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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99화 (29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99화

"저기 세이위르 요원님 아냐?"

사무실 짐을 들고 몰래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던 세이위르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세이위르 요원님 맞죠?"

시몬을 필두로 조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여, 여러분......!"

세이위르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조원들이 둘러싸는 바람에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흠."

딕이 세이위르의 손에 든 짐 꾸러미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벤젼스에서 잘리셨나 보네."

세이위르가 뜨끔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앞머리를 손등으로 툭툭 튕기며 자신만만하게 본인의 영웅담을 늘어놓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퀭한 눈에 푹 팬 볼살, 지저분한 수염과 말라비틀어진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시몬이 물었다.

세이위르는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는 암흑연합 측의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신성연방의 중립지대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등 결과적으로만 보면 암흑연합 측은 이득을 보기는 했지만, 공무를 조작한 죄는 무거웠다.

결국 네크로맨서계에서 영구 퇴출당하는 판결을 받았다.

"여, 영구 퇴출이라니......."

마음씨 좋은 카미바레즈는 눈썹을 아래로 내리깔며 동정심을 내비쳤지만, 딕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냉정하게 말했다.

"자업자득이지 뭐."

세이위르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린도 거들었다.

"오랜만에 평민이랑 생각이 같네. 나도 마지막까지 통신수정구를 숨긴 건 절대 용서 못 해."

딕과 메이린이 밀어붙이자, 주눅 든 세이위르의 고개가 말라비틀어진 꽃송이처럼 푹 내려갔다.

"하, 학생 여러분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부 제 욕심과 섣부른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평생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흐음.'

그렇게 막 자신감 넘치던 사람이 저렇게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굽신거리고 있으니, 메이린은 지은 죄는 둘째치고 인간으로서는 조금 불쌍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세이위르."

그때 블락 요원과 비서도 다가왔다. 세이위르의 고개가 더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잘 가게."

"사고만 더럽게 치다 갔지만, 그동안 수고했어요."

생각보다 두 사람은 담백한 반응을 보였다.

"두 분께도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세이위르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던 블락이 한숨을 쉬었다.

"시원섭섭하군."

딕이 그 말을 받았다.

"속 시원해하실 줄 알았는데요."

"허구한 날 사고만 치고 조직에 손해를 끼치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데리고 있던 이유가 있었어. 다른 건 몰라도 환상계 하나는 기가 막힌 친구였으니까."

비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그냥 첩보 업무로 만족하면 되는데, 자꾸 분에 겨운 일을 벌이려다 저 꼴이 난 거라니까요."

"......."

"자, 자, 나간 사람 이야기는 됐고, 학생들도 늦기 전에 키젠으로 가요. 바래다줄게요."

그때 메이린은 팔짱을 낀 채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이린?"

"아, 아."

어느새 조원들은 비서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녀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카미, 나 텔레포트 타기 전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응, 알겠어요."

종종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하던 메이린이 어느 순간 걸음을 확 돌려 세이위르가 나간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세이위르가 여전히 축 처진 어깨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세이위르 씨, 잠깐 나 좀 봐요."

세이위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메, 메이린 요원?"

"자요."

그녀가 안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세이위르에게 내밀었다.

세이위르가 얼떨떨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게 뭡니까?"

"이제 영원히 네크로맨서 노릇은 못 한다며? 그럼 다른 길을 찾아봐야죠."

그녀가 귀밑머리를 넘기더니 엣헴, 하고 기침을 했다.

"랭거스틴 극장주의 명함이에요. 이걸 들고 대극장에 가서 극장주를 만나세요. 메이린 빌렌느가 보냈다. 라고 하면 알아들을 거예요."

-다른 건 몰라도 환상계 하나는 기가 막힌 친구였으니.

메이린도 블락 요원의 말에 동의했다.

특히 처음 사샤를 찾으러 켈소 마을에 갔을 때, 그 정도의 많은 프리스트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많은 공격을 본인이 다 막아내는 척했다. 다른 의미로는 대단하긴 했다.

실제로 시몬을 제외한 모두가 깜빡 속았으니까.

그리고 얼굴을 보자면...... 느끼한 왕버터 스타일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럭저럭 외모는 되는 편이다.

네크로맨서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연극배우를 하기엔 대단한 재능이 아닌가.

"가서 무슨 일이든 시키면 다 하겠다고 졸라봐요. 들여보내 줄 거예요."

명함을 받아든 세이위르 본인은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연극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 신경 써줘서 감사합니다. 근데 키젠의 학생분이 어떻게 연극 쪽 인맥을......."

"악, 아! 몰라! 그건 묻지 마요!"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치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다.

멍한 눈으로 그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세이위르가 다시 명함을 보았다.

<랭거스틴 루이바 대극장. 극장주 루이바.>

'제2의 인생.......'

세이위르의 시선이 명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 *

"드디어 키젠에 돌아왔드아!"

딕이 두 팔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이제는 눈에 익은 텔레포트 마법진의 언덕길, 저 아래에는 키젠 교정의 모습이 보인다.

"다들 수고했어!"

"고생하셨어요~"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우, 바깥바람 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중립지대는 너무 삭막하고 역시 키젠이 최고야!"

시몬이 웃는 얼굴로 딕의 말을 받았다.

"중립지대에 넘어갈 땐 키젠은 갑갑하고, 바깥바람 쐬니까 좋다며?"

"원래 화장실 가기 전과 간 후의 마음가짐은 다른 법이야."

다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메이린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간도 널널하네. 그럼 오늘 하루 푹 쉬고, 내일 새로운 마음으로 만나자! 해산!"

시몬은 남자 기숙사로,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여자 기숙사로 향했다.

딕은 본인이 없는 사이 사업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걱정이라며 바로 로체스트에 가보기로 했다.

'진짜 몇 달은 밖에 나가 있던 기분이네.'

기숙사에 들어오니 평소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랐다. 파견평가 중인 학생들이 대부분 복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걸어 4층으로 올라왔다.

집에 온 것만 같은 이 익숙한 그림에서.

'응?'

한 가지 낯선 것이 있었다.

4층 복도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이 길처럼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른한 표정으로 있던 시몬의 눈빛이 단번에 심각해졌다. 몸의 솜털이 바짝 곤두서며 긴장감이 치밀었다.

시몬은 숨을 죽이고 핏자국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끙.'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409호 방에 핏자국이 연결되어 있었다.

시몬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문고리를 붙잡았다.

'개문.'

주위에 여섯 개의 아공간이 열리며 오버로드가 언제든 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달칵!

문을 열자마자 409호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회색 머리의 남자가 피범벅이 되어 기숙사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카, 카쟌!"

시몬이 한쪽 무릎을 꿇고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세요! 카쟌!"

"말이 안 통하더군."

"!"

난데없이 텅 빈 방 안에서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어깨를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방 안에 아무 기척도 없었는데, 어느새 사람의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게 보인다.

누군가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여자로 생각될 정도로 긴 머리카락에, 가느다란 턱. 그리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냥 기다리겠다는데 굳이 덤비더군. 어쨌든-"

시몬은 지금 최악의 위기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나고 싶었다. 시몬 폴렌티아."

이 끈적끈적한 느낌의 칠흑, 시몬은 그를 처음 보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예전에 상대했던 에이션트 언데드 '탈라제'가 사용하던 칠흑과 동일한 칠흑을 쓰는 남자.

매그너스 알반.

제5 군단장이 눈앞에 있었다.

'.......'

육체와 사고가 얼어붙었다.

너무 놀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입술이 바싹 말라갔다.

여기서 잘못 처신하면.

죽는다.

[조심해라 소년.]

머릿속에 울리는 피어의 목소리도 무척 진지해졌다.

[놈은 이미 네 목을 죄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아공간을 열 틈을 만들어라. 내가 밖으로 나오면 상대할 수 있다.]

학교 내에서 대놓고 군단을 꺼내면 키젠 생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목숨이 걸린 사안이다.

시몬은 각오를 다지고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누구죠?"

시몬은 우선 적대감을 드러냈다.

룸메이트를 공격했으니 이런 행동은 정상적이다.

"최근 아주 흥미로운 보고를 들었다."

매그너스는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중립지대의 켈소라는 곳에서 불완전한 정화의 성녀가 탄생했고, 그를 쓰러트린 건 정체불명의 방랑자라더군. 그리고 결계를 뚫고 들어간 건 그 방랑자 한 명인데,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흔적이 발견됐다던데. 재미있지 않나? 그래서 내 부하를 보내서 조사해 봤더니."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애타게 찾고 있던 한 에이션트 언데드와 같은 파장이 발견됐다."

시몬의 목구멍에 마른침이 넘어갔다.

"당시 내 감시전력 대부분이 로레인이란 꼬마에게 가 있었는데, 딱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로레인은 아니란 소리지.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임무를 맡았던 학생들에 네 이름이 있더군."

매그너스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내가 계속 주시하고 있던, 시몬 폴렌티아라는 이름이 말이야!"

촤르르르르륵!

매그너스의 행동을 공격으로 인지했는지, 대기하고 있던 오버로드의 칼날들이 쏟아졌다.

터엉!

텅!

그러나 칼날들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에 막혀 버렸다.

"흠."

그가 얼굴로 쇄도해 온 칼날 하나를 직접 손으로 붙잡아 살폈다.

"여기엔 군단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데."

부아아아아앙!

시몬의 회축이 그의 턱을 향해 날아왔다. 귀찮은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막아낸 매그너스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뻔한 거 말고."

그의 반대쪽 손이 시몬의 목으로 향했다.

"진짜 네 힘을 내게 보여봐라. 그게 아니면 넌 여기서 죽는-"

쩍!

천장에서 내려온 붉은 송곳이 매그너스의 손바닥에 틀어박혀 그의 손을 고정시켜 버렸다.

매그너스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냐."

어느새 시몬의 앞으로 붉은 뼈로 이루어진 본 아머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쩌어어억!

꿈쩍도 하지 않던 매그너스의 몸이 남자의 발길질에 맞아 창문을 박살 내며 날아갔다.

시몬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자, 얼굴을 가리고 있던 해골 마스크가 벗겨지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위험하니 물러나 있도록."

시몬의 눈이 커졌다.

"아론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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