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29화
다음 날 아침은 사령학 수업. 즉 시몬에게는 공강이었다.
타닥. 탁. 타앗. 타아. 탁.
아침 일찍부터 시몬은 빈 강의실 칠판에 정신없이 수식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셔츠 카라가 흔들리고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타아아앗.
마지막 수식에서, 마지막 획이 길게 늘어졌다가 멈추고 방점이 쿡 찍혔다.
'이거다.'
시몬은 분필을 내려놓고 책상으로 달려갔다.
책상 네 개를 붙여 만든 자리에는 스켈레톤 메이지 세트와 마법진 시트가 세팅되어 있었다. 시몬은 칠판을 보면서 세심하게 마법진의 수식과 회로를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메인 회로부터가 문제였어."
시몬의 칠흑이 마법진에 흘러 들어가며 오류를 바로잡기 시작한다. 새로운 길을 만들고, 수식의 수치도 변환된다.
깔끔하게 수정을 마친 시몬이 다시 마법진에 손을 올렸다.
"작동."
우웅!
마법진에 시동이 걸린다.
칠흑이 룬어를 깨우고, 수식은 룬어의 힘을 가공한다. 중심부에서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는 회로 위로 칠흑이 강처럼 흐르며 10개의 획이 아름다운 빛깔을 낸다.
'여기까진 오케이.'
마법진의 상태를 확인한 시몬의 시선이 이제 책상에 고정된 지팡이로 향했다.
마법진의 회로를 이 지팡이와 연결했다. 만약 정상적으로 지팡이에서 마법이 나간다면, 이 스켈레톤을 조립해서 만든 언데드도 똑같은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발!'
지팡이 위로 마법진이 펼쳐진다. 그리고.
파직!
검은 전류가 튀는 것과 함께 마법진이 무너져 내렸다.
"하아아."
시몬도 덩달아 무너져 내렸다. 온몸에 힘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뭐가 문제지?"
시몬이 칠판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법진은 모든 것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다.
벌레를 소멸시키면 그 벌레의 천적인 거미와 사마귀가 사라지고, 이를 잡아먹는 새가 사라지고, 이를 잡아먹는 뱀이 사라지는 격이다.
그런데 시몬의 눈에 떠오르는 결괏값은. '벌레를 죽였더니 뱀이 멸종했다.'다.
중간의 인과관계가 어떻게 돌아간 건지 시몬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유영하는 기분.
커다란 벽이 느껴진다.
-리치는 언제 만들 수 있나요?
부끄러웠다.
당장 스켈레톤 메이지도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아론의 앞에서 초고위 언데드를 입에 담은 걸까.
"으으으."
시몬이 시뻘게진 얼굴을 슥슥 쓸며 벌러덩 바닥에 누웠다.
텅 빈 교실의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휘이잉 하고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래도."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을 멍하니 바라보며, 짙은 다크서클에 피폐해진 얼굴의 시몬이 픽 웃었다.
"재밌다."
멍하니 있던 시몬이 벌떡 일어섰다. 좀 머리를 비우려고 했더니 바로 다음다음 아이디어들이 쭉쭉 들어온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건 즐겁다. 가끔은 숨이 차고, 발목이 삐걱대지만, 언젠가 이 고난에 끝이 있다는 걸 안다. 위에서 보는 경치가 끝내주게 아름다울 거라는 것도 안다.
"진짜, 누가 이기나 해보자."
칠판으로 달려간 시몬이 방금 생각난 수정 요소들을 대입해 나가기 시작했다.
리치를 만든다고 했는데 벌써 지치는 것도 우습다.
이 스켈레톤 메이지는, 어떻게든 내 힘으로 완성시키겠다.
* * *
"흐응, 흥. 흥."
메이린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기분 좋게 교정을 걷고 있었다.
오늘의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걔가 웬일?'
그도 그럴 게 시몬이 오후 수업 전에 단둘이서 보자고 했다.
딕도 카미바레즈도 빼고, 단둘이서.
안 그러던 얘가 갑자기 이러니 또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오늘은 머리 컨디션도 좋고 화장도 잘 먹었다.
긴 머리카락을 하늘하늘 휘날리며, 메이린은 약속장소인 빈 강의실 앞에 도착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
열린 틈으로 살짝 엿보니 시몬의 모습이 보인다.
창밖에서 스며드는 햇살, 기분 좋게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시몬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평소 코도 안 골던 애가 쿨쿨 하고 소리까지 내고 있다.
그녀는 조용히 드르륵 문을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몬은 얼굴을 옆으로 돌려서 본인의 팔을 베고 자고 있었다. 이렇게 있으니 턱선과 목덜미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완전 꿀잠 자네.'
입을 살짝 벌린 채 세상모르고 자는 시몬은 평소의 어른스러운 모습과는 달랐다. 그냥 동네 꼬맹이처럼 보였다.
괜히 검지로 볼을 쿡 눌러서 깨워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너무 잘 자고 있어서 참았다.
대신 의자를 드르륵 끌고 와서 시몬의 정면에 앉았다.
'음.'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시몬의 푸른 머리카락은 파도치는 물결 같았고, 빛에 반사되어 살짝살짝 광채가 나면서 색깔이 바뀌는 모습은 물감이 뒤섞인 팔레트 같다.
멍하니 그의 얼굴을 지켜보던 메이린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나 쫌 변태 같나?'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그녀가 손을 뻗어 시몬의 얼굴 앞으로 휙휙 흔들어보았다.
깨어날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하아.'
사람 불러놓고 교실에서 세상모르고 처자다니, 참 무드도 없다.
차라리 잘됐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쭉 빼 감상할 준비를 마쳤다.
평소엔 괜히 부끄럽고 민망해서, 가까운 거리에서는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으니까.
'.......'
이렇게 가만히 시몬을 보고 있으면.
피온이 떠오른다.
데스랜드에서 자신을 구해준 피온은 험악하고, 무시무시하고, 체격도 엄청 건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립지대의 켈소마을에 마주한 피온은, 다시 보니 그녀가 상상하던 것보다는 다소 마른 체격이었다.
그래, 딱 지금의 시몬처럼.
'분명 피온의 칠흑도 살짝 검푸른색이었지.'
심장 박동이 높아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그녀가 두 손을 깍지끼듯 해서 가면 모양을 만들고는, 시몬의 앞으로 가져와 보았다.
'어, 뭔가 이렇게 보니까 닮은 것 같기도.......'
그녀가 팔을 쭉 뻗어 시몬의 앞에 대보려는 순간.
자고 있던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왁! 와악-! 으아악-!"
메이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얼굴이 귓불까지 시뻘겋게 변했다.
"?"
잠시 무슨 상황인지 몰라 순진하게 눈을 깜빡이던 시몬이 이내 미소 지었다.
"메이린이네. 깜빡 졸았어."
"아으씨, 놀랐잖아!!"
그녀가 꽥 소리 지르며 가슴에 손을 모아 올렸다.
심장이 벌렁벌렁 미친 듯이 뛴다. 누가 봐도 잘못한 건 자신인 것 같지만, 괜히 목소리부터 커진다.
"미안해."
그리고 시몬은 언제나 그랬듯 웃으며 받아들여 준다.
"......흥."
메이린은 재빨리 의자를 든 채로 물러나 시몬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확보한 다음, 파닥파닥 손부채질 했다.
"그, 근데 난 왜 불렀어?"
고개를 돌린 채 새침하게 물어본 메이린이 슬쩍 눈알을 굴려 시몬을 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
갑자기 저 말이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들리냐. 분명 시몬 얘 성격상 절대절대 아니겠지만!
"실은 칠흑원소계 마법진이 꽉 막혔거든. 내가 아까 콜드볼트 마법진을 준비해보고 있었는데."
네, 역시 아니었습니다.
뭘 기대하세요.
또 속냐.
메이린이 웃는 얼굴로 입꼬리만 부르르 떨었다.
"이게 마법진의 메인 회로를 바꿔보니까......."
남의 속도 모르고 시몬은 신이 나서 마법진에 대한 설명만 줄줄 들어놓았다. 그녀는 어쩐지 심통이 나서 입술을 삐쭉였다.
"......그렇게 기본 수식부터가 터지는 거야. 여기까지 이해했어?"
조그맣게 한숨을 푹 쉰 메이린이 턱을 괴었다.
"그거 회로 저항 문제네."
"음? 난 저항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바보야! 내 말 들어봐!"
어느새 두 사람은 칠판으로 달려가서 수식을 써가며 서로 반박하고 있었다.
"아냐. 그건 그렇게 가면 안 되지!"
메이린이 열을 내며 시몬의 수식을 수정했다. 정신없이 수식을 써내려가던 메이린이 이내 푸훗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결국 네크로맨서구나.'
이런 거에 열받아서 확 칠판으로 뛰쳐나오는 걸 보니 말이다.
"왜 그래?"
"아, 암것두 아냐. 증명해 줄 테니 딱 보고 있어봐!"
그렇게 20여 분간의 토론 끝에 승자는 메이린이었다. 시몬도 자신의 오류가 뭔지 깨닫고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녀는 내신만으로는 키젠 전교 2위의 천재였고, 칠흑역학과 칠흑원소계는 특히 메이린의 전문분야였다. 시몬이 감히 딴지를 거는 것조차가 민망할 정도로 아득한 격차가 있었다.
메이린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갑자기 칠흑원소계는 왜? 소환학이나 다른 걸로도 잘해왔으면서 굳이 또 새로운 공격수단 장착하려고?"
"아니, 스켈레톤 메이지를 만드는 중이었어."
"응?"
메이린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뭔 헛소리야? 내일 스켈레톤 메이지 만들기 수업하는데 왜 너 혼자 만들어?"
"어, 그냥...... 예습 같은 거야."
"차암 고생을 사서 해요."
메이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암튼 도와줬으니 밥 사라? 머리 썼더니 나 배고파."
"응, 나가자."
* * *
다음 수업은 에릭 아우라 교수의 칠흑역학 시간이었다.
칠흑역학은 흑마법의 뼈대다.
심지어 다른 과목의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칠흑역학의 진도를 물어본 뒤 자신이 가르칠 진도를 조정하기도 했다.
이 수업의 진도에 따라 학생들이 아는 수식과 룬어가 달라지니 말이다.
-이거 칠흑역학 시간에 안 배웠어?
수업 때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였다.
그리고 메이린처럼 칠흑원소계 등을 쓰는 학생들은 이과목을 전공으로 선택할 수는 있지만, 칠흑역학은 필수과목이다. 따라서 교수가 직속제자를 정하지는 않는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중요한 칠흑역학을 가르치는 중장년의 남자, '에릭 아우라'는 무색무취의 교수라는 별명이 있었다.
능력과 실력은 인정하지만 극히 정석적이고 수업에 자신의 색깔을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철저한 이론숭배자이기도 했다.
깔끔담백하고 지식의 전달에만 집중하는 그의 수업은, 화려한 쇼맨십을 선보이는 바힐이나, 학생들의 참여를 무조건적으로 유도하는 홍펭 등 스타 교수들의 수업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듣기엔 다소 밋밋하다는 평도 있었다.
실습이 아닌 철저한 이론 위주의 수업.
하루 종일 마법진과 룬어와 수식을 들여다보고 머리를 싸매야 하는 과목.
그래도 모든 학생들이 이 과목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여기서 잘 배워놓으면, 다른 수업에서도 필연적으로 수식을 써먹기 때문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목이기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빠르게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에릭이 주위를 정리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그의 앞으로 왔다.
"그래, 궁금한 거 있......."
고개를 돌려 질문하러 온 학생을 확인한 에릭은 조금 놀랐다.
평소 칠흑역학에 대해 물어보러 오는 학생은 정해져 있는데, 오늘은 조금 특이한 학생이었다.
"내게 찾아오는 건 처음이구나. 시몬 폴렌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