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18화
「혈천교 주교, 유다.」
시몬은 도서관에서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발터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끼던 찜찜함의 원인을 드디어 알아냈다.
발터의 지인들은 그를 '유다'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만년필에도 유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발터는 유다다.
그리고 유다는 혈천교의 주교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이 사람 혈천교 소속이었어!'
혈천교는 무수한 신성연방 사람들을 납치해 실험했을 뿐만 아니라, 암흑연합과 신성연방의 전쟁을 부추겨 참극을 일으키고 두 세력의 공멸을 원했던 극악무도한 집단이다.
게다가 발터는 이 조직의 고위 간부로서 이 많은 지령서들을 직접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죄는 극도로 무거웠다.
'무슨 일로 혈천교가 키젠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의 흉계는 끝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로레인을 찾아갈까 생각했지만, 시몬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다시 책장에 앉았다.
기왕 네프티스에게 보고할 거라면 조금 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들이밀고 싶었다.
'유다라는 이름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찾아보자.'
시몬은 도서관의 명단부를 들고 와 유다라는 이름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기로 했다.
'......아?'
그리고 첫 번째 책을 펼쳐보는 순간 좌절했다.
[공인 1위계, 유다 칼란.]
[공인 1위계, 유다 오도로.]
[공인 2위계, 유다 안다레.]
[공인 3위계, 유다 하오반.]
[.......]
시몬이 책상에 쿵! 소리가 나게 머리를 처박았다.
'유, 유다란 이름이 이렇게 많았어?'
평소 들어본 적이 없어서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충 뽑은 책 한 권만 펼쳐봐도 유다라는 이름이 수두룩했다.
시몬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다시 자신이 해석한 서명자의 이름을 보았다.
「혈천교 주교, 유다.」
하다못해 이름 뒤에 성이나 다른 포인트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서명 하나, 그리고 발터가 든 만년필의 이름이 '유다'라는 것만으로는 발터가 혈천교의 유다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네프티스에게 이런 걸로 보고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하아아.'
다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는 생각에, 시몬은 의자에 축 늘어져서 한숨을 쉬었다.
'진짜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시몬은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확실한 증거가 없을 뿐, 긴가민가하던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 확신 비슷한 감정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나 혼자서라도 끝까지 수사해 보겠어.'
시몬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계획이 펼쳐졌다.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서.......
"거기, 학생!"
도서관 사서가 나타나서 시몬이 어지른 책상을 가리켰다.
"이거 다 정리하고 가야죠!"
"아, 앗! 죄송합니다!"
시몬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로 돌아갔다. 일단 정신부터 좀 차려야겠다.
* * *
"필적감정?"
딕이 마른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되물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두 개의 서명을 가져오면 그게 같은 사람의 필체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
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야! 내가 뭔 말만 하면 다 뚝딱뚝딱 해결해주는 해결사도 아니고, 당연히 가능하지!"
"......전제랑 대답이 일치하지 않는데."
"랭거스틴에 필적감정해 주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셔. 왕실 쪽 일도 맡아서 하는 이 분야 최고의 베테랑이시지."
딕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쫙 펼쳤다.
"수고비 포함 단돈 5골드에 모십니다!"
시몬이 바로 그의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베프 디스카운트로 3골드에 부탁해."
"나 참."
딕이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네 고향 친구라는 엘리자베스 웨퍼를 소개해 주면 3골드에 콜!"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딕이 말하는 저 '엘리자베스 웨퍼'는 에르제베트가 변신한 키젠 여학생 모드였다.
"그냥 5골드로 하자."
고작 2골드 아끼겠답시고 에르제베트에게 감정노동을 시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상당히 민감한 에이션트 언데드였다. 빈말이라도 딕과 데이트해 달라고는 요청할 수 없었다.
"올, 흥정 쫌 하는데?"
딕이 제법이라는 듯 팔짱을 꼈다.
"그래, 알았어. 2골드에......."
"0골드로 해줘도 안 돼."
"아, 왜!"
딕이 시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치사하게 이럴 거야? 넌 여자도 많잖아! 그 세르네 아인다르크랑 편지도 주고받고 데이트도 하는 사이면서!"
"......아무 사이도 아닌데."
"네프티스 따님 로레인이랑은 1,000개의 등불도 같이 날린 사이면서! 왜 안 소개해 주는 건데?! 너 설마 혹시 엘리자베스 웨퍼 좋아하냐?"
"그게 아니라......."
그때 딕이 말을 딱 멈추더니 슬쩍 눈알을 굴려 눈치를 보았다.
어느새 2층 침대의 이불 속에서 살벌하게 빛나는 안광이 딕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 조용히 해라. 죽고 싶나."
"죄, 죄송함다 카쟌!"
딕이 얼른 사과했다. 여전히 그는 카쟌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반면 시몬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붙였다.
"카쟌, 저랑 이야기 좀 해요."
"잘 거다."
"제가 와인 살게요."
와인이란 말에 카쟌의 눈에 살짝 총기가 돌아왔다. 그가 창밖을 보았다.
오늘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한 시간 뒤, 매번 오던 장소."
그 말만 남기고 카쟌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작게 코를 고는 소리가 났다.
시몬은 와인을 구하러 일어났고 딕은 부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진짜! 왜 카쟌이 너만 특별 취급이야? 나만 따돌림당하는 기분이라고!"
딕의 지상목표 중 하나가 카쟌과 친해지는 거였다.
그의 투덜거림에 시몬이 달래듯 말했다.
"오늘 카쟌이랑 와인 한잔하면서 셋이서 같이 만나자고 설득해 볼게."
"크으, 역시 내 베프!"
딕이 활짝 웃으며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웨퍼는 언제 소개해 줄 거야?"
"그건 안 돼."
* * *
한 시간 뒤.
달밤의 옥상에는 빛바랜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두 발바닥을 딱 붙이고 앉아서, 고개를 쭉 치켜들어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는 카쟌의 모습은 운치 있었다. 마치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 같은 모습이다.
"왔나."
그가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보름달에 고정되어 있었다.
와인을 품에 안고 나타난 시몬은 생긋 웃어 보인 후,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아공간에서 로체스트에서 구매한 와인과 잔을 꺼냈다.
코르크를 개봉하고 잔에 와인을 따랐다. 잔 속의 수평선을 따라 내려오는 자주색 액체가 황홀한 석류빛 광채를 일으킨다.
"네가 와인을 사는 건 처음인데."
"그러네요."
카쟌이 와인 잔을 천천히 굴리다가 한 모금 음미하듯 마셨다.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데,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탁을 할 생각인가."
"어떻게 알았어요?"
"대가 없는 브랜드 와인은 없지. 선심은 싸구려 매점 와인까지다."
시몬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두 다리를 쭉 뻗으며 보름달을 응시했다.
"키젠 학생 신분으로 로크섬 밖의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했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시몬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도둑길드의 높으신 분이 제 룸메이트더라구요."
"길드에 임무를 맡길 생각인가."
"네. 두 가지 부탁을 드리려고요."
시몬이 쪽지 한 장을 넘겼다. 카쟌이 그것을 손가락으로 받아 읽었다.
"카론 백작에 대한 조사. 내가 알기론 드레스덴 왕국의 귀족인데. 맞나?"
"넵."
시몬은 가만히 과거를 회상했다.
동아리의 벤야 선배와 함께 발롯 어시장에 방문했을 때, 창고 안의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심장들을 봤다.
그리고 다름 아닌 발터 교수가 그곳에 직접 지인들과 나타났다. 그들과 나눈 대화 중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유다 님. 카론 백작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출발하지.
그 말을 남기고 발터는 창고에서 나갔다.
그냥 휙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이긴 했는데, 워낙 그 창고 속의 상황이 긴박해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발터는 카론 백작을 만난다고 했다. 사소한 건이고 힌트를 얻을 확률도 떨어지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발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움직여 볼 생각이었다.
"좋다. 길드에 요청해서 팀을 꾸려보겠다."
카쟌이 부스럭거리며 쪽지를 품속 주머니에 넣었다.
"남은 한 가지는?"
"지금 바로, 저랑 같이."
시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발터 교수의 연구실에 잠입해 주셨으면 해요."
"......."
달빛이 비치는 적막한 옥상에서, 카쟌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여전히 발터 교수를 의심하는군."
"네."
"발터 교수가 연구실에 남아 있다면 위험해. 우리 둘 다 퇴학당할 수 있다."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발터 교수는 오늘 오후, 학술회에 출장 갔다는 딕의 정보가 있어요. 로크섬 밖으로 나갔으니 괜찮을 거예요."
지금까지 딕에게 들은 스케쥴 정보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
눈을 감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카쟌이 조용히 말했다.
"준비해라."
* * *
어둠이 깊게 깔린 키젠 교정은 으스스했다. 풀벌레 우는 소리와 올빼미들의 꾹꾹 거리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네크로맨서 학교라서 그럴까, 키젠 캠퍼스는 수백 수천 가지의 괴담이 넘치는 곳이었다.
비밀통로, 학생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원혼, 금지된 숲에 돌아다니는 프리스트 등등. 물론 후자의 괴담은 진짜였지만.
카쟌과 시몬은 건물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앞에서 랜턴을 든 경비원 두 명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경비원들이 지나간 뒤, 카쟌이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이 잽싸게 풀밭을 달렸다.
그들의 목표는 혈류학 수업이 이루어지는 '마탄 사격 실습관' 건물, 이곳에 발터의 연구실이 있다.
"잠시 기다려라."
카쟌이 마법 아티팩트로 보이는 고글을 쓰고 건물을 살폈다.
"역시."
"왜 그러세요?"
"키젠에서는 늦은 밤이 되면 건물 전체에 경비 시스템을 켠다."
카쟌이 고글을 시몬에게 건네며 말했다.
"섣불리 건물 외벽을 타고 창문으로 넘어가면 들키겠어. 안으로 들어가겠다."
시몬이 그 고글을 써보니, 정말로 건물의 외부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두 사람은 정문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 잠금장치가 걸려 있을 줄 알고, 카쟌이 해체 키트를 준비하려는데.
"......아직 안에 누가 있는 모양이군."
건물의 불은 꺼져 있었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카쟌이 앞장섰고, 시몬이 그 뒤를 따랐다.
'어둡다.'
매번 혈류학 수업마다 강의를 들으러 오는 곳인데, 밤에 들어오니 이렇게 으스스하고 기괴할 수 없었다.
"연구실은 4층이라고 했지?"
"네."
시몬은 발터의 연구실에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
2층 쪽에 랜턴 불빛이 보인다. 누군가 2층에 있다.
"위층은 이상 없어."
말소리도 들려왔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다.
"아래층도 오케이."
"지하는 가봤나?"
"끔찍한 소릴, 거길 어떻게 가나."
카쟌과 시몬은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엿듣었다. 건물 경비로 보이는 두 남자의 대화였다.
"벌써 실려 간 게 두 명째야."
한탄 같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경비들이 접근도 못 하는 위험한 게, 이 건물 지하에 떡하니 있는 게 말이 되나?"
"내 말이 그 말일세."
'위험한 거?'
그게 뭐지?
시몬이 더더욱 귀를 기울였다.
"어쩌겠나. 하찮은 하수인 몇 명 실려 가는 건 대수롭지도 않겠지."
"연구가 우선일 테니까. 이래서 네크로맨서란 족속들은."
"퇴근이나 함세."
두 사람이 갑자기 계단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몬은 놀랐지만, 냉정하게 움직였다. 바로 카쟌을 붙잡고는 손을 위로 뻗었다.
'클라우드!'
청록색 연기가 뻗어 나가 3층 난간을 휘감았다. 두 사람의 몸이 잽싸게 3층으로 끌어 올려졌고, 뒤이어 경비병 두 명이 잡담을 나누며 2층 계단을 내려갔다.
'휴우.'
경비병들이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의 문을 잠갔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가 발터의 연구실이 있는 4층에 도착했다. 방금 경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라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했다.
"여긴가?"
"네, 확실해요."
발터의 연구실, 전에 발터가 불러서 같을 때와 똑같았다.
절컥 절컥.
문은 당연히 잠금장치로 잠겨 있었지만, 도둑길드의 카쟌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문 아래 틈으로 칠흑을 흘려보내는 듯하더니, 철컥!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들어가겠다."
카쟌이 장갑을 낀 손으로 문고리를 붙잡았다.
"넵."
시몬이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