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36화
쿵! 쿵! 쿵!
군홧발 소리가 지축을 울린다. 대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하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침음이 들린다.
성 앞으로 새까맣게 몰려든 칸 왕국의 2만 대군. 그리고 저 안에도 15명의 키젠 학생들이 있을 터였다.
이내 2만 대군은 발이 빠르게 움직여 성 전체를 둘러싸듯 포위했다. 곧 네 개의 성문을 동시에 공격할 것이다.
"찌익! 찍! 두려워하지 마라!"
"마지막까지 싸워라! 찍!"
수인 부관들이 돌아다니며 성벽 위의 병사들을 격려했다. 시몬은 그런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메이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그녀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난 괜찮아. 그냥 2만이라는 숫자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
"으흐흐!"
갑자기 옆에서 휙 튀어나온 딕이 깐죽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메이린 쫄았냐? 쫄았어?"
"어우! 넌 제발 긴장 쫌 해!"
즉시 메이린이 등짝스매싱으로 응징했지만, 딕은 평소처럼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음침하게 웃었다.
"긴장되는 건 지금 이 한순간뿐이야. 전쟁이 시작되면 정신 못 차릴걸. 그야말로."
딕이 고개를 쭉 내밀며 눈을 크게 떴다.
"광란이지."
터업!
메이린이 냉기가 쌩쌩 날리는 표정으로 딕의 얼굴을 붙잡았다.
"니 얼굴이 더 광란이야 미친놈아."
"어우아릉라!"
딕이 고통에 겨운 괴성을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이 조용히 웃었다. 저것도 나름대로 동료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딕만의 방법이리라.
그래도 효과가 있기는 한 듯, 메이린은 우아한 몸짓으로 손수건을 꺼내 손을 슥슥 닦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 진지한 눈빛을 보니 멘탈을 확실히 잡은 것 같았다.
쿠우웅! 쿠우웅!
그때 주위를 압도하는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칸 왕국의 진형이 반으로 갈라지며, 그 사이로 거대한 코끼리가 이끄는 마차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하얀 제복 코트를 어깨에 두르고, 살랑살랑 부채를 흔들며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있는 양 갈래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아, 뭐야."
메이린이 미간을 좁혔다.
"쟤가 공성팀이야?"
"이번 게임 빡세겠네."
성벽에 몸을 기댄 딕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특례 7번 유령선의 엘리사 셀린. 지금까지 공성전에 저 정도의 네임드가 온 적은 없었어."
처억!
코끼리가 걸음을 멈추었다.
마차 위의 엘리사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칸 왕국의 기사가 공손히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흠흠."
엘리사가 자신의 목에 확성마법을 걸었다.
"아― 아―"
팽팽한 긴장감이 내려앉은 금속과 피의 전장에, 소녀의 청명한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메이린이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하긴, 저 인간이 자기 장기를 안 살리고 넘어갈 리가 없지."
"......장기?"
"잊었어? 쟤 아빠 현역 재상이잖아. 지독한 정치가 집안이야."
엘리사의 입이 떨어졌다.
"나는 칸 왕국의 총사령관, 엘리사 셀린이다. 창조주께서 보낸 가디언으로서 칸 왕국의 승리를 책임지기 위해서 참전했다."
그 말에 수성 측인 아온 왕국의 수인들에게서 소란이 일었다.
"찌익! 찍! 가디언은 우리 왕국에만 있는 거 아니었어?"
"어째서 칸 왕국에도 가디언이......!"
엘리사는 웅성거리는 성벽 위를 잠시 지켜보다가 말했다.
"들어라, 아온 왕국의 만민이여."
그녀의 한마디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개죽음이다."
"!"
순식간에 전장에 긴장감이 덧입혀진다.
"눈이 있으면 보아라. 머리가 있으면 판단해라. 이게 정녕―"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극복할 수 있는 전력 차인지."
아군 진형에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반면 칸 왕국의 병사들은 위협하듯 격렬한 고함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대들이 느끼는 불안감이야말로 옳다. 그대들이 느끼는 공포가 현실이다. 이 전쟁은 성립된 순간부터 결과가 정해졌다. 그 낡고 병든 요새는 그대들을 지켜주지 못하며, 애국심만 부추기는 간신들의 세 치 혀는 그대들을 사지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대들은―"
엘리사는.
"속았다."
불안감을 파먹는 괴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서 있는 건 애국심인가? 애국은 폭군의 도구요, 위선자의 혓바닥이다. 왜 왕이 외교에 실패한 대가로 백성들이 죽어야 하는가? 왜 백성들은 전쟁으로 국가에 목숨을 바칠 것을 당연하게 요구받아야 하는가?"
그녀의 목에 힘이 들어간다.
"항복하라. 그대들을 사지로 내몬 자들을 끌고 오라. 그리하면 그대들을 간악한 애국심으로 속여 궁지로 몬 자들을 섬멸할 것이며, 그대들과 그대들 가족의 목숨은 보장받을 것이다. 창조주의 뜻을 받들어 내려온 나 엘리사 셀린이 고한다!"
엘리사의 목소리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피조물의 피를 원하는 창조주는 없다. 항복하고 성문을 열어라! 그것만이 피를 덜 길이니, 그게 아니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말살뿐이다."
역시 정치가의 딸.
달변이었다.
연설 하나로 아군 병사들의 동요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병사들의 적대감을 칸 왕국이 아닌 자국의 간신들에게 돌려놓고 아군끼리 은근히 균열을 유도하는 게 무섭다.
"와, 이거 위험한데."
병사들의 분위기를 읽은 딕이 혀를 내둘렀다.
"예전 공성전에선 학생이 연설 같은 거 한 적 없어! 그냥 수인 대장이 나와서 '왕국에 영광을!' 이딴 대사 치고 싸우는 게 끝이었다고!"
"메이린."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혹시 확성마법 쓸 수 있어?"
"응? 아, 뭐. 순수마법 동아리에서 배워서 쓸 수 있긴 한데......."
"뭐 하려고?"
시몬이 옅은 미소를 흘렸다.
"연설도 중요한 전쟁의 요소잖아?"
저쪽 총사령관이 세 치 혀로 나온다면, 이쪽도 세 치 혀로 맞받아쳐 줄 생각이었다.
"딕, 혹시 아온 왕국의 고유한 인사말이나 유명한 문장 같은 거 없어?"
"아- 있지. 아온이 패배하고 왕이 죽기 전에 이 소리 하더라."
딕이 이야기하고, 메이린은 시몬의 앞에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확성용 마법진을 만들었다.
시몬은 그 마법진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손을 대고 칠흑을 살짝 흘려보냈다.
그 모습을 본 메이린이 깜짝 놀랐다.
"야, 잠깐! 그거 마나로만 돌아가는 건데 그렇게 하면......!"
끼이이이이이이이!
갑자기 울려 퍼지는 거슬리는 굉음, 어수선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귀를 틀어막으며 소음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흠."
시몬이 기다렸다는 듯 마법진 앞에 다가왔다.
"나는 아온 왕국의 총사령관 시몬 폴렌티아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시몬 쪽으로 향한다.
"나는 창조주의 명을 받고 아온 왕국을 수호하기 위해 내려왔다."
이번엔 칸 왕국의 병사들이 웅성거린다. 아마 저쪽도 저쪽대로 자신들만 수호자가 내려왔다고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
마차에 앉아 흡족하게 부채를 흔들고 있던 엘리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시몬 폴렌티아!'
역시 이 녀석도 공성전에 왔다. 그런데 감히 내게 연설로 대적하려 들다니!
그녀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듣자 하니 애국이 권력자의 혓바닥이란 논리로 항복을 종용하던데."
시몬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모욕이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휘어잡으며 사람들의 귀를 끌게 하는 능력은, 엘리사 외에도 있었다.
엘리사가 표정을 굳히며 다시 자신에게 확성마법을 걸었다.
"내 말이 틀렸다는 건가? 오로지 당신들의 안위를 위해 왕국에 대한 허울뿐인 애국을 들먹이며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딴 작태를―"
"지키는 마음."
시몬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전쟁을 앞두고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 누구도 감정에 자유롭지 않아. 하지만 그 불안감을 딛고 지금 우리가 여기에 버티고 서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시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내 가족을."
한 자 한 자, 힘을 실어서.
"내 친우를."
감정을 토해내듯, 복받친 감정을 쏟아내듯.
"내 터전을, 내 재산을,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적에게 맡기고 무기를 내려놓을 바보가 아니다. 당신의 그 말은 우리 아온에 대한-"
시몬이 마무리했다.
"모욕이다."
쿵!
누군가 발을 굴렀다.
쿵! 쿵! 쿵! 쿵!
이내 성벽의 모든 병사들이 극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시뻘게진 얼굴, 충혈된 눈으로 적을 똑바로 응시했다.
"왕성까지 오는 길에 약탈을 자행해 온 너희 왕국이 어찌 '보장'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가."
쿵!
"우리는 현혹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지킬 것이다."
쿵!
시몬의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아이움 아온!"
병사들은 이계에서 온 가디언이 그 구호를 알고 있다는 것에 당황했지만, 그 당황함이 감격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모든 병사가 창을 세우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아이움 아온!"
"와아아아아아아아!"
벽력과도 같은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병사들은 울고 웃으며 격렬하게 소리쳤다. 적에 대한 적대감과 싸울 의지를 끌어올렸다.
"여윽시 시몬!"
딕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아군 병사들의 사기가 역으로 올랐어!"
메이린의 두 눈은 시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팔을 내리며 목을 매만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메이린과 눈을 마주치자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좀 부끄럽네. 너무 과몰입했나."
"아니."
메이린이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시몬에게 미소 지어주었다.
"멋있었어. 시몬."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아직도 환호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 씨이......!"
분노와 굴욕감으로 얼굴이 시뻘게진 엘리사가 뭐라 뭐라 소리쳤지만, 아온 왕국의 병사들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아이움 아온! 아이움 아온!"
사기가 실시간으로 오를 뿐이었다.
"엘리사."
그때 엘리사가 탄 마차 위로, 허리에 커다란 장검을 차고 안대를 쓴 남학생이 툭 내려왔다.
"떼쓰지 말고 돌아오시오. 그 녀석이 많이 화났소."
"아 진짜아!"
엘리사가 답답한 듯 제 가슴을 콩콩 쳤다.
"수인들 저거 다 뇌가 쥐 수준인 게 틀림없어! 바보들 아냐?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게 어딨어! 저딴 소리에 뭔 사기가 오르냐고! 결국 시몬 폴렌티아의 저 말도 감성적 선동이잖아!"
"나는 배움이 짧아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쥴이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 때,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 따른다 들었소. 전쟁 연설을 논리적인 이성에 호소한 그대의 패배가 맞소."
쥴이 그렇게 말하며 엘리사의 목덜미를 쥐었다. 그녀의 몸이 가뿐하게 휙 들렸다.
"무, 무슨 짓이야!"
"총사령관이 더 꼴사나워지기 전에 그대를 회수하겠소."
"아악! 이거 놔! 난 아직 진 게 아니야!!"
* * *
전쟁이 시작됐다.
칸 왕국도 시간이 그리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병력을 나누어 네 개의 성문을 동시에 공략하는 총공세로 나왔다.
"온다!"
딕이 소리쳤다.
시몬이 맡고 있는 남문에도 적들이 몰려왔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칸 왕국의 수인군들의 모습은 상당한 위압감이 있었다.
그래도 남문 쪽은 나름 방어 포인트가 있었다. 지금은 말라버렸지만, 예전에는 해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 아래에는 해자 구덩이가 있기 때문에 큰 사다리를 써서 성벽을 올라야 했고, 무엇보다 성문으로 올라오는 길목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시몬은, 좁은 언덕을 잘 틀어막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시작하자."
성벽 위에 서 있는 시몬이 피아니스트처럼 두 팔을 세워 들었다.
여덟 기의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세웠다.