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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06화 (30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06화

시몬이 안경을 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계곡의 색이 남색으로 변해 있었다. 들판은 파란색이고, 저 멀리 보이는 성벽은 보라색이었다.

즉, 이 안경을 쓰면 카드가 나오는 장소를 색깔별로 알 수 있었다.

'7장 모두 다른 색 모으기 미션을 수행하기엔 필수품이네.'

시작이 무척이나 좋았다.

시몬은 바로 다음 카드를 찾으러 움직였다.

* * *

[1명 블랙팀 입장]

[블랙팀 (1/3)명, 화이트팀 (2/3)명.]

우우우웅!

시몬이 눈을 떴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주황색 카드를 찾아서 새로운 게임에 들어온 찰나였다.

'......여긴 또 어디야?'

주위를 둘러보니 거대한 원통형 기둥의 꼭대기에 서 있었다.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였는데, 구름이 아래에 보이는 걸로 보아 상당한 고도인 듯했다.

시몬의 시야 너머에도 이 기둥들이 있었다.

공간 전체로 보자면 가장 좌측과 우측에 기둥이 하나씩 있고, 이 두 개의 기둥 사이에 3열 4행으로 기둥들이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존재했다. 칠흑을 일으키면 충분히 뛰어넘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여기서 뭘 하라는...... 아하.'

틀림없이 블랙팀과 화이트팀이라고 했다.

시몬이 딛고 있는 이 기둥의 중앙에는 검은색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저기 끝에 하얀색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게 보인다.

'3:3매치의 깃발 뽑기네.'

시몬은 직접 깃발을 한번 들어보았다. 생각보다 제법 무게가 나가서 두 손으로 들어야 했다.

[1명 블랙팀 입장.]

[블랙팀 : (2/3)명. 화이트팀 (2/3)명.]

'우리 편 한 명 더 왔다!'

과연 누가 올까? 시몬이 기대하며 기다렸다.

저번 게임에서는 반장 제이미를 만나 재밌게 플레이했으니, 이번에도 부디 성격 좋고 뛰어난 파트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팟!

이내 시몬의 옆으로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그 위에서 한 남학생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검정 머리에 노란빛이 섞여 있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긴 봉을 어깨에 올리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막 게임에 들어온 저쪽도 시몬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네놈은!"

"......하아."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녀석이었다.

특례 10번이자 랜돌프 갱단 소속,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무수히 뽑아내는 '도플갱어'라는 흑마법을 쓰는 네크로맨서.

M반의 '말콤 랜돌프', 예전에 1학기 결투평가에서 싸워본 적 있었다.

물론 그때는 시몬이 전체적으로 압도했지만 말이다. 말콤도 이 상황을 이해하고는 인상을 확 찡그렸다.

"에이 씨, 하필이면 너랑 같은 편......!"

[1명 블랙팀 입장.]

[블랙팀 : (3/3)명. 화이트팀 (2/3)명.]

그때 블랙팀 쪽 인원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시몬과 말콤이 말을 멈추고 이동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이내 마법진에서 백발에 하얀 모자를 쓴 남학생이 나타났다.

구릿빛 피부에 상의를 탈의하고 바지만 입은 남자.

바로 최근에 싸워본 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라헤임 노스폴드.'

특례 8번이자 현 설원성주. 그리고 메이린에게 대차게 까였던 바로 그 남자였다.

"너, 너는!"

라헤임은 시몬을 발견하자마자 입을 딱 벌리며 삿대질을 했다.

"주몬 볼렌디스!!"

"......시몬 폴렌티아라고."

시몬이 무척 못마땅한 표정으로 정정했다.

최악의 인선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것들과 같은 편이라니.

"좋다! 제몬 볼렌토나! 이번에야말로 메이린을 걸고 제대로 붙......!"

"아니, 팀 꼬라지가 이게 말이 되냐."

옆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말콤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이런 바보들 데려다 캐리하기 싫은데."

라헤임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냐 넌."

"......!"

말콤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 나 몰라? 특례 10번의 말콤 랜돌프다!"

"그게 누구냐."

시몬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마침 화이트팀도 인원이 다 채워졌고, 새로운 화면이 펼쳐져 이번 게임을 치르는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공개했다.

<블랙팀>

시몬 폴렌티아.

말콤 랜돌프.

라헤임 노스폴드.

<화이트팀>

쥴 빈체레.

엘리사 셀린.

엔키 다프트.

성격 같은 건 제쳐두고, 이름값만 보면 솔직히 대단했다.

그야말로 특례들의 전쟁 같은 느낌.

그중에서도 쥴 빈체레는 특례 5위의 학생이었다. 무지막지하게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재밌네."

말콤이 팔짱을 꼈다.

"1번, 8번, 10번이 한 팀이고. 5번 7번이 한 팀이라."

그 말을 들은 라헤임이 비웃음을 흘렸다.

"듣보잡이 뭐라는 거냐? 특례 10번도 특례라고 쳐주나?"

"아까부터 X나 신경 긁네. 뒈질라고 진짜."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대며 으르렁거렸고, 엮이기 싫어서 몇 걸음 떨어져 나온 시몬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네임벨류만 치면 이쪽이 우위지만, 여기는 전혀 팀플레이가 이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냥 다 쓰러트리고 나 혼자 할까.'

시몬이 그런 생각마저 하는 가운데, 게임 룰 설명이 시작됐다.

[상대 팀의 깃발을 손에 쥔 팀이 승리합니다. 깃발 쟁탈을 위한 그 무엇도 허용됩니다.]

[10분 후에 게임을 시작합니다.]

심플하기 그지없는 룰이다. 다시 말콤이 입을 열었다.

"이런 경기는 보통 한 명이 지키고 두 명이 공격으로 나가는 게 일반적이야. 나랑 1번 놈이 갈 테니까 설원 성주, 네놈이 지켜."

라헤임이 같잖다는 웃음을 흘렸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니네 둘이 지켜라. 나 혼자 다녀온다."

두 사람이 또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서로 멱살을 붙잡고 면전에 욕설을 쏟아내고 난리였다.

그러는 사이 화이트팀은 벌써 역할분담과 전술편성이 끝난 것 같았다.

엘리사가 공중에 유령선을 세 척을 띄우는 모습이 보였다.

"짜증 나니까―"

그때 시몬이 입을 열었다.

"둘 다 좀 닥쳐봐."

"......!"

그 한마디에, 말콤과 라헤임이 찔끔한 표정으로 시몬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표정을 더욱 굳히며 말했다.

"......내, 내게 명령하지 마!"

"제몬 볼렌토나! 방금 그 발언은 설원성주에 대한 경의가 없......!"

말을 알아 처먹을 상대라면 부드럽게 말했겠지만, 그런 배려를 하기도 아까운 놈들이었다.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냥."

촤르르르르륵!

말콤이 있는 오른쪽에는 여섯 개의 아공간이 열리며 오버로드의 촉수가 튀어나왔고.

"지금 둘 다 덤벼."

라헤임이 있는 왼쪽의 아공간에는 데이모스의 머리가 튀어나와 입을 쩍 벌렸다.

이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각각 오버로드와 데이모스의 데뷔전에서 시몬에게 탈탈 털렸다는 점이다.

꿀꺽.

주위가 조용해지며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과거의 아픔이 떠올랐는지 말콤과 라헤임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자, 잠깐만! 그런 극단적인 판단은 좋지 못해."

한풀 꺾인 말콤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그럼! 우리는 메이린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다! 여기선 임시 동맹이 좋겠군!"

라헤임도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흔히 그렇듯, 서로 한번 맞붙어본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서열 같은 게 생기게 마련이었다.

시몬은 자신의 소환수들을 다시 불러들인 다음 말했다.

"그냥 내 계획대로 해."

* * *

한편, 화이트팀의 엘리사는 유령선에서 적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임벨류는 저쪽이 높긴 하지만, 할만해.'

안 봐도 지들끼리 싸우고 난리 나 있을 게 뻔했다. 엘리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든든한 아군들을 바라보았다.

화이트팀은 엘리사와 쥴이 공격, 엔키가 수비를 맡기로 했다.

그리고 엔키는 특례 입학생만 아닐 뿐, 소속된 E반에서는 에이스 수준으로 취급받는 최상위권 학생이었다. 이쪽이 밀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엘리사가 통신수정구를 들고 말했다.

"쥴. 계속 가줘."

엘리사의 유령선은 강력한 화력을 가졌지만, 큰 덩치라서 움직임은 다소 느린 편이다. 먼저 쥴을 이용해 상대방의 반응을 한번 보고 싶었다.

쥴이 훌쩍훌쩍 뛰어 기둥을 넘어가고 있는 그때.

'......눈?'

갑자기 주위의 구름에 변화가 생기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내 시야를 가리는 눈 폭풍이 몰아쳤다.

저쪽 필드의 절반이 혹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사가 통신 수정구를 들고 말했다.

"쥴, 당황할 거 없어. 눈이 내리는 걸 보면 라헤임의 금설 마법이야. 자리에서 대기해 줘."

시야를 가리려는 의도가 뻔하다. 무슨 속셈인진 모르겠지만 쉽게 당해주진 않을 것이다.

'응?'

그때 눈 안개 한쪽이 검게 물드는 게 보였다.

오른쪽 기둥 끝에서 누군가 안개를 뚫고 나왔다.

'시몬 폴렌티아다!'

검푸른 칠흑을 이끌며 모습을 드러낸 시몬의 손안에는 칠흑으로 이루어진 활이 들려 있었다.

'잠깐, 저 기술은!'

키젠 특례 1번의 주력 흑마법은 당연히 엘리사도 분석해서 알고 있었다. 블러드 골렘을 일으키고, 그 힘으로 친위대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그 힘을 짜내어 화살의 형태로 날리는 삼단 변화기.

'그런데 중간 과정을 다 건너뛰고 바로 저 활로 간다고?'

시몬이 활을 세워 들며 칠흑을 끌어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거리가 멀어서 지금부터 쥴이 뛰어들어 가도 막지 못한다.

<시몬 리메이크 - 블러드 에로우>

암흑의 화살이 번뜩이더니, 혜성 같은 긴 꼬리를 그리며 쏘아져 나갔다.

틀림없이 유령선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며 배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던 엘리사의 눈이 커졌다.

블러드 에로우는 자신이 아니라, 아군 진형의 깃발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저, 저게 사거리가 닿아?'

꽈아아아아아앙!

놀랍게도 닿았다. 시몬의 블러드 에로우가 화이트팀의 깃발 쪽으로 부딪히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엘리사가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유령선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근데 이제 뭐 어쩌려고?'

룰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 아닌가? 깃발을 부수는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깃발을 손에 쥐는 쪽이 이기는 거였다.

이내 폭발 연기가 걷히고,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는 게 보였다. 깃발은 방금의 폭발 때문에 날아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깃발 자체에 무게가 있어서, 그렇게 많이 날아가진 않은 모습이다.

처억!

그때 구덩이에 박혀 있던 봉 하나가 스스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지켜보던 엘리사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방금 날린 화살에 말콤의 무기를!'

말콤의 봉 아래로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그 안에서 말콤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 하나가 튀어나왔다.

"엔키! 막아!

수비를 맡은 엔키가 다급히 흑마법을 발사했지만, 거리가 멀고 너무 급했다. 가뿐히 공격을 피해서 도망친 도플갱어가 마침내 깃발을 두 손에 쥐었다.

'하지만 소용없어!'

엘리사가 미소를 지었다.

'분신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손에 쥐어야 끝나는 거야! 룰 숙지도 안 하고 저런 바보짓을......!'

그러나.

부웅!

도플갱어는 냅다 손에 쥔 깃발을 절벽으로 던져 버렸다.

'뭐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연속.

힘들게 주운 저걸 낭떠러지로 던져 버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엘리사가 떨어지는 깃발을 지키려 유령선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보다.

"하하하하!"

비행이 가능한 네크로맨서는 블랙팀에도 있었다.

라헤임이 양팔과 양다리에 방울을 일으키며 달려가고 있었다. 엘리사의 표정이 파리하게 질렸다.

'아악! 손도 못 쓰고 당했어!!'

라헤임의 눈폭풍, 시몬의 블러드 에로우, 말콤의 도플갱어로 차례대로 시선을 끌면서 상대팀의 정신을 쏙 빼놓는 사이, 라헤임은 이미 절벽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깃발은!"

엘리사가 유령선으로 포탄을 쐈지만, 공중에서 가뿐히 피해낸 라헤임이 마침내 내려오는 깃발을 붙잡았다.

"이 몸이 차지했다!"

그러고는 신이 나서 마구 깃발을 흔들어댔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승자 블랙팀!]

[블랙팀 일원 모두에게 카드를 제공합니다.]

"아으으! 분해애!!"

이렇게 쉽게 결판나 버리다니!

엘리사가 분한 얼굴로 유령선의 난간을 마구마구 내려치며 화풀이를 했다.

'저 바보들이 저런 전략을 떠올렸을 리가 없고.'

그녀의 시선이 칠흑의 활을 들고 있는 시몬으로 향했다.

"......시몬 폴렌티아."

시몬이 칠흑의 활을 허공에 흩뜨리고는 고개를 들어 엘리사를 올려다보았다.

빙긋 미소 짓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시몬의 몸이 텔레포트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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