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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09화 (30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09화

시몬은 아론의 연구실에 들어왔다.

아론이 이번 수업의 해설을 듣고 싶어서 부른 것이다.

"그래."

탁.

아론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매그너스와 내 전투를 보고?"

"네."

아론이 보유하고 있는 네 척의 거대한 언데드 전함들.

매그너스는 수의 한계가 있다는 게 시시하다며 평가절하했지만, 시몬은 그것들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저렇게 많은 언데드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사용하다니!'

그 이후로 계속 아론의 하이브 마법이 머릿속에 아른거리고 있었는데, 마침 룬어 조각에서 하이브 마법의 원형이 되는 룬어를 찾았다.

'전달의 룬.'

룬어 아래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고 감을 잡은 시몬은 바로 움직였다.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사용하는 '마기스테 시스템'은 자리마다 따로따로 구성된 게 아니라, 실습실 전체의 마법진이 하나로 연결된 형태다.

그래서 전달의 룬으로 마기스테 시스템의 메인 체계에 접속해 자신의 칠흑을 입힌 다음, 그냥 '절대명령'을 내려버렸다.

이 강의실의 모든 스켈레톤 메이지들에게, 방금 썼던 마법을 재사용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오로지 마기스테 시스템을 활용한 아론의 수업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론적으로 상상 정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짧은 시간에 그걸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도 천재성이겠지.'

아론이 고개를 움직여 시몬을 보았다.

'이 녀석은 내 하이브 마법을 재현했다고 했지만, 그냥 아이디어만 얻었을 뿐이야. 완전히 다른 개념의 흑마법을 사용했고 기어이 같은 효과를 냈군.'

그렇게 천재라는 소년이 차를 한 모금 홀짝이다가, 쓴맛에 오만상을 찌푸리는 모습에 아론은 속으로 픽 웃었다.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시몬이 입을 열었다.

아론의 초대를 받아 여기에 왔지만, 그렇지 않아도 아론에게 한번 찾아올 생각이었다.

"말해라."

"이번 마법 언데드 창작과제."

시몬이 눈을 빛냈다.

"개인적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워낙 통통 튀는 놈이라, 아론은 벌써부터 대답이 두려워졌다.

사실상 스켈레톤 메이지에, 조금 독특한 마법만 붙여도 언데드 창작과제는 성공일 것이다. 하지만 놈은 첫 수행평가부터, 다른 학생들의 스켈레톤 메이지를 움직이는 기행을 저질렀다.

다른 학생들과는 보는 시야 자체가 다른 것이다.

"잠시만요."

시몬이 주섬주섬 소환학 교과서를 꺼냈다. 그러고는 뒷장을 펼쳐 보였다.

"아, 찾았다. 여기를 봐주세요. 이거 나중에 수업시간에 배울지 모르겠는데."

아론은 각오를 다지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떤 계열의 스켈레톤 메이지를 만든다고 해도 놀라지 않기로.

"리치(Lich)는 언제 만들 수 있나요?"

푸핫!

아론이 마시던 차를 뿜었다.

교과서를 펼치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묻던 시몬의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적당히 해라!!"

아론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콜록거리며 목을 부여잡았다.

"혹시 3학년 때 배우는 건가요?"

"리치는!"

아론의 목소리가 살짝 쉬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네?"

"그건 초고위 언데드야! 어지간한 프로 네크로맨서들도 건드리지 못하는 난이도의 소환마법이란 말이다!"

시몬이 교과서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교수님도 못 만드는 거예요?"

'이 자식이.......'

아론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길게 한숨을 쉬더니 팔을 뻗었다.

"후회하지 마라."

아론의 등 뒤에서 아공간이 쩍 벌어졌다.

쩔렁-

"!"

갑자기 아론의 연구실 전체가 어둠으로 물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공간에서 머리만 내민 그것은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으며, 그 안으로 보이는 건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안광을 빛내는 해골이었다.

-두근! 두근!

시몬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이렇게 크게 들어본 적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두근! 두근! 두근!

그리고 그 괴물이 아공간에서 상반신이 빠져나왔을 때, 시몬은 그 심장 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것은,

리치의 심장이었다.

'이게...... 가능해?'

로브 안으로 보이는 언데드의 흉골(胸骨) 안에, 틀림없이 시뻘건 심장이 뛰고 있었다.

언데드가.

죽은 존재가.

박동하는 심장을 가졌다.

"리치가 마법형 언데드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라이프 베슬(Life Vessel)'이라는 특별한 심장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이내 아공간에서 리치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구멍이 듬성듬성 난 로브 위로 사슬이 칭칭 감긴 차림의 이 언데드는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손에 쥐었고, 두개골에 보이는 안광이 으스스했다.

"왜 심장을 운용하는지 이유를 알겠나?"

시몬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자적인 코어를 운용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정답이다."

더 강력한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망자에게 박동하는 심장을 달아 코어 운용까지 시키는 네크로맨서들의 집념에 시몬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대단하다.

이런 게 가능한가?

그때 리치가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시몬을 보았다.

로브에서 튀어나온 뼈만 남은 손이 시몬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윽!'

시몬은 식은땀이 줄줄 흘러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동공을 대신하는 붉은 광채가 움직여 시몬의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턱뼈가 서서히 움직이며 입이 벌어진다.

-케에에에에에에에!

리치가 입을 쩍 벌리며 시몬의 왼쪽 가슴을 노리려는 순간.

"그만."

느슨하던 사슬이 리치의 몸을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아론이 팔을 휘젓자, 사슬이 리치를 아공간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내 아공간이 완전히 닫혔다.

"하, 하아."

숨이 막힐 듯 팽팽하던 압박감이 비로소 완화되었다. 시몬이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고 아론은 창문을 열어 연구실을 환기했다.

"이제-"

아론이 시몬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얼마나 철없는 소리를 했는지 깨달았겠지."

"만들고 싶어요!"

"이 미친......."

아론은 거기까지 내뱉고 차마 학생을 상대로 욕을 할 수 없어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시몬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게 리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충격을 받아서 포기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더 자극해 버린 모양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너는 불가능하다. 1학년은 건드리지 못하는 흑마법이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시몬은 다 해냈다.

2학년들이 배우는 전신 본 아머는 1학기 때 해냈고, 2학기 때는 3학년들의 흑마법인 '블러드 골렘'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저 천재를 단순히 상식적인 관념으로 말리는 건 불가능했다.

아론은 천천히 걸어가 연구실 구석 책장으로 향했다.

유리문을 열고 두껍고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던졌다.

"받아라."

시몬이 두 손을 뻗어 품에 안듯 고서를 힘겹게 받아냈다.

"그 책을 보고 리치의 기본이라도 구성해 온다면, 봐주겠다."

시몬의 눈빛에 총명한 빛이 일렁였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금방 만들어서 찾아뵐게요!"

* * *

바로 이어지는 다음 수업들도, 교수들은 수행평가에 대한 일정을 이야기했다.

4차 BMAT가 간소화되어 방과 후 BMAT를 실시하는 대신, 그야말로 수행평가의 폭격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론이 '마법형 언데드 창작'이라는 가장 마지막 최고점 수행평가 과제를 미리 공지해 놓는 것처럼, 다른 교수들도 그렇게 했다.

저주학 교수 바힐의 경우는 '저주 시너지'가 과제였다.

"세 개 이상의 저주를 이용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저주를 완성하십시오."

요컨대 저주가 세 개 이상 걸리면 어떤 강력한 효과가 발휘되는 자신만의 조합을 찾아내거나.

혹은 세 개 이상의 저주수식이 모두 들어가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하나의 저주를 만들어야 했다.

다른 학생들은 어렵다고 난리였지만, 시몬은 조금 달랐다.

'이거 왠지.......'

시몬의 경우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바힐이 내준 4대 저주를 마스터해서 '콤펠로니아'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거였다. 시몬은 평소 하던 저주공부를 쭉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수업, 홍펭의 마투학의 경우에도, 상당히 빡센 수행평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교들과 1:1로 마투로 싸워 이기는 거예요! 참 쉽죠?"

이쯤 되니 학생들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곳곳에서 항의의 외침이 들렸다.

"교수님! 마투가 아니라 온 전력을 다해도 못 이겨요!"

"불가능해요!"

학생들이 교수에게 불만을 표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조교 브레드가 홍펭 뒤에서 '확!'하는 소리를 내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제스쳐를 보냈다.

"물론."

홍펭이 두 손을 맞잡으며 미소 지었다.

"조교들은 핸디캡이 있을 거예요!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도록 힘을 내도록 해요!"

핸디캡이 있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조교랑 스파링? 진짜 죽도록 맞겠네."

메이린이 무릎을 모아 앉으며 투덜댔다. 딕과 카미바레즈도 겁을 먹은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몬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슷한 걸 해본 적이 있긴 한데.'

1학기 때, 마투학 조교 브레드가 홍펭의 직속제자 문제로 시비를 거는 바람에 한판 붙은 적이 있긴 했다.

물론 그건 시몬이 '한 대'만 때리면 승리하는 조건이었고, 그런 핸디캡 없이 붙으면 승산이 없긴 했다.

"자! 마지막 주행평가가 있는 그 날을 위해, 더 열심히 뛰도록 해요!"

그렇게 마투학 다음, 문제의 혈류학 수업.

마탄 사격 실습장의 강의실에서 발터 교수도 최고점 수행평가를 발표했다.

"심장."

발터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심장에 관련된 흑마법을 준비해서 시현하는 게 마지막 수행평가란다."

'......이 사람은 진짜 심장을 좋아하네.'

시몬이 턱을 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도 어시장에서 있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산을 쌓을 정도로 그렇게 많은 심장으로 뭘 하려고 했던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 라이프 베슬!'

심장에 관련된 흑마법이면 리치의 '라이프 베슬'도 마찬가지였다.

즉, 정말로 리치를 완성하기만 하면 소환학과 혈류학 수행평가 모두 최고점을 받는 거나 다름없었다.

시몬은 점점 리치 제작에 진심이 되어갔다. 그때 열심히 이론을 설명하던 발터가 분필을 내리며 말했다.

"그럼 잠시 필기할 시간을 줄게."

사각 사각.

학생들이 칠판에 빼곡하게 적힌 혈류학 수식들을 필기하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옆옆 자리의 익숙한 친구가 앉아 있었다.

"토토."

시몬이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토토가 바로 알아듣고는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수업 끝나고 동아리 방 갈래?"

토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일단 벤야를 만나서 상담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몬의 머릿속이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라이프 베슬이 될 심장은 어떤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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