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04화
"친애하는 키젠 학생 여러분!"
이번에야 말로, 확실한 자유 발언 기회를 얻은 엔돌라스가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내 게임이 축소된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힘겨운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잠시나마 내가 만든 세계 속에서 그런 피로감을 잊을 수만 있다면! 그건 내가 게임을 만드는 궁극적인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요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 BMAT도 받아들인 겁니다!"
엔돌라스가 말할 때마다 머리에 쓴 커다란 모자가 좌우로 휙휙 흔들렸다.
"교수진과의 협업도 끝났습니다! 수업과 관련된 게임도 몇 개 추가했죠! 모쪼록 새로운 모험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무릎에 올려둔 룰북을 펼쳐도 좋습니다!"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엔돌라스의 게임 룰북」을 원탁 위로 가져와 펼쳤다.
"어떤 게임을 할 건지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시험은 시험입니다! 가장 중요한 룰부터 한번 확인해 주시지요!"
중앙 화면에도 룰에 대한 사항이 떠올랐다.
-총 4회의 시험. 일주일에 1~2번 계획.
-시험 시간은 4시간. 시간이 끝나도 진행 중인 게임은 그대로 진행.
-하루 동안 최대 두 장의 카드까지만 획득 가능.
-키젠 측이 제공해주는 방호조끼를 입고 시험 시작.
-학생 간의 교전 허용.
-게임 도중 몬스터의 공격으로, 혹은 다른 학생의 공격을 받아 배리어 게이지가 0이 되면 그날 시험은 완전 종료.
시몬의 눈이 진지하게 반짝였다.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카드 숫자가 두 장으로 제한되어 있구나.'
총 네 번의 시험을 치른다고 했으니 최대 8장의 카드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중에 5장 이하의 카드를 모은 학생은 전부 퇴학처리다.
"하루만 쉬어도 위험하겠네요."
카미바레즈가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좋습니다 키젠 학생 여러분! 그럼 이제-"
엔돌라스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딱 한 시간 뒤에, 첫 번째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에?!"
한 시간 뒤라니!
학생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망했다!"
"전략을 세울 시간은 충분히 준다면서요!"
앞에 앉은 한 학생의 항의에, 아론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나."
'이 사기꾼!'
불이 떨어진 학생들이 빠르게 전략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다들 생각하는 전략이 달랐다.
딕은 공성전을 하러 가기로 했고, 카미바레즈는 혈류학 관련 게임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파랑색 카드를 7장 모아서 +3점 추가를 노리기로 결정했다. 메이린은 수집하는 카드에 따라 유동적으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물론 시몬은 서로 다른 7장을 모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임에 인원 제한도 있대."
메이린이 말했다.
"그러니 우리도 이번 게임은 개인전으로 하자. 각자 흩어져서 원하는 카드를 손에 넣고,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공유하는 거야."
"오케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린이 가이드북을 검지로 척 가리켰다.
"그럼 이제부터는 세부룰 숙지해. 첫날에 룰 때문에 얼 타는 사람 분명히 나와."
학생들이 열심히 전략을 짜거나 룰을 숙지하는 가운데, 하수인들은 바쁘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방호조끼를 제공했다. 모두가 교복 위에 그것을 걸쳤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여러분!"
엔돌라스가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 들린 카드뭉치들이 하늘에 퍼지듯 흩어지며 학생들의 손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
시몬에게도 카드 한 장이 도착했다.
시몬 폴렌티아라는 이름과, 그 아래에는 소환학 전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때문에 서류를 작성하라고 한 거였구나.'
"공식 룰입니다. 카드는 방호조끼의 오른쪽 가슴에 붙여서 착용해 주십시오."
시몬이 가슴에 카드를 올리자 스티커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마치 명찰 같았다. 이걸로 다른 학생들의 전공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지요!"
엔돌라스가 말했다.
"게임에는 시험에 도움이 되는 물건과, 값비싼 아티팩트와 특별한 무기 등 푸짐한 상품도 준비해 놨습니다! 부디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상품이라는 말에 학생들의 눈이 한층 더 반짝였다.
"자,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흩어져도 좋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와아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강당의 학생들이 칠흑을 밟고 날아올랐다. 정문으로 빠져나가기엔 사람이 몰리니 창문을 깨고 뛰쳐나가는 학생들 등 난리도 아니었다.
'폭발적인 열기네.'
시몬도 입꼬리를 올리며 벽을 밟고 뛰어올라 다른 학생들이 깨둔 유리창을 통과했다.
일단 밖으로 가볼 생각이었다. 시험은 로크섬 전체가 범위다. 학생들이 많이 몰릴 게 뻔한 교정보다는, 더 먼 곳까지 나가보고 싶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때 푸른 장막 같은 것이 키젠 교정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건물을 감쌌다. 학생들의 전투로 건물이나 장식물 등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 설치한 결계형 흑마법이었다.
동시에 시몬의 가슴께에 붙여둔 카드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시험이 시작됩니다!
-학생들 간의 교전이 가능해집니다.
-지금부터 게임에 도전하여 카드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퍼어어어엉!
꽈앙!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교정 쪽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벌써부터 못 싸워서 안달이네.'
교전이 가능하다고 해봐야,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경쟁자를 이번 시험에서 멈추게 하는 정도뿐이다. 시몬이 계속 달려 나가는데, 가슴께의 카드에서 마나 스크린이 펼쳐졌다.
[다음 학생과의 교전에서 승리하면 1점을 추가 부여합니다.]
[진 하이든]
'오.'
이건 새로운 룰이었다.
1점이면 나쁘지 않다. 카드를 주는 게 아니라도 카드 1장당 1점이니까.
하지만 이것도 카드 두 장을 먼저 획득한 뒤에나 시도해 볼 만한 미션이었다.
'일단은 카드수집부터!'
시몬은 키젠 교정에서 빠져나와 텅 빈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주위에 다른 학생들도 많았다. 서로 경계하는 눈빛으로 노려보기만 할 뿐, 다행히 선제공격을 해오진 않았다.
'아!'
그때 운 좋게 나무에 딱 붙어있는 카드 한 장을 발견했다.
시몬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남색 카드다!'
그런데 카드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난이도 : 하.]
[입장인원 : 1명.]
[입장조건 : 맹독학 전공자]
'이런, 나는 못 들어가는 방이네.'
시몬은 바로 미련을 버리고 등을 돌렸다.
언제 왔는지, 그 뒤에서 눈치를 보던 한 여학생이 움찔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시몬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난 관심이 없으니 확인해 봐."
"......어? 어. 고마워."
시몬은 바로 떠났다.
그녀가 주춤주춤 다가와 확인하더니 바로 카드를 터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맹독학 전공자인지 바로 카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도 빨리 찾고 싶은데.'
"거기! 거기! 잠깐만!"
남학생 두 명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위 앞의 카드를 지키듯 서 있었다.
"혹시 너 사령학 전공이냐?"
"사령학만 오면 바로 출발이야!"
시몬은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붙은 카드를 바라보았다.
[난이도 : 중.]
[입장인원 : 3명.]
[입장조건 : 칠흑역학 전공자, 저주학 전공자, 사령학 전공자.]
'재밌네. 합동 미션 같은 것도 있구나.'
시몬은 손을 휘저었다.
"미안, 난 소환학 전공이라."
그때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학생의 표정이 굳었다.
'시, 시몬 폴렌티아다!'
멀리 있어서 긴가민가했는데, 그 유명한 특례 1번이 확실했다.
혹시라도 싸우게 되면 끝장이겠지만, 다행히 시몬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다들 카드를 찾는 데 전념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계속 주위를 수색하며 달리던 시몬은 조금씩 초조해졌다.
'카드를 발견하는 게 끝이 아니구나. 조건 때문에 자꾸 막히네.'
시몬이 들판을 빠져나와 근처에 졸졸 흐르는 계곡으로 들어와 보았다. 여긴 사람이 적었다.
'아!'
계곡에 비정상적인 물의 흐름이 보였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계곡 한복판에 카드 한 장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조금 내려와서 카드를 살폈다. 남색 카드였다.
[난이도 : 중.]
[입장인원 : 1명.]
[조건 : 없음.]
"이거다!"
시몬은 즉시 칠흑을 밟아서 계곡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러곤 공중에서 두 다리를 모으고 카드 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내 카드에 두 발이 닿자 쑤우욱 그의 몸이 빨려들었다.
[새로운 게임에 진입합니다.]
* * *
철썩 철썩!
쏴아아아아아아!
시몬은 얼굴에 튀는 물세례를 맞으며 눈을 떴다.
귓가에 쏴아아 하고 물소리가 가득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시야가 흔들렸다.
"......여, 여긴?"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나뭇결이었다. 독한 나무 진액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든 시몬의 눈이 커졌다.
'뗏목?'
쏴아아아아아아!
시몬이 얼른 주변을 살폈다.
분명히 키젠 성벽 근처의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급류에 떠나가려는 뗏목 위의 신세가 됐다.
게다가 주위는 로크섬의 식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울창한 정글이었다. 시몬은 정글에 흐르는 강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시몬이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옆에서 '으으음' 하는 소리가 났다.
얼른 뒤를 돌아보니 키젠 교복 차림의 여학생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시몬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반장!"
A반의 명예 반장인 제이미 빅토리아였다.
"일어나 봐! 반장!"
시몬이 급히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엎드린 자세로 잠잠하던 그녀가 비로소 그녀가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누구...... 아!"
눈가를 비비며 마침내 앞을 바라본 그녀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시몬을 가리켰다.
"시, 시몬? 니가 왜 여깄어?"
"나도 몰라."
시몬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이미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분명 나 혼자서 카드에 들어왔는데."
"나도 혼자 왔어."
아무래도 이렇게 학생들끼리 무작위로 연결되는 카드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두 사람의 앞으로 마나 스크린이 떠올랐다.
[목표 : 목적지까지 생존.]
"생존미션 당첨이네."
제이미가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시원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손을 척 내밀었다.
"시몬이랑 호흡 맞춰보는 건 처음이네? 모쪼록 잘 부탁해!"
다시 느끼는 거지만, 역시 제이미는 친화력이 좋았다. 실제로 A반 누구와도 두루두루 친했다.
"응, 잘해보자."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급류에 위태로운 뗏목 하나 달랑 있는 상황. 좌우에는 자욱한 정글의 식생이 가득했다.
시몬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목적지까지 생존. 목적지까지 빠르게 가려면 이 뗏목 위에 그대로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거 봐. 시몬."
제이미가 한 쌍의 노를 꺼내 들었다.
"이걸로 운전해서 가는 게 아닐까?"
"맞네."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주위를 신중하게 살폈다. 분명 목적은 생존이라고 했으니, 이대로 그냥 쭉쭉 가게 둘 리는 없다.
'!'
과연,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정글에서 야수의 눈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조심해 제이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