취지는 좋았고, 반 키젠파의 세력도 약화시켰으며, 학생들에게 몇몇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던컨이 침을 튀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는 부작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교과과정이 외면받고 있어요! 학생들은 BMAT에 써먹을 흑마법만 궁리할 뿐, 교과서에 나오는 흑마법과 지식에는 소홀합니다! 이런 편중된 사고는 아직 어린 학생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겠지요!"

"확실히."

또 다른 교수가 끼어들었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여교수였다.

"던컨 교수님이 좀 과장되게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학생들의 머릿속엔 BMAT뿐이란 건 사실이에요. 그렇잖아요? 자극적이고, 재밌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명예까지 드높일 수 있는 무대죠. 누구나 BMAT를 더 신경 쓸 거예요. 키젠의 교과과정이 이렇게 찬밥 취급받은 적이 없었어요."

"암, 그렇지.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BMAT는 중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애초에 BMAT 자체가 성녀 사태 때문에 기울어진 여론을 바로잡기 위한 방책이었지 않소! 여론이 안정화된 지금, 이를 계속 이어나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오!"

여러 교수들이 BMAT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다. 대부분 교과서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거나, 착실한 이론 및 학문적 성취를 중시하는 교수들이었다.

물론 이에 반발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올해 1학년들의 BMAT는 키젠의 대 히트상품입니다. 이 중요한 행사를 대단찮은 이유로 중단해 버리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BMAT도 시험이 아니라 수업의 일환으로 본다면 긍정적인 부분이 많죠."

"애들 집중력도 달라졌잖아. BMAT 이슈에 교과서의 배움을 섞는 스킬 정도는 키젠 교수라면 기본 아닌가?"

BMAT를 중시하는 교수들도 틀림없이 있었다. 이쪽은 별야처럼 BMAT 맞춤 강의로 상당한 성과를 낸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한 손이 올라왔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시끌벅적한 연회장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눈처럼 하얀 정장을 입은 저주학 교수, 바힐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프티스도 방긋 웃었다.

"웅. 해봐!"

"그전에 잠깐."

바힐이 네프티스에게 다가오며 정장의 품을 뒤졌다.

그러고는 마치 숙녀에게 꽃을 건네는 듯한 자세로.

"아이스크림이다!!"

아이스크림 꽃을 내밀었다.

오로지 네프티스를 만날 상황을 대비해, 항시 냉동 마법이 걸린 아공간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다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바힐뿐이었다.

"하아."

제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는 반면, 네프티스는 두 눈이 반짝반짝했다.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붙잡고 작은 입을 최대한 앙- 벌리며 먹으려는 순간.

차악.

뒤에 서 있던 제인이 그것을 낚아챘다.

"하루에 다섯 개만 먹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이건 압수하겠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빼앗긴 네프티스는 그대로 허공을 '앙'하고 깨물었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떨며 커다란 푸른 눈망울이 급격히 슬픔에 잠기기 시작했다.

"내 아이스크림!"

네프티스가 격하게 반발하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제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든 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우당탕탕!

그때 구석 자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별야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부총장! 진짜 다 죽고 싶어?"

"......네?"

"당장 그걸 돌려놔! 저 괴물이 분노하는 모습 안 보이냐고!"

별야는 별 끔찍한 괴물을 다 보겠다는 듯 네프티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저 인간은 또.'

제인이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세상에 이 바보들이 한자리에 모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이게 세계 최고 네크로맨서들의 모임이라니. 어디 시골 동네 소모임도 이것보다는 규율이 있을 것이다.

제인은 하는 수 없이 아이스크림을 돌려주었다. 네프티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진정했고, 별야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하던 이야기 계속하겠습니다."

바힐이 익숙하다는 듯 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그런 난리에도 전혀 페이스를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느 쪽의 의견이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BMAT로 학생들의 동기부여와 실전 능력이 크게 올랐다는 점도, 그러나 교과서 내용과 이론이 부실해지고 교수님들의 지식전달보다 BMAT에 우선되는 상황을 염려하는 것도. 네, 전부 맞는 말씀입니다."

바힐이 어깨를 으쓱했다.

"반대로 뒤집어 말하자면, 다섯 번의 BMAT를 계속 강행하는 것도, 그렇다고 BMAT를 끝내버리는 것도 너무 한쪽으로 극단적인 움직임이란 거죠. 우리는 서로 일정 부분 타협해야 합니다."

그 말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바힐이 네프티스와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런 방안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바힐은 4차 BMAT와 5차 BMAT를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탈락자는 100명. 시험 시간도 4박 5일로 크게 늘리는 제도를 제시했다.

"글쎄요."

제인이 입을 열었다.

"5차 BMAT 다음에는 2학년 진급 시험도 있습니다. 연달아 두 개의 큰 시험은 학생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겨준다고 생각합니다."

BMAT 반대파인 던컨도 바힐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시험을 합치게 되면 결국 BMAT의 중요성만 더 늘어나는 꼴이 아니오?"

바로 그때.

또 다른 손이 들어 올려졌다.

"제 이야기를 잠시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는 바로 실라지의 대리로 들어온 신인 혈류학 교수, '발터'였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세요 발터 교수."

"감사합니다."

발터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기존의 BMAT를 진행하면서, 수행평가 시즌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보죠."

그의 디테일한 설명을 듣던 교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흐음!"

"나쁘지 않은데?"

그리고 발터의 이 방안은 바힐을 포함한 모든 교수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

키젠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 * *

"웃차!"

"짐 다 빠짐없이 챙겼지?"

이제는 정들었던 벤젼스 파견도 마지막 날이었다.

시몬과 조원들은 숙소로 쓰던 방에서 짐을 정리하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크흡, 그래. 이제 너희들도 키젠으로 돌아가는구나."

벤젼스 로비 앞에서는 블락 요원과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블락은 훌쩍이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었다.

"아, 왜 울어요 요원님!"

메이린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놀리듯 말했다. 블락이 손수건으로 코를 팽! 하고 풀었다.

"너희처럼 착한 얘들이 내려와 준 건 행운이었어. 이 일주일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저희도 그래요 요원님!"

블락이 우느라 말을 못 하는 사이, 그의 비서가 한숨을 쉬며 대신 설명했다.

"키젠의 하수인 분이 앞마당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해 뒀습니다. 이제 로크섬으로 귀환하시죠."

"비서님도 고생 많았어요!"

비서는 시몬과 딕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고, 메이린과는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포옹했다. 두 사람은 성격이 잘 맞았는지 친자매처럼 지냈다.

"비서님!"

이번에는 카미바레즈가 달려와 비서의 품에 폭 안겼다. 블락의 눈물에 전염됐는지 그녀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비서가 카미바레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키젠에서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네! 고마워요 비서님!"

카미바레즈가 빙긋 웃었다.

"사샤를 잘 부탁드려요!"

"그럼요. 요원님이랑 내가 책임지고 잘 보살필게요."

블락이 대부로서 사샤의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몸이 회복되면 곧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어."

메이린의 시선이 돌아갔다.

"저기 세이위르 요원님 아냐?"

사무실 짐을 들고 몰래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던 세이위르가, 물건을 훔치다 걸린 좀도둑처럼 어깨를 움찔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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