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07화
카드 두 장을 모으고 나니 2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시몬은 혹시나 타깃 학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주위를 쭉 둘러보았지만, 이 넓은 로크섬에서 원하는 대상을 딱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4시간의 시험이 종료되고, 시몬은 키젠 교정으로 되돌아왔다. 그 길에 딕도 만났다.
"진짜 진짜 개꿀잼이었어!"
딕은 대 흥분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후! 하고 바람을 불자 앞머리가 흔들렸다.
"진짜 이거 내가 아는 BMAT 맞아? BMAT가 이렇게 재밌어도 돼? 와......!"
시몬이 웃는 얼굴로 대꾸했다.
"좀 진정하고 이야기해 봐."
딕은 기어이 공성전 테마를 찾아냈다고 한다.
장소는 키젠 성벽이었고 30명 정원이다. 성벽 안과 밖에 붙어 있는 카드에 각각 15명씩 들어차면, 성벽 안의 카드에 모인 학생들이 수성팀이고 성벽 밖의 카드에 모인 학생들이 공성팀이 된다.
그리고 딕은 이번에 수성팀으로 승리했다고 한다.
"대포에 인챈트 걸고, 일반 병사 화살에도 인챈트 걸어주고! 내 활약이 미쳤었지!"
"......음, 재밌긴 하겠네."
진짜 스케일 큰 전쟁을 재현해 놓은 것 같아서, 시몬도 혹하는 마음이 생겼다. 공성전은 소년의 모험심에 불을 지르는 테마이긴 했다.
"게임 시간은 어떻게 돼?"
"공성전 게임 안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 체감상 반나절은 꼬박 싸운 것 같은데, 밖에 나와보니 대충 세 시간쯤 걸렸더라."
세 시간 걸린다면, 한 시간 만에 다음 한 장을 찾는 데 좀 아슬아슬하긴 했다.
"대신 수성팀과 공성팀 최고 공로자는 카드랑은 상관없이 각각 '1점'을 추가로 줘!"
"그건 좀 끌리네."
그렇게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마주치는 학생들마다 BMAT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걸 일주일에 1~2번 한다는 거지?'
확실히 시험이 부담이 없고 깔끔하긴 했다.
물론 다음 차례엔 학생들의 전략도 달라질 테니 어떻게 돌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기존 교수들의 수업과 병행하면서 할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시몬! 다음 시험은 나랑 같이 공성전 테마 하러 가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 * *
다음 날 아침.
"시몬! 여기예요!"
"2분 지각이야 잠탱이들아!"
30분쯤 일찍 준비해서 밖으로 나온 시몬과 딕은 메이린, 카미바레즈와 합류했다.
일찍 만난 용건은 역시 BMAT 정보 공유였다. 네 사람은 카페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와 음료를 시켜놓고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일단 네 명 모두 첫날에 카드 두 장씩 얻는 데에는 성공했다.
메이린은 두 가지 모두 혼자서 하는 게임을 수행했다. 퍼즐 맞추기와 마법진 만들기가 결합한, 머리를 쓰는 테마도 있었다고 했다.
카미바레즈는 혈류학에 관련된 테마를 해봤는데, 오로지 기본기인 혈류탄만 쓸 수 있었다. 혈류탄으로 빠르게 악당을 쏴 맞추고 인질을 구해내는 테마였다. 실수로 인질을 맞추면 배리어 게이지가 뭉텅뭉텅 깎여나갔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이린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카드 색과 과목은,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연관이 없었어. 예를 들어 빨간색 저주학 카드에 들어가도, 저주랑 상관없는 게임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단 거지. 체감상 반반?"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전부 과목이랑 상관없는 테마였어."
"저도 혈류학 테마를 잔뜩 하고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어요!"
"왜냐하면."
딕이 공용으로 시킨 감자칩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으며 거들먹거렸다.
"이 게임의 제작자가 신이 아니라, 엔돌라스 보드빌이라는 인간이기 때문이지."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색깔과 과목이 연관된 건 최근에 생긴 룰일 가능성이 높아."
딕이 감자칩으로 케첩과 머스타드 소스를 슥슥 그으며 말을 이었다.
"니들도 알다시피 게임 테마가 좀 재미 위주의 엔터테인먼트 느낌이잖아? 그래서 교수들이 따졌겠지. 좀 유익한 교과적 테마를 넣어달라고. 그래서-"
"엔돌라스가 급하게 새로 만들고 있단 거네요!"
"바로 그거야 카미! 아마 다음 시험은 좀 더 과목 관련 테마가 늘어날지도 모르겠어."
딕이 그렇게 말하며 감자칩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빈 허공만 잡혔다.
"우와! 이걸 벌써 다 먹었어?"
딕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메이린에게로 향했다.
마침 감자칩을 오물거리고 있던 그녀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얼굴을 화악 붉혔다.
"잠깐, 야!! 왜 나부터 봐?!"
"진짜 먹신이야 먹신."
결국 메이린이 사비로 감자칩 하나를 더 주문했다.
"......먹는 거 가지고 쩨쩨하게."
그녀가 입술을 삐쭉였다.
"새로 주문한 것도 3분 만에 없어진다에 한 표."
"야!!"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흠흠, 그래서 일단은."
메이린이 얼른 먹을 거에서 화제를 돌렸다.
"빨주노초파남보 조합을 다 모으려는 애들이 확 늘어날 거야. 시몬 너처럼."
"그렇겠네."
그래도 아직은 다음 시험까지 시간이 있다.
이제 BMAT보다는, 당장 수행평가가 터질 예정인 다음 수업들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했다.
"첫 수업은 뭐야?"
"소환학이요! 그런데 평소 강의실이 아니에요!"
"사알짝 불안하네. 아론 교수님이 빡셀 거라고 경고하시기도 했고."
그렇게 네 사람은 재잘재잘 떠들며 강의실로 이동했다. 카미바레즈의 말처럼, 이번에 통보받은 집합장소는 평소와 다른 강의실이었다.
"와아!"
새로운 강의실에 들어온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수업 뭐야?"
학생들의 자리마다 스켈레톤의 두개골과 팔 한 짝씩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마법진이 보였다. 팔에는 지팡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드디어 그거 만드나 보다!"
메이린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스켈레톤 메이지!"
시몬의 눈이 커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그가 얼른 짐을 내려놓고 마법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소환 마법진이었는데 다소 구조가 특이했다. 보통의 소환 마법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요소들이 빠져서 간소화되어 있었다.
"교수님 오신다!"
그 외침에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가 자리에 앉았다. 이내 아론 교수와 조교진들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아론은 오늘도 부스스한 머리에, 면도한 지 며칠은 되어 보이는 까끌거리는 수염, 그리고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등장했다.
그가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제도 강조했다시피, 오늘부로 키젠 전체가 수행평가 시즌에 들어간다."
수행평가라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수행평가는 '점수'에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간단히 말해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필기시험이라면, 수행평가는 실기시험이었다.
"그럼 간단히, 소환학의 수행평가에 대해 한 번 더 설명하겠다."
아론이 칠판으로 걸어가 분필을 집어서 길게 선을 그었다.
"너희들은 남은 2학기 동안 미뤄진 모든 수행평가들을 치러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진행한 수행평가는 하나뿐이다."
아론이 수행평가 전체에서 20%를 묶더니, 그 밑에 '데스랜드'라고 썼다.
"기억나나? 1학기 때 '데스랜드'에서 창작 좀비를 평가하는 수행평가였다."
학생들이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 데스랜드에서 프린스와 만났었다.
"그리고 나머지 80%가 남았는데."
아론이 중간쯤에 선을 뚝 그었다.
"이 중에 절반, 전체 수행평가 비율의 40%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지금 공개하겠다."
학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론이 한 손으로 탁탁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그때마다 학생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마법형 언데드 창작>
웅성 웅성 웅성!
"여기에."
아론이 '논문'이라는 두 글자를 추가했다.
<마법형 언데드 창작 및 논문>
"와하."
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논문? 막 학회에 가서 발표하는 그 논문?"
태생부터 모범생 중의 모범생인 메이린마저도 덜덜 떨고 있었다.
"......우리 이제 열일곱 살이야. 열일곱 살이 무슨 논문이야."
"진짜 빡세네."
"BMAT 생각이 쭉 달아나긴 한다."
학생들이 당황한 가운데 시몬만은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나만의 마법형 언데드라.'
강의실이 어수선해지자 아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목."
학생들이 바로 정신을 차리고 아론을 보았다.
"당장은 부담 가질 필요 없다. 이 '마법형 언데드 창작'은 소환학 수업의 끝자락에 평가할 예정이니까. 1학년 소환학 수업의 마지막 목표라고 생각해라."
아론이 팔짱을 꼈다.
"그리고 불가능한 과제를 내는 교수는 없다. 너희들이 수업만 잘 따라온다면, 이 목표에 자연스럽게 다다를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짜놨다. 이해했나?"
"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다."
간단하게 불만을 제압해 버린 아론이 칠판으로 다가갔다.
학생들도 고개를 쭉 들었다. 확실히 수행평가 이야기를 한 후라서 그런지 집중력이 좋아진 게 보인다.
"마법형 언데드 제작은 여기 있는 모두가 '0'에서부터 시작한다. 언데드 컨트롤이든, 복원기술이든 마법 언데드 창작과는 크게 상관없다. 기존에 뒤처져 있는 놈들도 제대로 듣도록."
"네!"
"그럼 눈앞의 물건을 봐라."
모두가 고개를 내려 물건들을 보았다.
두개골, 손에 들린 지팡이, 그리고 소환마법진.
"이 세 요소는 모두 연결된, 하나의 스켈레톤 메이지 세팅이다."
아론이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의 템포를 천천히 낮추었다.
"앞에 보이는 소환 마법진은, 원래 두개골에 있어야 할 마법진을 조작하기 쉽도록 책상 위에 끌어왔다고 생각해라. 그럼 먼저 전원부터 켜겠다. 마법진의 '주인식'에 칠흑을 흘려보내도록."
시몬은 시키는 대로 했다. 소환 마법진의 원에 손을 올리고 칠흑을 부여하자, 마법진 전체가 바로 시몬의 검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따닥! 딱!
드디어 스켈레톤 메이지의 두개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지팡이를 든 손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어서 시몬은 무사히 스켈레톤 메이지의 사념에 접속하는 것까지 끝냈다.
"혹시 막히는 학생 있나?"
학생들이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없습니다!"
"그럼 바로 실전이다. 이 마법진의 수식을 그대로 운용해서 스켈레톤 메이지에게 공격마법을 써보도록 해라. 타깃은 이쪽이다."
조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학생들의 왼편에 커다란 판을 준비해 뒀다.
그 판에 뭔가 조작을 하자, 칠흑으로 이루어진 배리어 한 장이 딱 펼쳐졌다.
"마법 세팅은 모두가 동일하게 '윈드 커터'로 되어 있다. 스켈레톤 메이지의 사념을 움직여 배리어를 향해 마법을 발사해라. 장난이라도 앞 사람에게 쏘는 일은 없도록."
"네!"
시몬이 후우. 하고 가볍게 숨을 내쉰 다음 눈을 크게 떴다.
'예열하듯 시동을 천천히.'
시몬의 칠흑이 움직이며 마법진 안의 룬어를 작동시킨다.
'사출구는 지팡이로.'
지팡이를 든 스켈레톤 메이지의 팔이 움직였다.
'사출구의 목표는 배리어로.'
지팡이의 끝이 배리어 쪽으로 향했다.
'발사!'
그러자 지팡이 앞에서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바람의 칼날을 쏘아 보냈다.
터어어엉!
정확하게 윈드커터가 배리어에 부딪혀 흩어졌다.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며 탄성을 토해냈다.
터엉!
터어어엉!
강의실 곳곳에서 윈드커터가 제대로 작동됐는지 배리어에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와아아!"
"이 정도는 기본이지!"
"조교 쌤! 저 안 돼요!"
환호하는 학생들과 울상을 지으며 도움을 구하는 학생들로 나누어졌다. 조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진짜 언데드가 마법을 쓰네."
성공시킨 메이린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입가엔 즐거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반면 카미바레즈는 실패했는지, 휙휙 고개를 돌려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모든 조교들이 학생들을 담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시몬이 다가왔다.
"괜찮다면 내가 도와줄게."
"고, 고마워요 시몬!"
그녀가 구세주를 보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시몬이 그녀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일단 마법진의 칠흑 흐름이 불안해. 칠흑이 피, 룬어는 뇌라고 생각해. 피가 잘 돌아서 뇌에 영양을 공급해야 해. 이 흐름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봐."
시몬이 그녀의 손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카미바레즈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응? 카미, 많이 불안해?"
"아, 아! 괜찮아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내가 보조해줄게. 이 마법진은 그냥 컨트롤러라고 생각하고, 네 몸이 저 스켈레톤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저 스켈레톤의 손을 움직여서 마법을 발사하는 느낌이야. 사념에 접속해서 자연스럽게."
카미바레즈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그래도 일단 지팡이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언데드를 이끄는 건 의지가 가장 중요해. 그냥 마법을 쓴다는 개념이 아니라. 타깃을 확실히 두고, 저걸 깨트리겠다는 의지를 보내야 해. 그러면 자연스럽게 작동할 거야."
"아, 알겠어요!"
그녀가 심호흡을 하며 배리어를 부릅 노려보았다.
그러자 언제 펼쳐졌는지 지팡이 앞에 윈드커터가 발동해 배리어에 부딪혔다.
"돼, 됐어요 시몬!"
"잘했어."
시몬이 웃었다. 카미바레즈도 시뻘게진 얼굴로 따라 웃었다.
"자, 주목."
그때 아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도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윈드커터를 쓰는 정도도 못 해내선 곤란하다. 이게 기본이야. 그리고 지금부터 이번 수업이 끝내기 전까지 수행평가 과제를 부여하겠다."
드르르륵.
드르륵.
조교들이 카트를 이끌고 등장했다. 그 위에는 수백 개의 룬어 모형과, 지팡이들이 있었다.
"지금부터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스켈레톤 메이지가 쓰는 윈드커터 마법을 너희들 마음대로 바꿔볼 거다."
"!"
이런 수업이 다 있을 수가! 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리고 수업 종이 칠 때까지."
아론의 손가락이 배리어를 가리켰다.
"저걸 부수는 학생은 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