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24화
시몬과 로레인은 함께 나란히 학습관 복도를 걷고 있었다.
"나랑 같이 다니고 싶다고?"
그렇게 되묻는 로레인의 얼굴엔 의뭉스러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응. 딱 한 게임만이라도 좋으니까 부탁해."
"난 상관없긴 한데."
로레인이 손끝으로 밤하늘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너 이러는 성격 아니잖아. 이유가 뭐니?"
"음, 그냥."
시몬이 애써 미소 지으며 담백하게 대답했다.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
로레인이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이내 대답 대신 살짝 고개만 끄덕이고는 걸어나갔다.
그녀의 수락이 떨어지고, 두 사람은 함께 건물을 수색했다.
수색이라고 해도 별건 없었다. 복도를 걸어 다니다가, 그냥 '느낌'이 오는 강의실이 있으면 들어가서 책상도 뒤지고 서랍도 열어보고 하는 것이다.
다만 키젠 교정 내에는 '학생킬'을 노리고 숨어 있는 학생들이 많았으니.
"와하하! 여기를 지나가고 싶다면......!"
골목을 지키고 있던 남학생이 큰소리로 외치며 덤벼들려고 했다가.
"!"
시몬과 로레인을 보고는 기겁하며 자세를 낮췄다.
"......그냥 지나가면 되지! 지나가십쇼!"
그가 자리를 비켜주자, 로레인이 고맙다는 의미인지 슥 손을 들어 올리며 지나갔다. 시몬도 별 반응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바, 방금 뼈도 못 추릴 뻔했다.'
남학생의 이마에 땀이 뚝뚝 떨어졌다.
'저 둘이 손을 잡다니, 학생회장이라도 잡으러 가는 거야 뭐야?'
이곳은 위험하다. 남학생은 빠르게 건물에서 벗어났다.
"아, 여기 한 장 찾았다!"
수색을 재개하던 시몬이 벽면에 붙어 있는 노란색 카드를 가리켰다. 하지만 로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거 별로, 나 노란색 카드는 있어."
로레인도 7장의 다른 색 카드 조합을 노리는 것 같았다. 시몬은 아공간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나한테 맡겨. 무슨 색 무슨 색 있는데?"
"남색이랑 노란색."
시몬은 남색, 주황색 카드를 보유했다. 서로 겹치지 않는 색상을 고르면 될 것 같았다.
안경을 쓰니 이 건물 전체가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여기서는 노란색 카드밖에 안 나온다는 뜻이다.
시몬은 곧장 로레인을 데리고 이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번엔 파란색으로 표시되는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많네."
두 사람은 빈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카드를 수색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같은 파란색 지형이라도 자세히 보면 연한 부분과 진한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바로 이 진한 부분에 카드가 있을 확률이 확 올라갔다.
'이 안경 없으면 어쩔 뻔했냐.'
시몬은 바로 책상 서랍을 뒤져서 두 장을 찾아냈지만, 입장 조건이 걸려있어서 들어가진 못했다.
"시몬."
그때 강의실을 수색하던 그녀가 바닥에 붙어 있는 카드를 가리켰다.
"이건 어때?"
[난이도 : 중]
[입장인원 : 2명]
[입장조건 : 남녀 학생 2인 동반입장.]
"나쁘지 않네."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카드를 발견했다. 난이도도 괜찮아 보인다.
조건이 왜 굳이 남녀 2인 동반입장인지 살짝 찜찜하긴 했지만.
"이걸로 하자."
"응."
로레인이 먼저 카드에 발을 올려서 빨려 들어갔고, 시몬이 그 뒤를 따랐다.
[새로운 게임에 진입합니다.]
* * *
시몬은 어린 시절, 안나의 품에서 들었던 동화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두 발로 걷는 모든 동물들은 위대하다. 라고, 돼지공주가 선언했단다.
돼지공주는 어렸을 때, 시몬이 좋아하던 캐릭터였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통쾌해서 나쁜 사람들을 마구 물리쳤으니까.
-엄마! 그럼 네 발로 걷는 동물은요?
-네 발로 걷는 동물은 가축으로 여겨졌단다.
-그건 이상해요. 왜 돼지가 돼지를 차별해요? 두 발이랑 네 발로 걷는 게 차이인데요?
-그들에게는 중요한 거였나 봐. 그래서 네 발로 걷는 돼지들은 열심히 두 발로 걸으려 노력했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몬은 눈을 떴다.
왜 이런 기억을 떠올렸냐면, 지금 와 있는 카드 속의 세계는 마치 어린 시절의 동화를 그대로 재현한 것만 같았으니까.
여러 동물이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고, 두 발로 선 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흠'
시몬은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이 화려한 연회장에는 개, 토끼, 염소, 양 등의 동물들이 와인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혹시나 동물 울음소리로 대화하면 어쩌나 했는데, 제대로 된 대륙어였다. 발음도 좋았다.
두 발로 선 모습이 더없이 자연스럽다. 앞발을 손처럼 사용해 와인잔을 쥐고 있는 모습도 아슬아슬하지 않고,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세계라니.'
엔돌라스 보드빌이 가진 능력이, 왜 네프티스와 함께 대륙 10대 미스테리라는 건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시몬."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드레스 차림의 로레인을 발견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윽.'
어깨가 드러나고 가슴골이 파여 있는 의상에, 스커트는 짧아서 하반신을 간신히 가릴 정도였다. 게다가 머리에는 동물 귀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학생이 입기에는 영 민망한 차림이다.
'......엔돌라스 보드빌의 취향인가.'
괜히 중년 아저씨의 이상한 취향을 엿본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로레인도 복장이 신경 쓰이는지, 짧은 스커트를 슥슥 잡아당기면서 불만스럽게 말했다.
"또 검은색이야."
'......그게 문제냐.'
시몬이 쓰게 웃었다.
그리고 시몬 본인도 파티용 턱시도 차림이었는데, 대단히 공을 들인 로레인의 디자인에 비해선 성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턱시도 안의 셔츠까지 검은색인 건 너무하네.'
그리고 머리에는 로레인처럼 동물 귀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풋."
옆에서 지나가던 정장을 입은 말이, 시몬과 로레인의 차림을 보고는 비웃음을 흘렸다.
"귀가 네 개라니. 끔찍한 동물이네."
"하여간에 인간들이란."
어쩐지 이 동물들의 연회에서 환대받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이 우스꽝스러운 동물 귀 머리띠를 벗으려 했지만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몬."
로레인이 동물 귀를 흔들며 다가왔다.
'.......'
시몬의 얼굴이 한 차례 더 화끈거렸다. 복장도 복장인데, 그녀의 시크한 표정과 우스꽝스러운 동물 귀가 펄럭이는 모습은 참으로 언밸런스했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어."
바로 그때, 두 사람의 시야로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여러분은 '기사'입니다.]
[기사 목표 : 제한 시간까지 돼지공주를 보호.]
'기사?'
역할과 임무가 정해졌다.
로레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들도 있겠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물들 사이에 '암살자'가 숨어 있습니다.]
[암살자 목표 : 파티가 끝나기 전까지 돼지공주를 암살.]
[암살자는 두 명입니다.]
[암살자는 파티에 참여한 동물입니다. 외모로는 분간할 수 없습니다.]
'아하.'
이제야 모든 걸 이해했다.
지금 이곳은 안나가 읽어준 유명한 동화, '동물왕국'을 기반으로 엔돌라스 보드빌이 창조해 낸 세계관이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이 파티에 참석한 동물 중에 두 명은 진짜 키젠 학생이란 거였다. 그들은 돼지공주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우리가 기사라는 건 바로 들켰겠네."
"그렇지."
이쪽은 외모가 바뀌지 않았고 인간 모습 그대로다. 어떤 행동을 하든 암살자들의 시선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그럼 돼지공주는?"
두 사람의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수많은 한 쌍의 동물 중에서 돼지는 보이지 않았다. 공주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동물도 없었다.
"일단 정보수집부터 하자."
"응."
두 사람은 흩어져서 동물들에게 이런저런 걸 물어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돼지공주님은 어디 계신가요?"
시몬의 물음에 정장을 입은 늙은 늑대가 귀찮다는 듯 팔을 휙휙 저었다.
"부인,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드레스를 입은 염소가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다.
'끙, 이러면 힘든데.'
정보를 조사하는 김에, 키젠 학생인지 아닌지도 떠볼 생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동물들이 시몬과 로레인을 기피하고 있었다.
"공주님을 찾아?"
그때 소파에 퍼질러 앉아 있던 여우가 끌끌 웃었다.
"공주님은 아직 안 나오셨어. 주인공은 원래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잖아."
뭔가 말이 능숙한 여우였다. 그가 소파에 뛰어내려 시몬에게 다가왔다.
"신기하네."
그러고는 시몬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폈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인간이 여기 왔구나."
"...인간이 오면 안 되나요?"
"인간들도 두 발로 걸으니 못 올 건 없지. '가축'은 아니잖아. 그래도 이렇게 털도 없는 부끄러운 동물이 여기까지 오다니, 참."
여우가 히죽 웃었다.
"돼지공주님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라구."
그러곤 꼬리를 흔들며 멀어져 갔다.
시몬은 진지한 표정으로 여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암살자는 아니겠지?'
행동이 조금 수상하긴 했지만,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편하게 줄줄 늘어놓는 걸 보니 키젠 학생은 아닌 것 같다.
시몬은 자신의 머릿속 용의자 리스트에서 여우를 배제하고는, 계속 다른 동물들을 관찰하거나 말을 걸어보았다.
'누가 동물로 변했는진 모르겠지만, 연기 잘하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 명쯤 당황한 기색이라도 보이길 기대했는데, 연회장의 모든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조용히 짱 박혀 있거나, 불안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거나, 다른 동물들에게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면 암살자라고 짐작했을 텐데, 그런 동물이 한 마리도 없었다.
'아직 돼지공주가 도착하진 않은 것 같으니까, 너무 서두르진 말자.'
그렇게 시몬과 로레인은 정보를 수집한 후 만났다. 케이크와 디저트를 접시에 담아와서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레인도 역시나 동물들에게 같은 취급을 당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가져온 정보를 취합한 결과.
1. 이 파티는 돼지공주가 주최했고, 행사의 가장 마지막에 나타날 예정이다.
2. 인간은 여기서 가장 낮은 급이다.
3. 동물들은 모두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을 신성시 여기고 있다. 그들이 싫어하는 인간도 두 발로 걷는다는 것 자체로 연회장에 들여보낼 정도다.
4. 이들은 네 발로 걷는 동물을 혐오하고 가축으로 여기고 있다.
시몬이 입을 열었다.
"이 게임의 모티브는 '동물왕국'이란 동화야. 감이 오지?"
"난 잘 모르겠어. 동화나 동요나 그런 거에 좀 약해서."
"그래?"
시몬은 로레인을 위해 대강의 동화 줄거리를 설명했다. 사실 뭐 복잡한 내용의 동화는 아니었다.
농장의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인간들을 내쫓고 왕국을 건설했다.
초기에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두 발로 서는 기행을 펼친 돼지가 '나는 너희들보다 위대하고 진화한 고등 생물'이라는 논리로 다른 생물들의 위에 서려고 했다. 그러곤 자신을 스스로 '돼지공주'라고 칭했다.
돼지공주가 부러웠던 많은 동물은 두 발로 서려고 노력했다. 돼지공주는 이를 어여삐 여겼고, 급기야 농장의 동물 간에 '계급'이 형성되었다.
두 발로 서는 동물들은 호화로운 옷을 입고 비싼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폭군 같은 생활을 하던 돼지공주는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인간들과 똑같아진 것을 깨닫고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결한다.
"? 갑자기 뭐야."
이야기를 잘 듣고 있던 로레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동화가 그래, 잔혹동화야?"
"아이들 버전은 여기서 돼지공주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네 발로 걸으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걸로 끝나. 아무튼, 내 생각은 이래."
시몬이 이번 게임에서 쓸 전략을 설명했고 로레인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렇게, 돼지공주가 등장하기 전까지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시몬."
로레인이 말했다.
"나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아."
게임에 너무 집중하느라 깜빡하고 있었다.
사실 로레인에게 접근한 건 이쪽 목적도 있었으니까.
시몬이 넌지시 말했다.
"실라지 교수님 말야."
"?"
"대체 무슨 임무를 맡으셨길래 갑자기 키젠 교수를 관두신 거야?"
로레인이 눈을 깜빡였다.
"그게 왜 궁금해?"
시몬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다, 당연히 궁금하지! 1학기 때 좋아하는 교수님 중 한 분이었는데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셨으니까."
"음."
로레인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기밀이니까 다른 곳엔 이야기하지 말고."
"응! 물론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변했다.
"실라지 교수님은 던전에 들어가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