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30화
네프티스가 선택한 화제의 특례 1번 입학생.
에릭 또한 시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뭐가 궁금해서 왔니?"
"이 수식을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메이린의 도움으로 원소마법 수식의 오류는 해결은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다. 시몬은 이번엔 소환 마법진 구성을 에릭에게 보였다.
"어디 보자."
에릭의 두 눈이 진중하게 마법진을 살폈다.
"소환 마법진은 하나하나의 요소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니 한 부분만 골라내기 부담스럽구나. 그래도 이 부분."
에릭이 마법진의 한 부분을 손끝으로 짚었다.
"여긴 확실히 잘못됐구나. 단순히 합산보다는 게일 공식을 채택하는 편이 더 좋단다."
"그럼 이쪽은요?"
시몬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에릭은 막힘없이 대답해 나갔다.
그리고 시몬이 되물었다.
"왜 그렇죠?"
"게일 공식을 쓰는 게 효율적이니 말이다."
"하지만 게일 공식을 쓰면 패턴이 복잡해지는데, 왜 이쪽이 더 효율적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아요."
가끔 있다.
키젠에서 이유를 물어보는 아이들이.
워낙 오랜만의 질문이라, 칠흑역학을 가르치는 에릭도 조금은 당황했다.
"음, 그래. 그게 궁금하다면."
그래도 학생의 질문에 답하는 게 교수의 본분.
에릭은 친히 분필을 들어 풀이를 써주었다.
"이 부분에서 제 생각은......."
시몬도 분필을 집어서 본인이 생각한 바를 써내려갔다.
에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식의 연산에 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근본적인 부분에서의 수식 나열.
그런 주제에 결과는 공식을 사용한 것과 근삿값으로 도출해 냈다.
"이런 해석은 흥미롭구나."
에릭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1학기 때 헥사 공식을 배웠지 않니. 왜 굳이 어렵게 이렇게 연산했지?"
"헥사 공식은."
시몬이 분필을 내리며 에릭을 보았다.
"제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
"불안요소를 제 마법진에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에릭은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수업에서 새로운 룬어나 수식을 알려주면, 학생들은 그것의 원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써먹기 바쁘니까. 다들 좋다고 마법진을 보강해서 곧 있을 결투평가나 BMAT에 써먹을 것이다.
극도의 실용.
키젠은 실력만능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학생들도 그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했다.
물론 나쁘다는 건 아니다. 경쟁이라는 건 언제나 높은 효율과 성과를 내니까.
그런데 키젠을 졸업한 네크로맨서들에게, 왜 여기서 헥사공식을 썼냐고 물어본다면?
열에 아홉은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원래 그렇다느니. 그냥 옛날부터 이렇게 해왔다느니.
원리도 모르고 공식을 쓰는 젊은 네크로맨서들이, 차후엔 이 세계의 꼭대기에 올라서 있으리라.
에릭은 이런 사태를 교육자로서 한탄했지만, 그 또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젠에서는 교수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칠흑역학'이라는 재미없는 과목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라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이해시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1년에 한 명 정도는 이런 학생이 나와준다는 게 에릭의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였다.
"설명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겠는데."
학생들이 포기하게 하는 마법의 말.
"괜찮겠니?"
열에 아홉은 그럼 그냥 넘어가 달라고 말한다.
"네, 얼마든지요!"
하지만 이 아이가.
아니, 시몬이 원하는 것은 놀랍게도 근원이었다.
"잘 보려무나."
칠판에 증명을 쭉쭉 적어나가면서 에릭은 즐거웠다.
이 얼마만의 증명이란 말인가.
-굳이 증명 같은 거 할 필요 있어요?
-룬어는 작동만 잘되면 그만이죠.
-키젠 교수가 이상한 공식을 가르쳐 주진 않을 거 아녜요.
수없이 들어온 말들.
맞는 말이다.
키젠에서 가르치는 룬어와 공식은 전대로부터 철저히 검증되었다.
우리는 전대의 위업을 기반 삼아 더 강해지면 된다.
증명은 순전히 비가치적인 연구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즐겁다.'
에릭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지금, 이 학생 앞에서 수식을 증명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
"이제 됐니?"
"네! 시원하게 해결됐어요. 감사합니다!"
에릭과 몇 마디 더 주고받은 시몬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흡족한 미소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에릭이 문득 분필을 들었다.
'어떻게 억누르고 있던 건데.'
타악.
그러고는 다른 수식까지 칠판에 증명을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늙은이의 심장도 아직.
이렇게 쓸 만하게 뛸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 * *
"좋아! 다시 해보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온 시몬은 노트에 새로 배운 수식을 줄줄 적어 내려갔다.
사실 시몬도 처음부터 수식의 근본을 뿌리부터 알길 원한 건 아니었다.
시몬의 칠흑역학 성적은 극도로 평범한 중위권이다. 휙휙 알기 쉽게 던져주는 걸 받아먹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데, 이걸 증명까지 이해하는 건 과욕이었다. 뭣보다 증명하는 데에는 더 많은 지식과 공부량이 필요했다.
다만 이번에 증명을 원했던 건 소환 마법진이어서였다. 시몬은 스켈레톤 메이지 완성이라는 벽에 부딪혀 있지만, 한편으로는 머리가 근질근질했다.
나올 것 같았다.
소환학 수업 첫날, 아일랜드 랫맨 스켈레톤의 뼈를 역산 후 재조립해 네 다리로 달리는 그레이 랫으로 바꿀 때의 그 통찰이.
하지만 쉽지 않았고, 그런 통찰이 불가능해진 이유가 자신이 이 어려운 수식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릭의 도움을 받은 지금은, 가능하다.
모든 문자들이 내 손 안에 있다.
스윽. 슥. 슥.
그렇게 시몬이 빈 노트에 수식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침대에 누워 있던 딕이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다 대단해."
저렇게 열심히 하니 이제는 빈정거리지도 못하겠다.
다만 걱정이 좀 되긴 했다.
"너 옛날에 처음 골렘 만들 때처럼 맛탱이 가버리는 거 아니지?"
"이제 그런 실수 안 해."
시몬이 수식을 써내려가며 말했다.
"컨디션도 충분히 유지하고 있고,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괜찮아."
"잠을 줄이는 게 문제야 인마."
"그보다."
시몬이 노트에 줄줄 수식을 써내려가며 말을 꺼냈다.
"발터 교수 필적감정은 어떻게 돼 가고 있어?"
"아- 그거 무사히 전문가한테 일 맡겼어. 일이 좀 밀려 있어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네. 직접 쓴 것도 아니라 촬영기 사진이라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하시고."
"조혈주사 성분 분석은?"
"은밀하게 실험을 진행해 줄 사람을 찾아보는 중이야. 이쪽은 지금 학술회가 진행 중이라 금방 찾을 듯."
"괴공 사체 경매는?"
"바로 내일 시작이야. 괴공의 피부조직에 학술적 가치가 발견돼서 가격이 조금 더 오를지도 모른대. 기대해도 좋......."
거기까지 말한 딕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니, 야! 내가 니 매니저도 아니고 이게 다 뭐야? 나한테 일을 몇 개나 맡긴 거냐고!"
시몬이 깃펜을 멈추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옆에서 자꾸 웃기지 마. 집중력이 끊기잖아."
"룸메를 이렇게 부려 먹고는 공부가 손에 잡히십니까? 도련님!"
딕이 침대에서 다리를 쭉 뻗어 의자에 앉은 시몬의 목을 휘감으며 휙휙 흔들었다.
"어지러워!"
시몬이 여전히 웃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대가는 다 지불하잖아. 너야말로 룸메이트한테 너무 돈 따박따박 받는 거 아니야?"
"그건 상인의 직업병이라 어쩔 수 없어!"
딕이 시몬의 목을 놓아주며 새삼 진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무슨 이유로 발터 교수를 캐는진 잘 모르겠지만, 조심해. 괜한 일에 휘말리지 말고."
"알았어."
달칵.
그때 문이 열리며 카쟌이 들어왔다. 딕이 바짝 긴장을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고 있는데, 카쟌이 시몬을 보며 말했다.
"맡긴 일, 작업 들어갔다. 경과가 들어오면 알려주지."
"넵. 잘 부탁드려요."
카쟌이 교복을 휙휙 벗어 던지며 2층 침대로 올라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시 꾸물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딕이 달려와 시몬의 머리에 거칠게 헤드록을 걸었다.
"얌마! 나 말고 카쟌한테도 일 맡겼냐? 배신이야!"
"악, 아파! 이게 무슨 배신......!"
"내 정보망보다 도둑길드가 더 좋다 이거냐? 어?"
스륵.
시몬이 딕의 팔 사이로 자신의 팔을 집어넣어서 꾸욱 누르자 헤드록이 풀렸다. 그대로 딕을 들어서 다시 침대에 던져 버렸다.
"허."
딕이 혀를 내둘렀다.
"얘 마투도 점점 좋아지네."
"요즘 마투도 신기술을 연습하고 있거든."
딕이 헥토르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 셈이냐! 시몬 폴렌티아!"
하나도 안 똑같은 성대모사에 시몬이 배를 잡고 웃었다. 딕도 마찬가지였다.
* * *
"으으음."
새벽에 이불을 뒤척이던 딕이 잠을 깼다.
눈을 비비적거리던 그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보고 한숨을 쩍쩍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수업까지는 4시간이나 남았다.
살짝 행복감을 느끼며 다시 침대로 들어가려는 그때.
'?'
침대에 시몬이 없었다.
'얘 또 시작이네.'
나보다 제정신이 아닌 놈은 처음이다. 딕은 슬리퍼를 신고 409호 밖으로 나왔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탕비실이었다.
달칵.
문을 열어젖힌 딕이 눈을 비비며 소리쳤다.
"헤이, 시몬! 여기서 자냐?"
그런데 시몬이 없었다.
탕비실 구석에 빈 스켈레톤 메이지 상자들이 어질러진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쩝."
딕이 어질러진 자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자꾸 이러면 관리원이 탕비실 못 쓰게 할 텐데."
딕은 졸음과 싸우며 비틀비틀 걸어가 시몬이 엉망으로 만든 자리를 정리했다.
다음으로 그가 향한 곳은 기숙사 뒤편의 정원이었다.
'어우, 추워.'
밖으로 나온 딕이 어깨를 끌어안았다. 쌀쌀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옮겼다.
"얌마!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잠은 방에서......!"
그때 딕의 말이 멈췄다.
시몬이 있었다.
펼쳐놓은 마법진을 정신없이 조작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된 것 같아요. 이번엔 확실해요."
누구랑 말하는 거야?
얘가 드디어 맛탱이가 간 모양인데.
딕이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와!'
조립이 완료된 세 기의 스켈레톤 메이지가 떡 하니 시몬의 옆에 서 있었다.
'저, 저것들을 진짜로 다 만든 거야? 독학으로?'
한번 시험해 보려는지 시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보이고 얼굴은 갸름했다. 그간의 고생을 엿볼 수 있었다.
"준비."
시몬이 팔을 뻗자, 세 기의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지팡이를 척 세웠다.
꿀꺽.
딕도 괜히 긴장되며 침을 삼켰다. 그간 시몬이 노력해 온 걸 옆에서 쭉 지켜봐 온 그였다.
"발동!"
시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르륵!
까드드득!
휘이이잉!
세 스켈레톤 메이지의 지팡이 앞에서 화염과 얼음과 바람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됐다!!!"
시몬이 환호했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주먹을 불끈 쥔 시몬의 뒷모습을, 떠오르는 여명의 빛줄기가 찬란하게 비추었다.
딕은 감탄했다.
'진짜로 소환학 수업 전에 해내다니.'
아마 몇 시간 뒤의 소환학 시간에, 애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천재니까 당연하잖아.
-특례 1번이니까 그 정돈 기본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몬의 업적을 본인이 받아들이기 편하도록 합리화할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까.
천재의 일면엔.
저렇게 피가 나도록 노력하는 모습도 있다.
"......하."
그런 시몬의 뒷모습을 보며, 딕은 전율이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X나 멋있네 새끼."
전제가 있어야 결과가 있듯.
천재라고 불리는 인간에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