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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02화 (30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02화

정적인 정장 차림에, 깔끔하게 정돈한 단발머리의 여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류판을 허리춤에 끼고 서 있었다.

바힐이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웃는 얼굴을 보였다.

"별일 아닙니다. 부총장님."

"......방금 혀 차는 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넘어가죠. 곧 행사가 시작합니다.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바힐이 대강당으로 돌아갔고, 별야도 유쾌한 웃음을 흘리며 다른 학생들과 섞여서 안으로 들어갔다.

제인도 등을 돌려 가려는 순간.

"제인 교수님! 저희 무사히 다녀왔어요!"

시몬이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제인이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고개를 까닥했다.

"네, 별 탈 없이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딕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제인 교수님은 목석처럼 차암 성격에 변화가 없어. 친해지면 좀 부드러워지실 줄 알았는데."

"그래?"

시몬이 웃었다.

"내가 보기엔 엄청 반가워해 주신 것 같은데."

"......저게?"

"시몬~"

등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 카미!"

오랜만에 보는 교복 차림의 카미바레즈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등 뒤의 박쥐 날개가 반가움으로 연신 파닥거렸다.

"야! 뭔데 뭔데? 제인 교수님이 무슨 말 하셨어?"

그 뒤에는 냇물처럼 찰랑이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메이린도 뒤따르고 있었다.

"그냥,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셨어."

"제인 교수님이? 의외네."

카미바레즈가 다가와 헤헤 웃었다.

"또 새로운 일정이 시작되네요! 우리 다 같이 열심히 해요!"

그녀가 두 주먹을 앙 쥐며 파이팅을 외쳤다.

다들 흐물흐물한 표정이 되었다.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며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번 4차 BMAT도 살아남아서 5차까지 가보......!"

"아직도 안 뒈졌나. 쓰레기."

딕이 시선이 돌아갔다.

산만한 덩치의 헥토르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유감이군."

그의 주위엔 악명높은 헥토르의 파벌들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딕을 비웃은 헥토르의 시선이 시몬 쪽을 바라볼 때는 잠시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가자'하고 말하며 등을 돌렸다.

파벌들이 우르르 그의 뒤를 따랐다.

"헥토르! 빨리빨리 중립지대에서 프리스트랑 3 대 1로 싸운 이야기 들려줘!"

"그거 5 대 1 아니었어?"

떠들썩하게 떠나는 헥토르 무리를 보며 메이린이 '에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쟤들은 언제 철들려나."

딕도 낄낄거리며 한마디 했다.

"그냥 좀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젠 별로 빡치지도 않아."

카미바레즈가 세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우리도 빨리 들어가요!"

* * *

대강당에 들어오자마자 시몬 일행은 깜짝 놀랐다.

"이, 이게 다 뭐야?"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강당의 일자형 좌석이 싹 사라져 있고, 원탁이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뷔페식인 온갖 호화로운 음식들이 쭉 진열되었다.

요리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방금 요리된 따뜻한 음식을 채워놓았고, 연단 앞에는 연주자들이 클래식을 연주하고 있었다.

"다, 단체 회식?"

"......대박."

학생들은 신이 났다. 시몬 일행도 다른 학생들이 오기 전에 재빨리 앞자리의 원탁 하나를 차지했다.

교복 재킷을 벗어서 의자에 걸어놔 자리를 '찜'해둔 다음, 요리를 가지러 갔다.

'처음 보는 음식들이 너무 많아.'

산골에 살던 시몬의 동공이 마구 돌아갔다. 이런 파티는 와도 와도 적응이 안 됐다. 일단 익숙한 음식들로 접시를 채워서 돌아왔다.

뒤이어 다른 세 사람은 먼저 돌아와 떠들고 있었다.

담겨 있는 음식도 개성이 있었다. 딕은 탄수화물 한가득에 생선요리 위주, 메이린은 샐러드와 파스타, 카미바레즈는 육류요리를 선호했다.

"와인 한 잔 드릴까요?"

키가 늘씬한 웨이터들이 다가와 물었다. 딕이 깜짝 놀라 말했다.

"수, 술 마셔도 돼요? 학교 안인데?"

"이번만큼은 특별히 네프티스 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와우!"

이번 단체 회식에 키젠에 엄청나게 준비를 많이 했다는 건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자리 마련해 주는 거 보니까, 애들 중립지대에 보내놓고 고생하는 게 양심에는 좀 찔렸나 봐?"

메이린은 이런 자리가 싫지 않은 듯 머리를 넘기며 우아하게 와인을 마셨다. 같이 지낼 땐 털털한 모습도 있지만, 이럴 때는 고위귀족의 영애 같은 기품이 느껴졌다.

"음!"

이내 와인을 한 모금 마신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 싸구려가 아니네! 비싼 와인이야!"

시몬도 한 모금 마셔보고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미바레즈는 술은 부담스러운 듯 오렌지 주스를 홀짝홀짝하고 있었다.

"저, 접시 치워드릴게용."

그때 카트를 끌고 소심한 걸음으로 나타난 메이드 복장의 여성이 빈 접시를 카트에 올렸다.

메이린이 하나 남은 버섯요리를 입에 넣고는 빈 접시를 내밀었다.

"이것도 부탁드...... 앗!"

그녀가 깜짝 놀라며 손가락으로 메이드를 가리켰다.

"조교 쌤! 여기서 뭐 해요?"

메이드 복장을 입은 그녀는 다름 아닌 제인의 수석조교였다.

그녀가 시뻘게진 얼굴로 손가락을 올리며 '쉿쉿!'하고 외쳤다.

"부끄러우니까 조용히!"

시몬과 딕, 카미바레즈의 시선까지 꽂히자 그녀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 인간적으로 이런 건 좀 모른 척해줘야 하는 거 아녜요?"

"푸훗."

메이린이 입을 가리며 실소를 터뜨리자 수석조교의 얼굴이 한층 더 시뻘게졌다.

'......부, 부담스러워.'

시몬은 눈치껏 일어나 본인의 빈 접시를 카트에 담으려 했지만, 그녀가 그냥 앉아 있으라며 시몬의 가슴을 밀어냈다.

"조, 조교 선생님이 왜 여기 있어요?"

카미바레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크흠,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죠."

"?"

조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생의 파릇파릇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다 이런 자잘한 좌절들이 모이고 모여 어른이 되는 거랍니다."

"......."

갑자기 짠- 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조교가 얼른 덧붙였다.

"아, 사실 별건 아니고 이쪽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원요청이 들어왔거든요. 다섯 명 뽑는 거 조교들끼리 가위바위보 했는데 결국 이렇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작게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 짬밥에 내가 메이드라니......."

"히, 힘내세요."

카미바레즈가 조용히 응원했다.

"조교쌤."

딕이 휙 끼어들었다. 그의 성격을 잘 아는 그녀가 힝 하는 소리를 내며 바라보았다.

"놀리면 진짜 나 울 거예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도 저 사람보단 낫잖아요."

딕이 옆을 가리켰다.

옆자리에서 마투학 조교인 '브레드'가 메이드복을 입고 접시를 치우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량에 메이드복은 터지려고 하고 있었고, 넓은 치마 아래로 보이는 털이 학생들의 입맛을 실시간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음."

수석조교가 헛웃음을 흘렸다.

"조금 힘이 나네요."

"힘내십쇼!"

그렇게 회식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분에 겨운 행복이 지속될 때, 그 행복을 의심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아, 불안해!!"

딕이 원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키젠 이것들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건데?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이렇게 잘 먹이는 거냐고!"

"혹시 이런 거 아닐까?"

시몬이 와인을 홀짝이며 말을 받았다.

"자, 잘 즐기셨나요? 지금부터 4차 BMAT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야!! 부정 타니까 그딴 소리 하지 마!"

"키, 키젠이라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서워요."

사실 시몬이 처음이 아니라 대다수의 학생이 지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팟.

파밧.

대강당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연단에 조명이 집중적으로 비추고, 악기를 연주하던 연주가들도 물러났다.

방송 하수인들이 빠르게 스탠딩 확성 수정구를 세팅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벅 저벅.

모두의 시선이 발소리가 나는 것으로 집중됐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평소의 후줄근한 차림이 아닌, 격식 있는 수트차림의 아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

학생들 사이에 엄청난 긴장감이 몰려들며 쥐죽은 듯한 침묵이 일어났다.

아론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스탠딩 확성 수정구를 점검한 다음 학생들을 보았다.

"지금."

학생들의 잔뜩 긴장한 얼굴을 보며 아론이 픽 웃었다.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쫄 필요 없다."

하아아아-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튀어나왔다.

"일단 서류부터 작성하도록."

아론의 말이 떨어지자, 하수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움직이며 학생들에게 서류와 깃펜을 제공했다.

'가, 갑자기 뭐지?'

시몬은 서류를 펼쳐 양식을 확인했다.

이름 :

성별 :

전공 :

부전공 :

사용 가능한 흑마법 및 숙련도 :

지병 :

트라우마 경험 :

"지병에 트라우마? 갑자기 이걸 왜 쓰란 거야?"

메이린이 의문스러운 듯 팔짱을 꼈다. 카미바레즈도 조용히 말했다.

"조, 조금 수상쩍...... 네요. 아하하."

"이거 솔직하게 써도 되나 모르겠네."

딕이 또 뭔가 꼼수를 부리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아론이 말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도록. 너희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번쩍 올라왔다. 시몬은 이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저 자세와 손목에 찬 팔찌로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다 교수님! 저희 아직 1학년이라서 전공이 없는데요!"

"전공과목 자리에는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을 써라."

아론이 말했다.

"그리고, 반드시 조별과제에서의 지망과목으로 할 필요는 없다. 조원 구성 때문에 본인의 특기가 아닌 다른 과목으로 해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을 거다. 너희들이 가장 잘하는 과목으로 작성하도록."

바로 그 말에, 전공 자리에 '저주학'을 썼던 메이린이 깃펜으로 두 줄을 긋고 '칠흑역학'이라고 써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또 다른 학생이 팔을 들었다.

"이거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되는 건가요?"

"키젠 측 관계자만 열람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은 염려하지 말고 작성하도록."

그렇게 왁자지껄했던 대강당이 잠시 사각사각하고 글 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전공에 당당히 '소환학'이라고 쓴 시몬은 부전공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부전공은 전공 다음으로 자신 있는 과목이라고 했지?'

시몬은 자연스레 저주학, 마투학, 혈류학 세 가지를 떠올렸지만, 자신 있고 자주 쓰는 쪽을 고르자면 역시 마투학이었다.

이게 뭐 확정으로 쓰는 건 아니라고 하니, 일단 마투학을 써놓았다.

'어, 어쩐지 바힐 교수님의 분노한 얼굴이 떠오르지만...... 괜찮겠지.'

그렇게 1학년 전 학생들의 서류작성이 모두 끝난 뒤, 아론이 다시 연단 앞으로 나왔다.

"우선 중요한 공지사항부터 설명하마. 그리고 이번 4차 BMAT에서부터는 변동사항이 있으니 집중하도록."

그 말을 들은 딕이 흥분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봐봐! 내가 말했지? 내 말이 맞지? 내가 변화가 있을 거라고 했잖아!"

"알았으니까 닥쳐 쫌."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정말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조원이었다.

시몬은 다시 고개를 돌려 연단 위에 있는 아론에게 집중했다.

그가 스탠딩 확성 수정구를 들고 연단 가장 끄트머리로 가서 섰다.

"우선."

아론이 새로운 서류를 펼쳐 들었다.

"이번 4차 BMAT를 주관할 네크로맨서분을 소개하겠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키젠 본부 말고, 시험을 주관하는 네크로맨서가 따로 있어?'

뭔가 바뀌긴 바뀐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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