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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00화 (30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00화

"여긴 위험하니 서둘러 빠져나가라."

"교, 교수님!"

아론은 시몬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매그너스가 빠져나간 창밖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곳에는 매그너스가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아론이 내려오며, 두 남자가 대치했다.

"몇 년 만이야. 아론 교수."

매그너스가 말했다.

"옛날엔 열정적인 풋내기 교수였는데, 지금은 또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문제아로군. 매그너스 알반."

아론의 눈에는 거대한 적의가 일렁이고 있었다.

"학생이 키젠 교수를 살해한 죄는 씻을 수 없다. 그런 일을 벌이고도 감히 이 섬에 들어올 생각을 하나."

"시시한 소리."

매그너스가 탁한 눈동자로 비아냥거렸다.

"학생보다 약한 교수는 죽어도 싸지."

아론의 입이 달싹였다가, 이내 논쟁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팔을 들어 올렸다.

"왜 키젠에 돌아왔나."

쿠구구구구구구!

남자 기숙사 옥상 너머에서,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언데드 전함 두 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함의 아랫부분이 열리며, 내장된 붉은 스켈레톤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언데드 전함이라."

매그너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함에 설치한 고도의 하이브 마법으로 휘하 언데드를 통괄, 술사의 명령을 하위 개체에 분배하는군. 그렇게 술사가 통제 가능한 언데드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렸어. 이런건 정말이지-"

매그너스가 입가가 벌어졌다.

"끔찍할 만큼 시시한데."

카작카작카작!

그의 발밑으로 눈과 이빨이 달린 무수한 그림자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수의 한계가 있는 네크로맨서? 두 팔이 없는 요리사와 다를 게 뭐지? 어떻게 자기혐오에 걸리지 않고 시시한 생을 꾸역꾸역 살아가는지 궁금할 지경이야."

'군단인가.'

아론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언데드 전함에서 하늘을 나는 빨간 스켈레톤들이 끝없이 매그너스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매그너스의 발아래의 그림자가 무수한 숫자로 튀어나와 입을 쩍쩍 벌리며 스켈레톤들을 집어삼키거나 쳐냈다.

"더 분발해 봐."

붉은 스켈레톤들의 잔해가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을 보며 매그너스가 비웃었다.

"저 스켈레톤들 하나에 얼마나 하나? 벌써 며칠 치 봉급이 날아간 것 같은데."

아론이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

매그너스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기존의 두 기의 언데드 전함에 더해, 또 새로운 전함이 그의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너희들 군단장을 제외하면, 인간은 누구나 '수'의 한계에 봉착한다."

네 기의 전함들이 입구가 열렸다.

"그렇기에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붉은 스켈레톤이 쏟아지듯 내려와 하늘을 빨간 메뚜기 떼처럼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 과정에서 끝없이 발전해 나가는 거다."

휘이이이이이이잉!

비행 스켈레톤들이 매그너스의 주위를 빙빙 회전하며 빨간 회오리의 형상을 만들었다.

매그너스의 혀가 달싹였다.

"진귀한 광경이긴 하나, 이런 잔챙이들로 뭘 하려고?"

그때 붉은 회오리를 만들며 회전하던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멎었다.

매그너스가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상황은 그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모든 함선들이 꽃봉오리처럼 네 갈래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으로 보이는 것은 다량의 칠흑을 내포한 초대형 마법진이었다.

'전함 자체가 하나의 마법진이었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악!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파괴의 섬광이 매그너스에게 밀려들었다. 매그너스가 그림자 괴물을 쏟아내 방어벽처럼 자신의 몸을 감쌌다.

"이건 좀 놀라운데."

매그너스가 제자리에서 방어에 전념하는 사이, 멈춰 있던 붉은 스켈레톤들이 모조리 하늘로 올라갔다.

하나의 몸이 수백 개의 뼛조각으로 흩어지더니 자기들끼리 붙이고 맞추고 연결되며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꾸로 뒤집은 탑이었다.

<아론 오리지널 - 망자의 탑>

"이만 꺼져라."

아론이 팔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망할 제자."

스켈레톤들로 이루어진 뒤집힌 탑이 그대로 지상에 고정된 매그너스를 향해 내려왔다.

매그너스의 그림자들이 수백 개씩 튀어나와 탑을 휘감아 무너뜨리려 했지만, 탑은 그대로 그림자들을 찢으며 매그너스의 머리통을 부수고 가슴을 가르며 바닥까지 내려왔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궁!

이내 탑의 절반이 바닥에 박히며, 자욱한 흙먼지가 남자 기숙사 주위를 완전히 뒤덮었다.

"......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창밖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몬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크흐흐흐! 제법이군!]

웬일인지 칭찬에 박한 타입인 피어마저 그렇게 말했다.

[군단장도 아닌 일개 소환술사가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이내 모든 스켈레톤들이 언데드 전함으로 들어갔다.

아론은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걷어내고는 온몸이 찢어진 매그너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곤 푸석거리는 매그너스의 몸통을 만지며 가만히 고민에 잠겨 있었다.

"교수님!"

어느새 창문에서 뛰어내린 시몬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물러나 있으라고 했을 텐데."

아론을 감싸고 있던 본 아머가 걷히자, 평소의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왔다.

까끌까끌한 턱수염과 삐쭉삐쭉 자라난 다리털이 보인다.

그 묘한 언밸런스함에 시몬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수님이 처리해 주셨잖아요. 매그너스는요?"

"놈은 가짜다."

아론이 말했다.

"일종의 생체 분신 같은 거지."

"그, 그게 분신이라고요?"

시몬이 입을 딱 벌렸다.

무려 카쟌을 쓰러트릴 정도로 강한데 분신이라고?

"5군단에는 '알라제'라는 다재다능한 에이션트 언데드가 소속되어 있다고 들었다."

아론이 몸을 일으켰다.

"그 알라제와 매그너스가 힘을 합친다면 이 정도의 일이야 어렵지 않겠지. 애초에 군단장이 상식이 통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라."

"......."

그때 아론이 다가와 시몬의 어깨를 짚으며 물었다.

"왜 매그너스가 널 노렸는지, 짐작 가는 바는 없나?"

시몬은 속으로 뜨끔했다.

"매그너스는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다. 암흑연합과 키젠본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괴짜고, 그가 어디 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도 없지. 왜 그런 위험인물과 엮이게 됐나."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시몬이 보통의 학생처럼 공포에 질린 표정을 꾸며냈다.

"저도 그 사람과는 처음 보는 사이였어요."

이건 사실이기도 했다.

"그가 무슨 말을 했지?"

"언데드의 파장 어쩌고 하긴 했는데, 너무 어려운 말이라 못 알아들었어요."

"......아까 그 피 흘리던 학생은?"

"기숙사 관리원들이 병동으로 데려갔어요. 저도 바로 가보려고요."

"알겠다."

아론은 마법진을 펼쳐 매그너스의 파편을 회수하고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네프티스 님께는 내가 보고하겠다. 쉬어라."

* * *

와슈번 산맥 정상.

마왕의 고성.

그 고성의 실내에 위치한, 드넓은 목욕탕에 한 언데드가 들어왔다. 집사복을 입은 좀비가 한숨을 푹 쉬었다.

[또 욕탕이 엉망이 됐군요.]

탕 안에서는 장발의 사내가 피를 흘리며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그가 몸을 담그고 있는 유황천은, 그의 가슴과 배의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검고 시뻘건 살덩이들이 죽죽 흘러나와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재밌었으니 됐어."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한 매그너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마른 몸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치워라."

청소 도구를 든 언데드들이 우르르 몰려와 물을 빼내고 살덩이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매그너스는 가운을 걸치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뭔가 성과라도 있었습니까?]

"옛 스승과의 재회 외엔 특별히 성과라고 할 게 없군. 시몬 그놈과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방해받았으니."

매그너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촉이 왔다."

[촉?]

그는 시몬과 처음 대면했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보자마자 순수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상황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자신의 룸메이트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고찰이나 의문 등을 모조리 뛰어넘고 일단 분노부터 뿜어냈다.

매그너스는 그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로레인 아크볼드는 죽음의 마녀가 꾸민 블러핑이었을 거다. 제7 군단장은 시몬 폴렌티아다."

[확신하시는군요.]

"거의 그렇지."

좀비집사가 안경을 붙잡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번 군단장님의 행동은 너무 급했습니다. 아마 죽음의 마녀가 키젠 본부 내부에 있는 우리의 협력자도 어떻게든 찾아내 처분하겠죠.]

"호, 탓하는 거냐."

좀비집사가 헛웃음을 흘렸다.

[군단장님과 함께해 온 시간이 얼만데 그럴 리가요. 행동에 이어진 결과를 보고했을 뿐입니다.]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걸어간 매그너스가 해골왕좌에 앉았다. 좀비집사가 수건을 건넸다.

[모교에 돌아가신 기분은 어땠습니까?]

"괜찮은 유흥이었다."

매그너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

"나 외에도 키젠에 뭔가를 준비하는 놈이 있는 것 같더군."

[그렇습니까.]

매그너스가 턱을 괴었다.

"제법 큰 건을 터뜨리려는 것 같은데, 여러모로 기대해 봐도 좋겠어."

* * *

매그너스 사태는 일단락됐다.

학생들이 기숙사에 별로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키젠 본부에서는 매그너스에게 조사를 위한 소환명령을 내렸다. 물론 그가 응할 리는 없을 테고, 까마귀들을 움직여 매그너스를 찾는다는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키젠의 감시의 눈이 매그너스에게로 향할 테니 시몬에게 있어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한편 시몬은 카쟌의 병문안을 위해 병동에 찾아갔다.

"카쟌 학생, 벌써 퇴원했어요."

"네?"

병동에서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학생이 다치면 끈질기게 붙들어두고 있는 걸로 유명한 키젠 병동이, 카쟌을 바로 퇴원시켜 버린 것이다.

시몬은 카쟌이 돌아갔다는 1학년 남자 기숙사의 당직실로 향했다.

"아, 카쟌 학생. 목욕할 곳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목...... 욕이요?"

그렇게 피범벅이 됐으면서 목욕이라니.

아마 진짜 목욕은 아니고, 그 '이상한 포션'을 몸에 부으러 갔을 것이다. 카쟌은 다칠 때마다 연기가 나오는 포션을 몸에 붓곤 했으니까.

"남자 기숙사에 지금 따뜻한 물이 안 나와서, 2학년 여자 기숙사에 있는 관리원 목욕탕에 가보라 했어요."

시몬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여, 여자 목욕탕이요?"

"네, 상부에서 카쟌 학생에게 뭐든 다 협조해 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하더라구요."

역시 네프티스의 측근은 다른 것인가.

시몬은 납득한 후 바로 2학년 여자 기숙사 건물로 향했다.

쏴아아아아아.

그리고 정말로, 여자 관리원 목욕탕 앞에 도착하자 물소리가 들린다.

시몬은 잠시 여탕이라는 팻말 앞에서 도덕적으로 흔들렸지만,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목욕탕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카, 카쟌? 거기 있어요?"

물소리 때문에 들릴 리가 없다. 시몬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문을 살짝만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쏴아아아아.

학생들이 아니라 관리원들만 쓰는 욕탕인 만큼, 크기는 작았다. 옷을 벗는 캐비넷 같은 곳도 따로 없이, 문을 열자마자 뿌연 수증기가 보인다.

탕도 딱 하나뿐이다. 그리고 뿌연 수증기 속에서 회색 머리의 남자가 몸에 포션을 끼얹고 있다.

카쟌이었다.

"......시몬이냐."

그가 피곤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욕탕 바닥이 물과 피와 포션으로 엉망이었다.

"괘, 괜찮으세요 카쟌?"

"그래."

"저 들어갈게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시몬도 씻고 가기로 했다.

옷을 벗어서 카쟌처럼 바구니에 올려놓고 다가왔다.

"죄송해요 카쟌. 저 때문에 괜히 휘말려서......."

"왜 네가 사과하나."

카쟌이 눈 옆에 난 상처를 손끝으로 슥슥 긁었다.

"널 보호하는 것도 내 임무 중 하나다. 그리고 임무 중 부상은 당연한 거니 사과할 필요 없다."

시몬도 카쟌의 몸에 포션을 끼얹는 것을 도와주었다. 쩍쩍 벌어진 상처에 포션을 붓자 수증기 같은 연기가 일어나며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대신 카쟌의 얼굴에 난 긴 상처처럼, 아문 상처에는 흉터가 남았다. 그의 몸은 흉터투성이였다.

그렇게 카쟌이 회복을 마치고, 온탕에 들어갔다.

시몬은 청소 도구를 꺼내와서 피와 포션으로 엉망이 된 욕실을 치웠다. 여탕을 빌린 것도 미안한데 청소 정도는 이쪽에서 해야 될 것 같았다.

쓱삭 쓱삭.

욕탕용 밀대로 바닥의 포션 자국을 닦던 시몬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카쟌."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근 카쟌이 고개를 끄덕였다.

"2학기 들어서 저를 피하시는 것 같아요."

"......."

최근 카쟌과 거의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409호에 들어오면 그는 항상 자고 있었으니까.

1학기 때 카쟌이 매번 밤마다 나간 이유는 성녀 사태 때문이었는데, 그 사건을 해결한 뒤에도 카쟌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니다."

카쟌이 답했다.

"임무 중이다."

"......아니, 이제 로크섬에 프리스트도 없는데 또 무슨 임무예요?"

"임무 내용을 외부인에게 발설하는 바보가 어딨나."

외부인이라니, 시몬이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룸메이트고, 같이 성녀랑 싸운 동료이기도 하잖아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시몬은 이 무뚝뚝한 선배 때문에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도대체 언제쯤 이 사람이랑 친해질 수 있을까.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그때 카쟌이 말했다.

"뭔가를 숨긴 채 고민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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