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08화
바로 수행평가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룬어 조각'과 '지팡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 이렇게 신기한 수업은 처음이야!"
두 뺨이 상기된 메이린이 룬어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시몬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스테(Magiste) 시스템.
학생들의 책상 앞에 놓인 마법진에 룬어 조각을 대고 적절한 수식으로 보조하면, 그 아래의 다른 마법진들이 맞물리듯 작동하며 최대한으로 기능을 맞춰준다.
본래의 소환 마법진은 이와 비교도 안 될 만큼 극도로 복잡한 구성을 띄지만, 마기스테 시스템은 일종의 소환수 시험 및 개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룬어나 수식을 간단히 갈아 끼우며 최선의 소환 마법진을 시험해 보는 게 목적이었다.
"시몬! 시몬! 이거 봐요!"
카미바레즈가 룬어 조각 하나를 들어 보이며 배시시 웃었다.
"강혈의 룬! 3학년 때 배우는 거래요! 이렇게 어려운 룬어도 우리가 쓸 수 있어요!"
"정말이야? 재밌네."
시몬도 천천히 룬어를 골라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놔!"
"내가 먼저 봤어!"
학생들이 몰리는 바람에 경쟁이 장난 아니었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룬어 조각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딕처럼 일단 룬어를 여러 개 손에 쥐고 보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자, 자. 싸우지 마세요!"
소환학 조교가 다가와 말했다.
"룬어 조각은 많이 있어요. 원하는 룬어가 없는 학생들은 옆의 연구실로 오도록 하세요."
시몬과 학생들은 바로 옆 연구실로 이동했다.
"와아아아!"
진열대에 룬어 조각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룬어의 설명과 수식 예시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메이린이 황홀한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뭐야 뭐야? 왜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메이린이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흑마법 하나 배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마법진을 이해하고, 흐름을 꿰차고, 순리를 뇌에 세기고, 칠흑을 반복으로 길들여야 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선 그냥 룬어 조각만 갈아 끼우면 그 효과를 재현할 수 있다.
메이린은 맘에 드는 룬어 조각을 왕창 챙겼다.
'으음.'
시몬은 섣불리 룬어 조각에 손을 대지 않고, 시간을 들여 여유가 있게 주위를 돌아다녀 보았다.
[주파의 룬] : 파공 화살의 핵심 매개체.
'일단 감을 잡고 싶은데, 이걸로 간단히 시작해 볼까.'
시몬도 룬어 조각을 하나 집어서 강의실로 돌아왔다. 조교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자, 자, 처음 장비를 만지는 학생은 혼자서 하다 사고 내지 말고 조교를 불러서 설명을 듣고 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새 물건을 받아도 설명서는 버리고 일단 만져보는 성질 급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때 조교가 덧붙였다.
"혹시나 고장 내면 5만 골드는 물어줘야 해요!"
몇몇 학생들이 뜨끔하며 동작을 멈췄다. 한 학생이 헛웃음을 흘렸다.
"에이, 이거 하나 고장 낸다고 5만 골드는 좀......."
"마기스테 시스템은 하나가 전체로 연결되어 있답니다. 하나가 망가지면 다 망가지는 거죠."
그제야 몇몇 학생들이 찔끔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시몬도 손을 들어서 조교를 불러왔다.
"주파의 룬? 이걸로 정했어요?"
"네!"
"자, 잘 봐요."
그녀가 마법진의 중앙 자리에 룬어 조각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룬어 조각이 마치 녹아드는 것처럼 마법진에 장착되고, 수식들과 연동되기 시작했다.
"수식이랑 회로는 딱 필수적인 거, 그리고 굵직굵직한 것만 칠흑으로 그려놓아요.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시스템이 알아서 채워줄 거예요."
그녀가 수식을 대강 그린 후 마법진 아래의 완성 버튼을 누르자, 마법진의 패널이 작동하며 계산을 마치고 수식을 쌓아 올려 마법진을 빠르게 완성해냈다.
-삐! 삐!
그때 마법진이 순간 붉게 변하며 오작동을 일으켰다. 시몬이 놀란 표정으로 조교를 보았다.
"뭐가 잘못된 거예요?"
"아! 이 경우에는 그냥 '용량 초과'예요."
"용량 초과요?"
"네."
조교가 검지를 척 세우며 설명했다.
"이 '스켈레톤 메이지'가 사용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한 흑마법이란 거죠. 너무 무겁거나, 위력이 강하거나, 혹은 너무 복잡한 상위 흑마법이란 거예요."
"아하."
하긴, 스켈레톤 메이지라는 언데드가 최상위 흑마법까지 펑펑 사용할 수 있다면 이 시대에 칠흑역학 전공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조금 더 가볍게."
조교가 발사체 수량을 5에서 1로 바꾸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뒤늦게 수량을 발견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다섯 발을 한 번에 발사하는 흑마법이니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사실 오류 보여주려고 일부러 해본 거예요."
조교가 웃으며 말했다.
수량이 1로 줄어들자 마법진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간소화된 게 느껴졌다. 마법진이 푸른빛이 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색깔로 돌아왔다.
"이걸로 준비 끝! 해보세요."
"넵."
시몬이 직접 마법진에 손바닥을 올리고 사념으로 스켈레톤 메이지를 움직였다. 메이지의 지팡이가 움직여 배리어 쪽으로 향했다.
'발사!'
시몬의 명령이 떨어지자, 지팡이 끝의 마법진에서 작은 구슬들이 튀어나와 일 점에 모여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배리어에 꽝! 소리가 나도록 부딪혔다.
시몬이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배리어의 수치를 살펴보니 60% 손상이 나왔다. 이내 마법진이 스스로 회복하며 100%로 돌아왔다.
"아깝네요!"
조교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알겠죠? 대충 이런 방식이에요. 배리어를 깨트리려면 수식이나 회로의 구성을 효율적으로 변경해 보세요. 혹은 지팡이를 바꿔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룬어를 바꿔 끼고 스켈레톤에게 다른 흑마법을 사용하도록 시키는 것도 방법이죠."
"네, 완벽히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확실히 흥미로운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 외에도 곳곳에서 펑펑! 하고 흑마법이 발동되어 배리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것도 안 돼?"
"스팩 최대한 낮춘 건데."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법진이 빨개지며 '용량 초과' 판정을 받았다.
다들 욕심을 너무 부리느라 스켈레톤 메이지가 쓸 만한 마법이 아닌, 내가 보고 싶은 마법 위주로 세팅을 맞춰서 그런 거였다.
"너희들의 들뜬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이건 놀이가 아니라 엄연히 수행평가다."
아론이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수업 시간은 딱 절반 남았다. 현실적인 스펙을 고려하도록."
그 말에 정신을 차린 학생들이 룬어 조각을 바꾸러 우르르 몰려갔다. 이제야 본인이 자신 있는 흑마법의 룬어나, 쉬운 것들 위주로 들고 왔다.
"아~ 이거 어렵네."
딕은 무려 고위 흑마법 <아토믹 블레스트> 세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딕."
"한 번만 더 해보고!"
* * *
"제이미 빅토리아 학생 성공입니다! 사용 마법 <스크래치>."
수업 종이 치고 15분 남은 시점, 성공하는 학생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성공한 학생들은 조교들이 칠판에 이름과 함께 사용 마법을 쓰고 있었다.
"피에르 버클리 학생 성공입니다! 사용 마법 <임페일러>."
"캐서린 터렐 학생 성공입니다! 사용 마법 <체인 라이트닝>."
남은 시간 10분, 메이린은 입맛을 다시며 신중한 표정으로 손을 올렸다. 스켈레톤 메이지의 지팡이가 움직인다.
"제발!"
얼음송곳이 날아가 배리어에 명중한다. 파창! 하는 소리와 함께 배리어가 산산조각이 났다.
"메이린 빌렌느 학생 성공입니다! 사용 마법 <아이스 파이크>."
"됐다!"
메이린이 번쩍 두 팔을 들었다.
"......조용히 해줄래."
뒷자리의 신디 비바체가 그렇게 말하고는 마법을 준비했다. 메이린이 뭔가 싶어서 보았다.
"치, 칠흑 화살?"
기초 중 기초 흑마법, 칠흑 화살 한 발이 날아가더니 배리어에 부딪혔다.
크기도 크고 드릴처럼 회전하면서 배리어를 깨작깨작 깎아나가더니 이내 완전히 부수는 데 성공했다.
"시, 신디 비바체 학생 성공입니다! 사용 마법 <칠흑 화살>."
신디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허리를 세우며 조교가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메이린이 헛웃음을 흘렸다.
"......너 쫌 변태 같아."
"칭찬 고마워."
현재 합격률 60%.
학생들이 막판 스퍼트로 정신없이 배리어를 공격하고 있었다.
'근데.'
메이린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 소환학 재능충이 웬일이지?'
자신은 물론 카미바레즈도 합격했는데, 웬일로 시몬의 합격이 늦다.
메이린이 뒷짐을 지고 슬쩍 시몬 쪽으로 가보았다.
"야, 뭐 막히는 거 있으면 도와주......."
그리고 마법진을 살핀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으악! 너 뭐 하는 거야!!"
몇몇 학생들이 메이린의 외침에 인상을 구기며 돌아보았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미안하다는 시선을 보낸 다음, 다시 시몬 쪽을 돌아보았다.
"너, 너 지금 제대로 과제 파악하고 있는 거 맞지? 「전달의 룬」?"
이건 그냥 통신 마법에 쓰이는 룬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리어를 부수는 것과는 하등 관련이 없어 보였다.
"......."
그런데 시몬의 상태가 이상했다. 메이린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마법진에 푹 빠져 있는 시몬의 동공은 정신이 어딘가 나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입에는 침이 고이고 있었다.
'......대단한 집중력,'
살짝 소름이 끼친 메이린이 자신의 어깨를 감쌌다.
'아니, 근데 제대로 핀트 잡은 거 맞아? 전달의 룬 진짜 괜찮은 거냐고?'
시몬의 집중력이 대단한 건 인정한다만, 이번에는 저 미친 집중력의 방향이 잘못된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꽈아아아앙!
그때 굉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헤, 헥토르 무어 학생 성공입니다. <드래곤 브레스>."
배리어가 아주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아론이 다가와 그의 마법진을 자세히 살폈다.
'과연.'
스켈레톤 메이지가 사용한 가문 고유의 흑마법.
물론 진짜 드래곤 브레스는 아니다.
헥토르가 사양을 맞춰 룬어와 수식을 깎아 드래곤 브레스를 흉내 낸 것이다. 언데드로 가문 고유의 흑마법을 일정 부분 재현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학생들과는 격이 다른 성공이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가문의 이름값은 하는군.'
헥토르도 가볍게 숨을 토해내고는 칠판을 보았다.
"?"
그 또한 칠판에 시몬의 이름이 없는 걸 깨닫고는 시몬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집중하며 뭔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아론이 말했다.
"3분 남았다."
학생들이 마지막 흑마법을 시도했다. 조교들이 바쁘게 칠판 위에 성공한 학생들의 이름을 적고 있다.
"시몬......!"
메이린이 초조한 듯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1분 남았다."
메이린과 헥토르를 포함한, 적지 않은 학생들의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A반의 소환학 에이스가 여전히 수행평가를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초."
이제는 끝났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마지막 시도를 한 후, 손을 늘어뜨리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유일하게 마법진에 손을 올리고 있는 건 시몬뿐이었다.
바로 그때.
시몬의 스켈레톤 메이지의 지팡이가 움직였다.
"마법을 썼다!"
"음? 아무 변화도 없는데."
다들 시몬의 스켈레톤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처억!
변화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처억! 척! 척!
모든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손을 떼고 있는 스켈레톤 메이지들의 지팡이가 동시에 움직였다.
"아!"
그리고 모든 지팡이들이 향한 방향은 바로 시몬의 배리어 쪽이었다.
이내 지팡이들이 불을 뿜었다.
콰아아아아아!
쿠구구구!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각기 다른 굉음과 함께 수십 개의 마법이 동시에 시몬의 배리어로 쏘아졌다.
학생들이 놀란 소리를 내며 엎드리거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애앵!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쳤다.
모두가 고개를 들자, 시몬의 마법진이 흔적도 없이 박살 나 있었다.
"내, 내 스켈레톤 메이지를 조종했어?"
"내 체인 라이트닝을......!"
시몬이 눈을 뜨며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조교가 어깨를 파르르 떨다가 말했다.
"시, 시몬 학생 성공입니다. 임페일러, 드래곤 브레스, 스크래치, 체인 라이트닝...... 등등 30여 종 마법."
그 말을 들은 아론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정신 나간 놈.'
이내 칠판의 절반이, 시몬의 이름과 사용마법으로 채워졌다.
"야, 야! 너 뭘 어떻게 한 거야?"
메이린이 다가와 물었다.
"하이브 마법."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론 교수님의 마법을 재현해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