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28화
시몬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다섯 번이나 헹가래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임무 성공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때.
보스 몬스터가 쓰러지고, 하늘에서 빛이 일렁이더니 선물상자가 내려왔다.
"대박!"
"상품이 걸린 임무였나 봐!"
1인당 하나씩, 모두의 발 앞에 선물상자가 떨어졌다. 시몬은 선물이고 뭐고 헹가래의 충격에 널브러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선물 뭔데?"
시몬이 물었다. 상자를 열어본 여학생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스켈레톤 세트야!"
퍼뜩 정신을 차린 시몬이 허겁지겁 다가와 상자를 열어보았다.
정말이었다. 그것도 일반 스켈레톤이 아니라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였다. 최상품이라 여겨지는 바닐라 브랜드와 같은 급으로 알려진 '프랑' 브랜드의 제품.
'이렇게 비싼 걸 상품으로 주는 거야? 이번 BMAT는 대박이긴 하네.'
아무래도 소환학의 노란색 카드 게임이다 보니 소환학 상품으로 준비한 모양.
시몬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다들 수고했......."
그런데 어느새인가, 학생들이 모두 시몬을 바라보며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슬쩍슬쩍 그들 사이에서 눈치를 맞추는 듯하더니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시몬."
학생들이 시몬의 앞에 자신의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발 앞에 여덟 개의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가 쌓이자 시몬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 갑자기 왜들 그래?"
머리띠를 쓴 여학생이 민망하게 웃으며 손을 휙휙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도 양심이 있지."
"솔직히 네가 다 했잖아."
"우린 소환학 지망도 아니라 그렇게 막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옆의 남학생이 시몬의 어깨에 툭 손을 올렸다.
"좋은 말로 할 때 받아. 강제다."
그러고는 제일 먼저 포탈을 타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른 학생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하하.'
시몬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이건 좀 감동이었다.
* * *
"다들 수고 많았어!"
학생들이 한 명씩 손을 흔들며 게임에서 빠져나갔다. 시몬도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를 챙기고 포탈을 타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와보니 4시간은 모두 지나갔고, 방과 후 BMAT는 끝나 있었다.
곳곳에서 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기숙사로 돌아가거나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몬도 기숙사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BMAT로 얻은 건 두 장의 카드.
그리고 경품으로 따낸 '크리스탈 스켈레톤' 두 상자와,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 여덟 상자.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대단한 수확이었다.
'빨리 가서 만들어보고 싶다!'
시몬의 머릿속은 온통 스켈레톤 메이지 조립 생각으로 가득 찼다.
크리스탈 스켈레톤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아껴두기로 했다.
"오, 왔냐 시몬!"
409호 방에 돌아오자 딕이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그는 벌써 목욕탕에 갈 준비를 마쳐놓고 시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공성전도 꿀잼이었어! 갈수록 얘들이 쓰는 전술들이 다채로워지고!"
수건을 챙겨 공용 목욕탕으로 가는 길에도 딕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가 시몬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다음 게임은 나랑 공성전 하기로 약속한 거다?"
"알았어, 알았어. 약속할게."
공성전 테마는 매번 키젠 성벽에서 열리는 모양이었다. 물론 카드의 위치는 계속 바뀌지만 성벽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하다고 했다.
시몬도 다음번에는 딕과 같이 공성전에 가겠다는 확약을 했다.
"어우, 찝찝해. 빨리 들어가자!"
딕이 공용 목욕탕 문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우글 우글 우글!
문이 열리자 적나라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땀내 나는 남정네들이 웃옷을 벗고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내며 뿌연 수증기를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벌거벗은 소년들이 앞다투어 우르르르 탕으로 돌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딕은 조용히 목욕탕 문을 닫았다.
"그냥 화장실에서 씻자."
"그, 그래."
* * *
샤워를 마친 시몬은, 바로 상품으로 받은 스켈레톤 메이지를 제작하기로 했다.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를 손에 들고 409호 밖으로 나가려는데, 침대에 누워있던 딕은 무슨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아니, 방금 큰 시험 하나 끝냈는데 스켈레톤 같은 걸 만들고 싶냐?"
품에 소중히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를 안은 시몬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
"......독하다 독해."
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몬은 409호를 나와 기숙사 탕비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쉬거나 식당에 간 것 같았다.
시몬은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는 상자를 내려놓았다.
[훌륭하다 소년!!]
갑자기 피어가 말을 걸어왔다.
[군단의 군세를 늘리는 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지! 암!]
"네에, 네에."
시몬은 손을 내려놓고 가만히 상자를 살폈다. 중앙에 스켈레톤 메이지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에 멋들어진 금빛 글씨체로 '프랑'이라고 적힌 로고가 보였다.
이내 생일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리며 상자를 오픈했다.
"흐아아."
두 뺨이 상기 된 시몬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상자 안에는 푹신푹신한 와인색 쿠션이 깔려 있었고, 그 중앙에는 두개골이, 그리고 칸마다 스켈레톤 메이지의 척추뼈, 팔뼈, 다리뼈 등이 이상적인 배열로 담겨 있었다.
[소년! 상자가 아래에도 있다.]
"네. 2단인 것 같아요."
시몬이 두개골이 든 상자를 분리해 옆에 내려놓고 그 아래의 상자를 열어보았다.
"지팡이?"
스켈레톤 메이지가 쓸 나무 지팡이가 안에 담겨 있었다. 지팡이는 2단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따로 담겨 있었다.
시몬은 지팡이부터 꺼내, 아래 접합부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제거하고 나란히 붙였다.
그러자 지팡이에 내장된 마법이 발동했는지, 마치 제 몸처럼 착 달라붙어 하나가 되었다.
시몬이 겉면을 훑어보니 연결된 흠이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벤야 바닐라 선배님껜 죄송하지만, 프랑 브랜드도 점점 좋아지는데요."
[크흐흐흐흐!]
그런데 어딜 봐도 설명서가 없었다. 시몬이 상자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피어가 말했다.
[소년, 상자의 뚜껑을 열어봐라.]
"뚜껑이요?"
이제 보니 상자 뚜껑에 잡아당기는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
시몬이 그것을 잡아당기자.
쿵!
난데없이 뭉툭한 종이뭉치가 떨어져 나왔다.
'이게 다 설명서라고?'
거의 책 한 권이었다. 책을 촤르륵 소리를 내며 넘겨보자 빽빽한 수식으로 가득했다.
시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크하하하하!]
피어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제 알았나? 스켈레톤 메이지 제작부터는 장난이 아니다!]
시몬은 아론의 소환학 수업에서 다뤄본 '마기스테 시스템' 같은 수준으로 생각했지만 정말로 큰 오산이었다.
마기스테는 이미 완성된 스켈레톤 메이지에 이것저것 조작을 가해서 최선의 마법 배치를 찾는 시스템이고, 진짜 나만의 스켈레톤 메이지를 조립하기 위해선 상당한 공부량을 필요로 했다.
그것도 이미 어느 정도 만들어진 스켈레톤을 '조립'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시몬이 억지웃음을 흘리며 팔을 걷어붙였다.
"......부, 불타오르는데요."
[크흐흐, 표정과 말이 다르다만!]
시몬은 냉정을 되찾고 설명서의 첫 장을 펼쳤다.
이제 보니 몸체 조립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고, 이 책의 90%가 스켈레톤 메이지의 소환 마법진 제작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시작해 보자.'
설명서를 훑어본 시몬이 책상에 '칠흑 시트'라는 물건을 깔고 마법진을 펼쳤다. 스켈레톤 메이지의 두개골에 적용하기 전에 마법진을 그려볼 수 있는 시트였다.
"일단 장악부터."
이미 기본적인 소환 마법진의 형태는 잡혀 있었다.
마법진의 보안을 풀고 잠금을 해제한 다음, 칠흑을 불어넣어 마법진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시몬이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필수 수식을 깨우고 칠흑 회로를 착착 연결해 내며 설명서를 보았다.
"스켈레톤 메이지가 쓸 흑마법을 내가 정할 수 있구나!"
활 같은 무기를 다루는 스켈레톤의 경우, 생전 몬스터 시절의 경험이 중요했다. 육체에 남아 있는 기억을 되살려 무기를 휘두르는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원리였으니까.
하지만 스켈레톤 메이지는 마법을 쓰는 언데드다. 생전에 마법을 구사한 스켈레톤이라면 기본 조건은 충족하는 거고, 어떤 마법을 썼는지와는 관계없이 술사가 사용하는 마법을 선택할 수 있다.
시몬은 가장 익숙한 메이린의 빙결마법을 떠올렸다.
"일단 아이스 볼트로 해볼까."
시몬이 수식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조금 많이 집중했다.
똑똑.
탕비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기숙사 관리원이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노, 놀래라! 학생!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여기서 뭐 해요?"
"네?"
"창밖을 좀 보세요!"
벌써 새벽이었다.
그것도 어느새 어둠이 걷혀가고 어스름이 밝아오는 새벽.
시몬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다가 드르륵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는데 얼른 들어가서 눈 좀 붙이세요! 별로 자지도 못하겠지만!"
시간이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시몬은 소중하게 마법진 시트를 들어서 박스에 담고 몸을 일으켰다.
* * *
"미리 공지해 두마."
첫 수업인 소환학 시간. 아론이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다음 수업부터 본격적인 스켈레톤 메이지 제작에 들어간다."
아론의 선언에 학생들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환호성을 불렀다.
"드디어 이거 만들어보는구나!"
"마법을 쓰는 언데드라니! 신기해!"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소환학 조교들은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다음 수업이면 그 환호가 곧 비명과 절규로 바뀌게 될 것이기에.
"준비물은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다."
아론이 칠판에 예시를 쭉 쓰기 시작했다.
"값비싼 바닐라나 프랑 브랜드로 사 오라고 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칠판에 쓴 브랜드로 구매해 오도록. 다른 브랜드들은 스켈레톤 메이지를 만드는 체계가 다르다."
그때 딕이 시몬의 팔을 툭 쳤다.
"야, 잘됐네 시몬! 넌 마침 프랑 브랜드도 있고, 바로 다음 수업부터 스켈레톤 메이지를 만든다니까 같이 맞춰 따라가면 되겠다."
"......."
"또 새벽까지 오버하지 말고 인마."
시몬이 진지한 얼굴로 깍지를 꼈다.
"소환학 다음 수업이 언제더라?"
"이틀 뒨데."
"그럼 이틀 뒤까지가 완성 기한이네."
"......?"
딕이 대체 뭔 소릴 하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아니, 이틀 뒤가 스켈레톤 메이지 수업인데 이틀 뒤까지 완성 기한이란 건 대체 무슨 소리야?"
시몬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적은 스켈레톤 메이지의 완성이 아니었다. 시몬의 이번 1학년 최종 목적은 리치를 만드는 거였다.
스켈레톤 메이지 정도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었다.
'아론 교수님의 수업 전까지 어떻게든 스켈레톤 메이지를 완성하겠어.'
새벽 내내 스켈레톤 메이지를 만들면서 벽을 느꼈다.
그 벽을 내 힘으로 보란 듯이 부수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는 것도 부끄럽다만."
학생들이 떠들기 시작하자 아론이 칠판을 탕탕 치며 말했다.
"스켈레톤 메이지에게 쓰게 할 마법, 칠흑원소계의 기본은 마스터해 오도록. 콜 파이어나 콜드 볼트 같은 것들 말이다. 스켈레톤 메이지에게 쓰게 시킬 마법을 네크로맨서 본인이 못 하는 머저리는 없길 바란다."
딕의 고개가 재빨리 돌아갔다.
"메이린! 칠흑빙결계 과외 좀!"
"아우! 이 멍충아아!"
메이린이 버럭 화를 내며 딕을 갈구는 사이, 시몬은 노트에 끄적끄적 필기하고 있었다.
-콜 파이어.
-거스트 서클.
-콜드 볼트.
시몬은 세 가지 속성의 스켈레톤 메이지를 전부 만들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