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19화 (31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19화

문이 열렸다.

카쟌과 시몬은 숨죽이고 발터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평범하군."

"그러게요."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정돈이 끝난 모습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옷걸이와 캐비넷, 그리고 간단한 차 세트와 서적들이 보인다.

그냥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깔끔한 행정가의 사무실 분위기.

하지만 시몬은 오히려 이런 연구실의 모습에 의구심이 생겼다. 키젠 교수들은 교육자이기 전에 네크로맨서고 광적인 연구자들이다.

아론의 흔들흔들 살아 움직이는 용의 뼈.

바힐의 저주 술식이 가득 적혀 있는 초대형 칠판.

별야의 독에 그을린 가구들.

네크로맨서들의 개인적인 공간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보여야 했다.

그래서 아무런 개성도 없는 발터의 집무실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드르륵.

시몬은 서랍부터 열었다. 그냥 무난한 거래문서나 구매비품 리스트, 도장 같은 것들이 보인다.

드륵.

드르륵.

열 수 있는 서랍은 전부 다 열어보았지만 참고가 될 만한 물건은 없었다. 무난함 그 자체였다.

절걱 절걱!

그때 카쟌이 잠겨 있는 캐비닛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시몬, 여기 뭔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시몬의 눈에 즉시 이채가 서렸다.

"열어볼 수 있을까요?"

"시도해 보마."

카쟌이 각종 장비들을 꺼내는 사이, 시몬은 주위를 쥐잡듯 뒤졌다. 책상 아래도 보고, 쓰레기통도 뒤져보고, 옷장에 걸려 있는 옷들의 주머니도 뒤졌다.

'이렇게 뭐가 없을 수 있나?'

시몬은 책장으로 가서 서적 몇 권을 꺼내 펼쳐보았다. 그중에 발터가 밑줄을 그어놓은 글귀가 보인다.

<창조는 사물의 본질을 의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시몬은 카쟌에게 받은 마력촬영기로 해당 글귀를 찍었다. 이내 다른 페이지로 넘겨보았다.

<죽음이 나를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니.>

<노인이 젊은이에게 얘기하듯이, 망자도 산 자에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면 좋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뭣 모를 이야기들도 있었다. 촬영을 마친 시몬은 계속해서 주변을 뒤졌다.

'아!'

처음으로 수확이 있었다. 수납 칸에서 발터가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 서류를 찾아낸 것이다.

그것을 펼쳐놓고 머릿속에서는 혈천교 주교의 필체를 떠올려 비교했지만.

'잘 모르겠네.'

두 사인의 종류가 달랐다. 사용한 언어가 다르니 당연했다.

혈천교 주교 유다는 고어로 서명했고, 키젠 교수 발터는 대륙어로 서명했으니 딕에게 부탁해 필체검증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았다.

'두 필체가 같은 사람으로 나온다면 중요한 증거로 써먹을 수 있어.'

일단은 촬영기로 찍어두었다.

달칵!

그때 카쟌이 캐비닛의 잠금장치를 풀어냈다. 시몬이 반색하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역시 카쟌! 안에 뭐 있어요?"

"뭐가 있기는 한데, 나는 잘 모르겠다."

"제가 한번 볼게요."

캐비넷에 든 물건은 상자에 담긴 붉은 병이었다. 엄청나게 많았다.

시몬은 그게 뭔지 바로 깨달았다.

'조혈주사!'

오늘 아침에 혈류학 수업에서 본 물건이니 확실했다. 피를 빠르게 생성하도록 돕는다는 바로 그 액체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물건은 아직 신기술이야. 양산이 힘들고, 백 마리의 블러드 슬라임을 갈아 넣어도 하나 뽑을까 말까인 만큼 수량이 극히 제한되어 있지. 그러니 이번 수업에서 가장 성취가 높은 학생, 단 한 명에게 조혈주사를 맞아볼 기회를 제공할까 해.

시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발터는 왜 거짓말을 한 걸까?'

수량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했었는데, 이 정도면 몇 개 반 학생들은 가뿐히 다 맞을 수량이었다.

시몬이 굳은 얼굴로 턱을 짚었다.

'이번 수업으로 다들 조혈주사를 맞길 원하고 있어.'

A반에서는 소피 산타나라는 학생이 주사를 맞은 이후 확 강해진 혈류마법을 선보였다.

시몬처럼 새로운 물건을 의심하던 학생들마저, 소피 산타나의 성과를 보고 조혈주사에 매료됐다.

수량이 적은 물건이기도 하니, 다들 다음 수업에는 자신이 맞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발터는 한 명 한 명 조혈주사를 맞게 하고, 그 효능을 증명하며, 학생들의 관심을 더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시몬은 조혈주사액이 담긴 병들을 마력촬영기로 찍은 다음, 그중 한 병을 챙겼다. 옆에 있던 카쟌이 말했다.

"물건을 직접 빼가면 위험하지 않겠나?"

"한 병만 살짝 바꿔치기하려고요."

시몬은 빈 병과 블러드 포션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고 빈 병에 주사액을 약간 옮겨 담은 다음, 그 빈자리를 블러드 포션으로 채워놓았다.

"성분을 의뢰해 볼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다."

시몬은 다시 병을 원래대로 되돌린 다음 캐비닛 문을 닫아서 잠갔다.

카쟌이 허리를 펴고 물었다.

"그럼, 여기서 원하는 단서는 다 찾았나?"

"네."

발터의 서명과 필체, 그리고 조혈주사의 성분까지 손에 넣었다.

하지만 이 중에 무엇하나, '결정적'이라고 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카쟌."

"음?"

시몬이 한층 내려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위험한 게 있다는 지하에도 가보면 안 될까요?"

* * *

두 사람은 계단을 내려와 문제의 지하층에 도착했다.

일반 건물의 지하 2~3층 정도 되어 보이는 깊이였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긴 복도를, 두 사람은 마나로 작동하는 야간 투시경을 착용한 채 걷고 있었다.

"네 말에 따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카쟌이 흉터를 긁적이며 말하자, 시몬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사실 저도 그냥 발터 교수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 심정이에요."

시몬도 타인을 의심하는 게 힘들 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 여러 요소들이 발터가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키젠의 몰락을 바라는 자들은 무수히 많다. 발터가 정말로 혈천교라면, 제2의 성녀 사태 같은 위험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키젠에서 발터를 의심하고 있고, 그가 혈천교와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건 신성열차에서 혈천교와 직접 싸운 시몬뿐이었다.

결코 신중하게 접근해서 나쁠 건 없다. 시몬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깊군."

카쟌이 중얼거렸다.

"내가 알고 있던 이 건물의 지하층과는 다른 것 같은데."

마치 지하 벙커 같은 공간이었다.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앞서가던 카쟌이 걸음을 멈추며 주먹 쥔 손을 올려 보였다.

멈추라는 지시였다.

'......윽.'

코가 썩어버릴 것 같은 악취가 났다. 산더미만 한 심장이 쌓여 있는 그 창고에 갔을 때 맡았던 냄새와 흡사했다.

카쟌은 벽면을 훑어보더니 여길 좀 보라며 손짓했다.

곳곳에 끔찍한 핏자국들이 가득했다. 핏자국의 형태는 마치 살해 현장에 온 것처럼 적나라하게 튀어 있었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걸음을 옮겨나갔다.

'!'

갑작스러운 소름이, 등줄기를 쭉 치고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눈을 뜨고 있는 게 보인다.

눈이 네 개였다.

"카쟌, 피해요!"

어둠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왔다.

두 사람이 몸을 던져 피하고, 바닥이 쿵!! 하고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급하게 물러난 시몬이 야간 투시경에 마나를 더 불어넣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야?'

끔찍한 것이 있었다.

피부는 너덜너덜한 갈색이고, 곳곳에 실로 꿰맨 듯한 흔적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두 거인을 기워붙인 것 같은 몸뚱이다.

하지만 뛰는 심장은 하나, 가슴에 심장으로 보이는 것이 두근두근 박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각각 반신을 여성체와 남성체로 나눠 가진 모양새였다.

"키메라인가? 우릴 그냥 지나가게 두지 않을 생각이군."

카쟌이 전투를 준비하며 말했다.

괴물은 펄쩍 뛰어서 두 다리를 천장에 붙이고, 거꾸로 된 두 개의 얼굴을 갸웃거리며 시몬과 카쟌을 응시했다.

인형처럼 까각거리며 고개를 움직이는 모습에, 뒷머리가 바짝 곤두선다.

'온다!'

천장에 붙은 그것이 네 쌍의 팔다리를 흔들며 마치 거미처럼 다가왔다. 그 날카로운 손톱이 벽을 긁을 때마다 귀가 아팠다.

"물러나라."

카쟌이 나섰다.

베테랑답게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날아오른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주먹에 칠흑이 휘감겼다.

부아아아앙-!

쇠망치 같은 파괴력이 담긴 주먹이 괴물의 남성체 머리 한복판에 제대로 꽂혔다.

지하실 전체가 뒤흔들리는 충격이 일며, 괴물의 고개가 크게 젖혀졌다.

"쯧!"

카쟌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안 들어갔다."

"네?"

바로 반격이 들어온다. 여성체의 주먹이 카쟌의 머리 위로 내려오고 있었다.

꽈아아아아앙!

카쟌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틀어박혔다. 그가 '크흑!' 소리를 내며 신음을 흘렸다.

'개문!'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륵!

여섯 개의 촉수칼날들이 괴물의 눈과 심장을 찌르러 다가오자, 괴물은 훌쩍 뒤로 물러나 피했다.

"쯧."

휘청이며 일어난 카쟌이 쿨럭거리며 입가를 닦았다.

"위험한 키메라다. 우리 힘만으론 이기지 못할지도 모르겠는데."

괴물은 거미처럼 네 쌍의 팔다리를 움직이며 바닥과 벽면, 천장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빙빙 돌고 있었다. 좁은 공간을 극도로 잘 활용하는 모습이다.

"카쟌!"

시몬이 두 손을 세워 들었다.

"저주를 준비할 테니 5분만 끌어주세요!"

"알겠다."

카쟌은 별다른 의문 없이 몸을 날려 괴물에게 돌진했다. 카쟌과 괴물이 치열하게 맞부딪치며 싸우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심호흡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퍼억!

카쟌의 팔꿈치가 괴물의 뒤통수에 제대로 꽂혔다.

여성체의 고개가 크게 내려가 바닥에 처박혔지만, 난데없이 반대쪽 팔의 관절이 내려와 카쟌을 강타했다.

그의 몸이 벽으로 날아갔다.

"물리 공격은 거의 면역이군......!"

비틀거리며 충격에서 벗어난 카쟌이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팽'을 써야 하나.'

남성체의 주먹이 바닥을 긁으며 카쟌에게 날아왔다. 카쟌이 제자리에서 눈을 부릅떴다.

'흑의(黑衣)!'

카쟌이 칠흑의 물결로 뒤덮이며 날아오는 키메라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뒤로 주르륵 밀려난 그가 힘으로 버텨내고는, 뒤로 빼둔 오른팔을 휘둘렀다.

<카쟌 오리지널 - 팽(Fang)>

거대한 회색줄기의 손톱자국이 괴물의 심장과 몸통을 찢으며 지나갔다.

그러나.

"!"

손톱은 깊이 파고들지 못했고, 상처도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피부와 근육조직은 베어도, 내부의 혈액이 마치 강철과도 같다.'

액체가 저런 강도가 가능하다니. 피가 모든 공격에 대한 절대적 내성을 일으키고 있었다.

"카쟌! 다 됐어요!"

시몬이 양손에 저주 마법진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그래도 팽으로 인한 상처가 꽤 깊었는지 괴물은 회복에 집중하느라 움직임이 더뎠다.

시몬은 훌쩍 도약해서 남성체의 머리에 마법진을 붙였다.

'다음!'

괴물의 어깨를 타고 이번엔 여성체 쪽으로 달렸다. 여성체가 팔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카쟌이 날아올라 그 공격을 주먹으로 쳐냈다.

시몬은 무사히 마법진을 여성체의 머리에 부착하고는 뛰어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려 괴물을 바라보고는 두 팔을 뻗어 저주를 마무리했다.

<호스틸(Hostile)>

저주의 효과가 발동했다.

시몬에게 향하던 남성체 주먹의 방향이 바뀌어 여성체의 얼굴을 가격했다.

퍼어어어억!

같은 몸에 공격당한 여성체 또한 주먹을 남성체에게 휘둘렀다.

퍼억! 퍽! 쩌어억! 퍽!

한 몸인 괴물이 서로 팔다리를 휘두르며 자기들끼리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대단한 저주다. 어디서 배웠나?"

"바힐 교수님께요!"

두 사람은 빠르게 괴물을 지나쳐 진행했다.

그리고 무사히 복도의 거의 끝에 도달한 순간.

"......!"

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이게 다 뭐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